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시대의 주거





초기 철기 시대 주거






진짜 삼국시대 일반 주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는 초기적 형태의 온돌 사용 + 신라 민가에서는 마루 도입

고구려의 온돌과 신라의 마루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고려시대부터는 집에 온돌로 난방을 하고 마루가 있는 구조가 일반화됨

(즉,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 구조의 근원인 온돌 + 마루는 고구려&신라 양식의 혼합)


그럼 정말로 신라시대 경주 제외 서민들은 전부 움집에서 사는 게 일반적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신라 시대 보편적인 집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가형토기 지붕의 모습을 보면 두가지형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서까래가 있는 모습과

가로로 된 45도의 격자빗금의 모습이다. 호림박물관의 가형토기를 보면 벽면이 빗금으로 표

현하고 지붕도 빗금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는 목재의 표현일 가능성이 보이며, 지붕 최하부에

삼각형의 부채모양의 빗살금은 초가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호암미술관에

서도 같은 도상의 빗금이 있어 두 가옥은 초가였음을 추정 할 수 있다. 

- 김상태, 가형토기를 통한 신라주거건축에 관한 연구 中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지붕은 초가로 만들었고 수혈식 주거에서 벗어난 형식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을 띄워서 짓는 고상식 주거 양식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의 보편적인 건축 양식이었다.


삼국유사의 여러 기사를 통해 신라의 서민주거는 돌집, 판방, 뇌방, 모옥 등이 표

현되어 일반적으로 신라주거가 고상식주거와 초가집이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다만, 중국문

헌의 부뚜막에 대한 기사와 사천과 포항 등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다수의 쪽구들 유구는 신라

주거의 구들사용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 김상태, 가형토기를 통한 신라주거건축에 관한 연구 中



신라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은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다수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라에서 기와집에 대비되는 개념은 '초가'였다. 이를 통해서 신라에서 이미 초기적인 형태의 초가집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신라시대는 수혈식 주거(움집)와 초기적인 초가집 양식이 공존하던 시대이긴 했다.

수혈식 주거는 삼국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도 일부 사용되었는데, 일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있다고 하여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주거 양식이 초가집이 아니라 움집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결론일까? 

소수의 존재 사례를 갖고 그것이 마치 보편적인 생활 양식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선동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심지어 사진도 교과서에서 쓰이는 신석기 시대 움집 그대로 가져다놓고 신라시대 전형적인 주거양식이라고 우기는데 저거 개추누른 애들은 반성을 하자


+참고로 삼국시대에 말하는 움집은



이렇게 생겼다고 말하던데 이건 전혀 아니고

(이건 신석기 시대)



이렇게 생긴 게 진짜 삼국시대 움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