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건, 불공평하잖아!"


 제가 내민 계약서를 봤을 때의 트레이너씨는 당연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귀하 000 트레이너는 사토노 그룹으로 매달 이자 10%의 10,000,000엔의 채무를 질 것을 약속한다.


 라고 써져있는 계약서를 봤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트레이너씨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이 채무에 대한 계약서를 본다면 이게 뭐냐는 어처구니 없는 반응을 하지 트레이너씨처럼 항의하는 듯한 태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럴만도 하죠. 평범한 사람인 트레이너씨 주변으로 선글라스를 낀 양복 입은 분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도 나름 용기 있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제발 용서해다라거나 빌었겠지만, 트레이너씨는 저를 향해 '항의'를 했습니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계약서를 내밀었죠.


"이건...?"


 혼인신고서였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제 이름이 기입되어 있었고 트레이너씨의 성함만 적으시면 끝나는, 아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절차입니다. 이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정식으로 식을 울리기 위해서는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 정도면 트레이너씨와 함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에는 충분했죠.


 아, 현재 상황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으시다면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저는 트레센 학원에서 재학 중인 사토노 다이아몬드고, 제 앞에서 이 상황에 대해 떨고 있으신 남성분의 전의 담당 트레이너씨입니다.  


 트레센 학원에 어릴 때부터 함께해온 키타산 블랙과 함께 갓 입학한 신입생인데도 불구하고 저희 가문이라는 후광 때문에 첫 모의 레이스에서부터 수많은 트레이너분들에게 관심을 받게 됩니다.


 자기 전속이 되어달라거나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겠냐거나.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지만 많은 분들에게 관심받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었죠. 하지만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분들이 아닌, 저 멀리서 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린 이 분이셨습니다.


 참 이상했죠. 관심을 가지지 않으신 분이신데 제가 그 분한테 관심을 가지게 되다니 말이에요.


 그런 우연에서 탄생한 인연이 저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 기적이 일었난 모양이에요. 그렇기 제가 그 분을 사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트레센은 참 좋은 곳이에요. 자신이 원하면 전속 트레이너를 우마뾰이하더라도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말이죠. 다만, 저는 제 트레이너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권유를 드렸습니다만 그는 저에게 '그런 장난을 치면 못쓴다.' 라면서 훈계를 했습니다.


 장난이라뇨. 진심이었는데.


 그래도 트레이너씨는 저를 걱정해준다는 나름대로의 기쁨도 있었습니다만, 반대로 불안함도 느끼기 시작했죠. 만약 트레이너씨가 자기가 아닌 다른 우마무스메와 계약을 맺는다면? 


 제가 아니라 다른 분과 우마뾰이를 해버린다면?


 그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어요. 


 저는 얼마전에 자신의 트레이너와 우마뾰이를 한 소꿉친구인 키타산에게 이 고민을 전했죠. 그러자 키타산은 웃으면서 별 거 아니라며 저를 위로해줬습니다.


"트레이너가 네 곁을 떠나는 게 싫다면 잡아두면 되잖아?"


 저희 사토노 그룹에 대해 아직 많은 걸 모르지만 아버지의 곁에 있으면서 몇 가지 알고 있는 사항이 하나씩 있습니다. 지금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지만, 그 한정적인 것도 일반인들은 꿈도 못꾸는 것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으로 이 상황을 고른 겁니다.


 비록 트레이너씨를 잡아오는데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트레이너씨에게 혼인 신고서와 불평등한 계약서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까지 왔으니까요.


"사토노,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되잖아!"

"트레이너씨. 전 언제나 불만을 이야기 해왔어요."

"이야기 했다고? 설마, 우마뾰이 때문이야...?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넌 나한테 가르침을 받은 입장이고 난 널 가르치는 입장이란 말이야! 아직 성인이 되지도 못한 너와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라는 거잖아요? 지금은 어디까지나 약혼 이상으로 넘어가지는 못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합법적인 관계가 되잖아요? 물론 추가적인 계약 내용을 어긴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혼인신고서 뒤로 다른 계약서가 있습니다. 별 거는 아니고, 사토노 다이아몬드 이외의 여성과 어울리거나 한다면 어마어마한 빚이 생긴다. 뭐 그런 거죠.


 트레이너씨는 두 계약 사이에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만, 제 입으로 이야기하긴 그래도 사토노 그룹의 자녀인 저와의 결혼에 어마어마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것과 일반인은 평생 값어도 처리할 수 없는 채무의 빚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젠장... 내가 어째서 이런 일을..."


 트레이너씨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토노 그룹에서 각종 행사 중에 사은품으로 주는 볼펜을 잡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혼인 신고서에 이름을 작성하는 것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습니다.


 아무리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라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채무를 감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트레이너씨는 혼인 신고서에 이름을 작성하였고 제 앞으로 건네주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훔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는 기쁨의 눈물이 아닌 분하고 억울한 슬픔의 눈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는 눈물을 기쁨으로 바꿀 자신이 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지만 돈이 없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혼인신고서를 확인했습니다.


 ....트레이너씨가 이웃나라 출신이신 건 오늘 처음알았습니다만 뭐 어떤가요? 이제 트레이너씨는 저의 것인데.


 히끅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트레이너씨가 울고 있는 것이겠죠. 그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를 따스하게 안아줬습니다. 하지만 트레이너씨는 여전히 히끅이는 소리만 낼 뿐이었죠.


 저는 그 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일생일대 최대의 후회를 해본 적이 있나? 나는 지금 당장이다. 내 평생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을 다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 후회스럽다는 소리다.


 어릴 때 옆집에는 친하게 지냈던 우마무스메가 있었다. 그녀의 꿈은 세계 제일의 우마무스메가 되어서 전설이라 불렸던 전 세계의 우마무스메들과 겨뤄보는 것이었다. 꿈도 야무진 것이 괄괄한 성격 때문에 남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알다시피 우마무스메들은 이름답게 모두 여자다.


 친구라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러면 나는 우마무스메를 관리하는 사람이 될 거야. 라는 말을 했다. 그때 당시 '트레이너' 라는 단어를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애는 '바보야! 그건 트레이너라 부르는 거야!' 라고 놀렸고 나는 트레이너가 될 거라고 다시 맹세를 했다.


 그리고 그 애와 약속을 했다. 이 다음에 크면 꿈을 꼭 이루자고 말이다. 세계 제일이라는 꿈을 꾸는 우마무스메와 그냥 트레이너를 꿈꾸는 소년의 조촐하지만 대범한 약속이었다. 


 유치원 다닐 때 했던 약속이었지만 그것이 다짐이 되면서 우리는 그 꿈을 향해 노력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애는 중학교 때 학교 우마무스메 대표로서 뛰기 시작했고 국내 트레센에서도 그 아이에게 입학해보는 게 어떠하냐는 제의가 오기도 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보장된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학교에서도 추천서를 써줄 정도로 열심히, 실력이 있었던 우마무스메의 기쁨이 눈에 선했다.


 이 일은 나한테 먼저 자랑을 했었다. 드디어 내 꿈을 이루는 것에 한 보 다가섰다고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트레센은 국내외 할 것 없이 모두 기숙사제로 돌아간다. 내가 직접 찾아가거나, 방학이 아닌 이상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더 이상 옆집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쓸쓸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했다.


 나도 꼭 트레이너 자격을 얻어서 트레센에 취직하겠다. 같은 소박한 약속을 하고 그 애는 트레센에 입학하게 되었다. 예쁘장하게 차려 입은 교복을 보여주며, 한 번 트레센에 놀러오라느니, 그런 장난기 섞인 말과 함께 그녀와 이별을 했다.


 그 후로는 전화나 소식으로 밖에 듣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만에 G1급으로 성장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G1에서 우승한 적은 없었지만 우승의 가능성이 있다나. 그때 나는 트레이너에 대한 자격을 공부하고 있었고 아마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간절한 소망도 있었는데 슬프게도 그 소망은 이루지 못했다.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휠체어에 타고 내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음주운전 사고였단다. 지방 레이싱을 끝내고 밤 늦게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트레센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았고 신호를 지키며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빨간 불인데도 술에 취해서 무작정 달리던 차량과 부딪쳤다.


 둘의 목숨은 붙어 있었으나 트레이너는 팔이 부러졌고 그녀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달리지 못하는 우마무스메는 아무런 가치 없다. 아마 트레센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꿈도, 가능성도, 영광도 모조리 날아갔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보면서 나도 내가 트레이너라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힘겹게 휠체어를 끌면서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주면서 너는 꿈 포기 하지 말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 또한 그녀의 새로운 꿈이라는 것을 느꼈고 나는 그 꿈을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


 단지 그 규모가 좀 커져서 설마 일본 트윙클 시리즈까지 진출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타지 생활은 적응의 문제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본국에 있는 가족과 그녀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잘 지내고 있고 내가 트레이너 생활을 하게 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준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계약을 맺었다. 

 

 사토노와 만났을 때는 그저 그랬다. 트레이너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생초짜가 대기업 영애에다가 실력도 출중한 우마무스메를 상대로 제대로 지도를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모의 레이스에서 수많은 트레이너 사이에서 베테랑 트레이너들도 권유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안 될 거라며 슬쩍 보고 떠났다.   


 그럴 뿐이었는데 무슨 악연인지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전속이 되었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트레이닝 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지 그녀는 어렵지 않게 G1급의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것에 성공하게 되었다. 첫 우승에만해도 수많은 인지도와 보상이 들어오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해냈다는 것에 기쁘다기 보다는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면 그녀도 G1급에서 우승하고 사고도 안 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상상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 좋아진 내 표정을 발견한 사토노가 자기가 이긴 것이 기쁘지 않냐며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그냥 안 좋은 과거가 있어서 라고 대답했고,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 해달라면서 나를 응원했다. 서로 전속이니만큼  의지도 많이 해야한다면서 말이다.


 그때 내 기분이 조금 풀렸던 것인지 경기장에서 나오면서 사토노에게 내 과거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녀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어차피 지나간 과거고 내 일이라며 신경쓰지 말아달라 했지만 사토노는 나를 향해 묘한 표정을 보였다. 


"정말 괜찮아. 그 애도 잘 지내고 있고 전화도 주고 받으니까."

"...그렇군요."


 안심한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사토노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사단이 났다.


 사토노는 자신의 회사의 어둠에서 활동하는 부하들을 시켜서 나를 납치했고, 어디론가 으슥한 곳으로 데려와 강제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그것을 작성하지 않으면 빌리지도 않은 돈을 매달 10%의 이자를 추가로 갚아야 하는 채무가 생기는 계약서를 써야했다. 


 믿었던 내 담당에게 그것도 '나를 사랑해서'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이런 짓을 벌였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게 믿겨지지 않는다. 평소 순진무구하다고 할까, 세상물정을 모른다고할까 전세 내지 않은 놀이동산이 이렇게 사람 북적거리는 곳이라며 놀라워했던 아이가 나를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다는 게 꿈 같았다.


 하지만 사토노는 자신의 의도를 계속해서 표해갔다.


 그녀에게 우마뾰이를 당한 시점에서 그에 대한 남아있던 작은 정나미마저 떨어지고 말았다. 


 강제적으로 진행한 것은 맞지만 힘으로 제압한 것이 아닌 '계약'으로 나를 정신적으로 몰았다. 방으로 느닷없이 찾아온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소꿉친구인 키타산이 자신의 트레이너와 우마뾰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우리도 질 수 없다며 웃으며 다가왔다.

 

 그 당시 나는 사토노에게 일말의 배려를 기대했다. 이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토노는 오히려 계약을 들먹이며 다가왔다. 나는 계약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항의했고, 사토노는 다른 혼인신고서의 다른 계약 내용을 안 본 거냐며 물었다. 


 나는 종이를 빼앗았다. 


 어두운 곳에서 뭘 찾으려고 하는데, 종이 한 구석에 '남편(부)에 해당한은 인원은 아내(처)의 애정행각을 모두 받아줄 것에 약속한다." 라는 내용의 불평등한 또 다른 내용이 있었다.


 순식간에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분명 그 종이는 복사본에 불과했겠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 상황에 이미 종이는 모조리 찢어져서 눈처럼 팔라이며 주변에 쏟아졌다.


 사토노는 그 광경을 보면서 가만히 웃고 있었다.


"대체...왜..."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그녀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날 사토노는 나에게 기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우마뾰이를 몇 날 며칠이고 그녀가 찾아올 때면 나는 그녀의 응석을 받아들여야했고 원하지 않는 키스를 받으며 우마뾰이를 받아들여야했다.


 내 윤리마저 파괴하는 가증스러운 우마무스메와 계약을 파기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이 상황에서 천장을 보거나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매달리면 편해질까


 떨어지면 편해질까


 그럼 위험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린다. 이 사단에 대해 결국 참다 못해 이사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트레센의 위에 있는 작은 체구의 이사장이 다짜고짜 찾아온 나를 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두 고발했다. 내가 좆 되던 트레센이 좆 되던 이 문제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작은 이사장의 대답은 내 뒷통수를 때렸다.


"일상! 돈이 있는 집안이라면 자신의 트레이너를 잡아두는 건 별 일 아니지."


 일상. 일상이라니, 트레센은 트레이너들을 뭘로 보고 그러는 건가? 사토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나름 있는 집안 출신 우마무스메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살려주세요... 이사장님 제발요...!"


 어쩔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녀에게 매달렸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고 애원을 했단 말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살려고 버둥거리는 한 마리의 송사리가 그물에서 팔딱이는 것이나 다름 없지만 매달렸다.


"불가. 사토노 그룹의 딸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일개의 학교가 대기업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지만 그녀는 이사장이다. 아무리 그래도 학생의 신분을 어찌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입이 벌어졌고 욕설 섞인 말로 이사장이라는 년이 학생을 어떻게 못하냐며 따졌다.


"트레이너."


 이사장의 말버릇은 독특했다. 말을 할 때마다 맨 앞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한 두 글자를 먼저 말하는 버릇이다. 지금 그 버릇이 잠시 사라졌다.


"나라 감정 같은 건 없지만, 이 나라에서 자네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너는 오히려 이 상황에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다. 학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트레이너로 지원하는지 알고 있나? 그 안에서 선별하고 선별해서 뽑은 트레이너는 우마무스메 개인, 또는 팀의 담당이 되어서 이끌어 나간다. 당연한 순이지."


 이사장이 부채를 펼쳤다. 부채에 써진 글자는 '체념'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자네처럼 외국에서 온 다양한 트레이너도 있지만, 알다시피 나라간의 관계란 게 있지 않은가? 자네 같은 경우는 특이한 경우야.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순전히 능력을 인정 받아서 우리 학원에 들어와 다른 곳도 아닌 사토노 그룹의 영애와 계약을 맺고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자네는 축복인 거야. 이곳을 그만둬도 미래가 보장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그런데 그것이 싫다고 나한테 매달려봤자 달라지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나는 붙잡고 있던 이사장의 치맛자락을 놓았다.


 학교에서조차 포기한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곳이었던 것일까?

 

 이 얼마나 잔혹한 상황인가.


"부탁. 타즈나, 이 트레이너를."

"네, 이사장님."


 본래 버릇이 돌아온 이사장의 말을 듣고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비서 타즈나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양복 입은 그들과 다르게 매우 부드러운 행동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타즈나에 이끌려 이사장실을 나온 나는 터덜터덜 걸으면서 멍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었다. 주변에서 우마무스메들이 시끄럽게 떠드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평생 사토노의 장난감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지옥으로 가는 특행 티켓이었을 줄이야.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야, 사토노네 트레이너."


 조금 있으면 해탈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내 어깨를 잡는 한 남성의 손길에 고개가 돌아갔다.


"...타키온네 트레이너잖아."


 사실 손길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손을 보고 알아차렸다. 아마도 그녀의 실험에 동참했다가 화려하게 빛나는 모양이다.


"...끝내주는 걸 알았는데, 잠시 시간 있을까?"


 그가 나를 찾는 건 드문 일이다. 트레센에 들어온 사람 중에 골때리는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다. 그도 조금 무뚝뚝해서 그렇지 자신의 우마무스메를 최선으로 생각하던 참된 교육자였는데 얼마 전 타키온에게 우마뾰이를 당한 이후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가 나타나서 나를 찾는다. 그것도 매우 수상한 행태를 보이면서 말이다.그런 행동에 거부감이 느껴질만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의 호출은 무언가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


"뭔데?"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나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나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이 다룰 법한 다양한 어플들이 보였다.


"스마트폰 화면은 왜? 뭐 자랑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이거."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손가락으로 한 어플을 가리켰다. 


 최면.


 어플도, 아이콘에도 최면이라고 써진 글자만 달랑 있는 뭔 이상한 앱이었다. 최면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본 성인 만화 마냥 스마트폰 앱으로 최면이 떡하니 있는 게 우스웠다. 이걸 사용하면 우마무스메에게 최면이라도 걸 수 있기라도 한 거냐며 비꼬려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파일 보내줄테니 무조건 깔아."

"스토어에도 올라오지 않은 수상한 어플을 받으라고? 나중에 내 개인정보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건 사절이야." 

    

 이미 넘어 갔을지도 모르지만 추가로 또 내 개인정보가 털리는 건 사절이었다. 기분도 드러운데 타키온네 트레이너는 이딴 사기나 치려고 날 잡아둔 것에 대해서 기분이 언짢다. 더 있다가 괜히 성질을 부릴 것 같아서 그냥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내 팔을 붙잡더니 어마어마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다보면서 한 마디하는 거다.


"너도 이 개짓거리에서 해방되고 싶잖아. 잔말말고 그냥 받고 깔고 어플을 켜서 네 담당한테 보여줘, 그러면 그 녀석은 최면에 걸릴꺼야. 그 다음 네 마음대로 해.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준다고. 못 믿겠으면 날 찾아와서 때려도 좋아."


 때려도 좋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의 말에는 신뢰성이 없었지만 그는 나에게 이미 파일을 보내고 나에게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얼떨떨하게 파일을 받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보내준 파일을 살펴보았다. 최면.apk라고 써진 앱 설치 파일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그는 강압적으로 나에게 이 파일을 주고 사라졌다.


 이걸 다운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도 이 개짓거리에서 해방되고 싶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에라도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토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에 껴서 괴로웠는데 그 첫마디가 계속 신경쓰였다.


 설마 이게 진짜 가능한 건가? 그런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를 찾아 물어보는 것보다 직접 실험하는 게 나을테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토노가 지금 어디있냐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를 본다면 내 숙소로 와달라고 한다. 이제는 부탁도 아닌 명령하는 식이다. 


 그런 메시지를 보면서 타키온의 트레이너가 보내준 앱 설치 파일을 번갈아본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실험을 해보는 것 말고는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만약에 그가 정말 사기를 친 거라면 어떻게해서든 찾아내서 떡이 되도록 두둘겨 패줘야겠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내 손가락은 그가 보내준 파일을 누르고 있었다.












쓰다보니 한 편으로 안 끝나버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