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최면 능력을 연습해보겠다며, 실에 동전을 매단 채 눈 앞에 들어보이는 용사.


그런 편리한 능력이 어디있냐며 한 소리 하고싶지만, 성녀로서 용사님께 너무 모질게 대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다.



'어, 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용사는 나의 눈 앞에서 동전을 흔들고 있었다.


흔들리는 동전을 멍하니 보고있으려니, 문득, 그냥 최면에 걸린 척 용사님을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순수하신 분이시니, 질 나쁜 일을 시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말이다.



"성녀님?"



고민하는 모습이 최면에 걸려 멍한 모습처럼 보였는지.


용사가 동전을 흔드는 걸 멈추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정말로 최면에 걸린 척, 대답하지 않고 멍한 눈으로 용사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네...."


"저, 정말로 된 건가?"



정말로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꿈벅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용사.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혼자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되, 될까...?"


'용사님.... 뭔가 나쁜 생각을 하시는 건가...?'



설마 용사인데 그런 짓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용사님 역시 남자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만약 용사님이 그런 부탁을 하신다면 최면에 걸린 척을 멈추고 훈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여전히 최면에 걸린 척 용사를 바라보았다.



"서, 성녀님!"
"네, 용사님...."


"혹시,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실 수 있나요?"


'아?'



아니, 대체 얼마나 순수한 거야?


최면까지 걸어놓고 부탁하는 게 겨우 그거야?


나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녀인데?



'...이러니까 뭔가 내가 나쁜 최면을 기대한 것 같잖아.'



딱히 그런 건 아니다.


...아마도.



"네, 레온님."
"앗, 그.... 님은 붙이지 말고, 친구처럼 불러줄 수 있을까?"


"네, 레온."
"우와...."



얼굴을 붉히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조금 더 골려주고 싶어졌다.


솔직히 이 정도로 끝내면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용사도 남자니까, 그런 쪽에 아예 관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시킬 것은 없으신가요?"
"어, 어?"


"'뭐든' 괜찮으니 무엇이든 명령해주세요."



'뭐든'이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며 가슴을 강조하듯 앞으로 내민다.


그런 나의 행동에, 아까처럼 용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본 거 맞지?'



"그, 그러면...."
"네."


"레온 좋아해라고, 한 번만, 아니, 열 번만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 대체 얼마나 순수한 거야...?'



성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건 아닐텐데.


그런 일을 시킬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오기가 생겨왔다.



"레온 좋아해."
"으아...."


"레온 좋아해."
"자, 잠시만...."


"레온 좋아해."
"너무 부끄럽...."



'아, 리액션 너무 좋다.'



뭐,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할까.


좋아한다고 한 번 말할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용사님, 솔직히 너무 귀여웠다.



"레온 좋아해."
"그, 이제 그만...."


"레온 좋아해."
"...."



그렇게 열 번을 전부 말하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고개를 푹 숙이는 용사.


나도 모르게 용사를 쓰다듬을 뻔 했지만, 지금은 최면에 걸린 컨셉이니 참아야한다.



"그, 그러면 마지막으로...."
"...."


"뽀, 뽀뽀를.... 아니, 취소! 취소!"
"뽀뽀를 하면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취소같은 건 없어요!'



나는 한 걸음 거리에 서있던 용사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


그대로 용사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햐으...."



입술이 떨어지자, 마치 고양이같은 소리를 내며 고개 숙인 용사.


귀가 어찌나 빨개졌는지, 이제는 무슨 방울토마토처럼 보일 정도였다.



'귀 깨물어보고 싶다....'



"나, 나쁜 짓 해버렸다.... 어떡하지...."



그렇게 혼잣말하던 용사가, 다시 동전을 들고 나의 눈 앞에서 흔들었다.



"그, 이제 최면이 풀리고, 당신은 원래 상태로 돌아옵니다.... 최면 상태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잊어버립니다...."



'...아, 잡아먹고 싶다.'



안 돼.


참자.


너는 성녀야.



"아, 용사님, 역시 최면같은 건 안 통하나봐요. 아무렇지도 않네요."
"그, 역시 그렇죠...?"



...최면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성공하면 쓸 곳이 있을 지도 모르니, 연습 상대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 정말요...?"
"네. 용사님을 돕는 것이 성녀인 저의 역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