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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냈다.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함께하며 웃고 떠들던 사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바다에서 놀기도 하며 밤 하늘 아래 웃으며 미래를 꿈꾸던 사이.


학교에 들어가 배우고 성장하며 이성의 눈을 떴을 때부터, 수민은 하준을 향해 호감을 드러냈다.


장난을 칠때마다 재미있게 받아주는 그가 좋았고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거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한 달전에 온 전학생 우성을 만나고부터 수민의 믿음은 바뀌었다.


소꿉친구인 하준과 달리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처음 느끼는 설레임과 흥분이 수민을 흔들었다. 하준과 다른 남자의 육체미를 자랑하며 젠틀한 우성이라는 남자의 존재감에 십수년간의 소꿉친구는 사라지고 말았다.


머뭇거리며 당황하던 하준의 모습에서 느끼던 즐거움은 사라지고 우성과 함께하는 시간의 두근거림에서 비롯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교를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우성과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신 그날, 첫경험을 했다. 비록, 그때 하준이 때 늦은 고백을 했지만, 수민에겐 닿지 않았다.


그리고..


“안준아, 제발 진정하렴. 우리가 수민이를 잘못키웠어!”


“안준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다. 하준이 치료비는 우리가 낼테니..”


“아줌마, 아저씨도 참 고생이 많으시네. 안 그러냐 수민아?”


안준의 통보 이후, 수민의 부모가 기겁을 하며 딸을 대신해 하준 일가에게 사과를 했다.

법적분쟁에서 안준이 이길 확률은 모르지만 그가 가진 자료들을 인터넷에다 뿌리기라도 한다면, 수민의 인생은 끝 없는 나락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어, 엄마랑 아빠 뭐하는 거야! 왜 우리가 치료비를 내야하는데?! 왜 그러고 있어?! 하준이가 그렇게 된건 자기가 원..”


“그 입 다물어!”


그것을 두려워한 부모의 필사적인 호소를 보며 미소짓는 안준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 수민이 격분하며 소리를 치는 순간, 그녀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뺨을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해 아빠, 아파...”


“몹쓸 년... 내가 널 그리 키웠냐? 남자친구가 생긴 건 그렇다 치자, 근데 왜 소꿉친구인 하준이한테 이런 짓을 한 거냐?! 대체 넌 소꿉친구를 이렇게 망가뜨려서 뭘 얻으려고 했던 거냐?!”


“여, 여보! 진정해!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할..”


“하준이를 보라고! 저게 어디 사람한테 할 짓이야?!”


수민의 아버지가 호통과 함께 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어머니가 막아보려 하였으나 밀려오는 죄책감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편을 막지 못했다.


이를 마주한 하준의 부모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차라리 뻔뻔하기라도 했다면 욕설이라도 퍼부었을텐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이웃이며 정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사실, 이번 일에 부모의 잘못이 무엇이겠는가?


“엄마, 아빠. 이야기 끝났으니까 가자.”


한 여성의 일탈을 부추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딸을 믿고 지지하고 후원해준 죄 밖에 없다. 아니, 이것을 죄라고 칭해야 하는가? 안준이 한숨과 함께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 하준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기며 부모와 함께 수민의 집을 떠났다.


그 날, 수민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자신이 키운 건 인간 쓰레기였다며 가슴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도, 아무것도 못한 채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시간에 이르는 폭행 끝에, 수민은 방에 감금당하고 학교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애초부터 학교는 대충 다니게 되었던 상황이었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수민에게 유일한 희망이라곤 우성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 일간 오가던 우성은 연락은 끊겼다. 아니, 수민을 차단했다.


“…우성아…우성아…읽어 줘…제발…”


혼자의 방에 감금당해 빛을 잃어버린 수민은 차단 당한 우성에게 간절히 메세지를 보내기만 하며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폐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진정한 악몽은 그때부터였으니 안준의 조언을 들은 부모의 손에 끌려 나가 도착한 병원에서 수민은 상상하지도 못한 소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거 고약한 상황이네요…매독과…에이즈입니다.”


“…네?”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끝을 모르는 성욕은 감당할 수 없는 계산서로 돌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탐하였던 육욕에서 청결 따윈 없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매독보다 더 끔찍한 에이즈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이야기였다.


그 결과를 들은 수민의 부모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이 되었다. 만약, 안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딸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극심한 고통 속에 죽었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당분간 치료에 집중하자, 대학은 그 뒤에 해도 돼. 그리고, 우성이란 놈이랑은 다시 만나지 마.”


“…이건 말도 안 돼, 에이즈라고?! 아니야! 난 건강해! 우성이도 괜찮다고 했단 말야!”


“우성이란 놈이 의사보다 정확하다고 말하는 거냐?!”


어머니의 말에 반발하는 수민의 목소리는 아버지의 호통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수민은 대학과 미래의 꿈을 꾸기도 전에 집에 틀어박혀 방탕함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좆만도 못한 창녀새끼. 그럴 줄 알았다.”


그 소식에 안준이 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박장대소하였다. 그렇게 문란한 것들이 청결이나 건강에 신경을 쓸 리 없고 방치했다가 불쌍한 이웃집에 초상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조언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당첨이 되었다.


너무나 웃길 노릇이었다. 성관계의 본질이 잉태에 있음을 망각하고 따라오는 성욕으로 착각하는 것들이 마주하는 결말 중의 하나에 걸린 것이다.


“…만약 그때, 수민이랑 정말로 섹스를 했다면..”


“넌 씨발, 한 번하고 매독이랑 에이즈 걸린 병신새끼 되는거지.”


“이걸 웃어야 해…?”


“그럼 울래?”


며칠이 지나 소식을 들은 하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형의 뒤를 따라 시작한 잡일은 고통스러웠고 쉬운 것 하나 없었지만 우습게도 그떄의 굴욕적인 과거는 지워졌다.


복용하는 우울증 약의 후유증 따윈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달리고 있지만, 일이 끝날 때마다 들어오는 돈을 마주할때마다 후련함이 느껴졌다.


“일 년간 나랑 같이 이짓하다 군대 갔다 대학을 가던가 해. 그때면 너 아는 새끼도 없을테니까.”


“…고마워, 형..”


일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들은 안준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짓게된 하준이었다.

그렇게 안준을 따라 일을 하고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날 무렵, 하준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사람들과 터울 없이 지내며 웃고 떠들고 같이 마시며 지내는 동안, 하준은 미소를 되찾았다. 괴로웠던 과거도 지금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섯 달이 되는 날, 하준은 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하준이가 돌아왔어? 정말?!”


“…그렇다더구나, 아마도 며칠 있다 다시 나간다고 하던데..”


“…이럴 때가 아니잖아! 나 갔다올게!”


한편, 매독과 에이즈의 고통과 약에 씨름하기도 전에 우성의 근황 소식을 발견한 수민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과 함께하던 사진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여성과 함께 있는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나쁜 새끼.. 바람둥인 아니라면서..”


바람둥이도 아니고 자기만 좋아한다 했던 그 남자를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와 흔히 말하던 손절 뿐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다른 여자와의 행복한 모습으로 가득한 사진으로 도배된 우성의 메신저에 수민은 슬픔과 분노 속에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때마다 울부짖다 부모에게 호된 질책과 동정어린 말을 들었지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을 포기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약이나 먹는 쓸모없는 폐품의 삶을 이어가는 사이, 수민의 타고났던 순수함은 사라졌으며 야위고 망가져 갔다.


그런 수민에게 남은 것은 아무 감정도 없었던 옛 과거 뿐이었다.



“…나 지금 노팬티거든? 빨리 달리면 남들에게도 보일지 모르니까 조심해 줘.♡”


“그, 그럼 걸어가는 편이..”


“…풉, 그럴 리 있겠냐? ㅋㅋㅋㅋ.”


“아이 씨, 그런 장난 치지 마!”


자신이 망가뜨린 하준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 선물.”


“하, 하지마!”


“꺄하하! 매미도 마음에 들었나 봐!”


싫어하면서도 받아주는 하준에게 장난을 치며 웃던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과 함께 공원에 와서 뛰어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그러다 체 할지 모르니까 천천히 먹어!”


“우읍, 우걱, 갠차나, 하주니나 자라셔어!”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며 같이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자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소중한 소꿉친구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이제야 알았어, 꼭 사과할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가 잘못한 만큼 하준이한테 잘해줄 거야!”


반년간 하지도 않았던 치장을 하고 문을 나섰다. 얼굴에 담긴 우울을 지우기 위해 화장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하준의 집 문앞으로 달려갔다.



하준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꼭 너에게 용서받을 거야.


하준아..

저지른 잘못 만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야.


하준아..

다시는 외롭지 않게 꽉 안아줄 거야!


“하준아!”


“…수민이?”


그러나 수민이 도착한 하준의 집 문앞에서 마주한 것은 하준과 그의 형 안준, 그리고..


“하준아, 저 사람은 누구..?”


하준의 손을 잡고 있는 모르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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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마도 이번 건 상중하가 아니라 조금 늘어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