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란 대상에 대한 미지에서 비롯된다" 에머슨 & 러브크래프트



0. 개요

이 전에 나는 공포와 괴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괴함에는 공포가 필수적으로 작용돼야 하는가.

그리고 최근, 내가 쓴 글들을 읽어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포란, 접하는 이가 가진 인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1. 공포는 우리와 너무 가까우면 안 된다.

* 내가 지금 백룸 극혐하는 이유

작년, 22년 5월에 작성했던 글인데, 짧긴 해도 굳이 읽기를 강요하긴 좀 그러니 대충 요약하자면

1. 백룸은 '미지'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아주 밀도 높게 다루는 괴담이다.

2. 그런 괴담에서 매개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는 것은 '미지'를 깨드리는 행위이다.

3. 씨발극혐한다.

이런 내용임.


미지라 함은 가장 근본적인 공포의 기원. 어떤 괴물, 현상, 공간과 맞닥뜨렸을 때 그 괴물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지, 이 현상이 무슨 결과를 불러일으킬 지, 이 공간은 대체 뭐하는 곳이고 내가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리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 불안정함이 바로 공포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라는 행위는 이 '불확실, 불안정'을 지우게 되고, 우리가 그 매개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우리와 먼 거리에 있는 비일상이 아닌, 우리의 삶과 친숙한, 그냥 조금 특이할 뿐인 무언가가 되는 행위이다.


* 요즘 로스트미디어 뭔가 뭔가임.

바로 며칠 전에 썼던 네댓줄 짜리 토막글인데, 이건 나만의 생각일 듯 하지만 그 과정은 위와 유사하다. 인간의 이해가 접목되는 순간부터 그 흥미가 사그라드는 것.


일반적인 사람은 시체를 보면 공포에 휩싸인다. 자주 접하는 것이 아니고, 시체가 있다는 것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기에.

하지만 만약 좀비를 실제로 보게 된다면, 시체를 봤을 때 느낀 공포보다 훨씬 더 한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비일상적이고, 이해 할 수 없는 매개체를 직접 마주했으니까.


우리는 우리와 익숙할 수록, 일상과 친밀하고 인지에 가까울수록 공포감은 줄어들고

반대로 우리와 익숙치 않고, 비일상적이며 낯설고 인지에서 멀수록 공포감은 커진다.




2. 하지만, 공포란 우리와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

* 코스믹 호러 뭔가 너무 압도적이면 난 흥이 잘 안나는거같음

이것도 22년 5월, 비슷한 시기에 쓴 글인데, 이건 ㅈㄴ 짧고 그림까지 있어서 한 번 읽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일단 대략적으로 적어보자면 아무리 우주적 존재라거나 모든걸 부수는 괴수같은거라 해도 너무 차원이 다른 존재면 현실성이 없어져 공포가 사라진다는 것.


거대 괴수?  무서운 게 당연하다. 영화 고질라(2014)에 나오는 무토는 그 긴장감을 제대로 살려줬고, EMP 뿌슝빠슝만 빼면 코스믹호러에 준하는 압박감과 무력함, 그에 따른 공포감까지 잘 전달됐다. 다크소울 3에서 스포 없이 초회차 중 워닐을 마주했을 때 기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고, 우주전쟁이나 미스트에서는 외계 생명체로 인한 코즈믹호러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셀레스티얼같이 지구를 한 손에 부술 수 있는 그런 캐릭터의 등장에 공포감을 느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있기야 하다만, 위 다른 예시들에 비하면 확실히 적다. 애니메이션 그렌라간에서는 행성이 아닌 은하가 점으로 표현 될 정도의 연출이 나오지만 거기서 어떤 공포감도 느낄 수 없다.


너무 거대한, 너무 먼 차원의 개체들은 되려 역으로 현실성을 무너뜨리게 되고 그 결과 공포감은 희석된다. 어쩌면 이건 영화, 만화, 게임에서의 연출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 인간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정신이 망가져 그냥 받아들이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건 공포감이 너무 커서 오버플로우가 되는것과 비슷하지만.... 뭐 일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창작물이 주는 공포감에 대한 내용이라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결론은,

인간의 인지와 너무 멀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몰입감과 현실감이 사라져서 공포를 느끼기 힘들다 라는 것.




3. 정리

공포를 효과적으로 주기 위해선 인간의 인지와 너무 가까워선 안된다. 일상적이지 않은 불안정함을 주기 위해선 현실과 멀어져야 한다.

단, 너무 멀어져서 역으로 현실성이 아예 0이 되어 없어지면 공포감은 아예 사라진다.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거니까 이해 해 줘라.

파란 선일지 빨간 선일지 모르겠고,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다 제대로 연구 한 것도 아닌, 그냥 나 혼자만의 고찰의 결과라서 아예 전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마 이와 비슷은 하지 않을까 싶다.


최종 결론 한 줄 요약

현실과 멀어지되, 너무 멀어지지는 않는 그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며, 그 임계점에 다다를수록 공포는 커진다. 하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서서는 안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