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새오 늒네애오

야심한 밤에 제가 쓴 후회물 소설 하나 투척할꺼애오


여주이름은 대충 피엘이라고 지었는대 남주이름은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 걍 후붕이라고 해써요
재밌게 바주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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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끝까지… 이기적이네요”


내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할때 그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내가 그때라도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이렇게 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라고 생각하곤 한다


정말 야속하게도,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내 가슴 속 깊은곳에 조용히 들어와서 잠복해 있다가, 지금에 다다라서야 나에게 큰 깨달음과 슬픔을 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그의 환한 미소, 찡그린 미간, 애달픈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헤어질 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슬픈 눈망울까지도. 나는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럴 자격도 잃어버렸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요”
 
 내 생각에 대답하듯이, 상상 속의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저와의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제가 순진하게 의심도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일까요”


“당신이 그 사람를 한번만 만나고 오겠다고 했을 때 순순하게 허락했을 때부터 일까요”


“아니면 멍청하게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다 알려줬을 때?”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서 첫키스를 할 때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만...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병신같이 너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즐기던 그 때?”


제발 그만해…


“혹시 애초에… 니가 나를 그 사람과 착각했던 그 첫 만남 부터?”
 
 그만 이제 멈춰!!!!!!
 

“…”


하악...하아...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제발 우리의 추억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제발…”


“부정? 내가 우리의 추억을 부정하고 있다고?”


아...
 
 “잘 생각해봐, 먼저 우리의 추억을 다 부정한게 누구인지”


아아...
 
 “너가!... 너가 먼저 였어!! 도망치려고 하지마… 영원히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란 말이야!!!!”
 
 어느새 상상 속에서 그의 모습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나를 압박 하고 있었다. 나는 어둠에 휩싸여서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떠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
 
 “… 이기적인 년”
 
 번쩍!
 
 하악… 하악…


“오늘도 똑같은 악몽이구나.”


30년전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내 신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후로, 배변활동의 불필요와 더불어 쓸데없이 땀을 흘리는 경우는 없었는데. 항상 이 악몽만 꾸고 나면 내 전신이 식은땀으로 쫄딱 젖어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찝찝한 옷을 갈아입고, 따듯한 물이 담겨있는 욕조에 몸을 푹 담궜다.


따듯한 욕조 안에서 몸이 노곤해질 때 쯤이면, 꼭 그와의 첫 만남이 생각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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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첫만남은 빈 말로라도 평범했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 얼굴을 맞댔을 때에, 나는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고, 그는 공포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살… 살려주세요!”


처음 그를 마주쳤을때 난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분명 25년 전 헤어졌던 전 용사와 똑같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 용사와 비슷하게 아무런 마력이 탐지되지 않는 신체, 그의 목에서 반짝이는 전 용사가 애지중지 하던 정체불명의 목걸이와 똑같이 생긴 목걸이, 그리고… 오직 전 용사에게서만 나던 특유의 체취까지... 하지만 전 용사는 분명히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내가 보았다. 게다가 지금은 벌써 그 이후로 25년이 지난 시점, 인간인 그가 아직도 이렇게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되었다.

결국 내가 이 정체불명의 사람이 인간계로 숨어들어오려는 마족 또는 마물이라는 의심이 싹트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지? 마인? 인큐버스? 도플갱어? 하지만 마족이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게 말이 되나…?”
 
 “아이고 기사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여기저기 유랑 하던 음유시인일 뿐입니다…”


한줌의 마력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신체상태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흔들리는 눈동자, 창백해진 얼굴,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까지, 모든 정황은 그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대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써 악랄한 마족들의 교활한 술수들을 너무나 많이 겪어왔기에, 함부로 그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없었다.


“뭐 상관없지… 일단 따라와라, 좀 더 자세한 조사를 해야겠다. 함부로 반항하거나 수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니 목을 날려버릴테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ㄱ...기사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저는 그냥 평범한 시민일 뿐입니다..."
 
 "시끄럽고 따라오기나 해라"


설령 그가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력 한 톨 탐지되지 않는 신체는 전 용사를 제외하면 처음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내 저택으로 자기가 음유시인이라 주장하는 이 남자를 끌고갔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로 남자를 고문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 남자를 정말 고문하려는건 아니었고, 단지 자백제를 다른 사람이 볼 수 도 있는 지상에서 사용하기에는 꺼려졌기에, 보는 눈 없이 독대할 수 있는 고문실을 선택한 것이었다. 설령 상대가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라 정말 무고한 인간이라고 하면, 자백제를 사용한 것이 비인륜적이라고 충분히 지탄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나에게 잡혀 끌려오면서 계속 이런저런 말을 주워섬겼다.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소환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방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속으로는 더욱 더 혼란에 빠졌다. 분명 전 용사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사실은 극비였고, 용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극소수의 지도계층을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다’ 라는 개념 자체도 생각해내지 못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전 용사와 닮은 신체 특징, 목걸이, 그리고 체취, 게다가 일반인이라면 알지 못하는 차원 이동에 대한 것까지, 내 머릿속은 점점 혼란스러워졌지만, 자백제를 사용하면 어차피 금방 모든 걸 알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애써 침착함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자백제를 사용하고 남자를 심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남자는 음유시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것은 맞았다.


불과 한달 전에 이 남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세상에 떨어졌고, 계속 시내를 구걸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왜 음유시인이라고 거짓말 했냐고 물었더니, 거지 차림으로 하고 다니다가 지나가던 아이들한테 돌팔매질을 당한 뒤로는 겉모습 만이라도 거지꼴로 하고 다니지 않고, 누가 물어보면 음유시인이라고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고.


각설하고, 중요한 점은 그가 다른 세계, 그것도 정황상 전 용사가 있던 세계, 그것도 같은 나라에서 이쪽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것이었다. 일단 이 남자가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었다는건 밝혀졌기에, 자백제에 취한 남자의 정신을 깨운 다음, 자백제의 후유증으로 두통을 호소하는 그를 응접실로 데리고 와 진통 효과가 있는 따듯한 차를 대접하며 오랜 시간동안 자세한 대화를 나누었다. 


……


“그래서, 그 목걸이는 그대의 군인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네, 제가 살던 나라에서는 남자는 2년간 군 복무를 할 의무가 있었고, 저는 군 복무를 하던 도중 갑자기 이 세계로 이동되었습니다”
 
“흠 과연… 그럼 그때 후돌이 가지고 다니던 목걸이도...”

"..."


“그나저나 그… 아가씨께서ㄴ…”
 
 “ㅇ… 아가씨? 풉, 푸하하하”


“아니, 그...”


“이런 미안하군, 아가씨라고 불릴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말이야 아하하하”


“그… 이런 큰 저택에 사셔서 저는 당연히 고위 귀족분 이신줄 알았습니다…”


“아하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나는 좀 특이케이스라서 말이야, 귀족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신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 굳이 따지자면 공작 정도의 직위라고나 할까?”
 
“아 그나저나 서로 통성명도 하지 못했군, 나는 플레티넘급 모험가이자 전 용사 파티의 일원이었던 피엘이라고 한다.”


“아, 예, 저는 후붕이라고 합니다, 김후붕. 그래서 아까 물어보려던것이… 피엘님은 분명 전 용사님… 그러니까 후돌씨와 함께 다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또 전 용사님은 분명 25년전에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셨다고…”


“아아 그대가 뭘 궁금해 하는지 알겠군, 어떻게 이렇게 젊을 수 있냐 그거지?, 나도 참, 돌아와서 변신 마법을 푸는 것을 깜빡했군”


“예?”


무슨 소리인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는 후붕을 뒤로하고, 나는 팔찌를 벗으며 말했다.


“나는 사실 인간이 아니야, 엘프지 그리고 이게… 내 진짜 모습이고, 의도치 않게 가짜 모습으로 그대를 속여서 미안하네”
 
 “아…”
 
 내가 팔찌를 풀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자, 후붕이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때 당시에는 처음 보는 마법이 신기했나, 또는 볼이 붉은 것을 보니 자백제의 후유증때문에 몸이 아직 불편한가 생각했던 나지만, 그 모습이 후붕이가 나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사실임을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후붕이는 자연스럽게 내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다른 세계에서 영문도 모른 채 넘어와 길바닥에서 구걸을 해가며 살았다는 후붕의 이야기에 연민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특이한 인간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내가 전 용사파티로써 책임지고 보살피며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내 내면에는 다른 음습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후붕이가 내 첫사랑이었던 전 용사, 후돌이와 똑 닮은 칠흑같은 눈동자 그리고 머리카락을 가졌다는게 그 첫번째 이유이고,

후붕이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낸다는 명목 하에, 후붕이의 원래 세계와 어떤 방식이던 연락이 닿는다면 후돌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막역한 기대감이 두번째 이유였다.


그렇게 후붕과 같이 보낸 시간은 꽤나, 아니 사실 많이 즐거웠다. 비록 전 용사였던 후돌과는 달리 그는 검술에 재능이 하나도 없었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고등교육까지 다 받았다는 그의 말처럼 금방 일을 배워서는 내 업무를 도와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다들 내가 전 용사 파티의 맴버였다는 사실과 내 직위를 보고 불편해 하는데 반해, 끝까지 존댓말을 하면서도 나를 스스럼 없이 편하게 대해주는 후붕과 대화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게다가 다들 나를 강하고 당찬 영웅으로 취급하지만 후돌과 지낼때면 항상 나를 여자로써 바라봐주고 사소한 부분에서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이 좋았다.


...아니


사실은 다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 자신을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행동이지만, 그때의 나는 후붕이에게 전 용사, 후돌이를 겹쳐 보고 있었다. 내 첫사랑이자 전 용사였던 후돌이는, 정말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용사 파티로 활동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개인사를 말하는 법이 없었으며, 휴식 시간이나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도 불필요한 얘기를 완전히 차단하고는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있곤 했다. 그가 유일하게 감정을 내비치는 때는 가끔 그가 그의 목걸이-후붕의 말로는 군번줄이라 부른다고 한다-를 볼 때 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돌이는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연애마저도 말이다.

마왕을 물리치고, 후돌이가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면서, 결국 내 첫사랑은 절벽에서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는 공허한 외침처럼, 대답 없는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어떠한 설렘과 풋풋함 마저도 없이, 혼자서 그렇게 첫사랑을 끝내야만 했었다.


그랬기에 나는, 후돌이와 닮았으면서도 훨씬 더 다정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후붕이에게, 후돌이를 투영시켜서 연애감정을 느끼려고 했던 것 같다. 후붕이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게 아닌, 후붕이의 뒤에있는 후돌이과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붕이는 사실 은연중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후붕이는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그만큼 사랑했기에 믿고, 배려하며 기다려 준 것이었다.그때의 나는 후붕이의 배려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데이트를 할 때 가끔 후붕이의 눈동자에 서글픈 눈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무의식중에 애써 모른척 하기 바빴다.

그때라도 내 잘못을 알아챘으면 좋았을 텐데, 무의식중에 커져만 가는 죄책감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역설적이게도 더욱더 뻔뻔해져 갔고, 후붕이를 데리고서 후돌이와의 추억의 장소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지 딱 1년이 되던 날,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나무들을 스쳐 지나가며 물소리를 내는 그 아름다운 들판에서, 후붕이는 나와, 나는 후돌이와 첫키스를 했다.

그 장소는 내가 처음으로 후돌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본 장소였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자신의 군번줄을 보며 눈물 흘리는 후돌이를 보며 나는 첫사랑에 빠졌고.

키스를 하며 사랑을 속삭이던 내 눈동자에 다른사람이 비치는 것을 확신하게 된 후붕이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 날 이후였던 것 같다, 후붕이의 애정표현에 감정이 실려있지 않고, 나 몰래 미친듯이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후붕이라는 껍데기를 씌운 후돌이와의 연애에 빠져 후붕이의 상태는 하나도 알아채지 못한채 또다시 1년이 흘러갔다.


그렇게 후붕이와 내가 같이 살게 된지도 어언 2년이 넘어가던 때에, 우리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겼다.


“피엘, 당신이 찾던 후돌씨의 행방을 알아낸 것 같아요”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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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편 https://arca.live/b/regrets/99207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