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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허감.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


잠의 마법소녀 닉스는 철이 들어갈 무렵부터 공허했다.


첫 번째 공허는 부친의 부재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법소녀였다. 


어린 나이부터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준비하다 양산형이 되기 직전 운 좋게 B급 마법소녀가 된 마법소녀.


마법소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좋지.


예쁜 옷 입고, 변신하면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급수만 높으면 화려한 마법으로 악인을 무찌르고.


가끔은 활약이 방송되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어머니에 의하면 그녀의 현역 시절은 마치 별세계와도 같았다고 한다.


하급 마인들 한정이지만 게임 속 주인공마냥 악당들을 썰고, 베고, 무찌를 수 있었다. 


B급이었지만 팬도 있었고, 방송에도 나왔다고 했다.


양산형 마법소녀가 되었다면 그런 호사는 누리지 못했겠지.


네가 없었다면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 거야.


그 한 마디와 함께 닉스의 어머니는 그녀를 폭행했다.


닉스의 어머니는 운이 좋았지만 운이 없었다.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인 출몰지에서 하필이면 악의 제국의 황족, 그것도 황제를 만나고 말았다.


S급 마법소녀 여럿이 모여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악의 제국 귀족이었다. 


가장 강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악의 제국.


악의 제국의 정점에 오른 남자 앞에서 고작 B급 마법소녀였던 닉스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네년은 인간 치고 아름답구나. 너를 취할 테니 영광으로 알거라.」


부탁도 명령도 아닌 통보.


B급 마법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황제에게 범해진 마법소녀는 악의 제국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


악의 제국 황제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


알려지면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마법소녀 협회는 그 사실을 은폐했다.


닉스의 어머니는 어디에도 감금당해 실험쥐 취급 받았고, 그녀를 낳은 후 마법소녀를 그만 두었다. 


악의 제국인과 마법소녀의 혼혈.


태생 덕에 닉스는 선천적으로 마력량이 많았고,


마법소녀 협회는 그녀를 마법소녀 후보로 올려 두고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지하 시설에 가두어 키웠다.


단 둘이 있던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7년에서 8년 정도.


그래도 닉스는 어머니와 함께 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위의 이야기와 애정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친 손길.


마법소녀 협회가 사라진 지금 닉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악의 제국 황족들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닉스를 맡아 키웠던 얀붕 정도였다. 


자신을 만든 아버지를 죽이고 악의 제국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악의 제국 혼혈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증오했던 인간들에게 비참한 삶을 선사하고 싶었다.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 대신 애정울 주었던 얀붕을 배신하는 것은 쉬웠다.


어차피 그도 인간인데.


어차피 그도 자신을 미워하게 될 텐데.


오래 인연을 이어가 보았자 뭐하겠는가?


얀붕을 제외한 관리자를 전부 죽였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마법소녀들도 전부 죽였다.


마지막으로 얀붕은 오른팔을 잘라 직접 황제에게 바쳤다.


그 덕분에 악의 제국 황제에게 공을 인정받아 황녀 직위를 얻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인류가 점령당하기 전 얻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손에 넣었다. 


힘, 지위, 인정.


하지만 그녀의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동료였던 다현과 세은이 눈 앞에서 사라져서?


아니면 가족다운 가족이 없어서?


“얀붕 관리자님...”


아름다울 뿐 공허한 방에 얀붕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똑, 똑, 똑.


“황녀 전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아바마마께서...?”


닉스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래. 아직 이 사람이 있었다. 


악의 제국의 황녀로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잠의 저주 마법을 써 왔던가. 


얀붕이 준 마법과 황제가 준 마법.


그녀는 그 마법들의 결정체로 1년 만에 악의 제국 황제를 시한부 환자로 만들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 자가 죽고... 황제 선거에서 이긴다면 황제가 될 수 있어... 그럼 더 이상 공허하지 않을 거야...’


닉스는 호위 기사를 따라 황제의 침실로 갔다. 


다음 날 악의 제국 황제의 부고가 전 지구에 퍼졌다. 


□□□□□


 감금 30일차.


“얀붕 관리자님!”


“왜 그래, 시 브리즈?”


“악의 제국 황제가 죽었대요!”


“뭐?”


얀붕은 들고 있던 농구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토옹, 통. 


바닥에 떨어진 농구공이 몇 번 튀어오르다 데구르르 굴러갔다.


가장 죽이고 싶었던 자가 죽었다. 


하지만 얀붕은 기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숨을 끊어 놓고 싶은 상대가 죽어 버렸다. 


그의 죽음은 잠을 자듯 고요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어...!”


얀붕은 이를 악물었다. 


겨우 잡을 듯 말 듯 했던 행복이 갑자기 저 멀리 가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잠들 듯이 죽었다. 혹시 한 마법소녀가 떠오르지 않나요?”


타락 마법소녀, 시 브리즈는 절망하는 얀붕에게 한 가지 단서를 던져 주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가 행복해하지 않는 것은 싫다. 


“설마, 여울이가?”


“배신당했으면서 잘도 이름을 불러 주시네요. 부러워라.”


타락 마법소녀는 질투심이 담긴 눈으로 얀붕을 바라보았다. 


“그 방법밖에 없겠다.”


닉스의 과거사를 알고 있는 그는 그녀를 절망시킬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방법인데요?”


“그녀가 악의 제국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능력을 빼앗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