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처럼 수많은 신이 있는 세계. 둥글지 않고 평평한 그런 세계.

그런 세계에서 모종의 이유로 신의 자리를 내려놓은 태양신과 그 자리를 인계받은 인간 후붕이가 보고 싶다.

태양신이라는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지만 인간이었다는 출신성분 하나 때문에 대다수의 신들과 하계 인간들에게 업신여김 받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똑같이 자신을 좋게 보지 않는 태양신의 신마 두 마리에게 귀리와 당근을 챙겨주고 가끔 각설탕도 주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갈기도 부드럽게 빗어주고 하루씩 교대제로 마차를 끌게하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돌봐주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그 지극정성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며, 툭하면 채찍질하고 밥도 제대로 안챙겨주던 전대 태양신보다 현 태양신인 후붕이를 더 좋아하게 된 두 말들이 보고 싶다.

인간 출신인거 하나 때문에 공물도 조금밖에 바쳐지지 않는 후붕이를 보고 안타깝게 여긴 최고신이 자신의 공물 일부를 나눠주고 격려해주는 그런게 보고 싶다.

그 특별대우를 보고 더욱 후붕이를 싫어하게 되는 신들이 보고 싶다.

자신의 신자들과 무녀들에게 신탁 내려 태양신 후붕이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트리게 하는 신들이 보고 싶다.

태양신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후붕이에게 불만사항을 담아 똑바로 하라고 기도하는 풍습이 하계에 퍼지는 것이 보고 싶다.

하늘에 닿은 기도 아닌 기도들이 마차를 모는 후붕이에게 매일매일 전해지지만 아직 신으로서 미숙한 후붕이는 어떻게 계시를 내리는지도 몰라서 그 기도들대로 똑바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보고 싶다.

사람마다 바라는게 전부 다르다보니 평소보다 높게 날면 너무 춥다고, 낮게 날면 너무 덥다고, 평소대로의 높이로 날면 변한것도 없고 발전이 없다고 계속 올라오는 기도에 피폐해지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자신들을 돌봐주는 후붕이의 표정과 안색이 영 좋지 않자 오히려 역으로 후붕이를 격려해주고 감사를 표하는 말들이 보고 싶다.

다른 신들의 업신여김과 간접적인 괴롭힘, 그리고 뭘 하든 욕만 먹게되자 최고신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후붕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있는 최고신은 그에게 사흘 정도의 짧은 휴가를 주며 잠시 쉬다 오라고 명령을 내리며, 그와 동시에 그를 업신여겼던 신들을 불러 엄하게 꾸짖는게 보고 싶다.

사흘동안 태양신의 궁전에서 정적을 즐기는 후붕이와 그의 근처에서 응석부리며 애정을 드러내는 두 말들이 보고 싶다.

그 동안 후붕이 때문에 질책을 당했다고 생각한 신들이 앙심을 품고 또다시 신자들에게 신탁을 내리는게 보고 싶다.

태양이 뜨지 않아 깜깜한 낮에 당황한 인간들에게 신탁이 내려오고, 그것 때문에 후붕이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일을 내팽개치고 쉬러간 후붕이 때문에 세상이 깜깜해졌다'라는 헛소문이 하계에 널리 퍼지는게 보고 싶다.

뒤늦게 최고신이 자신의 무녀들에게 '이 암흑은 자신이 태양신에게 휴가를 주었기에 깜깜해진 것이며, 3일 동안 하계의 모두에게 휴식을 즐기라' 는 신탁을 내리지만 이미 늦어버린게 보고 싶다.

최고신의 무녀들이 이 사실을 전해도, 헛소문을 무마시키려 하는 수작으로밖엔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그걸 믿지 않는게 보고 싶다.


3일간의 휴식을 즐기며 두 말들과의 사이가 돈독해진 후붕이가 다시 마차를 몰고 세상을 밝혔을 때, 그에 대한 걱정 대신, 일 똑바로 안하냐는 질책의 기도와 이따구로 할거면 신 때려치우라는 그런 기도들이 닿는게 보고 싶다.

하계에서 올라온 그런 기도들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져 눈물을 흘리고 소리내어 울며 마차를 모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마차를 몰고 돌아오자마자 최고신을 찾아가 신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말하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하계를 뒤져서 겨우 찾아낸 태양신의 재목이었는데 몇 년도 안되어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당황한 최고신이 어떻게든 후붕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고 싶다.

그런 최고신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받아온 기도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읊으며 "이런 기도를 매일매일 받아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노력을 알아보기는 커녕 근거없는 소문으로 음해만 받았다.", "난 처음부터 태양신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한낱 인간이었을 뿐이니, 자신에게 맞는 위치로 돌아가려는 것 뿐이다." 라고 자신의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주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후붕이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최고신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신들을 모두 소집하는 것이 모고 싶다.

신탁을 통해 후붕이를 음해했던 신들을 질책하며, 이에 대해 대신할 인간을 다시 뽑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항변하는 신들에게 하계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태양신의 재목이 후붕이 한 명 뿐이었음을 말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상기시켜주는 최고신이 보고 싶다.

태양신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붕이가 두 태양신의 신마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자신은 이제 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갔으니 둘다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하는게 보고 싶다.

그 말에 눈물을 흘리며 반드시 당신 곁으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주인은 앞으로도 쭉 당신 뿐일거다. 라고 답해주는 신마들이 보고 싶다.

후붕이가 태양신의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 그 누구도 태양신의 마차를 끌지 못하는게 보고 싶다.

후붕이를 음해했던 다른 신들이 어떻게든 몰아보려 해도, 증오와 분노로 노려보며 반항하는 신마들을 길들이지 못하는게 보고 싶다.

그 날 이후로 세상에 낮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고 싶다.

달빛과 별빛, 그리고 횃불에만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게 된 인간들이 신들에게 기도를 해보지만 태양신의 빛이 되돌아오지 않는게 보고 싶다.

어두워진 하계에서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동물 또한 제대로 크지 못하는 대재앙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다.

암흑천지의 세계에서 괴로워하는 인간들에게 최고신의 무녀들이 신탁을 전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인간들이 저지른 오만함으로 인해 태양은 영원히 뜨지 않을 것'이라는 신탁을 전해들은 인간들이 그제서야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을 보고 싶다.

하계의 인간들로부터 바쳐지는 공물이 심각하게 줄어버리자 황급히 다른 태양신의 재목을 찾아보거나 자신이 직접 신마들을 몰아보려고 하는 신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하지만 태양신의 재능을 지닌 인간은 한명도 없어 찾지 못하고 신마들도 마구 날뛰어서 실패하는 것이 보고 싶다.

아무도 몰 수 없게 된 신마들의 마굿간에 최고신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고 싶다.

후붕이가 이렇게 망가질 동안, 최고신이라는 작자가 대체 뭘하고 있었냐고 쏘아붙이며 적의를 드러내는 신마들과 말들을 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최고신이 보고 싶다.

이후 신마들의 마굿간에서 다시 나오며, 자신 또한 실패했고 말들이 진정되기까지 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최고신과 그 말에 동의하는 신들이 보고 싶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마굿간에 다시 가본 신들이 태양신의 두 신마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을 목격하고 당황하는 것이 보고 싶다.

말들이 있을만한 곳을 전부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고, 태양을 되돌려놓을 방법이 완전히 사라져 망연자실한 신들에게 이번 일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후붕이를 음해하지 않고 그의 노력을 인정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거라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는 최고신이 보고 싶다.

자신들의 괴롭힘이 부메랑이 되어 이렇게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신들이 후회하지만 태양신이었던 후붕이도, 태양신의 신마들도 사라진 이 사태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 보고 싶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하계에 내려온 후붕이가 최고신의 마지막 배려로 어떤 인간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육지에서 떨어진 외딴 섬에 살게 되는 것이 보고 싶다.

나름대로 아늑한 오두막집 한채와 끝없이 보이는 수평선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게 과연 배려가 맞나 의심하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오두막집 안을 둘러보던 후붕이의 귓가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게 보고 싶다.

경계하며 천천히 문을 열자 황금빛 금발의 두 여인이 활짝 웃으며 후붕이에게 달려들어 껴안는게 보고 싶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파악하지 못한 후붕이에게, "우리들을 못알아보는거예요? 좀 많이 서운한데요 주인님?" 이라고 말하는 두 여인이 보고 싶다.

두 명의 정체가 신마들이었다는 걸 알고 당황한 후붕이에게, 최고신의 도움으로 말의 모습을 벗고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하는 전(前) 신마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전(前) 신마들로부터, 최고신의 마지막 말을 전해듣는 후붕이가 보고 싶다.

'태양신으로서의 권능은 여전히 너에게 있다.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겠다. 너를 좋아하는 두 신마. 피로이스와 에오우스를 보내줄테니 천계와 하계의 일은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라.' 라는  배려와 속죄의 마음이 담긴 최고신의 전언을 들은 후붕이가 팔을 뻗어 자신을 껴안은 두 전(前) 신마들을 안아주는 모습이 보고 싶다.


태양이 사라져 어두워진 세상에서 고통과 절망속에 살아가는 인간과 신들과는 관계없이, 황금빛 머리카락의 두 아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전(前) 태양신 후붕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리스 신화 읽다가 갑자기 번뜩여서 쓰게 된 소재긴 한데.. 일단 이것도 후회물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