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죽는다는 게 게임오버 됐다가 아바타 다시 만드는 꼴이라 기억은 언제나 그대로임


하계인은 영혼에 각인될 정도로 강한 의지가 있다면 전생기억의 일부를 각성하는 게 가능함


여신 후순이가 어떤 이유로 죽게됐어


그 과정에서 후붕이랑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약속했어


후붕이는 정말로 후순이와의 약속만 떠올리며 평생 다른 여자를 만나지도 않다가 갔어


후순이는 하필 후붕이가 늙어서 죽은 직후에 환생해버렸어


한동안 후붕이랑 타이밍이 엇갈렸다는 생각에 우울했지만 다시 만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렸지


후붕이는 위대한 영웅으로 찬양받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후순이와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했어


근데 이걸 망치려 드는 사람은 꼭 있지


바람둥이 후돌이가 그런 사람이었어


재미삼아서 후순이를 꼬셔보려 했지


1차적으로는 후순이한테 그냥 접근하려 했었는데 가드가 너무 단단했던지라 방법을 바꿨어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공략하기로 했던 거지


이렇게 했더니 정말로 후순이가 틈을 보이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후돌이가 점점 더 과감하게 후순이를 유혹했지


결국 흔들린 후순이는 후붕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잠시만 어울리는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어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붕이가 돌아왔다는 거였어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다음 후순이가 현재 하계에 있다는 말만 듣고 만나러 간 후붕이가 본 건 다른 남자랑 썸을 타는 후순이였어


하계인들 입장에서 소중한 약속이 신들한테는 잠깐의 유희일 수 있다거나 시간이 꽤 지났으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지


한편 후순이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놀랐어


자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후붕이랑 눈이 마주쳤거든


후순이는 그대로 뇌정지가 왔어


그래서 뒤를 돌아 도망치는 후붕이를 그냥 놓쳐버렸지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 후돌이를 쳐낸 다음 찾으러 가지만 안보였어



한편 후붕이는 도망치다가 전생의 인연 중 하나인 엘프 후진이랑 마주쳤어


장수종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젊은 여자의 모습이었지


울고있는 후붕이한테 자세한 얘기를 들은 후진이는 화가 나면서도 기뻤어


후진이도 후붕이를 좋아했는데 후순이 때문에 후붕이가 죽을 때까지 손도 못댔거든


그런 후붕이를 배신한 후순이한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리던 자기한테도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기뻤어


어린 육체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축을 잃어서인지 후붕이는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후진이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다가 기절했어


후진이는 그걸 자기 집으로 데려갔지


시간이 흐르고


후순이는 후붕이가 도망친 이후로 미친 사람처럼 후붕이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마침내 찾아냈어


후진이와 손을 잡고 행복한 모습을 한 채 돌아다니는 후붕이를


저 자리가 원래 내 자리였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후순이는 그걸 행동으로 옮길 정도로 뻔뻔하진 못했어


대신에 후붕이가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리고 이번 생의 기억을 각성하지 못한다면 자기가 데려가겠다는 생각을 했지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거랑 별개로 가끔 후붕이랑 후진이의 데이트를 보거나 그 둘을 닮은 하프엘프가 돌아다니는 걸 보면 피눈물을 흘렸어


하지만 후순이의 계획이 이뤄질 일은 없었지


후붕이가 죽건 후순이가 죽건,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건 못하건 그 둘은 서로가 운명의 상대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만나서 이어졌어


그 꼴을 보며 후순이가 과거에 있었던 순간의 실수를 후회해도 이제 와서 달라질 건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