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루루루루루루.


길게 울리는 전화음.


뭔가를 하고 있는 걸까.


-달칵.


-"응. 미안 자기. 나 좀 늦을 거 같아. 먼저자."


들려오는 잡다한 소음들이 많았다.


애써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답한다.


"... 아하. 알았어."


오늘도 너는 늦는다.


너랑 나랑 만난지도,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결혼까지는 아니었고, 동거였다.


나는 인기 없는 3류.

너는 인기 있는 1류.


요즘 너는 무언가가 변했다.


나에게 너가 하는 작품에 관해서 그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는다.


분명, 같이 시작하고자 해서 하게 된 연기고, 그렇게 서로 만나게 되었던 건데.


너는 나를, 이제는 들러리로 여기는 듯 했다.


마치 나는 여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 그렇지. 나는 삼류. 그 애는 일류."


나같은 삼류와 같이 지내다 보면, 그 아이에게도 좋지 못할지 모른다.


주변에서 모두 그녀가 나에게 아깝다고 말한다. 자주 그런다.


"..... 내가, 짐인건가."


있는 듯 마는 듯 지내는 그러한 관계는 아니었다.


애초에, 아니니까 서로를 사랑하고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거였겠지.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던 걸까.


애초에 중요했다면, 내가 이렇게 혼자 남겨지는 시간이 많았을까.


..... 이런 고민은 의미가 없다. 쓸데가 없으니까.


그녀는 밖에서 지금도 우리가 생활비의 전반을 벌어오지 않는가.

나는 그녀의 1/3도 안되게 벌어오고 있고.


".... 확실히."


짐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소중하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모르겠다.


그녀가 날 어떻게 보는가.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시간이라는 건 야속하게도 빨리 지나갔다.


밥도 먹고..... 뭐, 오면 반겨줄 생각이었다.


"왔어?"


"응.... 아~ 힘들다."


미약하게나는 술냄새와, 남자의 향수 냄새. 어디서 놀고 왔는 지 안보아도 뻔했다.


".... 그래, 고생 많았어."


나는 그녀의 물건을 받아들고, 흔히 안사람이라 불리는 역할을 내가 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고민을 한다.


"..... 있잖아."


"또 그 얘기야?"


그녀는 내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 말을 막았다.


"됐어. 이야기 하기 싫어."


무슨 이야기인지 아는 듯 했다.


아니, 사실 알 수 밖에.


요즘의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밖에 없으니까.


나는 일이 없으면 최대한 집에서 그녀를 돌보아주고, 그녀는 반대로 일이 있든 없든 밤늦게 들어온다.


".... 알겠어."


그녀가 피곤 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안다.


물론, 나도 회사 생활을 해본 입장으로써, 그녀가 회식 같은 게 많을수도 있고, 업무를 계속 추천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잖은가.


"..."


여러 생각이 겹쳐 밀려들어왔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결국 잠을 청했다.













그녀가 나랑 있는 것이 질린 것일까. 그것은 모르겠다.


그녀는 분명, 나랑 있는 게 즐거워 보였다.


"....."


그러나, 몇년이 지나도, 그녀에게서는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배우지 않은가.


우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고.


그래서, 아마.... 더욱. 로맨틱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더욱 일에 열중했다.


집안일 뿐만이 아니라, 배우 일에도 집중을 했다.


그녀는 웬만해서 저녁을 밖에서 먹고 왔기에, 내가 준비해주는 밥따위,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


".... 됐다...."


반지. 겨우겨우 반지를 하나 살 수 있었다.


비싸진 않더라도, 그렇게 싸지도 않은.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도 준비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불렀다. 우리의 기념일에 맞추어서.


그런데..


-"미안 자기.... 나 못 갈 거 같아..."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은 말.


".... 어, 어?"


-"오늘이 기념일인 건 아는데... 미안... 갑자기 리딩 일정이 잡혀서...."


갑자기 리딩 일정이라니.... 음. 하하.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럴 수 있고 말고.


나는 그녀의 그러한 말에도 최대한 웃어보였지만.


화가 났다.


그럼에도, 난 배우. 그것을 참는 건 가능했다.


"..... 알았어. 나중에 보자."


.... 아.


이제는. 진짜 끝이구나.














그녀는 그 날, 늦긴 했지만 바로 들어왔다.


".... 저기, 오늘 화 많이 났지...?"


"아니야, 괜찮아."


술냄새도, 남자 향수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래. 아마 그녀는 진짜 리딩을 하고 온거겠지. 이전 처럼 친구들과 술을 먹은 게 아니라.


".... 미안, 그래도.... 내일은 내가 살게...! 예약하는데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이제야 주변에서 무언가 틀어진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던 걸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오늘은 진짜 급한 거였다고.


".... 아냐. 지연아 아니야."


".... 어?"


".... 우리 이제 그만하자."


".... 뭐....?"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다.


".... 그만하자고. 우리."


"... 오늘 내가 안나와서 그러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몇차례고. 넌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배우 그만둬도 되겠느냐고.

계속 물었던 사실을.


이미 누구 하나가 관계에서 지쳐간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는 밖을.


나는 집을.


서로가 그래서 그랬던 것이지.


".... 난 싫어...."


"....."


"난 아직도 너를 생각하면서 연기하는데, 왜에...."


물론, 나도 아직 지연이를 생각하면서 연기를 한다.


그녀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감정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


"나도 그래."


"아니, 그럼 더-"


"... 나도 알아, 오늘 일은,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거."


"...."


"하지만 너가 주연으로 뽑힌 일이었고, 너가 원한다면, 그 일을 다른 날로 미룰 수도 있었을거야. 하루 정도."


".............."


서로의 대본이나, 일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것들은 공유하는 사이였던 우리였기에.... 나는 더더욱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일정을 너한테 맞추어줬지만...."


"그만. 그만해."


"너는 아니었잖아."


"이제 그만해!"


그녀는 점점 울기 시작했다.


"내가, 몇번이고 물었지? 내가, 너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


"너는 처음 물었을 때는 대답을 잘 해줬어."


"... 아니야,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여러번 반복 되자, 너는 그걸 피하기 시작했지. 이제 질리고 귀찮다는 듯이."


"......"


주변에서 들려오는 평판을 그녀도 모를리 없었다.


"너는 나에게 일정을 안 맞추어 주는데, 주변에서는 너가 과분하다고 하고, 너는 늘... 남자의 냄새를 묻혀서 오지. 그것도 진하게."


"... 아..."


"..... 의심을 하는 건 아니야. 그랬다면, 지금 너는 오히려 술 먹고 놀고 있었을 테니까."


"........"


"근데, 계속 이런 식이면. 내가 널 의심해서 못 견딜 것만 같아."


".......... 내가 고칠게."


"아니야."


"...내가 고칠 수 있어. 다, 다, 고치면 되잖아."


"이미 늦었어."


"절대 못 헤어져."


"..... 하...."


나는 한숨을 쉬었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옷을 챙겨 나왔다.


"두고 봐..."


그녀의 뒤에서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결말이 다 보이는데.


그녀에게는 아닌걸까.

















"..... 뭐라고요?"


"우리 계열사가 먹히고 있다고...."


"아니 왜 갑자기..."


"몰라, 지금 독과점식으로 C*이 다 먹기 시작했다니까."


"....."


머리가 아파왔다.


두고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하..."


나는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만해."


-"그만 안해."


"... 왜 이러는 건데."


-"난 너 없으면 연기 못해."


"..... 하...."


그런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던 걸까.



















결국, 그녀는 나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계약을 하고, 공개 연애를 하며, 그 연애는 무조건 유지되어야 계약도 유지한다는 조건에.


나는 연기를 하고 싶고, 또 그만두지 않을 것이었기에. 어딜가나 제시하는 그 거지같은 조건에, 나는 맞출 수 밖에 없었다.


"......"


이제 나는 연기를 한다.


사랑을 하는 연기를.


....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모르겠다.














그와 함께 있으면 연기가 잘된다.


그는 내 최고의 뮤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에게 이상한 걸 물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넌 나에게 뮤즈야."


매번. 하는 말.


내게 영감을 주는, 어떻게 사랑을 해야하는 지 알려주었던 남자. 

내게 집에 돌아간다는 게 어떤건지 느끼게 해준 남자.

그 모든게, 그였다.


하지만, 그가 주는 건 따뜻한 감정 뿐이었다. 차가운 감정이 필요한 연기들엔, 날것의 욕망들이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나는 부러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밖에서 다녔다.


스캔들이 나지는 않았다. 연예인들이 가는 곳엘 갔으니까.


그가 주는 영감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연기의 귀감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이렇게 늦을 때면, 그는 전화를 한다.


나혼자 노는 게 조금 미안했다. 그는 늘 밥을 해놓는데.


"응. 미안 자기. 나 좀 늦을 거 같아. 먼저자."


나는 늘 이 말 만을 반복했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항상 같은 걸 묻는다.


그것에 점점 질려오던 나는.


그 대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가 열심히 일을 더받는 모습을 보였다.


"후훗."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가 열심히 일을 받으면, 언제라도, 나랑 같이 연기가 가능하다는 거니까.


그래서 나 또한, 그를 추천할 만한 작품의 리딩을 진행했고.


그를 몇번이고 추천했지만, 떨어졌다.


"...쳇...."


그리고 그런 추천을 한 만큼, 그들은 나를 무조건 계속해서 어딘가에 쓰려고 했다.


일정을 미루는 거야, 그의 핑계를 대면 가능했지만 그가 나의 약점으로 잡히는 것 자체를 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에 맞추어서 행동하는 것도피했다.


그래서 그랬는데.


그가 날 떠났다.


".... 안돼...."


역시, 그가 없다면 연기의 몰입과 집중이 되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를 잡을 방법을 찾았다.


그를 어떻게해서든 잡아서, 이곳에 묶었다.


나에게 묶어두었다.


....그가 나를 상대로 연기를 한다는 게 많이 느껴졌다.


.... 그가 준비했던 것들이, 떠나고 난 이후 그가 쓰던 물건들을 뒤지며 발견했을 때 얼마나 울었던가.


"...."


나도 못가진다면,


아무도 못가진다.


.... 설령 그게. 평생 그의 진심을 못보는 일이 된다고 하여도.


그래도 좋으니까.


제발, 그 사랑의 감정만 내게 줘.

떠나지만 말아줘.


내가 이렇게 빌게.


알아채줘 제발.

























그녀의 그런 바램이 무색하게, 그의 연기라는 이름의 가면을 부수는 날은, 평생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