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


숨을 꾹 참는다.

기척을 지운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사신이 내 옆을 지나간다.



발소리는 천천히 멀어진다.

하지만 난 여전히 제자리에 숨어있다.

그러길 5분.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서야 나는 다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은 20××년.

말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간-말딸 가정의 높은 출산율이 그 원인인것이다.


말딸의 아이들은 상당수가 말딸이다.

그 아이들이 커서 또 말딸을 낳고

그 아이들은 또 자라서...



결국 인간은 사라지기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인간 여성'은 이젠 희귀종이 된 지 오래.

'인간 남성'은 그정도로 희귀하진 않지만, 인간 자체가 소수민족이 된 상황에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압도적 성비 불균형에 정부는 일부다처제 허용, 인간-인간 부부의 결혼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밀어치는 거대한 파도는 방파제 따위로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 선을 넘었다.


남자 사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마뾰이에 미친 말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남자를 찾아다녔다.

어쩌다 한 명 잡혔을 때는, 주변의 모든 말딸이 남자 맛 한 번이라도 보려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생존을 선택했다.
깊은 숲, 산맥, 설원과 사막까지.


문명에서 멀어져 성욕의 괴물로부터 숨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기부터 위성정찰까지 동원한 말딸들에게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극소수다.



나 또한 아직 자유로운 남성 중 한명이다.


먼 과거, 말딸들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그들'...
희생된 그들에게 바치는 애도의 의미로, 날 포함한 몇몇 남성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

'트레이너.'

나는, 트레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