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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하준아..”


“너는 잘못한 게 없잖아.. 내가 막지 못한 탓이야..”


우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설명을 위해 안준이 그 뒤를 따라간 후, 하준은 미영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강간 직전에서 벗어났지만 술과 대마에 취해버린 실수를 저지른 것은 본인이라는 사실을 미영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방에 돌아온 미영은 씻기도 전에 하준의 발에 매달려 스스로의 실수를 자책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렇게까지 무너진 미영의 모습을 마주한 하준에게 나올 말은 없었다. 미영을 원망할 일도 아니다. 넓게 본다면 수민을 제대로 잘라내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이 이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아냐, 미영아.. 고개를 들어, 이러지 마. 넌 잘못없어.”


“…하준…아…정말…미안...”


그렇기에 무릎을 꿇고 미영을 끌어안으며 그녀에게 잘못이 없음을 속삭였지만, 미영이 느끼는 죄악감을 씻겨낼 순 없었다. 분명히 그들을 따라가기 전, 안준의 문자를 확인했다.


“적당히 따라가, 하지만 분위기에 취하진 말고. 술이나 그런건 마시지 마.”  


그 문자를 기억하고 그때 우성이 내민 잔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한 잔에 만원 단위나 간다고 해서 겁을 먹고 자리에 앉을 것이 아니었다. 하다 못해 휴대전화를 가리려는 수민의 손을 치우고 하준과 안준에게 문자를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칵테일을 마셨다. 미영은 처음 마시는 칵테일의 맛에 취하고, 수민과 우성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도, 긴장을 풀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렇기에 미영은 하준에게 할말이 없었다.


하준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묻고 흐느끼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영 역시 사람이기에 그러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이해했다.


“괜찮아 미영아, 나도 많은 실수를 했어. 그럼에도 우린 이렇게 함께 있잖아.”


“…하준…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미영의 뺨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마주했다. 서로에게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방금 전 일어났던 끔찍한 사고가 하준과 미영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널 지킬거야. 이런 나라도, 미영이 너를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줘.”


하준의 변치 않는 눈과 미소를 마주한 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의 선택으로 망가질 뻔했던 이 관계를 하준이 붙잡아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다. 약과 취기 속에서도 그를 향한 사랑이 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랑해..”


“미영아...”


그렇게 두 사람은 불 하나 들어오지 않은 방 안에서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듯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편, 집으로 돌아와 쾌락의 늪에서 빠져나온 수민은 외면하려 했던 현실을 다시 마주했다.


“왜 그랬어?”


“엄…엄마…그게..”


마음을 정리하고 보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 수민의 부모는 생각했었다.

비록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나약했던 망설임이 만들어낸 결과였라며 용서하고 소중한 소꿉친구의 위치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던 하준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하준은 수민을 잊고 형의 소개를 통해 만난 미영과 마음을 나누고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끝났어야 했다. 수민에게 이성이 남아있었다면, 죄책감이 남아있었다면, 우성이 돌아와서 손을 내밀어도 그것을 밀어냈어야 했다.


“왜 그랬냐고 묻잖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하지만 수민은 우성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거짓인지도 모르고 기뻐했다.

육욕에 눈이 멀어 교성을 지르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입을 벌려 교성을 질렀다.


그때부터 하준을 향한 죄책감이 악감정으로 바뀌어 그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성을 따라 미영에게 손을 뻗었다.


“우성이란 놈이 좋았으면 거기서 끝났어야지 왜 그런거야?”


“…우성이가 만나고 싶다ㄱ...”


“그 입 닥치지 못해?!”


너무나 뻔뻔하고 어리석은 답에 격분한 수민의 부친이 다시 수민의 뺨을 쳤다. 수민은 그녀의 부모의 마음에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대못을 박았다.


모텔에서 우성이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수민의 경우는 정황을 알 수 없었던 것과 그녀를 아는 하준과 안준이 그녀의 연락처와 신원정보를 경찰에게 넘기고 그녀의 부모에게 연락했다.


딸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일을 하던 수민의 부모는 마른 하늘의 벼락을 맞은 모습이 되어 모텔로 달려왔다. 그곳에서 사람을 포기해버린 수민의 음란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밤, 하준의 부모와 수민의 부모, 그리고 안준의 연락을 받은 미영의 아버지가 한 자리에 모였다.


“당신들 대체 뭐 하는 작자들이야?! 우리 미영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거야?!”


“죄송합니다.. 저희가 딸 자식을 잘못키운 죄입니다. 뭐라 말씀 드릴 수..”


“이게 지금 말로 끝날 일이야?!”


“어차피 쟤도 이용당한 거 뿐이요. 아저씨, 중요한 놈은 지금 경찰서에 있으니 여기서 소리 쳐봤자 좋을 게 없어요.”


미영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탁자를 내려쳤다. 당장이라도 눈 앞의 수민과 그녀의 가족을 죽이고 싶었지만 안준이 나서 이를 중재하는 것으로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


“치료비와 합의금을 드리겠습니다. 몇번이나 사과드려도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당신네 잘못도 아니잖소…자식 새끼들 잘못이지…”


수민의 부모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자, 격분하던 미영의 아버지는 분노를 잃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 부모가 가진 지분이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부모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를 생각하니, 눈앞의 부부가 너무나 측은했다.


그리하여 하준의 우울증 치료비 뿐만 아니라, 미영의 합의금까지 지불하게 되었다. 그 모든 장면을 뒤에서 지켜보던 수민은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짓눌려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이런 일을 원치 않았던 것은 안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웃으로 지내며 정을 쌓았던 사이였기에 누구보다도 이 상황에 착잡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그는 이웃의 짐을 덜어주기로 결정했다.


“뭐, 하준이는 이제 잘 됐으니까 치료비는 필요없어요. 미영이 쪽은 아시죠?”


“…고맙구나 안준아.”


아직 남아있던 하준의 치료비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준의 말에 수민의 부모가 눈물을 흘렸다. 용서받지 못할 딸 자식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을 동정하는 이웃의 마음이 수민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어째서 엄마 아빠가.. 나 때문이야..?”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수민의 마음 속에 묻어뒀던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을 이용해 하준이의 여자친구를 가져가려던 우성의 모습에 사랑은 없었다.


“아아아아아!!”


자신이 욕정에 취했던 것처럼, 우성 역시 자신을 욕정의 도구로 취급했음을 꺠달았다.

그 순간, 수민은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팔을 쥐고 비명을 지르며 방으로 도망쳤다. 누군가 그녀를 잡아주길 바랬지만, 그 자리에서 수민을 잡을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부모마저,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문을 닫고 침대 위의 이불에 들어가 의미도, 목적도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아악!!”


그토록 소중했던 소꿉친구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 악감정을 가졌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를 쥐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수민의 휴대전화에 벨소리와 함께 영상전화 화면이 떠올랐다.


발신자 : 하준


발신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 순간, 수민의 세상은 멈춰버렸다. 화상 통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보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기 위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화상통화를? 두려움에 짓눌린 수민은 십초 동안 말없이 휴대폰 속 하준의 이름을 보기만 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생각 속에서 수민의 손가락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펼쳐진 화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었다. 그리고..


“하아, 아읏.. 아아앙, 하, 하준아아아!!”


귀에 익은 여성의 신음 소리와 하준이라는 이름이 들려왔다. 그 순간, 두려움에 차마 화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던 수민의 눈이 화면으로 향했다.


수민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여성의 신음소리에 녹아있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을 느꼈다.

그 상대가 하준이, 자신의 소꿉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수민은 여성의 정체를 깨달았다.


“미영...”


“아, 아아.. 읏, 후읏.. 사랑해. 너 뿐이야, 내 마음 속엔 너 뿐이야.”


“나도 널 사랑해. 미영아,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있을거야..


뚫어져라 응시하는 어둠 속에서 미세한 그림자를 보았다. 여성이 남성의 위에 올라 타 서로의 손을 잡고 허리를 흔드는 그림자의 모습을 보았다.


“아, 아...”


움직이는 그림자와 동시에 흘러나오는 남녀의 사랑에 수민의 입이 벌어졌다. 더는 아플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마음에 너무나 큰 고통이 찾아왔다.


남녀가 사랑하는 모습, 하준과 미영이 관계를 나누는 그림자와 그 목소리를 마주한 수민의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으로 가득한 미영의 신음소리가, 서랍 구석에 넣어두었던 과거의 사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모든 과거를 버리는 것처럼 그가 손에 쥐어준 추억의 사진이 수민의 눈앞에 나타났다.


웃으며 뛰어놀고 장난치던 그때의 기억, 그 대상인 하준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현실을 실감하는 순간.. 그제서야 하준이 겪은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데, 있을 수 있었던 장소와 함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능욕하며 쾌락을 추구했다는 어리석음에 대한 죄의 무게를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수민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에 휩싸였다. 이 모든 잘못에서 비롯된 후회가 끝이 될 순 없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소꿉친구의 사랑이 묻은 속삭임과 애절한 신음을 듣는 것 만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는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수민의 몸은 반응할 정도로 망가졌다.


“너를 버린 소꿉친구 따위 잊어버릴 정도로 널 사랑하고 행복하게 할 거야. 약속할게!”


“…으흑…싫…어……하준아……하…준아…”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미영의 애절한 선언을 듣는 순간에도, 수민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원하지도 않는 손짓을 하는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과 섞여드는 쾌락.. 아니, 이것을 쾌락이라 불러야 하는가? 닿지도 못할 소중한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화면 너머에서 보고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쾌락이 느껴진다고?


“…하…준아……미안…해……미…안……”


자신이 망쳐버린 소꿉친구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듣다 흥분하여 스스로 위로하는 지경에 밀려오는 자기혐오와 쾌락 사이에서 수민은 눈물에 젖은 이불을 입에 물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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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