주홍 머리의 양쪽에 곱게 굽이친 뿔이 달린, 전래동화의 소녀는 폐허가 되어 본연의 색을 잃은 시가지에 앉아 있었다.

이제 더는 손으로 두들겨도 변화가 없는 정지된 세계 속에서, 소녀는 표주박에 든 내용물을 목젖으로 넘기며 옆의 여인에게 말을 꺼냈다.

"나로서는 귀찮고 귀찮아서, 더없이 귀찮을 정도로 의미 없거든, 이런 짓..."

그에 금발의 여인은 귀기서린 분위기를 풍기며, 나풀거리는 모자에 달린 리본을 매만지며 답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잖아? 강적과의 숨막히는 싸움을 소개해주는 대가로, 환상향 확장사업에 협력해주기로 한 건 스이카 너란다?"

"내가 원하던 강적이 아니라고, 이런 건!
좀 더 가슴 뛰고 정정당당한 싸움이 하고 싶었단 말이다. 예를 들자면 — 너 같은!"

찰나의 순간에, 표주박을 잡은 왼손이 그녀와 대화하던 여인이 있었던 지점에 충격을 가했다.

물론 그 자리의 여인은 한 발 앞서 사라진 뒤였다.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한 둘이 아닌걸 봐서 예의 그 '조율자' 군단일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추세운다.

어깨를 펴고, 손가락을 말아쥐어 주먹을 굳세게 한다.

기이한 현상에 의해 자신의 '밀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 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그녀의 이름은 이부키 스이카.

"그으럼, 마뜩치 않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니만큼, 후딱 끝내보실까!"

전래동화의 대악당 오니 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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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기술이야. 인간의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구나."

금발의 굽이치는 긴 머리, 자색 눈동자, 흑/백/자색이 섞인 도사복과, 정체불명의 양산이라는 기이한 복장을 한 여인이다.

"너는 잘 해주고 있어 스이카. 이 '특이점' 을 손에 넣어서, 난 내가 일궈낸 것들을 지킬 거야. 그러기 위해선, 믿을 만한 친구가 필요하거든. 너처럼"

격리된 세계에서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말을 넋두리처럼 뱉으며, 그녀는 인적 없는 건물의 중심에 있었다.

"조율자가 사용하는 힘의 원천...천년 만년 지속되는 세계...나는 우리의 낙원을, 영원으로 만들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손끝에서 스파크가 일더니 공간이 갈라지며 '무언가' 가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리본을 단 모자를 매만지며, 그녀는 그것을 '만졌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빙긋 올리며, 만진 손에 힘을 주었다.

"찾았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던 무언가를 발견했음과 동시에, 이 침공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 녀석...또 뭔 짓을 벌였구만?"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이부키 스이카가, 남은 조율자 한 명을 지면에 처박아버리고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비약적으로 빨라진 신체를 쳐다봤다.

"마치...시간이라도 멈춘 것 같은..."

그녀의 추측은 거의 맞았다. 그녀의 친우가 벌인 대규모의 왜곡에 의해, 그녀의 시간만이 크게 가속되어, 다른 것들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것이다.

"그래서 너의 계획이 이거냐? 야쿠모 유카리."

야쿠모 유카리는, 인간의 전유물이였던 특이점으로의 일방적인 간섭에 성공했다.

이는, 그녀의 계획에 있어 아주 작은 첫 걸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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