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regrets/99558847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달려드는 트럭에 치여 숨진 인간이 별안간 전혀 생판모를 타인의 몸에서 깨어난다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를.


 

 일단 남의 몸이란 건 제쳐두고라도 한 번 죽었던 이가 되살아나는 것 자체부터가 불가능한 전제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이야말로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어두운 방 안. 나는 낮이지만 암막 커튼으로 빛이 가려진 침침한 어둠 사이로 명멸하는 모니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러브☆아카데미]



 "....하."



 불안한 기시감이 드는 타이틀을 보던 와중, 문득 조소가 새어나왔다. 



 이 몸으로 깨어난 직후 두통과 함께 찾아든 낯선 기억. 그 기억을 통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한낱 게임 속 데이터쪼가리였던 건가, 내 인생은...."



 만들어진 가짜 세상의 가짜 인연.... 그곳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지내온 내게는 충격적이었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전부 인위적으로 설정되고 만들어졌단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질 참에,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르는 기억이 새로이 떠오른다.


 

 금태양이 유독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 집착했던 그 이유.



 처음에는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독점욕으로 견제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한 내막을 알고나자 나는 모든 게 아무래도 좋아질 법한 허탈감이 온 몸을 사로잡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안해, 아직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거든.



 둘만의 추억이 어린 장소에서 고백해오는 소꿉친구와 그런 그녀로부터 시선을 피하면서 거절하는 내 모습....



 미연시 게임이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맺어지는 이 하나 없는 다소 어이없는 결말에 금태양, 아니, 정확히는 금태양의 몸을 차지한 이후돌이란 남자가 느낀 강한 분노와 불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상실과 고통의 원인이었단 점에 차마 할 말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단순히 게임 따위에 정도 이상으로 과몰입하는 이상한 놈이라고 치부하기엔 정작 나부터가 그 게임 속 세상의 출신이라 뭐라 비난할 힘조차 잃어가던 차....



 문득, 막연한 오기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자극만을 끌어낼 목적의 설정과 편의주의적 전개로 범벅이 된 끝에 결국 실패작이라고 단정지어진 게 내가 태어난 그 세계라면....



 그리고 누군가 강한 원망을 품은 끝에 그 세계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보복심리나 파괴욕으로 뒤틀리게 될 정도라면....



 그 모든 억지스런 상황의 피해자인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더는 금태양과 같은 뒤틀린 괴물이 탄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더는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운명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



 스스로조차 알지도 못하는 원작의 설정이 존재한단 이유만으로 유린당하게 될 지도 모를 수많은 세계의 주인공들을 위하여.



 [이후돌, 아카 소프트 게임 디자이너.]



 그렇게 나는 새로이 얻은 신분과 새로운 인생에서의 목표를 갈무리하며 의지를 북돋았다.



 

*   *   * 




 한편, 사고 이후 후붕의 세계에선.



 후붕이 남긴 특전으로 자신의 저열한 속내를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된 금태양과 그녀들과의 관계는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붕괴해갔다.



 "꼭.... 꼭 그래야만 했었어? 꼭 그렇게 그 아이를 짓밟았어야 속이 시원했냐고!"


 

 자신을 붙잡으려던 금태양을 뿌리치며 후붕의 소꿉친구 후순이 울먹이며 한 말이다.



 한 때 학급의 양아치로 정평이 나 있던 그가 차츰 바뀌어가는 모습에 기뻐했던  그녀였다.



 반장으로써 답 없는 일진을 갱생시키는 데 공헌한다는 느낌은 그녀로 하여금 역시 세상은 올바르다는 믿음과 향상심을 불어넣어주었고, 거기서부터 출발한 호감은 급기야 연애감정으로까지 발전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 겉으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쓰레기의 본성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좋아진 것만 같은 공부 성적조차 그 정체모를 '특전' 덕분이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허탈해졌다. 저런 놈을 갱생시킨다며 쓴 관심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아까웠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건 따로 있었으니....



 "아, 아아 ...."



 늘 자신을 걱정하고 지켜주려하던 그녀의 고마운 소꿉친구. 그녀는 금태양을 믿지 말라고 하던 그를 질투심으로 이간질한다 여겼던 과거의 자신이 사무치도록 미웠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소꿉친구를 고립시키는 데 자신이 일조했단 사실에 지독한 자기혐오가 매 순간 그녀를 옥죄며, 잘못되었던 선택을 두고두고 곱씹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을 트로피처럼 손에 넣으려고 사람을 시켜 교묘하게 물에 빠트렸던 금태양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전무한 상황에서 모든 걸 잃은 채로도 온 몸을 던져가며 자신을 구해낸 후붕....



 그녀는 오늘도 금태양이 거슬려 해 떼어냈던 자신의 방 천장의 야광별이 붙어있던 흔적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어릴 적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던 자신을 위해 후붕이가 붙여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버린, 늘 한결같던 그 마음을....



 "....정말이었구나. 이것이.... 고작 '이 따위' 것이 너의 진짜 실력.... 하, 하하...."



 금태양과 몇 판이나 내리 대련을 마친 뒤에야 특전의 존재를 끝끝내 받아들이고 만 검도부장 선배가 허탈하게 중얼거린 말이다.



 자신을 꺾고 전국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서기까지 했던 그의 압도적인 실력이란 게, 결국 시스템과 특전이라는 초월적인 것의 부산물에 불과했단 사실에 그녀는 분노했다.



 집안 내력으로 평생 검도를 수련해 온 그녀.... 만약 남자와 교제하게 된다면 적어도 자신을 검으로 꺾는 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처음에는 파지법조차 제대로 안하고 건들대기만 하던 금태양이 마음에 안 들던 그녀였지만, 빠르게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야 검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우러나온다는 게 그녀가 받아온 가르침이었으니까. 사특한 정신머리로는 절대 펼쳐낼 수 없으리라 여겼던 고강한 검술이 금태양의 손에서 펼쳐짐에 그녀는 결국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허나 그 모든 건 결국 거짓이었다. 그저 천재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건 양아치의 기만에 불과했다. 



 이 순간, 그녀는 그저 여자를.... 자신을 목적으로 검도를 모독한 불순종자에 비해 우직하게 땀을 흘리며 노력하던 어느 후배를 떠올려냈다.



 "후붕...."


 

 실력으로 금태양을 넘지 못하자 질투심에 신성한 도장에서 주먹다짐까지 일으켰다는 물의로 자신이 직접 쫓아냈던 후배....



 그것이 사실은 그의 소꿉친구와 사귀면서도 동시에 자신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는 금태양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그녀에겐 더 이상 검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 남자를 여자 여럿이서 공유한다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신나간 행위를 받아들이고도 마음 한 켠에선 부끄러웠던 자신을....



 그토록 올곧은 척은 다 하던 기억에 마주치고도 시선을 회피했던 자신을 그럼에도 끝끝내 구해낸 남자를 떠올리며....



 이젠 아무도 남지 않은 부실 위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던 것이다.


 

 "얼마나.... 얼마나 우스웠을까, 응!? 그렇게나 남자를 경계해놓고선 정작 너 같은 최악의 쓰레기에게 마음을 내준 내가 얼마나 우스웠겠나고ㅡㅡ!!!"



 모든 게 밝혀지고 난 뒤 포기하지 않고 접근해온 금태양에게, 주인공의 게임 친구이자 후배가 오물 보듯 진절머리를 내며 쏘아붙인 말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잘못된 재혼으로 의붓아버지에게 자칫 몹쓸 짓을 당할 뻔한 후로 지독한 남성불신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 그녀였다.



 자신의 그런 '약점'이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또 다시 남성들의 마수가 뻗쳐올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일부러 대범하게 굴고 거친 취미를 내보이며 필사적으로 쎈 척을 해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 한 켠에는 다른 평범한 또래 소녀들처럼의 감성을 바라는 욕구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일까? 그 동안 써 오던 가면에 금이 가 차차 흑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주변 남자들로터 자신을 지켜준 게 바로 금태양이라고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정작 자신의 남성공포증을 해소시켜 준 고마운 이는 따로 있었으니까. 금태양은 모든 걸 처음부터 알고서 자신의 남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시점에 연출과 조작을 가했을 뿐이었다.

 


 사실 주변 남자들에게 흑심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늘 털털한 면만 보이던 그녀가 이따금씩 내보이기 시작한 소녀다운 갭에 마음이 동하는 건, 이 나이대 남자들에게 흔히 있을법한 지극히 정상스런 반응이었으니까.



 하지만 금태양은 그걸 약점을 드러낸 사냥감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늑대들로 인식하게끔 교묘히 유도해버렸다. 사라져가던 공포증을 다시 끄집어내어 친구들을 전부 몰아내게 한 뒤에, 자신만은 다른 이라는 듯 어필했다.



 "하하, 아하핫...."



 정작 진짜 음흉한 흑심을 품고 있는 건 그 놈이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실소했다. 



 자신의 몇 안되는 동성 친구들에다, 나이에 비해 아직 젊어보이는 어머니를 향해서까지 모녀덮밥이니 4P니 평소에도 갖은 음탕한 망상과 그걸 실현시킬 계획을 머릿속으로 꾸미던 저질이 바로 금태양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동성이든 이성이든 모든 친구들이 떠나간 지금. 그녀는 줄곧 마음 한 구석 가장 크게 텅 비어있는 자리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중이다.



 저열하고 소름끼치는 금태양에 비해 어쩌면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긍정해주고 그를 극복하게끔 도와주었던 진정한 구원자, 선머슴이던 자신이 여자로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어줬던 남자, 후붕을....



 다른 남자들과 똑같다며 심한 말로 매도하며 손절을 선언했음에도, 끝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육신마저 구한 소년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언젠가 자기 손으로 후붕을 끌고 들어가 함께 찍었던.... 관계가 어긋난 후론 서랍 깊숙이 아무렇게나 처박아놓았던 꾸깃한 인생네컷 사진을 부여잡고 흐느낄 뿐이었다.



 "우웁, 우웨애액ㅡㅡ!!"



 후붕의 의붓여동생의 경우엔 어줍잖은 변명을 이어나가는 금태양에게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구토를 해 버렸다.



 한 때는 엄마와 자신만 놔두고 세상을 떠난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 후에는 새아버지와 재혼하는 바람에 후붕 오빠와 맺어질 길을 막아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자신이 조심스레 건네는 이성으로써의 애정 표현을 끝내 몰라준 후붕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평생 남을 원망만 해 오던 그녀였지만, 모든 것이 어긋나버린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자기 탓이었단 사실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의붓오빠에 대한 마음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비록 피가 이어지진 않았어도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주던 오빠를 잃었으니까.



 의붓오빠에게 연심만 품지 않았더라도. 아니, 괜히 토라진 자신이 가출을 일삼지만 않았어도. 아니, 무엇보다 하필 금태양이라는 희대의 쓰레기에게 의탁하지만 않았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곁에 있었을 테니까.

  


 해선 안될 억지를 들어주지 않았다해서 그의 마음을 부숴버리는 데 일조한 자신.... 금태양의 발치에 게워낸 토사물의 원인에는 그녀 자신에 대한 혐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알아봐주지 않은 원망으로, 그가 지닌 사랑을 금태양이 짓밟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과거의 자신....



 한때는 연적이라 여겼던 오빠의 소꿉친구와 같이, 그의 원수나 다를 바 없던 남자의 품 안에서 웃고 즐기며 비웃던 나날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낙인찍었던 후붕이 목숨을 던져가며 자신들을 구해낸 순간 깨져버렸다.



 자기 배로 낳지 않았음에도 하늘이 무너져라 오열하는 엄마와, 사람을 구한 아들이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서재에서 남몰래 흐느끼던 아버지는 철없던 소녀를 현실로 끌어내리기엔 충분했다.



 "미안.... 미안해, 오빠...."



 오늘도 그녀는 주인이 사라진 후붕의 방 안에서 그가 썼을 베겟잎을 눈물로 적시며 닿지 않을 사과만을 연신 반복한다.



 뒤틀린 연모의 감정과 일그러진 원망으로 소중한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증오스런 스스로를 연신 자해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과 피를 흩뿌릴 따름이었다.




 *   *   *




 아무래도 좆됐다. 



 이 세계의 원래 주인공 후붕에 의해 대신 주인공에 오르고 난 뒤, 벌어진 일련의 사건 끝에 금태양이 내린 나름의 결론이었다.



 속속들이 알고있던 원작의 내용으로 오랜 시간 빌드업해 공략한 히로인들을 잃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후붕이 그녀들을 위해 희생한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때문에 그를 그녀들의 마음 속에서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할 테지만, 어쨌거나 마지막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갱생한 과거의 인연 정도로 묻어갈 수 있는 각이 보였으니까.



 문제는 그가 남기고 간 특전, [이심전심]이라 할 수 있었다. 

 


 금태양이 히로인들을 공략하면서 품었던 생각과 감정들부터, 원작의 전개를 이용한 수작질, 결정적으로 그가 후붕을 고립시키기 위해 행한 온갖 악의적인 음해들까지....



 금태양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해왔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 것이다.



 "씨발...."



 그는 흡사 테러를 당한 것처럼 어지럽혀진 집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담벼락에 락커와 페인트로 써갈겨진 갖가지 욕설과 비난의 문구. 마당을 어지럽히는 투척된 쓰레기들과, 깨져버린 거실 유리창....



 바깥을 나갈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과 수군거림, 잊을만하면 들이닥치는 각종 시비와 폭력들에 그는 요 근래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새어나간 건지 모르겠지만 벌써 그가 저지른 온갖 짓거리에 대한 소문은 이 동네와 학교에까지 퍼져있는 상태였다.


 

 후붕의 소꿉친구를 사람을 시켜 일부러 물에 빠트린 점이 확인되자 그녀의 집안에선 그를 살인미수 및 교사 혐의로 고소하였고.



 검도부장에 의해 부정한 방법이 따랐다는 지적이 일었지만 특전의 부재로 증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실력은 학교 측에서도 그를 옹호할 가치를 못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후배에 의해 제기된, 후붕에 대해 교묘하게 꾸며진 악소문의 근원에는 모두 그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빙의 이전부터 붙어있던 몇 없던 인맥마저 떨어져나갔고.



 마지막으로 후붕의 여동생은 그가 가출한 자신을 현혹시켜 집으로 유인한 다음, 성적인 갈취를 시도하였다고 증언함으로써, 그를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시켜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닥 맘에 드는 구석 따윈 없었던 이후돌으로써의 삶 대신에 선택했던, 부모가 남겨준 부유한 유산 위에 네 명이나 되는 미소녀와의 하렘 라이프를 이루어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생이라 자평했던 금태양은.... 그렇게 추락했다.



 단지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마지막 남은 '자기자신'의 존재마저도 기꺼이 내던진 후붕이 이후에나마 모든 것을 되찾은 것과는 정 반대로, 삽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후붕을 몰락시키고자 셀 수도 없는 혐오스런 수작질을 부린 데 반해, 상대의 선의와 나름의 축복이 담긴 선물을 받고 이 지경이 되었다는 점이 다소 아이러니할 따름인 채로.



 그렇게, 오늘도 깨진 유리창 사이로 새는 찬바람에 몸을 떨던 금태양은 불현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리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희번득하게 돌아간 눈자위로 중얼거리는 섬뜩한 목소리가 증오로 앙 다문 잇새 사이로 새어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태양은 혹시모를 남들의 눈길을 의식한 채 누더기가 된 집에서 빠져나왔다.



 다름아닌 혼수상태인 후붕이 누워있는 병원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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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을 다른 분께서 멋지게 완전파멸 루트로 버무려 주셨군요....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후일담 부탁받은 거 써둔 게 아까우니 조심스레 올려봅니당....


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져서 상중하 3편으로, 마지막 편에서야 마무리가 될 거 같네요.


제가 생각한 구성에선 히로인들은 후회할지언정 금태양한테 '속은' 입장이므로 어느정도 정상참작 루트입니다. 다만 재결합이나 그런 쪽으론 아닐 거 같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