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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월 전쟁이 끝나고, 용사가 아닌 황제가 되어 자신의 영토인 엘디나로 돌아갔다.


용사 시절의 위업과 더불어 인류에게 초월적인 멸망을 선사한 훗날 마왕으로 불리는 초월자에게 최후를 가한 자로 칭송 받으며 정당한 황제로 추대되었고,


그렇게 왕도 엘디나에서 엘디나 제국을 건국했다.


그란달 황제의 재임 초기에는 좋았다.


초월 전쟁의 여파로 여전히 세상은 어지러웠다. 온갖 천재지변과 혼란한 세상을 틈 탄 도적떼, 아인들의 봉기, 그리고 타 차원의 초월자들이 보낸 괴물(하수인)들.


대 혼란속에서 그란달 황제는 자신의 백성들을 훌륭히 지켜냈고, 용사 시절의 초월자에게 배운 갖은 마법으로 영토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옆에 가장 최측근이며 친가족과 다름 없는 앤이 있었다.


...그렇다 원래는 2명이었어야 할, 형제와도 같았던 람셀은 초월 전쟁에서 그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그란달에게 넘기고 장렬히 산화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란달 황제는 초월 전쟁에서 겪은 상실의 고통으로 자신의 제국민들 보살폈다.


황궁에 틀어박혀 여타 황제들과 달리, 그는 자주 행차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귀를 귀울이며 국정을 운영했고,


용사 시절에 무수히 치뤘던 괴물 토벌에도 일가견이 있어, 영지로 처들어오는 괴물들을 사냥하는 등 빠르게 치안을 안정시켰다.


그란달 황제의 통치에 엘디나 제국은 폭발적인 성장으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란 희망과 달리.


엘디나 제국의 성장에 아라카산 제국을 통치하는 알루이드 황제가 가장 빨리 반응을 보였다.



.........




《 아를렌 평원, 왕도 케리안에서 약 30km 떨어진 드 넓은 평야 》




「 여어- 그란달 황제. 그간 잘 지내셨나? 」



「 뿌득... 」




알루이드 황제의 특유에 거들먹거리는 태도와 표정으로 그란달에게 미소를 보내자, 그란달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 초월 전쟁 이후으로 오랜만이야 안 그래?...... 허허허 표정이 볼 만하군? 그렇게 인상을 구겨서야 황제 체면이 어디 가겠어? 뭐 다 망해가는 제국이지만 말이야.  」



「 ..... 」



「...쯧 반응이 영 시원치 않군.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 정돈 괜찮잖아? 」



「 으득.... 입 닥쳐 알루이드. 」



「 흐흐흐흐. 좋군.. 아주 좋아. 이렇게 보니까 옛날에 정의로운 용사님이 아니라 황제를 보는 것 같아서 좋은 걸? 하지만 무늬만 황제인 모양이야. 역시 속 알맹이는 철 없는 용사님이군. 그러니까 이 꼴이 나지. 쯧쯧쯧...」




알루이드 황제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원정군 대장, 에노르비트가 예하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려 돌격 준비를 시작한다.



도합 7만의 군대가 넓은 평원에서 거대한 진영을 움직이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동안, 상대편에 있는 그란달 황제의 군대는 고작 해봐야 3천명이 고작이었다.



제국의 최후라고 할 수 있는 수도 앞까지 왔음에도 이렇게 초라한 병력으로 남은 것은 대부분 사기를 잃고 도망간 농민군을 제외한 그란달 황제의 친위군만 남은 상황.



아라카산 제국의 공세가 시작될려고 하자, 장군들은 그란달 황제를 퇴각을 독려했다.




「 그란달 폐하, 이 병력으론 야전에서 붙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



「 폐하, 훗날을 도모하시옵소서. 속히 퇴각을-! 」



「「「「 폐하--! 」」」」



하지만 장군들의 부탁에도 그란달은 미동하지 않은 채 가증스로운 알루이드 황제를 보며 이를 갈았다.




「 그... 그란.. 달... 」




그란달이 분노로 현명한 판단을 잃고 있었을 때, 가느다란 앤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히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 60 후반의 고령인 그녀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았다. 몸에는 화살이 적어도 여러 군대가 꽂혔고, 깊고 자잘한 자상도 많았기에 상처로 인한 고통이 몰려와 정신마저 오락가락했다. 그나마 강인한 정신력 덕분에 이 상처에도 마지막 한 가닥의 정신줄을 부여 잡아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 대단할 지경이다.


그란달은 상처와 흙투성이로 더러워진 친누나도 같은 앤의 모습에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 앤... 」



「 ....그..란.ㄷ .....여기...서 목숨.. 버릴... 아니야....마지막... 무대는... 이곳이...... 」



「 .....전군 퇴각해라..... 」




앤의 간곡한 말에 그란달는 비참함을 삼키며 적이 빤히 보는 앞에서 꼴 사나운 모습으로 전장을 이탈했다.




「 흐흐흐흐. 잘가라 황제 그란달. 아니 시민 그란달. 」




그의 등 뒤에 알루이드 황제의 웃음과 함께.


아라카산 제국은 도망치는 그란달 황제가 있는 잔존 병력을 추격하기 보단 수도를 함락 시키기 위해, 또한 그란달 황제의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리한 추격은 하지 않았다.


적이 집요하게 쫒아오지 않은 까닭에 덕분에 수월히 전장에 벗어나자 잠시 쉴 곳을 찾길 1시간.


이미 아라카산 제국이 한차례 약탈로 잿더미가 된 마을에서 잠시 전열을 추스르기로 했다. 



「 .... 하- 살아남은 병사는 고작 700명 밖에 안되나 」



비참한 몰골로 전열을 수습하며 제국 병참국의 겔러드 장군이 보고 받은 병력 숫자를 보고 어이가 없는 지 헛웃음을 냈다.




「 이 정도면 군대가 아니라 그냥 마적단 수준이군. 」



겔러드 장군은 피로 물든 투구를 벗어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나름 젊은 상급 장교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 장군님. 그란달 폐하께서 소생 작업이 끝났습니다. 앤 대장군님이 깨어나는대로 남부의 레호라트 연방 제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합니다. 」



「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후---우... 」




보고를 듣자 겔러드 장군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란달 황제의 소생 작업이 끝난지 약 30분이 지날 무렵에, 지붕 뚫린 단칸방에서 낡고 헤진 천조각을 이불 삼아 뉘었던 앤의 눈이 뜨였다.




「 여... 여긴 어디지? 」



분명 자기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아를렌 평원이 아닌 갑자기 웬 폐가에 있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앤의 인기척이 들리자 방문이 열리며 그란달과 몇 명의 장군이 함께 들어왔다.




「 그란달 폐하.. 그리고 너희들..... 아... 그렇구나, 우리 졌구.... 응? 」




앤은 들어온 그란달과 장군들의 몰골과 지금 상황을 연결하며 곧바로 자신들이 도망쳐 왔다는 걸 바로 인지했다. 그 순간 그녀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 뭐지... 분명히 나 부상이 심했을 텐데... 지금 하나도 안아파. 뭐지? 」




화살만 수 군대가 박히고 여러 자상으로 피투성이였던 자신이었다. 근데 잠깐 정신을 잃고 일어나니 그 어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고통 뿐만 아니라.. 감각 자체가...




「 겔러드. 분명 도망치느라 바빴을 텐데, 남은 의약품이라도 있었어? 」



「 아.... 그게... 」



「「「 어- 흠! 흐음... 」」」



그 영민하기로 소문난 겔러드 장군이 자신의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할 뿐더러 다른 장군들도 미묘한 반응이 더불어 자신 몸에 이상현상으로 날카로워진 그녀의 신경이 더 크게 자극됐다.




「 겔러드! 말 똑바로 못해?! 지금 나만 두고 놀리는건가? 아니면 단체로 정신이라도 나간거야!」




앤의 분노에 겔러드는 그란달 황제의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아..아.. 그..그게 말입니다. 폐하께서 마법으로 치료를... 」



「 뭐? 폐하께서? 이 새끼가 진짜--!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릴-! 폐하는 치휴 마법을 배운 적이 없....! 」



겔러드 장군의 되도 안되는 변명을 바로 간파한 앤이 벌떡 일어나 겔러드를 한대 칠 것처럼 보이자, 그란달이 앤의 말을 가로챘다.




「 내가 널 리치로 만들었다. 」



「 ....? 」



그란달의 말에 모든 장군들은 일제히 고갤 숙이며 눈을 감았다.




「 어....? 대체 그게 무... 무슨... 아... 아~ 분위기가 안 좋아서 농담하신거죠? 하.. 하하!」



「 ..... 」




앤의 공허한 웃음 소리이가 방에 가득 채웠다.




「 하하!.. 하... 하하.. 저 이제 다 웃었어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해요 폐하. 」 



「 미안하다. 」



「 아니야... 아닐거야... 아니라고----!!!!! 」



그란달의 말이 진실이라고 깨닫자 앤은 그란달의 멱살을 잡으며 원망과 슬픈 표정이 섞인 얼굴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노려봤다.




「 아니라고 말해! 아니라고 말하라고!! 리치? 리치?!! 폐ㅎ... 아니 그란달! 너 미쳤어?! 미쳤냐고-! 」



「「 대- 대장군! 」



「 누가 좀 말려! 」



앤이 그란달의 멱살을 잡자 장군들이 그녀를 말리며 떼놓으려고 했으나 예상 밖으로 앤의 강한 힘에 오히려 장군들이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나가 떨어진 장군들도, 그리고 뿌리쳤던 앤도 모두 놀랐다.



그녀도 비록 그란달 황제보단 못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소유자였다. 하지만 지금 보여준 힘보다 훨씬 웃도는 힘에 장군들도, 그리고 그 힘을 체감한 앤도 놀란 것이었다.


리치.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니며 흑마법 계열에서도 가장 최상위 마법으로 불리며 리치가 된 자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특히 리치가 되면 본래 시절보다 더 강한 힘을 부여받으나, 그 이상의 내적 성장은 멈춰지게 된다. 



「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너를 살릴려면. 」



「 날 살리겠다고... 날 리치로 만들어?! 그게 너와 함께 했던 동료이자, 누나에게 할 소리야! 어디 말 좀 해봐 이자식아!! 」




리치. 언데드. 서대륙은 빛의 신 아덴이 주요 종교로 자리 잡아, 빛을 숭상하기에 흉물로 천대 받는다. 앤은 종교는 믿지 않지만 자기의 동의도 없이 리치로 만들었다는 그란달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죽음을 피하고자 리치로 만들다니.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삶을 더 연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그녀는 죽기 직전에 이제 이 고된 육신을 놓아놓고 편히 죽어 더 이상 삶에 고통을 벗어나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근데 이런 꼴이라니....




「 당연하잖아. 앤... 누나는 잊은거야? 람셀이 죽기전에 부탁했던 유언을? 좋은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나라를.... 우리가 어릴 적 고아원에서 맹세했던 꿈들을?? 대체 누난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




앤의 말에 오히려 그란달은 그녀가 저런 말을 했다는 자체에서 의문과 당연시하는 말로 그녀를 몰아붙쳤다.




「 그렇다고 그게 정당하다는 소리야? 」



「 정당이고 나발이고, 그게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지? 이미 우리에겐 개인의 삶 따윈 없어. 우린 오직 우리가 맹세했던 그 일념 하나로 왔잖아. 그래서 그 무수히 쌓아올린 시체 위에서도 지금껏 살아온거 아니야?! 용사 시절 때도. 초월 전쟁 때도. 지금도! 모진 핍박을 받았던 고아원 시절, 벌써 까먹었어?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희생했던 사람들도?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은 내 불쌍한 동생도? 」



「 ....... 」



「 우린 그 빌어먹을 약속으로 이딴 삶을 끝까지 살아왔어. 근데 이제와서 포기하겠다고? 그건 내가 용납 못해. 난 계속 나아갈거다. 늘 실패만 하는 멍청한 그란달이 오늘도 이런 비참한 꼴로 오늘도 실패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난 다시 일어났고, 지금도 그럴거야. 하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선, 앤. 너가 필요해. 」




그란달 본인의 인생이 담긴 호소에 앤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남이었다면 개소리라고 치부했겠지만 저 말에는 앤 본인도 함께 걸어왔다. 저걸 부정하는건 그녀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


그리고 다시 기억난다. 초월 전쟁에서... 죽을 것을 알았기에 눈물이 쏟아지고 온 몸이 덜덜 떨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뤄달라고 불타는 열정에 심장을 맡긴 불쌍한 내 동생의 모습도.




「 자, 여기 라이프베슬.. 잘 간직해둬. 」




그녀가 침묵을 일관하며 결국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에 그란달은 그녀의 정수가 담긴 라이프베슬을 건네주자 그녀는 담담히 받아들었다.




「 .... 넌 씨발 진짜 개새끼야. 이제부턴 너와 절연이야. 날 누나라고 생각하지도 마. 나도 이젠 너같은 동생 없어. 」



「 .... 알아 나도. 」




그란달과 앤의 다툼이 끝나자 이미 출발 준비 채비를 마친 일행은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누군가는 멀어져 가는 엘디나 영토에 대한 슬픔을.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에 원통함을.





‘ .....오늘도 난 실패했다. 왤까.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지?.... 알루이드가 말한 것 처럼... 황제는 그래선 안된다는 건가.... 열성적인 감성과 뜨거운 심장이 아닌... ’


‘ 그래 그렇군. 승리를 위해선. 성공을 위해선. 그럴 수 밖에 없단건가. 황제는 차가운 지성과 냉철한 이성으로. 알루이드, 기다려라.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이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서, 난 더욱 떠오를테다...! ’




누군가는 실패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반성과 식어가는 심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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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과거 내용인데 그냥 통채로 몇 줄에 날릴까 하다가, 그래도 업보 타임을 무성의하게 넘기는건 좀 아닌거 같아서

그냥 스토리로 넣음.


진짜 생각보다 진도 너무 안나가네....;;





개 쓸대없는 설정(황제/제국 정리)


- 故 에렉시우스, 패왕, 前 레호라트 제국 → 現 레호라트 연방 제국

- 크마누스, 독사, 드라코니아 제국

- 故 오로네, 차가운 겨울, 前 페리리트 제국 → 미정

- 무타베, 붉은 황제, 사에만르 제국

- 알루이드, 철왕관, 아라카산 제국

- 그란달, 용사, 엘디나 제국

- 나이모스, 세계수 → 금관화, 前 아인 연합 세력 → 자연-아인 연합(이후 자연과 아인이 분열)

- 나머진 ㅁ?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