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regrets/99681301





 [러브☆아카데미]의 주인공 김후붕이 아닌, '현실'의 이후돌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흘렀다.



 상처는 아물고, 구멍은 메워지며, 계속 얼어붙어 있으리라 여겼던 마음의 상태도 영원하진 않았다.



 "리스폰 프로젝트의 흥행 성공도 이걸로 세 번째.... 축하해요, 내가 정말 애정하는 우리 디렉터 씨?"



 따스한 봄바람은 느닷없이 불어왔다.



 상대는 같은 게임 회사의 동료였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는 쪽으로 이 바닥 경력을 쌓기 시작한 처자.


 

 프로젝트 발족 때부터 함께해 온 그녀와는 작품을 이유로 회사 안팎을 막론하고 쭉 붙어다녔다. 


 

 바쁠 때는 성별도 잊고 숙식마저 같이 해결하면서 마치 2인3각을 하듯 합심해온 우리 사이. 앞서 성별을 잊었다곤 했지만 한창 때의 남녀 둘이서 그토록 붙어 지냈는데 감정이 동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관계까진 안 갔다쳐도 도대체가 같이 잠까지 퍼질러 잔 게 몇 밤 째인데 너무 늦잖아요! 흐힛, 그래도.... 좋아요."



 첫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축하던 그 날, 용기내어 건넨 고백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쁨은 아마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안에서 실패와 상처만으로 가득하던 사랑의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일 것이다. 세상풍파 그 모든 걸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까?



 어쨌든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는 데엔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성향이 비슷한 것도 한 몫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구원. 캐릭터란 요소 자체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그녀이니만큼 팀원들 가운데서도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로써 날 응원해주었으니까.



 여기서 잠시 일 얘기를 해보자면.



 주로 미연시 계열을 위주로 망한 게임의 IP를 사들여 팬들의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는 식으로 리마스터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프로젝트 컨셉은 예상보다 괜찮은 반응을 불러왔다.



 오죽했으면 이번 프로젝트 전까지는 관련 성과가 없단 회사 측에서도 미연시 부문으로의 진출을 공식적으로 계획하기에 이르렀달까? 기존 IP를 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방향이라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마도 다음 작품이 리스폰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을 직감한 내가.... 그 세계, [러브☆아카데미]를 떠올려낸 것은.



 "....그것만큼은 안돼요."



 하지만 새로운 인연과의 진실된 사랑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고자, 과거의 미련을 끊어내려던 내 제안은 시도도 하기 전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설마 모르고 있었어요? 그 게임, 럽스아카는.... 하아, 한 번만 말해줄테니 똑똑히 들어요. 진짜 나 아니면 어떡할 뻔 했나, 우리 남친씨? 에휴...."



 그렇게 나는, '이후돌'의 기억으로도 모르고 있던, 럽스아카라는 한 미연시 게임을 둘러싼 모든 것의 전말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한 게임 개발자가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다소 뒤틀린 성향의 보유자였던 그는, 초반부엔 순애물로 가장했다가 중간부터 주인공을 다른 남자로 교체해 히로인을 전원 강탈한다는 극단적인 드리프트 안을 마련했다.



 당연하게도 그 제안은 즉각 반려당했다. 이제까지 회사가 내놓던 작품의 방향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졌으며 자칫 팬들을 우롱할 수도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만 수긍하는 척 실은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 사비를 들여서까지 회사에 있는 팀과는 또 다른 별개의 개발을 이어나간 끝에 그는, 하나의 패키지 안에 두 가지 게임을 함께 집어넣는 미친 짓거리를 자행했다.



 일종의 디버그 트리거를 통해 180도 바뀌는 게임. 풋풋한 청춘남녀의 순애를 보여주던 캐릭터들이, 디버그 입력을 기점으로 짐승과도 같은 쾌락 일변도와 가학성향의 성인물 속 창녀들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엔 이미 발매 시점을 한참 넘은 후였다. 요행히 고객들 중에선 아직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시점이라 부랴부랴 해당 디버그 데이터를 삭제하는 쪽의 업데이트를 진행시켰지만....



 문제는 그 탓에 게임의 구동 매커니즘이 완전히 꼬여버렸다는 점이었다. 어느 기점으로 이벤트가 더 진행 안되는 초유의 사태에 유저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결국 그 회사는 대량의 환불사태와 그에 따른 주가 폭락 등의 악재가 겹친 끝에 도산 위기로까지 몰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모든 게 바로잡힌 개정판이 나왔지만 역시 모두에게 외면당했다고.... 또한 그 뒤로도 시장에서 회수되지 못한 구판 패키지의 피해자는 간간히 나오는 편이라고 그녀는 내게 말해주었다.



 "뭐, 진짜로 구판 패키지를 샀다 피해본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 복돌이 불법복사본을 받은 놈들이라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는 게 커뮤니티 밈으로까지  되었지만.... 아무튼 이게 럽스아카가 우리 업계에선 터부시되는 이유에요."



 "...."



 어딘지 황망함이 몰려드는 듯한 기분,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홀린 듯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세계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건드린 적 없는 아이콘 위에 커서를 올렸다.



 여자친구에게서 얻어낸 개정판의 데이터를 업데이트한 후, 나는 그렇게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가 비롯된 세계의 이야기를 다시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 어어, 후돌 씨.... 지금 울어요?



 잘못된 건 나라고 생각했었다.



 게임 설정이니 뭐니 다 핑계일 뿐, 결국엔 내가 나약하고 못나서 그녀들을 빼앗겼다는 패배의식이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러브☆아카데미]를 리마스터하겠다는 생각도, 사실은 저런 못난 자신의 흔적을 뜯어고쳐 없애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추악하게 비틀린 욕망에 일그러진 부분을 바로잡고 난 뒤, 비로소 올바르게 전개되는 그녀들과의 이야기를 전부 보고 난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잘못된 건 내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묵혀있던 한이, 응어리가 풀리는 듯하던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허둥대는 나의 구원자를 향해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후돌 씨.... 울지 마요, 자기야.... 응? 꺅!"



 이 와중에도 내 걱정 뿐인 그녀를 품안에 힘껏 안자 작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뭔가를 밝힌다면 지금이 아니라면 안될 것 같다는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원래 세계를 접한 대가일까? 모든 엔딩을 본 직후부터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 나는 오직 사랑하는 이에게만은 진실되고 싶다는 의지로 그녀에게 나지막히 속삭인다.



 "....너에게 말해줄 게 있어."



 이후돌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김후붕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의 이야기를.




*    *    *




 금태양은 비척거리는 몸짓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온갖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가까스로 숨을 이어가는 후붕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듣기로는 어차피 소생 희망은 없다시피 하다고 했다. 그저 현대 의술에 힘입어 하루하루 연명만 이어나갈 뿐....



 "....그러니 어차피 뒈질 거 좀 당겨준다고 해서 내 잘못은 아니지."



 여전히 정신나간 소리를 지껄이며 금태양은 후붕의 생명유지장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 세계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던 후붕,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쩌면 이 망해버린 삶에서 탈출하는 게 영 불가능한 건 아니리란 생각과 함께.



 그러나 그는 제놈이 지닌 악독한 속셈을 채 이루지 못했다.



 "뭐, 뭐야악ㅡ!!"



 다음 순간, 후붕에게서 시작된 현상에 그저 태양에 쫓기는 마귀처럼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망가진 세계에 빛이 찾아왔다.




 "...."



 그것은 그야말로 포근한 꿈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면서도 어딘지 아득함에 문득 눈물짓게 되어버리는 그런 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수 마련한 도시락, 어쩐지 평소보다 힘을 쫙 준 코디를 확인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순.



 "다녀올게."



 출발 직전,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별에 속삭이듯 인사한 그녀는 바로 붙어있는 이웃집의 초인종을 살포시 누른다.



 그러자 문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



 도대체 매번 저렇게나 기대가 될까 귀여워하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연인의 팔짱을 끼면서 그 날의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시간부터 함께해 온 사이였다. 



 어릴 적엔 소꿉장난 중에 치기어린 결혼 약속도 하고, 크면서는 정작 너무 붙어다녀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잘 느끼지 못하게 되었던 그런 사이라 할까?


 

 하지만 그것은 가족동반으로 놀러간 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그를 보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단단한 가슴팍에 안겨 미친듯이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그저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던 감정 사이에 이성에 대한 연심이 피어올랐고.



 마침내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감정을 둘만의 추억의 장소에서 서로 고백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극적으로 진전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 삶이 계속되는 내내 언제나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않는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소중한 사람, 후붕과 함께.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좋을 때마다 들리던, 그들의 사랑을 이어준 둘만의 추억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봄날의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광경이었다.




 "...."



 그것은 그야말로 벅찬 꿈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면서도 어딘지 아득함에 때론 허무해지기도 하던 그런 꿈.



 새벽 벽두부터 물을 맞아가며 벼려낸 정신과 함께, 그토록 손꼽아 기다려온 날을 맞아 결의에 찬 눈을 부릅뜬 검도부장 선배.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출발 직전, 자신이 수양을 갈고닦은 정든 도장에 고개 숙여 인사한 그녀는 준비 되어있던 학교 차량에 몸을 싣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옆자리에 먼저 타 있던 듬직한 후배.



 중대사를 앞두고서 두근대려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한편으로는 함께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양되면서 마침내 전국대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딘지 못 미더운 그런 녀석이었다.



 검도가 아예 처음인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붙어 가르쳐줘야 했던 그런 녀석. 그나마 근성과 노력만큼은 봐줄만했기에 가르치는 보람은 있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집안 내력으로 검도를 시작한 그녀가, 검도명인의 딸로써 성과를 보여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검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건 바로 그였다.



 바로 그 일을 기점으로 그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검도부 선후배 사이라고만 여겼던 감정에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이 감정을 오랜 꿈이었던 전국대회 결승에서 서로 검을 맞대며 수백 마디의 말보다도 확실하게 전달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대회에서 함께 우승한 뒤로도 같은 목표를 보고 정진해왔던, 앞으로도 쭉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제는 검보다도 소중해진 인생의 동반자, 후붕과 함께.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두 사람과 땀방울과 함께 사랑 또한 맺히게 된 고마운 학교의 검도부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한여름 밤 올려다 본 별무리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그것은 그야말로 편안한 꿈이었다.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하면서도 어딘지 아득함에 안타까워하게 될 그런 꿈.



 어제 저녁, 모처럼의 생일을 맞아 교류하던 모두와의 즐거운 파티를 벌였던 여파로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했던 후붕의 게임친구이자 후배.



 "으음, 맛있는 냄새...."



 슬슬 고파오기 시작한 배와 때마침 코를 자극해오는 냄새에 이끌려 부엌으로 나간 그녀를 기다리던 건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광경.


 

 그녀를 위해 손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 후붕과, 그런 그를 도와주며 자신의 어머니가 함께하는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겉은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남성을 두려워함을 익히 알고 있던 어머니. 그녀는 딸이 이토록 번듯한 남자친구를 만들어냈단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지 결국 참지 못하고 눈가에 기쁨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우연히 서로 게임 취향이 맞았을 뿐이던 관계로부터 이토록 구원받으리라고는 당사자인 그녀조차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을 숨기고자 억지로 강한 향과 연기를 피우고 있던 것과 다를 바 없던 그녀.... 하지만 어느 순간 불어오기 시작한 후붕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서서히 그 모든 걸 몰아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마음 깊숙히서 좀먹던 공포라는 불씨마저 완전히 꺼트렸을 때, 그녀는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모든 게 명확했다. 사실은 소녀다움을 동경하던 자신의 바람도, 강한 척 하느라 쓰고 있던 가면이 더는 불필요해진 상황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후붕을 향한 마음을 더욱 소중히 끌어안으며.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 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상쾌한 광경이었다.




 "...."



 그것은 그야말로 달콤한 꿈이었다. 단 한 번 맛본 것만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으면서도 어딘지 아득함에 계속 그리워하게 될 그런 꿈.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약속장소로 나선 후붕의 의붓여동생은 평소보다 신경쓴 티가 역력한 차림으로 자신을 기다리던 의붓오빠를 보고 미소지었다.



 "우리 오빠, 오늘 멋지다...."



 진심어린 감상을 건네고서 조심스레 그의 팔짱을 낀 그녀는 말괄량이같던 예전과 달리 다소곳한 태도로 후붕이 이끄는대로 따르기 시작한다.



 피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빠에게 연심을 품었단 사실이 저주스러웠던 적이 있다.

 


 아무리 다잡으려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서러워 괜히 새아버지를 재혼상대로 삼았다며 애꿎은 엄마를 탓한 적도 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잘못된 건 자신이란 생각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겉돌았다.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 함께하면 맺어질 수 없는 '가족'이란 사실을 확인받는 것만 같아 일부러 가출해 떠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던 행복을 비로소 손에 넣었다.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기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감정에 그녀는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듯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다.



 이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며 그녀는 깍지낀 후붕의 손을 더욱 꽉 부여잡았다.



 그것은 마치 겨울의 첫눈처럼 반가운 광경이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은 더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속의 꿈일 따름이었다.



 "....!"



 불현듯 네 소녀들은 후붕의 존재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아득함에 주저앉았다. 



 방금까지 보던 광경은 어딘가의 세계선에선 존재할지도 모르는 행복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영영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금태양과, 그에게 농락당한 그녀들의 어리석음....



 한 순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곤두박질 친 듯한 느낌에 절망할 무렵, 문득 그녀들의 뺨에 어떠한 온기가 와 닿았다.



 "...."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까지의 행복했던 기억과 지금의 이 온기야말로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했던 남자가 그들에게 남긴 마지막 위로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무얼 뜻하는 지 깨달은 그녀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다급하게 뛰쳐나가려다 도로 주저앉아버리는 이부터 그 자리에서 떠나가라 오열하는 이까지....



 다만 조금 전까지완 다른 게 있다면, 비록 슬픔과 후회에 물들어있음에도 그녀들의 눈빛이 조금이지만 살아났다는 점이었다.



 본래 주어졌어야 했던 올바른 운명에서 벗어나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코 그녀들의 탓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이미 한 번 그녀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남자가 떠나가는 와중에도 전한  헌정사가, 끝없는 자책 끝에 자칫 스스로 파멸하는 말로로 나아갈 뻔한 그녀들을 멈춰세웠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붕에게 구원받았다.




 *    *    *




 병실에 무단으로 침입했던 금태양은 빛 속에서 현실 세계의 자신인 이후돌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비참하게 몰락한 자신과는 대조되는 건실한 삶이었다.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를 인정받고, 탐날 정도로 매력적인 연인까지 함께하는 후돌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미약하게 이어지던 후붕의 생명신호가 끊어지던 순간, 금태양은 도로 이어지려던 현실에서 그대로 퉁겨져 나왔다. 자신의 인생을 내놓으라고 발악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스템은 이제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다음 수순은 정해진 바나 다름 없었다. 



 후붕의 심박정지와 때아닌 소란에 몰려든 병원 측 관계자들의 신고로 금태양은 경찰에게 그대로 끌려가 유치장에 갇혔다.



 여기서 그가 벌인 난동이 독이 되었다. 후붕의 사망에 그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은 게 진실이었음에도, 난동 탓에 조사에도 인과관계를 특정하기 힘들게 된 탓이었다.



 결국 금태양이 생전의 후붕에게 행한 각종 악의적인 짓거리의 정황까지 고려, 그는 후붕의 살인죄까지 뒤집어쓰고 완전히 나락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한때 그가 완벽하게 아름답다 자평하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되돌아가려던 원래의 삶 역시 이제는 타인의 것이 되어버린 채....



 그렇게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에서 유열을 느끼던 쓰레기의 종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처절한 억울함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그리고....



 후붕은 가만히 두 눈을 떠 보았다.



 그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걱정으로 일렁이는 그의 연인의 망막에 비친 이후돌의 얼굴.



 [러브☆아카데미]의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지금, 그는 이제 진정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인생으로 무사히 되돌아왔다.



 "....다녀왔어."



 상투적인, 어쩌면 클리셰나 다름없는 말을 뱉자마자 안겨오는 연인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으며 그는 조용히 기원했다.



 부디, 겨우 얻은 이 행복만큼은 영원하기를.



 그리 거창한 걸 바라지는 않다만, 단지 그녀 하나만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힘과 용기만큼은 함께하기를.



 현실과 가상을 초월해 마침내 맺어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밤이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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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애써보긴 했는데요. 역시 아무래도 갑자기 꽂힌 소재 끄적인 걸 무리하게 늘린지라 뭔가 엉성하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