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엘리아스.

어느 날과도 같이 업무태만을 즐기고 있는 교주.

그러다가 문득 교주의 눈에 든 이가 있었다.


"흐헤헤헤헤... 키득키득."

"응? 시스트?"

"아, 교주님? 이런 데서 다 보네요."


그 날따라 시스트의 입에는 키득거리는 웃음이 걸려 있었고,

들고 있는 바구니는 묵직한 듯 굼뜨고도 꾸준히 흔들거리고 있었다.


"짐이 많아보이네. 어디서 좋은 물건이라도 많이 구한 거야?"

"뭐, 이번에 크게 한탕 치긴 했습죠."

"...또 누구한테 사기라도 친 건 아니지?"

"후후후..."


시스트는 확실한 대답 없이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러면 교주. 다음에 좋은 물건 하나 사주기예요? 지금은 제가 바빠서 이만..."

"어?"


시스트가 장사를 뒷전으로 미룬다고? 저렇게 짐을 한가득 가지고도?

혹시 몰래 옮기는 밀수품 같은 걸까? 벨리타의 간식거리 같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의아함과 호기심이 든 교주는 시스트에게 손길을 뻗었다.


"저기, 시스트. 지금 그 짐 좀 무겁지 않아? 마침 나 한가한데 조금 들어..."

"...!"


그러나 교주의 손이 바구니에 닿으려 할 때쯤, 시스트는 손을 쳐내고 바구니를 홱 하고 돌렸다.

예상치 못하게도, 거친 자갈과도 같은 적의가 돋쳐왔다. 그에 어울리는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밑에 깔고서.


"...시, 시스트?"

"...괜찮아요. 지금은, 마음만 받을게요, 교주."


그렇게 말하며 시스트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 교주는 조심스레 시스트의 뒤를 밟기로 했다.




끝도 없이 킥킥대는 시스트를 따라, 멀리도 걸어 도착한 곳은 인적 없는 동굴.

그곳에서 시스트는 자리 잡고 앉아 소매를 주섬거리기 시작했다.

시스트의 손 안에서 뭔가 반짝거리자, 교주가 뛰쳐나와 시스트를 검거했다.


"동작 그만! 시스트, 너 손에 든 거 뭐야?"

"으엑!? 교, 교주?"


예상치 못한 깜짝 방문에 시스트는 허우적대며, 손 안에 있던 것을 떨어뜨렸다.

영롱한 빛으로 반짝거리는 자수정이었다.

교주 또한, 같은 종류의 보석 중에서 본 적도 없는 매혹적인 빛깔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것을 시스트가 다시 잽싸게 손 안으로 가져가기까지 말이다.


"뭐, 뭐하는 겁니까요!? 구태여 이런 외진 곳까지... 교주가 무슨 스토커예요?"

"아, 아니... 그 뭐냐, 신경 쓰이잖아. 그렇게 홱 하고 가버리면..."

"에휴... 그래요. 방금 전에는 제가 너무했다고 쳐요. 하여간 교주는 오지랖만 넓어서는."


교주에게 괜한 짓을 하고 난리냐는 듯 툴툴대는 시스트.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손 안의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자수정을 보고 있는 거야?"

"그, 그렇죠! 이래뵈도 자수정의 용족이니까, 이상할 거 뭐 있어요?"

"그치만 너, 자수정은 값이 안 나간다면서 모으지도 않잖아."

"뭐... 장사치가 안목에 싼티를 내서야 득 될 게 뭐 있겠어요."


그리 말하며 시스트는 손 안의 자수정을 매만지고, 그윽히 들여다 보았다.

교주의 시선도 같은 점에 꽂혀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자수정은 정말 일품이네. 누가 봐도 헐값이라고는 못 하겠어."

"...그렇죠? 그래서 저도 참 좋아해요."


시스트는 불룩한 소매를 뒤적이더니, 마찬가지로 영롱한 자수정 몇 조각을 더 꺼내보였다.


"값도 안 나오는 자수정 중에서도 이런 일품들이 나오는 법이죠. 특히나 오늘은 운이 좋았구요."

"오오... 괜히 나까지도 탐나게 하네. 그런데 이런 자수정들은 어디서 찾은 거야? 혹시 나도 알려줄 수 있어?"
"후후후... 비밀입니다. 팔지도 않을 영업비밀입죠."

"영업?"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건 그렇고, 슬슬 교주도 시간이 없지 않은지요?"

"아, 그, 그렇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안 돌아가면 네르가 화내겠어!"


가뜩이나 외진 곳까지 와 있어, 일정에 맞출 시간이 촉박해져 있었던 교주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던 중에, 시스트는 교주에게 넌지시 손을 뻗었다.


"여기요, 교주. 입막음 비용입니다."

"응? 아, 딱히 떠벌릴 생각도 없는데..."

"됐으니까 받아요."


억지라고 하기에는 퍽 나긋하게, 시스트는 교주에게 영롱한 자수정 한 조각을 쥐어줬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다른 누구 눈에 안 띄게 보관해주세요. 특히..."

"알 것 같네. 마요 말이지? 이런 귀한 걸 보면 눈 돌아가서 무슨 난리를 칠 지 안 봐도 뻔하네."

"흐흐흐. 이래서 눈치 빠른 교주는 싫지 않아요."

"아무튼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오늘 즐거웠어."

"네. 저도 나름 즐거웠습니다요."


그렇게 말을 나누고서 정말로 시간이 없었던 교주는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고.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시스트는 말을 다 끊지도 않은 채로 더 깊은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깊고 어둑한, 메아리조차도 기이하게 먹혀 없어지고 마는 동굴 안쪽.

시스트는 그 속의 어딘가로 걷고 걸어 들어갔다.

점차 깊은 곳으로, 점차 느릿한 걸음으로.


"크헤헤... 키킥, 킥, 크흑..."


이내 걸음이 0에 이르자, 시스트는 동굴의 한가운데일지 어떨지도 모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꾸준히도 흘러나오던 웃음 또한 껍질을 벗고 다른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크흐... 윽... 으으으... 으아아아아아!!!"


목을 울리고, 동굴을 울리고, 이내 퍼석하게 사라져가는 절규.

담긴 것은 노여움도, 슬픔도 아닌, 불쾌하리만큼 순수한 통증.


"하아... 크... 이것만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잖아..."


거친 숨을 뱉고 쉬며, 시스트는 소매를 움켜쥐고 털어낸다.

덜걱거리는 소리를 수 차례. 숨만큼이나 거칠고, 영롱한 자수정 자갈들이 털어내어졌다.

그리고 이내 빈 소매만 남았다.

자갈들은 색이 선명하나, 뾰족한 끝과 매끈한 결이 무색하게도 요란하게 떨고 꿈틀거린다.

시스트는 아직 소매가 달린 손으로 바구니를 뒤적여, 가장 밑바닥에 쌓인 물건을 꺼낸다.

아픈 것을 무마하는 약과, 부서진 것을 무마하는 약.

그중 첫째 것의 알약을 대여섯 꺼내, 그 반절을 급히 입으로 욱여넣는다.

우득, 바득, 까득. 한 모금 물도 없이 쓰디쓴 알약을 씹어 삼킨다.

구역질을 내는 기색은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러고 나면 씁쓸함은 기이하리만큼 달고 달아오르는 느낌으로 변해온다.


"크흐... 흐흐흐."


다시 알약 하나를 집어 입에 물어놓은 채로, 이번엔 다른 한 쪽의 질척한 약을 집어든다.

그러고는 소매 없는 손과 합을 맞대어, 자갈의 깨진 면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보랏빛으로부터 서서히 선홍색. 가장 바깥은 연살구색.

그 사이를 누비는 질척한 약은 하얗다가도 금세 없었던 것처럼 투명해진다.

알약 둘을 더 씹어삼킬 즈음, 소매 없는 손에는 밑둥이 생겨 다시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핏줄을 타고 희멀건하고 비린 것이 흘러드는 감각에 헛구역질을 한 번.


"...으웩."


광물로부터 태어나는 용족, 그 중에서도 부서지기 쉬운 자수정에서 태어난 용족.

그것을 감안해도 시스트는 특히나 취약한 몸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세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원망해도 정당하리만큼.

그럼에도 태어난 것에는 살아간다는 선택지밖에 없었고,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죽음조차 부재한 나름 풍요로운 세상에서, 삶의 의미란 색채가 지독하게도 짙었다.

그 의미에서 누구보다도 특출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여느 동족이 그러했듯 시스트에게도 어떠한 욕망만은 충만했다.


자비와 동정심은 언제나 야망에게만큼은 한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깊은 비참함은 한 번이라도 드러내면 영영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그렇기에 시스트는 그것을 꼼꼼히도 덮어 가리고서 야망에 손을 뻗었다.

감성팔이는 속 보이는 개수작, 깊이 엮이고 싶지도 않은 얍삽한 악덕 상인.

단지 열심히 일한 대가로 깨지도록 아픈 고통이 얹혀오는 것만 빼면, 나름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을 것이었다.


"크헤... 교주도 참. 오지랖만 넓어서는."


아직 뻣뻣한 팔을 쥐락펴락 휙휙.

그러던 시스트는 문득 팔뚝을 움켜쥐고 감싸안는다.


"이런 얍삽한 장사치에게, 괜한 손길을 뻗고 말이예요..."


팔뚝 너머로는 허공이 있지만, 쓰라린 몸에 비하거나 말거나 아직 따스하다.


어느 날 찾아와 여느 때와 같던 일상을 깨어낸 인간. 세계수 교단의 교주.

나름 괜찮은 고객님이자 종종 만만한 호갱님일 뿐더러,

이젠 영영 내어놓지 못할 비매품에까지 손을 대어놓고,

갑작스레, 아낌없는 찬사를 내어놓은 악독한 진상님.

특별하고도, 가치 있는 사람.


"크흐... 흐헤헤헤헤..."


깊고 외진 동굴에서는 이따금씩 아무도 모르는 곡조가 울렸다가 사라진다.

필두는 괴로움을 꼭꼭 채워넣은 괴성.

종종 그렁이다 못해 굴러가는 울음과, 시큼씁쓰름하게 찢어지는 광소.

그리고 오늘만큼은, 조용하고 낮게 깔린 어떤 잔향.


그 곡조가 또한 아무도 모른 채 끝날 때쯤, 굴에 몸을 뉘인 용은 꿈을 꾼다.

해가 초라할만큼 별이 수놓은 밤.

하늘 아래 가득 쌓인 반짝거리는 재보의 산.

그 꼭대기에 올라앉아 어느 무엇보다도 영롱하게 빛나는,

바스라진 자수정의 꿈이었다.






- 필자 후기

비극 만세. 비일상 만세. 카타르시스 만세에.

라고는 해도 써놓고 보니 좀 심하게 누군가가 햄보칼수가 없는 1인용 디스토피아.

필자는 단지 시스트의 복장이 차폐율이 높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 추가 후기

무책임의 모습을 한 골자에도 의가 흐른다.

도합 열이나 스물이 될 지 어떨는지 모를 사람들이 문득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