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후붕. 고등학생이었고,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은 뒤, 서유기의 손오공으로 전생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갸아아아악!! 갸으아아아아악!!"

옳은 일을 하고 벌을 받고 있다.


"네 이놈 손오공! 내가 두 번이나 너를 용서했거늘, 네놈은 그걸 원수로 갚아?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내 말이 그리 우습게 들리더냐?"
나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마구 호통을 치는 저 여승은 현재 손오공인 나의 사부이자 경을 가지러 가기 위해 천축으로 향하는 삼장법사다. 그리고 그 옆에서 꼴 좋다는 듯이 웃음을 참으며 나를 바라보는게 둘째 제자 저팔계. 

머리를 옥죄는 긴고아가 멈추자, 나는 다시금 그녀에게 해명했다.

"아니 사부님, 제가 계속 말씀 드렸잖아요! 제가 앞서 때려잡았던건 요괴가 도망치면서 남긴 가짜 몸이라고요. 그리고 저기 저 백골더미를 보셨잖습니까! 사부님을 해치려던 요괴를 잡았는데.."


서유기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가? 서유기에선 손오공이 파문당하는 대목이 두 번 나온다. 그 중 한 번이 바로 지금. 백골정을 잡았을 때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순간은 이미 여의봉으로 백골정을 후려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곧바로 백골더미로 변한 요괴의 시체를 보여주면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이 다음엔 분명 저팔계가..

"사부님, 형님의 도술 실력을 잘 아시잖아요? 저 미친 원숭이 놈은 사람 시체를 백골더미로 바꾸는것쯤은 손쉽게 한다니까요? 이걸 순순히 용서하시면 이 다음에 또 지랄병이 도져서 무고한 사람을 죽일겁니다!"

그 말을 듣고 또다시 한참 동안 긴고주를 외우시던 우리 팔랑귀 사부님은 아직 분이 안 풀려 씩씩거리며 내게 말하였다.

"이제 됐다. 이 발칙한 원숭이 놈아. 네놈은 무고한 사람을 셋이나 때려죽였고, 지금 이 상황에서 제대로 반성도 안하고 있구나. 난 더 이상 네놈이랑 같이 다니지 못하겠다."

"...알겠습니다."
전생하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게 긴고아의 머리 조이기다보니, 눈 앞에 있는 스님께 존경심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난 분명 이번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애초에 잘못을 저지른 기억조차 없는데. 저지르지 않은 죄로 벌을 받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앞의 삼장법사가 지필묵을 꺼내 절연장을 쓰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네놈은 내 제자가 아니다. 이 절연장을 받고 당장 내 눈앞에서 썩 사라져라."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내민 절연장을 공손히 받아든 뒤 근두운에 올라탔다. 그리고 손오공의 기억을 떠올리며 화과산으로 돌아갔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걱정될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과산에서 기다리다보면 저팔계가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빌고, 내가 가서 요괴를 때려잡은 뒤 다시 합류를..

"..어라?"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가 왜 합류를 해야 하지? 난 잘못 없이 쫓겨났고, 절연장까지 받아서 사제의 인연도 끊겼는데. 굳이 돌아가서 합류할 이유가 있을까?'

원래 손오공이었다면 그 동안의 정으로 끝까지 천축까지 따라갔겠는데, 지금 나에게 그런건 없다.

요괴를 잡은거니 난 명백히 옳은 일 한거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벌을 내린데다 쫓아냈으니 잘못은 저쪽이 했다.

"그럼 안 돌아가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난 근두운의 속도를 높였다.


"대성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내가 돌아왔을 때, 화과산은 황폐해져 있었고, 그곳의 주민이었던 원숭이와 짐승들은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자마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미소로 맞아주었다.

화과산을 떠나고 난 뒤에 전생했기에, 그들과는 초면이었지만. 그 광경을 본 나에게 불경 따위는 이제 중요한게 아니었다. 한쪽의 말만 듣고 나를 내쫓는 성격 나쁜 여승과 시간이 흘렀어도 나를 좋아하는 백성들. 이중 내가 어느 쪽을 도와야 할지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이 황폐해진 화과산을 다시 풍요롭게 만들고,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을 새로운 목표로 잡은 뒤,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시들고 말라버린 나무들을 전부 뽑아낸 뒤, 온갖 과일나무들을 다시 심었다.

내 부재를 틈타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사냥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담가버렸다.

용왕들에겐 감로수를 빌려와 산을 다시 푸르게 가꾸었다.


불타버린 화과산이 다시 살기 좋게 바뀌어갈 무렵,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화과산 재건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어 모두와 함께 즐기던 중, 중간에 꼽사리 끼고 있던 돼지같은 머리.. 아니 그냥 돼지머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저팔계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붙이려 했다.

"아.. 형님, 오랫만에 뵙소."

"그래.. 팔계 자네도 나처럼 쫓겨났나?"

물론 저놈이 쫓겨나지 않았다는건 잘 알고 있다. 

"갈곳 없으면 여기서 살겠나? 이 화과산도 살기 좋은 곳이라네."

"아니, 난 쫓겨난게 아니오. 사부님의 심기를 거스른 것도 아니오."

"호오.. 그럼 왜 날 찾아왔나?"

"사부님께서 형님을 무척이나 그리워 하시며 다시 데려와달라고 나한테 부탁하셨소."

"사부님께서?"

"그렇소."

"나를?"

"그렇단 말이오!"

"...왜?"

"아니, 그리워하는데 이유가 필요하오?"

나는 일부러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팔계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팔계 자네, 못 본 사이에 농담이 많이 늘었군 그래. 직접 절연장까지 써가며 파문해놓고, 이제와서 그리워하는게 말이 되나?"

팔계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내 마음은 확고했다. 

"아니 형님, 그러지 말고 같이 와주시오. 내 얼굴을 봐서라도.."

"자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은 있다 생각하나? 요괴를 잡아서 그 시체까지 눈앞에 보여줬는데 나를 모함해서 쫓겨나게 만든 주제에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한다고?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여의봉으로 두들겨 팼어!"

"히익!"

"..가서 사부님께 전하게나. 훌륭하신 두 제자들이 알아서 잘 할테니 내쫓은 제자 생각 말고 갈길이나 가라고 말일세."

"...알겠소."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저팔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쫓아내놓고 보고 싶다니. 웃기고 있어.."


팔계를 떠나보내고 나서 며칠이 지나고, 이번엔 사오정이 나를 찾아왔다.

"큰형님. 오랫만에 뵙소."

"자네도 날 다시 데려오려고 왔나?"

"그렇소."

사오정 역시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화과산에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삼장 법사는 현재 요괴에 의해 갇혀있다는 것, 자신 또한 전투에서 패배해 갇혀있다가 겨우 포박을 풀고 도망쳤다는 것, 그리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건 나 손오공 뿐이라는 것까지.

"근데 내가 가야 할 이유가 있나? 난 이미 파문당한 몸인데."

"그러지 말고, 제발 다시 생각해주시오. 사부님께선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계시단 말이오!"

"절연장까지 쓰면서 날 파문했다는건, 나 없이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뜻 아니겠나? 근데 내가 뭣하러 도우러 가야 하나?"

"이젠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그럼에도 난 큰형님께 부탁할 수밖에 없소."

"부탁드리오. 의형제로서의 정을 봐서라도, 한번만 도와주시오."

"...알겠네."

바닥에 납죽 엎드려있던 사오정은 내 말을 듣자마자 반색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근두운을 불러 올라타며, 나는 화과산의 모두에게 말하였다.

"모두 걱정 마라. 금방 돌아올테니까."



단순한 변덕은 아니었다. 계속 무시해봤자 끈질기게 찾아올테니, 이 참에 확실하게 끊어버리려는 것이었다.

"아니 큰형님, 어디 가시는거요? 사부님께서 계신 곳은 그쪽이 아니오."

"잠깐 천계좀 다녀오겠네. 이쪽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삼장 법사를 납치했던 요괴가 누구이며 원래는 천계의 누구였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천계로 향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역시나 이십팔수 별자리중 늑대 규목랑이 요괴의 정체였고, 곧바로 천병과 함께 그것을 천계로 압송했다.

순식간에 일을 정리하고, '사부님'이 갇혀계신다는 감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커다란 호랑이 한마리가 갇혀있었다. 당연히, 호랑이로 변신한 삼장법사였다.

"...사부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지셨네요."

"착하신 분이 왜 이렇게 변하셨답니까? 저보고 발칙한 원숭이놈이니 뭐니 하셨으면서 사부님은 호랑이가 되셨네요?"

"뭐, 이 상태론 말도 못하실테니, 조금만 기다리십쇼."

곧바로 술법을 풀고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자, 그녀는 나의 손을 잡으며 감사인사를 표했다.

"오공아, 정말.. 정말로 고맙구나.."

삼장 법사는 미소지은 채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나를 따라온 사오정이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고, 삼장 법사는 내게 수차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 원래대로 다같이 천축으로 향할 흐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오공아, 그게 무슨 소리니..? 돌아가다니?"

"그야 볼일 다 봤으니, 이만 화과산으로 돌아가겠다는겁니다."

사오정도 당황한 모양새였다. 일이 좋게 풀린 줄 알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파토가 났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삼장 법사의 눈 앞에, 그녀가 직접 써서 건네주었던 절연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걸로 저희 사이는 이미 끝나지 않았습니까? 이번엔 오정이가 의형제의 정으로 부탁하였기에 왔던겁니다. 이제 가봐야지요."

"아니 큰형님,"

"그때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이번 한번만 도와달라고. 그 한번이 막 끝났잖은가?"

"오공아, 그 동안 같이 다녔던 정이 있지 않느냐? 제발.."

"사부님, 그 정과 인연을 끊어버린건 사부님이시잖습니까? 사부님께는 훌륭한 두 제자들이 있으니, 저 없어도 천축에 무사히 도착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러지 말아다오 오공아. 넌 내 수제자.."

"아뇨."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달라붙는 삼장 법사의 말을 매몰차게 끊었다.

"사부님의 수제자는 저팔계입니다. 전 이제 사부님.. 아니.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던 나의 몸을, 그녀가 붙잡았다. 그녀는 훌쩍이면서도 내게 계속 부탁하였다.

'긴고주'를 외우지 않았던건 그녀의 양심 때문이었을까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어느쪽이든 나와는 상관없었다.

"낙장불입. 복수불반분. 이미 늦었습니다. 한번 말하고 행동했으면 그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시죠 스님."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뿌리친 채 화과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들이 천축에 무사히 도착했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관심조차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제 나와는 더 이상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과실주에 잔뜩 취할 때면 그들이 나에게 애원하던 모습이 떠오르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파문 당했던 당시의 상황도 같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가 조금 더 신중했다면 이야기가 원래대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바다에 떨어트린 먹물 한 방울처럼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서유기 읽다가 갑자기 떠오른 후회물.

백골정은 손오공을 처음으로 파문당하게 만든 요괴고, 규목랑은 이 직후에 만난 요괴로 손오공이 다시 합류하는 계기가 된 요괴였음.

결백한 손오공을 모함하는 저팔계와 한쪽 말만 듣고 마구 처벌하다가 절연장까지 쓰면서 인연을 끊는 삼장법사는 놀랍게도 원전 그대로. 이 이후에 구해주니까 고마워 하면서 용서해주는게 원전의 내용.

그리고 솔직히 전생하자마자 긴고아로 머리부터 조여지면 정나미가 떨어질만 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