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냥 죽을까'가 입버릇인 후붕이. 진심으로 죽겠다고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음.

'그래 그냥 죽어라ㅋㅋ'가 입버릇인 후순이. 당연히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님.

후순이와 후붕이는 중학교때 친구가 되었고, 지금은 소꿉친구와 다름없을 만큼 친함.


처음에는 후붕이가 후순이를 짝사랑했었는데, 후순이가 자꾸 튕겨서 지금은 포기상태, 반대로 후순이는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후붕이가 좋아졌는데 아직 고백을 못하고 있음.


후붕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임. 후순이도 평균 이상은 하지만 후붕이는 지금까지 전교 10등 내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음. 근데 이번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박살이 남. 전교 10등은 어림도 없고 생전 처음 4등급을 받게 된 거임.


후붕이의 부모님은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진학한 형하고 후붕이를 항상 비교했는데, 후붕이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음. 다른 친구들한테 하소연하려고 해도 배부른 투정이라고 욕만 먹고, 이런 얘기는 절친이고 공부도 나름 하는 후순이한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후붕이는 후순이가 위로해주기를 바라며 말을 꺼냄.


'시험 망쳤어. 복구도 안 되는 성적인데 어떡하냐..그냥 죽을까...'

맨날 있던 레퍼토리였지만 오늘의 후붕이는 진심을 조금 담아 마지막 말을 했음. 하지만 후순이는 평소랑 다름없이 말함.


'그럼 그냥 죽지 그러냐ㅋㅋㅋ'

후붕이는 절대 안 죽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기분이 침울해진 채 집에 들어간 후붕이는 부모님한테 잔소리를 들음.

'잘하는 게 없으면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쳐 놀고 있어?'

후붕이는 평소랑 다름없이 공부했지만, 믿어 줄 리가 없었음.

잔소리는 점점 폭언과 인신공격으로 변해갔고, 후붕이의 엄마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음.



 '네 주제에 공부까지 못하면 넌 왜 태어난 거냐?'

후붕이는 충동적으로 아파트 옥상으로 향함. 진짜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저없이 몸을 던짐.



후순이는 내심 후붕이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림. 후붕이는 유쾌하고 활기찬 애니까 진심으로 상처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순이의 말을 들은 후붕이의 표정이 평소하고는 달라서 후순이는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음. 후붕이 덕분에 친구 하나도 없던 후순이가 다른 애들하고 잘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후붕이 덕분에 후순이의 네거티브한 성격도 많이 나아졌음. 후순이는 점점 후붕이가 좋아져서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면 고백하려고 했음. 근데 후붕이의 시험 결과가 너무 참혹했기에 후순이는 고백할 기회를 놓치고 평소처럼 시답잖은 대꾸를 한 거임.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후붕이는 평소같은 만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위로를 해주길 바랐던 거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함. 그래서 후순이는 후붕이에게 괜찮냐고 전화을 걸었음. 하지만 후붕이는 받지 않음.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후순이는 이상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낌. 후붕이가 후순이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는 꽤 드문 경우였음.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두었거나, 휴대폰을 놓고 나갔거나,


작년 방학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후순이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함.

무슨 일 있어?

어디야?

본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는지, 후순이의 네거티브 사고는 그녀 스스로를 점점 불안감에 빠트리기 시작함. 후붕이는 시험을 망쳤고, 후붕이네 부모님은 후붕이를 엄청 혼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후붕이에게 죽으라고 말했다.



후붕이에게서 전화가 옴. 근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후붕이가 아님.

"안녕하세요. 김후붕 학생의 친구 되시나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 연락합니다. 김후붕 학생은 추락 사고로 의식을 잃고 지금 OO병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면회는 김후붕 학생이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불가능합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후붕이가?

내가 죽으라고 말했으니까?

그런 거야?

그 날부터 한 달 동안 후순이는 죄책감과 불안감에 점점 망가지기 시작함.



한 달 후, 후붕이는 의식을 되찾음. 한 달 동안 몸은 낫고 있었기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치고는 별로 아프지 않다고 느낌. 후붕이가 깨어나자 후붕이의 엄마가 제일 먼저 찾아와서는 미안하다고, 너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울면서 사과함. 후붕이도 엄마의 젊은 시절을 뻔히 알고 있었고, 왜 그랬는지도 아니까 괜찮다고 말함. 그리고는 평소처럼 농담을 함.

'엄마, 나 별로 안 아파. 괜찮은 것 같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죽을 뻔했어!'


2학기 개학 때까지 후붕이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붕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음. 그래서 교실의 분위기는 약간 어두웠고, 그 분위기의 중심은 바로 후순이였음. 후순이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보고 있었고,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음. 교실의 애들이 후붕이 얘기를 하다가 '죽은 거 아니야?'하고 말을 하면, 후순이는 '죽는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서 몸을 떨기 시작함. 후순이는 이 한 달 간 공황장애가 생겨서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불안해 미칠 것 같게 됨.



그때 복도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림. 완전히 나은 후붕이였음. 후붕이의 친구 몇몇이 쏜살같이 뛰어가 어깨를 잡으며 '살아 돌아올 줄 알았어!'하면서 너스레를 떨면 '내가 누구냐~'하면서 후붕이가 맞받아치며 교실 안의 분위기도 밝아지고 있었음.



하지만 후순이는 남들처럼 후붕이에게 다가갈 수 없었음.

'후붕이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전처럼 지낼 수 없으면 어쩌지?'

이대로 있으면 후붕이하고 더 멀어질 것 같아서 후순이는 후붕이에게 조심스레 다가감.

첫마디를 꺼내려 하는데 말은 안 나오고 눈물이 나는 거임. 펑펑 울고 나서 후순이는 후붕이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걱정 많이 했다고 말하고 후붕이는 부모님하고 싸워서 그랬다며 괜찮다고 말해서 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감.



부모님하고도 화해하고, 후순이한테 걱정 많이 했다는 말도 듣고, 후붕이는 다시 평소의 유쾌한 상태가 됨. 게다가 후붕이는 한 달 동안 의식이 없다가 깨어나서 그런지 별로 뛰어내린 일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음. 그래서 후순이 앞에서 평소처럼 무심코 죽음과 관련된 말을 꺼냄.


'2학기는 진짜 성적 만회해야 하는데... 진짜 1등급 아니면 죽음이야."

후붕이가 죽겠다는 말이 아닌데도, 후순이는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함. PTSD가 생긴 거지. 망가진 마음은 돌아올 수 없으니까.

후순이는 후붕이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꼭 쥐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거임.

'내가 미안해 그런 말 하지마 내가 잘못했어 죽지 마 내가 정말 잘못했어"

후순이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마구 흔들리고, 온몸은 벌벌 떨리고, 생기가 없는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목소리는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소름끼치게 중얼거리고...





어라 이거 얀데레 아님?

이렇게 돼서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죽는다는 얘기만 나오면 저러는거임 개꼴ㅗㅜㅑ



+후붕이 없어지면 정신붕괴 일어나는 후순이가 진짜 맛도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