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regrets/99489281 1화



후순씨와의 결혼을 한지 어느덧 8개월이 되었다. 우선 가장 기쁜소식은 후순씨가 나에게 감정표현을 하게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화풀이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만을 표현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부서진 마음 조각들이 조금씩 모여지는 것 같아 그런 후순씨의 감정표현도 고마울 뿐이다. 


후순씨가 나에게 제육볶음을 먹고싶다고 메세지를 보내 장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결혼 후에는 후순씨의 별장에서만 생활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후순씨가 대부분의 조건들을 많이 풀어주어 이렇게 밖에서 산책을 한다던가 장을 보기도 한다.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말소리와 마트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조금은 머리가 어지럽다. 지난 8개월 동안 후순씨의 집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소리는 청소기 돌리는 소리밖에 없었으니 내 귀가 새로운 환경에 어색해 할것도 이해된다. 어지러움이 조금 가시자, 나는 제육볶음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카운터로 갔다.


" 아빠~ 나 초콜릿 한개만 사줘~ "


" 씁! 하율이 아토피 때문에 초콜릿 먹으면 안된다고 했지! "


" 왜 그래~ 약 먹고 연고 잘 바르고 손 잘 씻으면 돼~ 하율이 무슨 초콜릿 먹고싶어? "


카운터 앞에는 나보다 미리 계산을 기다렸던 한 가정이 소박하게 얘기를 하고있다. 


' ..부럽네 '


말 그대로 부러웠다. 저렇게 화목하게 가족들끼리 얘기하는 것이 그리우니깐.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사실 가족이 없다. 자세하게 말하면 어렸을때 가족들을 일찍 잃었다.



" 아빠 우리 먼저 회부터 먹는거야 알겠지? "


" 알겠다 욘석아, 가장 먼저 회 먹으러 갈테네 뒤로 좋게 앉아있어라 "


" 후붕이 너 얼른 좋게 안 앉아있으면 회 안 먹을거야? "


14살때였나. 내 기억은 이 날부터 기억난다. 오랜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와 함께 가족끼리 바닷가로 여행을 갔었지.

간만에 가족들 전부 만나 여행 갈 생각에 잔뜩 신나있었지.


" 헤헤 광어회 잔뜩 먹어야ㅈ "


쾅!


윽. 상상만 했는데도 머리가 아프다. 아주 잠깐이었지. 갑자기 들린 굉음과 붕 뜨는 차 안.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안절벨트를 풀고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넘어와 나를 감싸안았던 부모님. 불과 10초도 안되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땐 낮선 천장이 보였다. 움직이기 힘겨워 하는 몸뚱이를 들어보니 병원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딱봐도 영화에서나 볼법한 경찰의 모습과 동일한 남자 두명이 내 앞으로 나타나 상황을 말해줬지.


사거리에서 초록불에 출발하던 우리 가족의 차를 음주에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이 빨간불인데도 불구하고 풀악셀을 밟아 우리 가족의 차를 박아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를 감싸안아 지키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나는 그저 몸이 움직이기 버거운 상태가 되었지만 부모님들은 그 충격을 못 이겨 돌아가셨다고 한다. 


충격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부모님의 장례식에 상복을 입고있었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난지도 모르고 있던 그때 어느 남자가 내게 와 부모님의 재산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셨다. 덕분에 일을 하기 전까진 혼자서 금전적 문제를 겪진 않았지. 


그 뒤로 나는 심한 트라우마에 빠져 살았다. 대표적으로 말하면 사람에 대한 불신이라고나 해야할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들은 나를 보며 안쓰러워 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주진 않았다. 학교에서도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복도를 지나가면 나를 보며 수근거리는 애들이 있었고, 가오를 부리기 좋아하는 일찐애들의 타겟이 되어 중학교 생활동안 지옥을 겪었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나쁜 생각을 안 한 내 자신이 고맙다.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교 생활과 남달랐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 남들에겐 신경을 안 썼고 나를 괴롭히던 일찐 애들은 자퇴를 했단다. 나중에 근황을 알아보니 나를 가장 괴롭히던 놈은 지금 투잡 쓰리잡 안 가리고 제 몸 불 살라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꼬시다 이 놈.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만난 후진이라는 아이 덕분에도 고등학교 생활을 재밌게 보낼 수 있었지. 후진이는 많이 내향적이라 친구가 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향적인 부분만 빼면 참 좋은 아이였다. 김실장님과도 같은 심성을 가져 크게 의지가 됐었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이 되어 베프와도 같았지만 20살이 되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오랜만에 만나 밥 한끼 사주면서 그때는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연락처가 바뀐건지 전화를 받지 않아 그 계획은 무산 되었다. 워낙 내향적인 아이라 sns같은 것도 안해 근황도 알 수 없고.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계산을 할 차례가 왔고 얼른 계산을 한 뒤. 나는 집으로 귀가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이 되었고.


삑.삑.삑.삑. 띠리링~ 후순씨가 퇴근을 하시고 집으로 오셨다.


" 고생하셨어요 얼른 밥 드시고 쉬세요 "


자연스럽게 그녀의 짐과 외투를 받아 정리하고 그녀를 식탁으로 맞이했다.


달그락 달그락.


젓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던 어색한 침묵 속.


" ..맛있네요. "


그녀가 제육볶음을 집어들고 먹은 뒤 말했다.

놀랐다. 그녀가 처음으로 긍정의 표현을 해줬다. 이건 정말 좋은 징조겠지. 나중에 김실장님께 말해야겠다. 아마 눈물 콧물 질질 흘리시며 잘됐다고 하시겠지.


" 하하 그렇죠? 완전 제 자신작이에요. 맛있으면 더 드세요. "


평소에는 안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갑자기 들은 칭찬에 기분이 들떠 평범한 연인들처럼 젓가락 제육볶음을 집어 그녀의 입에 갖다댔다. 


" ..제가 연인행세같은거 하지 말아달라고 했을텐데요. "


아 너무갔다. 그녀는 그저 예의상 한 말이었을텐데. 괜히 혼자 들떠가지고.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하려던 순간.


"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겠네요. "


그녀가 젓가락으로 내가 젓가락으로 집고있던 제육볶음을 낚아챘다.

아. 이건 진짜 반한다고요. 츤데레 같은 모습이 또 내 마음을두근두근하게 만든다. 이러면 안되는데. 정략결혼에 감정을 품으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너무 기뻐 귀가 빨개지고 뜨거워지는게 느껴졌다.


" 저 자,잠시 화장실 좀 "


" ..? 그런 건 말 안하셔도 돼요. "


" 아, 아 네넵! "


창피하다. 그치만 이 귀가 빨개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후순씨에게 들킨다는게 더 창피 할 것 같아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쏴아아


조금의 진정을 되찾고 손을 씻고 다시 식탁으로 갔다. 그녀는 금세 밥을 다 먹었는지 없어지고 그녀의 방에서 키보드 소리를 내며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나도 얼른 밥을 해치우고 설거지 및 청소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평소같았으면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러 갔겠지만 후순씨의 건강을 해칠까 요즘은 일부로 담배를 피하고있다. 눈 앞에 담배가 아른거리자 이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김실장님께 오늘 후순씨의 상태와 나에게 해줬던 행동들을 반쯤 자랑하는 메세지를 보낸 후 잠에 들었다.









" ! 허억..허억.. "


또 이 꿈이다. 잊어질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그날의 사고. 식은땀으로 젖은 온 몸을 다시 뽀송하게 만들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 ..좋은 아침입니다. "


" 좋은 아침입니다 후순씨 잘 주무셨나요? "


" 네 근데 임후붕씨는 잘 주무시지 않은것 같네요.

온 몸이 땀범벅입니다. "


" 아.. 악몽을 좀 꿨거든요 하하.. "


그 뒤로 시간이 한달이나 더 지난 지금. 지금은 후순씨와 이런 간단한 스몰토크도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에게 조금은 마음을 연거겠지. 심장이 날아갈 듯 기쁘다. 원래였다면 회사에 있을 그녀가 지금 집에 있는 것은 오랜만에 그녀가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지.


" 아 잠시만요. 후순씨 머리에 먼지가.. "


후순씨의 머리에 붙어있는 먼지를 떼어내기 위해 그녀에 머리에 손을 갖다댄 순간.



그녀가 조금은 거칠게 내 팔을 쳐냈다.


" ..뭐하시는 겁니까. 제가 이런 터치 하지 말라했죠. "


" 아, 아닙니다 제가 좀 너무 간거같네요 하하.. "


그녀는 조금 날 노려보다 자신의 방으로 갔다.


9달의 시간동안 그녀는 결혼조건 중에서 거의 대부분을 풀어주었는데 이렇게 후순씨에 몸에 터치를 하는것은 조금이라도 풀어주지 않았다.한동안 후순씨 얼굴보니 어색해서 어떡할려나. 조금 있다 다시 후순씨와 대면할 상황이 민망할거같아 한동안 그녀를 보지 않기로 생각하고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였다. 집 주변 공원 벤치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은 다음 눈을 감았다.


얼마나의 시간이 흘렀을까 풍경은 이제 주황색빛을 비추는 노을을 비췄고 이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후순씨를 봐도 민망하지 않을거같기에 집으로 귀가를 하기위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도중 어느 꽃집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아주 이쁘게 꽃봉아리가 피어있고 가시도 그렇게 뾰족하지 않은 장미를 발견하였다. 그날은 왠지 모르겠지만 후순씨에게 저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나는 그 꽃집에 들어가 장미를 집고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여자가 있었고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더니 말했다.


" 여자친구분에게 주실건가봐요? "


" 아..네 뭐 그런셈이죠. "


갑자기 나온 질문에 놀랐지만 어떻게든 잘 얼버무렸다.


" 역시 그렇군요~ 근데 여자친구분 한테 주실거면 이렇게 딸랑 꽃다발만 주시면 안되지~ "


아 역시 이런 속셈이 있던건가. 따로 옵션을 추가해서 돈을 더 받으려는건가 보군. 그래도 후순씨에게 줄거라면 돈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 강매 좀 당해보려고 한다.


" 아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


내 말에 여자는 잠시 눈이 별처럼 빛나고 목을 큼큼 가다듬고 내게 말했다.


" 요즘 여성분들 사이에선 꽃다발에다가 메세지가 쓰여진 종이를 묶어둔걸 받은게 엄청 유행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남자친구분도 여자친구분에게 그런 메세지같은거 써준다음 꽃다발 선물하면 여자친구분이 엄청 좋아하실거 같아요~ "


여자는 그 뒤로 뭐라뭐라 더 말하더니 메세지 종이 추가에 5천원이라 말했다. 글씨 하나에 5천원이라.. 물가가 아주 미쳤구만. 그치만 꽃을 받고 희미한 미소를 지은 후순씨의 모습을 떠올리자 바로 여자에게 5천원을 건넸다.


" 네네 잘 선택하셨어요~ 그럼 문구는 어떤걸로 적으실건가요? "


흠.. 무슨 문구를 적어야 할까 고민의 고민을 한 뒤 드디어 문구를 정했다.


" 좋은밤 좋은꿈 이라고 써주세요 "


" 어우 너무 로맨틱하시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


최근 알게된 그녀의 불면증이 완치되게 이런 문구를 정했다. 이 문구가 현실이 되어 그녀의 하루가 늘 좋은밤 좋은꿈이길 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여자에게서 꽃을 받고 집으로 귀가했다.


삑삑삑삑 띠리링~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자 왠일인지 후순씨가 거실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꽃을 건네줄려던 찰나


" 저 지금 배고픈데 빨리 저녁 좀 해주세요. " 후순씨가 내게 말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시간을 보니 벌써 7시가 되어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나는 얼른 간단한 식사를 차린 후 그녀를 불렀다. 방에서 나온 그녀의 표정이 매우 안좋아 보였다. 무슨 일 이라도 있는걸까.


" ..무슨 일 이라도 있으세요? "


" 신경쓰지 마세요. "


그녀는 조금 신경질을 내며 내게 말했다. 여기서 굳이 후순씨를 건드리는건 안 좋을거같아. 후순씨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밥을 먹었다.

 

어색한 침묵 속.


" 앗 뜨! " 후순씨가 실수로 국그릇을 엎고 뜨거운 국물이 그녀의 손을 적셨다.


" 괜찮아요 후순씨?! "


화상을 입은건지 빨개진 후순씨의 손을 보고 나는 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 아 씨, 제가 제 몸에 손대지 말라했죠! " 


" 아! "


그녀가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는 탓에 그녀의 손이 내 뺨을 때렸다.


" 진짜 제가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요? 제 몸에 손대지 말라고요! 이해가 잘 안되세요? 아님 뭐 일부로 사람 기분 엿같으라고 하는거에요? "


" 무슨.. 저는 그저 후순씨가 걱정되어서.. "


" 제 걱정 하지 말라고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깐! 애초에 정략결혼이니깐 서로 상대방에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잖아요. 제가 조금 신경 써주니깐 어떻게 해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래서 제 마음이라도 홀려서 제 재산이라도 쓸 생각이에요? 주제 파악 좀 하세요. 부모도 없는 고아 거둬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진짜.. "


"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후순씨 돈에 하나도 관심없어요! 그저 후순씨라는 사람이 좋아서 이러는겁니다! 그리고 부모도 없는 고아라뇨?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


후순씨와 오해를 풀려 했지만 후순씨의 말이 너무 심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버렸다.


" 제가 좋아서 이러시는거면 포기하세요. 저는 그쪽한테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으니깐. 자기 기분 나빠지니깐 바로 언성 높이는거 진짜 역겹거든요? 조금 잘해주니깐 혼자 착각해서 이러는것도 기분 뭐같아요 알아요? "


그녀의 말은 너무 모순적이다. 먼저 화를 낸것이 누구였는가.

먼저 착각하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언성을 높이것에 사과하고 다시 오해를 풀려했지만 그녀의 이기적인 말이 다시 화를 돋구었다.


" 지금 후순씨 말 엄청 모순적인거 아세요? 누가 먼저 화를 내었습니까. 누가 먼저 오해했습니까. 둘다 후순씨가 먼저하셨습니다! "


안된다. 진정을 찾아야해. 안 그러면 계속 상황만 지체시킨다.


" 그럼 저한테 신경 끄세요! 모순적인 사람 말 듣지도 않고 얼마나 좋겠어요?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서로한테 신경쓰지 않기로 했는데 이 쉬운것도 못 지키다니. 교육을 못 받으셨어요? 이래서 고아를 거두는게 아닌데.. "


순간.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가 그녀의 뺨 위치까지 와있었다.


' 안돼, 지금 뭐하는거야. 얼른 손 내려놔. '


뇌는 분명 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은 점점 뒤로 처지고 있었다.


' 안돼, 진짜 안돼, 진정하고 대화로 풀어야해, 그러면 다시는 후순씨랑 이어질 수 없을거야. 임후붕 너 그렇게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 아무리 화나도 말로 해결해야한다.  ] 부모님이 늘 말해주신 우리집 가훈이잖아. 게다가 여자. 약자라고. 분명 큰 상처가 될거야 그러니깐 얼른 손 내려놔! '


하지만 몸은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은


찰싹!


" 꺄악! "


정신을 차린뒤 눈에 보인건

뺨이 조금 빨개진 얼굴로 쓰러진 후순씨, 조금씩 아려오는 손바닥. 난 그녀에 뺨을 때려버렸다.


" 아..아... 후순,후순씨 미안해요 괜찮아요?

제가 미쳤었나봐ㅇ "


퍽!


" 커억! "


" ..씨발... "


그녀는 있는 힘껏 내 명치를 때렸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아픈것도 있지만 이건 먼저 폭력을 행사한 내 잘못. 그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는 되돌릴수 없다. 헐떡이는 숨을 참으면서 그녀의 방문 앞으로 가 말했다.


" 후,후순씨 미안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어ㅇ.. " 후순씨에게 온갖 사과를 하던 중 후순씨의 방문이 열리고


" 이 집에서 제가 허락 할 때 까지 제게 말 꺼내지 마세요.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마세요. 명령입니다. 한번이라도 이 말을 어겼다간 저도 가만 있지 않을거에요 " 후순씨는 이 말늘 끝으로 다시 방문을 굳게 닫았다.


" 아..아 후순씨 제발 한번만 대화를... "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부서진 마음조각들은 차갑게 흩어져 사라진 뒤 였으니.









" ...오늘 밤 오후 11시부터 오전 3시까지 빨간 달,레드문이 뜬다고 합니다. 이 레드문을 다시 보기 위해선 30년을 더 기다려야한다고 하니 후회하지 않게 꼭 오늘밤 레드문을 보시길 바랍니다. "


빨갛던 밤이 인상적이었던 5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티비속에선 50년만에 레드문이 뜬다며 온갖 방송들이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어쩌라는건가. 난 보지도 못하는데.


그 날 뒤로 3달이 지났다. 후순씨와 결혼한지도 1주년이 됐지. 그 날 뒤로부턴 후순씨와 나의 사이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후순씨가 풀어줬던 조건들은 더욱 강력해져 내 목을 조여왔다. 맘대로 다녀올수있던 산책은 이젠 꿈도 못 보고 장을 보러 가는길에도 동영상을 찍어 후순씨에게 인증해야한다. 매일매일 후순씨와 화해를 하고싶어 사과문을 써서 그녀에게 주지만 그녀는 사과문을 보지도 않고 찢어버린뒤 내게 다시 쥐어준다. 저번에 못 줬던 장미꽃을 주었을땐 후순씨가 꽃을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방에서 몇시간 동안 울었지. 내가 만약 그날 얼른 이성을 되찾았다면 후순씨와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텐데... 그저 과거의 내가 미울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것은 나도 후순씨처럼 감정이 사라진것 같다. 예전에는 눈물 콧물 질질짜며 봤던 영화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뉴스에서 나오는 학교폭력의 사태를 봐도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질 않았다.

아마 사람과의 교류가 끊겨 대화를 하지 않게 되어 그런지. 원래 사람과의 교류가 끊기면 감정부터 가장 많이 붕괴된다 하지 않던가.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어 아예 내 감정이 없어지면 어떡할지 걱정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0시. 후순씨가 새로 추가한 조건 때문에 나는 이 시간에 자야한다. 그렇게 취침에 들려던 그때. 방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아마 후순씨가 밖에 나가실려고 하신거겠지. 그런데 그날따라 왜인지 등골이 서늘했고 이내 난 그녀와의 약속을 깰수밖에 없었다.


" ..어디 가실려는거에요? "


방문을 열고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고있는 후순씨에게 물었다.


" 제가 아직 당신에게 말을 하라 한 적이 없는것 같은데요. "


"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말해주세요. 어디 가실려는 겁니까. "


" 하..제가 그걸 말해야하나요? "


" 말해주실때까지 붙잡겠습니다. "


" 하..역시 싸다고 불량품을 가져오는게 아니였는데..

일 때문에 ☆☆동으로 갈려고 합니다 "


☆☆동 그곳은 깡패,조폭들이 가득한 곳이다. 얼마전에도 그 동네에서 강간사건이 발발했었지. 그녀가 그런 일을 당할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그녀를 극구 말렸다.


" 그곳은 이 야밤에 가긴 너무 위험합니다 차라리 내일 아침 김실장님과 함께 가시는게 어떨까ㅇ.. "


끼이익 쾅!


현관문이 열리고 이내 닫혔다.

후순씨는 내 말을 무시하고 밖에 나가셨다. 결국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잠에 들려 했지만 그 날따라 뭔가 너무 불안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세운지 몇시간 째, 아무래도 느낌이 쎄했다. 결국 나는 또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혹시 몰라 김실장님께 연락을 하고 ☆☆동에서 후순씨를 찾기 시작했다. 레드문이 떠올라 빨갛던 밤이 참 인상 깊었지만 그런건 신경 안 쓰고 후순씨를 찾는데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은 숨이 차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을 해보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찾는 것이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보였다. 그래 만약 불안하면 김실장님께 말하면 되는거지 나도 참 바보같네. 라고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 ..주..요.. "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 살려주세요! "


더 커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시크하고도 허스키한 그렇다고 걸걸하진 않은 목소리. 아무리 들어도 후순씨의 목소리였다.








" 허억...허억..헉.. "


미친듯이 소리의 방향지로 뛰어갔고 마침내 보인 것은


4~5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한 여자. 정확히는 후순씨를 둘러쌓아 옷을 벗기려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 야이 씨발새끼들아!! 내 아내한테서 떨어져!!!! "


나는 이성을 잃고 그 남자들에게 달려 들었다.


그때는 무슨 용기로 그렇게 뛰어들었던걸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용감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빨갛던 밤이 참 인상적인 날이었다.









이제 다음화부터 슬슬 후순이 후회가 나올거같네요. 부족한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