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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알려줄테니 내 방으로 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하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민의 방에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준아…하준아…기다려…이번엔…정말…”



한 몸이 되어버린 전자담배의 향기를 없애버리기 위해 샤워를 했다. 그 인위적인 향기를 지워버리기 위해 샴푸의 거품은 온 몸에 바르고 닦아냈다.


정리하나 되지 않은 방의 곳곳을 뒤지며 그나마 옛 기억의 흔적이 남아있을 옷을 꺼내 입었다. 그것이 행운이었을지, 아니면 불행이었을지 그때의 수민은 알지 못했다.


일을 하러 나가 집을 비운 부모의 시선은 지금의 수민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화장실과 식사를 위해 내려오는 유일한 시간에 피하듯이 훔쳐 본 부모님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도 잊어버렸다.



“…으…읏…아니야…이건…내가…아냐…”



늘어진 젖가슴을 고정시키기 위해 브라를 착용하려는 순간, 수민의 눈에 잊고 있던 추악한 과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성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젖꼭지에 달아놓은 피어싱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당장이라도 떼어내버리고 싶었지만, 하준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입술을 깨물고 부정하는 말을 끝으로 브라를 착용한 수민은 마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내 곁에 있어줬던 너니까... 용서를 빌 거야.”



하준이 살았던 이웃집을 지나며 그와 보냈던 추억을 떠올렸다.

찰나의 욕구를 전부라 믿으며 그를 버리고 능욕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다시 시작하는거야, 처음부터..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렸을 때, 함께 뛰어놀았던 공원을 지나가는 순간, 수민의 눈에 어린 시절의 그녀와 하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난을 치면서 약올리고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을, 당하면서도 결코 도망가지 않고 함께 따라와주었던 그의 모습을 보았다.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해도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의 자전거를 탔던 여자는 나 혼자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 뿐이니까!”



가는 길에 나타난 등교길에서 그의 자전거를 타고 미소짓던 과거를 떠올렸다. 용기와 장난을 섞은 대담한 행동에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볼때 느꼈던 기쁨과 설레임이 고통과 후회라는 눈물이 되어 수민을 흔들었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기다리고 있을 하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달렸다. 그렇게 달렸는데...



“…에? 당신이…왜…하준이…방에?”


“수민 씨 맞죠? 들어오세요.”



얼어붙고 말았다. 도착하고 난 뒤의 상황을 짐작한 것도 아니었고 아무리 심한 일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열린 문 틈으로 나타난 하준의 반을 차지해버린 미영의 모습이 수민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흰색의 홈웨어 원피스, 전자담배의 인위적인 과일 향이 아닌 향긋한 샴푸의 흔적이 전부다.




청순한 미영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과거의 모습을 마주했다. 가슴을 강조하는 탱크탑만 입고 전자 담배의 니코틴과 육욕에 취해 팬티를 가리지도 않는.. 창녀의 모습으로, 우성의 손에 젖가슴을 움켜쥐었던 것 조차 기뻐하며 서슴없이 문을 열었던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모습에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때, 수민의 머리를 차지한 생각은 단 하나 뿐이었다.


동거를 한 거야? 왜?

나랑은 하지도 않았는데?



“하준아 이게 어떻...”


“빨리 들어와, 밥 식으니까.”


“아니, 왜 저 여자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야? 나만 부른 거 아니었어?!”


“미리 말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수민 씨, 제가 하준이한테 수민 씨를 부르자고 한 거였어요.”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전에 곧장 날아온 하준의 싸늘한 말이 수민의 입을 막아버렸다.


지금부터 하준이와 비밀 데이트를 가지며 가지고 있던 모든 힘과 마음을 다해 돌아선 소꿉친구의 마음을 되돌릴 거라 마음을 먹었는데.. 어떻게 하준이의 방에 미영이 있을 수 있지?



“미영아,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데..”


“하준아, 이럴 땐 내가 말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잖아?”


“…읏, 으윽…”


항의를 할 틈도 없이 우리 만의 비밀이었어야 할 만남이라 생각했던 수민의 생각을 미영이 부숴버렸다. 그 말인 즉, 미영의 말이 없었다면 하준이 자신을 만날 일 조차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수민은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밀려드는 배신감과 질투심이 후회와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준을 향한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렇게 들어선 방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이전의 허름하고 역하고 불쌍했던 남자의 방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먼지 하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으며 하준과 벽에 걸려있는 하준과 미영의 사진과 그 아래에 있는 남녀가 춤을 추는 인형이 있음을 확인했다.


수민이 알던 하준의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맛은 어때?”


“…맛있어.”


“햄버그 스테이크는 저랑 하준이가 같이 만든 거라 맛이 맞을지 몰랐는데.. 다행이네요.”



방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앉은 식탁 위에서 먹는 밥도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언제나 밖에서 사먹거나 배달을 시키건, 간단하게 해먹었던 수민과 달리, 미영은 하준과 함꼐 밥을 만들고 함께 먹으며 행복을 누렸다.


배달에 비하면 심심한 맛이 날 수 있었지만, 둘이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 음식의 맛을 배로 만드는 조미료가 되어 수민의 입에 혹평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준과 미영,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식사와 오가는 대화 속에 수민이 낄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이 수민에게 끝 없는 고독과 슬픔, 질투심을 만들어냈다.



“하준아,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려줄 수 있어?”


“제가 불렀다고 말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네가 뭔데 날 불러?”



그릇을 비울 순간, 참지 못한 수민이 추궁하듯 하준에게 연락한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그가 아닌 미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준아, 설거지는 나중에 하자.”


“그래, 일단 물에 담근 뒤에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어.”



하준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미영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떠올린 수민이 짜증을 부리듯 미영에게 추궁했지만, 하준과 미영은 수민을 무시하고 그릇을 싱크대에 놓여진 바가지에 담았다.



“하아?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당신이 하준이에게 했던 짓을, 그리고 제게 하려고 했던 짓을 생각한다면, 저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



미소와 함께 나온 미영의 말이 수민의 감정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렇다. 미영은 수민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였으므로 수민이 큰소리를 칠 입장이 아니었다.



“수민 씨, 당신이 한 짓.. 당신이 보낸 사진.. 안준 오빠를 통해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다. 그 말이 수민의 세상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녀가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들었고 저주와 같은 사진을 다 보았다고?


자연스럽게 짜증과 악감정이 가득했던 수민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추한 모습이 미영의 미소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결국, 참지 못한 하준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 뭘 하려고?”


“아, 아냐.. 하준아.. 난, 나느은.. 그저 사과를.. 우린 소꿉ㅊ...”


“네가 나한테 했던 짓에 용서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



그 순간, 수민의 머리 속에서 안준의 말이 떠올랐다.


“꺼져 병신아. 이 짓하고 용서받을 새낀 없다는 걸 모르겠냐? 넌 약이나 처먹고 일이나 해라. 어디 에이즈 걸린 창녀새끼가 내 동생한테 찝적거려. 소금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 말을 증명하듯, 감정하나 보이지 않는 하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수민에게 선고를 내렸다. 용서받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수민에게 뒤는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주자 앉아 애절하고 비참하게 외쳤다.



“알아, 알아! 나도 안다구! 하지만, 하지ㅁ.. 그래도 나는 계속 사과할 거야! 이제 나한테는.. 아니, 처음부터 나한테 하준이 너 밖에..”


“그럼 거기서 계속 지켜보세요.”


“에?”


하준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비통하게 용서를 구하려는 수민의 귓가에 미영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콤한 목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든 수민의 눈 앞에는, 홈 웨어 원피스를 내리고 하준과 진한 키스를 나누는 미영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 너희 지금 뭐하...”


“읏, 푸아.. 간단해요. 우린 사랑을 나눌 예정이었거든요.”


“뭐, 뭐라고?!”


“지금부터 사랑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휴대폰은 잠시 꺼주세요..”


“하, 미쳤어?! 내가 왜?! 너희가 섹스하는 걸 봐야 하는데?!”


“하준이의 곁에 있고 싶다 하셨던 분은 수민 씨잖아요. 그럼, 하준이가 그랬던 것처럼 해주세요...♡”


“............”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라? 눈 앞에서 소중한 하준이가 보기도 싫은 미영과 키스를 나누고 서로의 옷을 벗기려는 것을 두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수민에게는 뒤 이어 들려오는 미영의 말에 대한 답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녀 역시 하준의 앞에서 우성과 사람을 포기하고 짐승처럼 교미를 하질 않았던가. 지금 눈앞에 있는 하준과 미영에게선 짐승의 모습 따윈 없었다.


서로를 향한 농밀한 사랑이 담긴 눈동자엔 수민과 우성의 불타는 욕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준의 손에 녹아내리듯 흘러내린 미영의 원피스의 모습과 실오라기 하나 남지않은 탐스러운 과실은 같은 여성인 수민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사실, 오늘이.. 아, 그 전에 수민 씨는... 폴리네시안 섹스.. 라고 아시나요?”



하준의 목에 입맞춤을 하고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미영의 야릇한 입술에서 폴리네시안 섹스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지만, 수민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했던 섹스는 그저 본능에 눈이 먼 우성이라는 짐승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소꿉친구인 하준을 능욕했던 인간임을 포기한 성행위 였으니까..


그렇기에 수민은 그녀가 마주할 순애라는 회한의 순간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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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기서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자극이 세서 한편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 에필로그를 내고 Nevertheless를 완결낼 것 같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