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결산하면서, 소설 한편 남기고 갑니다.



이미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한 어하 단편입니다.

글이 조금 길어져, 2부로 나누었습니다.


그럼 즐감하세요.



2부:  https://arca.live/b/soulworkers/66323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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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단풍잎이 흩날리는 가로수길이 인상적인, 이 도시에 온지도 어연 2개월이 지났다.

연인과 걸어 보겠다는 작은 소망으로 눈여겨 보았던 가로수길과 그 나무에 달려 있던 단풍은 모두 사라지고 새하얀 눈발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도조차 해보지도 못하고 때를 놓치다니, 실로 허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동부로 가기 전, 나는 동부에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변변찮던 서부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그만큼 놀거리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우리에게 주어진건 위장 신분과 더불어 24시간 감시 체제. 신분 노출을 핑계로 작전 행동을 제외하곤 영내를 벗어나는건 불가능 했다.

소울워커에 적대적인 로드즈가 우세한 지역이니 신분 노출 문제는 그렇다 쳐도, 이곳은 우민화 정책과 프로파간다로 인해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울하여 도저히 재미를 느낄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이곳에서 떠나는 일탈을 꿈꾸곤 했다.

 

이번 연말 연시, 우리는 이날만큼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것이라 기대했다.

미리 1달 전부터 휴가계를 내면서 외박을 넌지시 물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건 휴가 반려 및 영내 대기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모두의 눈과 손에서 멀어질 수 있는 장소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연말의 기적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나자, 이후의 계획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12월 24일. 연말 연시 거리의 곳곳엔 조형물과 선물상자, 리본 등이 장식되고 캐롤이 은은하게 울려 활기를 돋우고 있었다.

의료봉사를 마친 소녀는 차갑게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불며 신호를 기다렸다.

지난 서부에서의 성탄절은 아름답게 수놓은 그레이스 시티의 광장에서 함께 놀았던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소녀는 회상했다.

 

“여기 동부에선… 가능한 일일까…”

 

소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유로웠던 서부의 분위기와는 달리, 동부는 위화감이 가득했다. 

화려한 장식물들도 분위기 연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색내기 식으로 설치해 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고, 그런 의도를 반증하듯,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표정도 전혀 밝지 않았다.

이 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무언가 우울해지는 기분인 것이다.

 

“…… 잠깐만이라도 밖으로 나갈 순 없는 걸까…?”

 

이미 휴가를 반려당해 안될 일 이란 걸 알면서도, 소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연말을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성탄절의 기적, 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어딘가에는 그녀를 밖으로 인도해줄 백마탄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마치 지금 그녀의 눈 앞에 서 있는 새하얀 자동차처럼.

 

“하루!”

 

익숙한 목소리.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소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한, 왕자님이 강림했다고.

대답 대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렇게 한 소년 소녀의 도피행은 막을 올렸다.

 

 



 

“위치 추적기 다 떼어냈지?”

“네. 알려주신대로 다 했어요.”

“전화나 문자는 오늘 하루 종일 보지 말자.”

“알겠어요.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는거에요?”

“베이 사이드 호텔. 헤이븐 아일랜드 근처에 있는 호텔이야. 거기 야경이 죽여주기로 유명하거든.”

“헤이븐 아일랜드 근처요…? 괜찮을까요?”

“로우나 누님 말로는 비스타 사후에 많이 정리해서 이제 안전하다고 하더라고. 걱정하지마!”

 

베이 사이드 호텔. 한때 바큠정크가 가득했던 헤이븐 아일랜드로 인해 영업을 중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다시 열었다고 한다. 

릴리가 특별히 추천해준 장소였다.

 

“차는 어떻게 구하신 거에요…?”

“방법이 있지?”

 

면허증조차 없는 미성년자에게 차를 빌려주는 간큰 렌터카 업체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세상을 구하는 소울워커라고 할지라도!

자동차가 검문소에 이르자 그는 창문을 내렸다.

 

“신분증과 면허증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건넨 면허증은 별숲리그 교통국의 도장이 찍혀있는 정식 면허증이었다. 

사진과 인적 사항은 동일했지만, 이름은 어윈 아크라이트가 아닌 제스터 아크라이트 라는 가명으로 되어있었다.

 

“확인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쇼!”

“신분증도… 설마, 다 불법이에요…?”

“응.”

 

한달 전, 어윈은 에프넬을 통해 신분 위조 업자를 소개받아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며칠전에 차도 렌트했다. 

이 과정에서 별숲리그의 감시망을 피하느라 에프넬과 함께 상당한 고생을 한건 덤이다.

 

“이렇게 위험한 짓을… 걸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정도는 해야,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거 아니겠어? 설령 걸리더라도 책임은 내가 질거니까.”

“무모해요 정말…”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한 자동차는 목적지인 해변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탈출을 축하하듯, 풀풀 내리던 눈발도 멎었다. 

먹구름은 걷히지 않았지만, 들뜬 소년 소녀의 마음엔 이미 놓쳐버린 지난 가을의 청명한 하늘로 보였다.

 

 

 



“휴게소 우동… 정말 오랜만이네요.”

“옛날에 기억나? 그레이스 시티에 처음 왔을 때?”

“토오루 아저씨가 휴게소 가서 우동 사먹으라 했었죠?”

“그때만 해도 다신 못 먹을줄 알았는데 말야.”

“그러게요…”

 

공군 수송기로도 한참 걸리는 거리였던 만큼, 자동차로 이동하는 그들의 여행이 길어지는건 당연한 이야기. 

장거리 여행에 빠질수 없는건, 바로 휴게소일 것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휴게소엔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이 추운날, 따끈한 우동 국물과 내용물은 없지만 한입에 쏙 들어가는 꼬마 김밥, 매콤달콤한 떡볶이까지.

이걸 안먹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윈씨도 드세요?”

“많이 먹어. 아까 너 자는동안 뭐 좀 주워 먹었거든.”

“거짓말,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자, 억지 부리지 마시고.”

“괜찮다니ㄲ… 우웁…”

“안드시면 이렇게 계속 먹여드릴거예요?”

 

평소의 하루가 보이던 수줍고 소극적인 모습이 아닌, 적극적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저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이번 도피행은 성공한 것이나 다를게 없었다.


어윈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매우 오래전에 비슷한 행동을 했었던 것 같다는… 

떠올리려고 하면 무언가가 막아서는 것처럼 잘 되진 않았다.

 

“어윈씨?”

‘위이이이잉…’

다리를 자극하는 진동에 어윈은 여운에 잠긴 자신을 다스리고, 의아하게 쳐다보던 하루에게 미소를 지으며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들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놀러 간거 아닐까? 크리스마스잖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하이츠! 위치 추적기까지 떼어놓고 갔다고!”

“청춘이네~ 마침 남녀 둘이서 딱 사라진다라~ 완전 사랑의 도피ㅎ… 아야!”

“죽는다 진짜…”

 

공군 사령부. 로우나 대위는 옆에서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는 하이츠의 머리에 폭격을 날렸다.

그녀는 두 명의 소울워커가 예정에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의문을 가져 조사를 하고 있었다.

 

“얘네가 아무리 그래도 기지 밖으론 안 나갔을걸? 저기 모텔이나 호텔 같은데 뒤져보면 나오지 않을까?”

“그런건 이미 조사를 시켜놨어, 이 멍청아! 너도 좀 찾아봐!”

“그럼, 난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게~”

“똑바로 해. 저녁시간때까지 안나오면 방어준비태세를 높이는 걸 검토해볼 거야.”

“그건 내 권한이잖…”

“아 쫌!”

 

친우에게 실컷 구박받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쫒겨난 하이츠는 별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우릴 소집한거에요 아저씨?”

“네이 네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습니까~ 자, 그래서 몇 명이나 있죠?”

“하루씨와 어윈씨를 빼면 다 있는거 같습니다!”

 

마틴의 집무실, 소울워커들은 며칠째 청소를 안해 너저분한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왠지 여러분도 모를거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혹시 하루씨와 어윈씨 보신 분이 계실까요?”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건데… 일부러 함구하시는 거면 그러지 말아주세요. 저희 저녁때까지 못 찾으면 전시태세로 들어갈지도 몰라요.”

“전시태새…? 전시회를 한다는거지?”

“전쟁이 일어났을 때처럼 준비한다는 소리랍니다 스텔라씨.”

 

잠깐 술렁이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역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아… 그럼… 좋아요. 여러분을 딱히 의심하는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로 한 분씩, 면담을 진행 하겠습니다… 우선 다나 씨부터 하실까요.”

“저, 저요…? 그… 그…”

“다른 분은 잠시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마틴은 옆에 있는 커피 포트에서 커피를 따라 잔에 채우곤 겁에 질린 듯한 다나와 면담을 시작하였다.

 

 

 

…….

 

 

 

“어때?”

“우와아… 이게… 4성급 호텔…”

“그래서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왔단 이 말이지. 마음에 들어?”

“미, 믿기지가 않아요…”

 

어스름한 저녁 무렵. 호텔 로비에 도착한 두 사람은 기대한 것 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방문객을 반기는 얼음 조형물에 눈길이 갔다. 

그레이트 그레이스 타워 조형물이라던가, 공중요새 아이기스를 본딴 조형물이라던가. 

실시간으로 눈이 내리는 천장도 눈을 즐겁게 만드는 볼거리였다.

분명 다른 조각상도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눈에는 별숲리그와 관련된 소재들만 보였다.

 

“제스터 아크라이트님, 객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객실, 거의 꼭대기 층인 38층에 위치한 스위트 룸이었다.

 

“룸 서비스는 객실에 있는 전화기 옆에 안내문이 있으니 보고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스토랑은 9시에 라스트 오더를 받으니 참고하셔서 이용해주세요.”

“예이 예이.”

 

어윈은 짐을 풀고 커튼을 걷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래로는 호텔 내 부대시설로 보이는 수영장과 무대, 그리고 산책로도 같이 준비되어 있는 조각 공원이 화려한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저 멀리 바다에는 한때 토벌 작전을 했던 헤이븐 아일랜드가 있었다. 

아직 섬 내부 까지는 복구하지 못했는지, 불하나 들어오지 않아 윤곽만 희미하게 보인다.

어찌 되었건, 야경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이런데서 와인 한잔하면 딱 좋겠는걸…”

 

그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지퍼를 열었다.

 

“포트 와인…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디저트 와인… 뭐이리 많이 챙겨줬어?”

 

심지어 그 가방 안엔 쪽지도 하나 들어 있었다.

 

‘하루랑 좋은 밤 보내! – 이리스‘

“난 분명 한병만 부탁했는데… 고맙다.”

 

와인을 서늘하게 두기 위해 창가로 옮기던 도중, 어윈은 탁자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에 눈길이 갔다.

부대를 나갈 때부터 단 한 번도 켜보지 않았던 휴대폰. 

휴게소에 이르는 시점부터 계속 윙윙 울면서 확인해달라고 졸랐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아냐. 보면 안 돼.”

 

 

 

…….

 

 

 

“왜 연락을 안 받는 겁니까…”

“흥, 당신 연락처야 당연히 차단해놓지 않았겠나요?”

“릴리씨, 지금 장난할 떄가 아닙니다! 앞으로 2시간 내에 두 분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 우린 비상상태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거야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죠? 더군다나 제가 전화한다고 해서 받을 것도 아니구요.”

 

마틴의 집무실. 릴리는 거만한 자세로 마틴을 내려다보며 그와 면담을 진행 중이었다.

지금까지 릴리를 제외한 나머지와 면담을 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나마 이리스는 어윈에게 술을 골라줬다는 이야기를 했고, 에프넬은 어윈의 요청으로 어떤 ‘사람’을 소개해준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 정보를 종합 컨데, 마틴은 어윈과 하루가 연말 데이트를 위해 숙박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장소가 어디일 것인가?

 

“어윈씨라면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겠습니까? 여성분의 전화인데.”

“데이트 중에 다른 여성분의 전화가 걸려오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도 동료라면…”

“역시 연애 한번 안해본 티가 팍팍 나시는 군요. 그런 당신에게 동정심을 표하죠.”

“……. 젠장… 젠장…”

 

릴리는 계속해서 마틴을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꼬았다. 

상당히 즐거웠는지, 꼬고 있던 다리를 흔들며 사악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호텔이면 폰을 쳐다볼리가 없고요. 한번도 경험 안해본 마틴씨는 아무것도 모르시겠군요?”

“방금, 호텔이라고 했습니까?”

“참고로 전 4성급 호텔 아니면 안된ㄷ…”

 

순간, 릴리는 자신의 입을 가렸다.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는 순간, 조사반장 출신 마틴의 감각이 날카롭게 섰다.

 

“에, 네에? 자, 잘못 들으신거 랍니다?”

“릴리씨, 역시 뭔갈 숨기고 계셨군요.”

“호, 호텔은 그냥 제가 가고싶은…”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시죠.”

 

마틴은 횡설수설하는 릴리의 양 손을 꼭 붙들었다. 

항상 능글능글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험상궃은 표정으로 릴리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평범한 아저씨의 손아귀 일건데, 릴리는 그의 손길을 떨쳐낼 수 없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척하던 그녀의 얼굴에서 눈동자가 여기저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짓말이 들통나서 수세에 몰린 아이처럼, 그녀가 부들부들 떠는건 굳이 마틴이 아닌 다른사람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어윈 씨와 하루씨는 어디있습니까.”

“그, 그… 느으으…”

“농담 하는거 아닙니다! 대답하지 않으시겠다면…”

 

마틴은 책상 서랍을 열고 가방 하나를 꺼냈다. 

가방을 열고 릴리에게 내용물을 보여주자,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러갔다.

비에 맞은 아기새처럼 파르르 떨고 있던 소녀는, 마침내 그 입을 열었다.







2부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