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regrets/95362420


 [3]

 시후가 없어진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그의 길드는 발칵 뒤집혔다.

 

 “일에 지쳤다고만 적혀있고, 그 외엔 딱히 아무것도…….”

 

 곤란하다는 듯 상황을 설명하는 팀장급 한 명의 말을 듣고 나서, 장기출장에서 막 돌아온 김렛의 길드장, 윤설아는 맘 같아선 자리에 있는 인원들의 엉덩이를 모조리 걷어차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그녀는 곤란했다.

 

 그냥 곤란한 게 아니라 매우, 굉장히, 엄청나게.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전력상 그의 지분은 길드의 2할…… 실은 그마저도 길드라는 조직의 면을 펴기 위한 변명이고, 실제 그의 역할은 대략 5할 정도.

 

 이쯤 되면 길드가 아니라 사실상 원맨팀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느닷없이 퇴사하다니, 인사팀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애초에 어떻게 사표가 반려되지 않은 것인가. 소식이 곧바로 자기 귀에 들어오지 않은 건가.

 

 추궁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사표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이미 없어져 있었다’는 무의미한 대답뿐.

 

 ‘이런 식으로 사직이라니, 절대 인정 못 해.’

 

 사태를 알자마자 윤설아는 메세지며 카톡, 메일, 전화 등을 총동원했으나 어느 것 하나 수신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너무 혹독하게 굴린 걸까.’

 

 확실히 길드 내 그의 업무량은 지난 몇 년간 1위에 달한다.

 

 몬스터의 희귀 부산물을 통한 수익도 1위. 따라서 기여도도 1위. 여기부터 저기까지,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1위.

 

 ‘길드장으로서 좀 더 신경 썼어야 했어….’

 

 자신의 실책을 뼈저리게 깨닫고 반성해보지만 ‘이미 늦었다’라는 불길한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그런 와중에,

 

 “에이, 길드장님도 엄살은.”

 

 “고작 한 명이 빠진 걸로 별일 있겠어요?”

 

 “맞아요. 길드는 지금도 잘만 굴러가고 있다구요.” 하고 태연작약한 소릴 하는 반시후파 인원들에게,

 

 ─쨍그랑!

 

 그녀는 홧김에 커피가 담긴 컵을 던지고 말았다.

 

 커피색 얼룩이 바닥과 벽지를 물들이고, 회의실 분위기는 가일층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카데미 출신들.’

 

 길드 내 엘리트주의의 주동자들.

 

 그리고 시후를 내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것들.

 

 저 녀석들을 묵인한 것도 컸다. 

 

 ‘모조리 뿌리 뽑았어야 했나.’

 

 그녀는 자책했다. 내가 너무 물렀다, 사람을 다루는 게 물렀다, 고.

 

 시후는 자신이 데려와 손수 키운 인재. 그 은혜를 갚겠거니 해서 신경을 꺼둔 거였는데.

 

 길드 랭킹과 수입, 업계에서의 명성…….

 

 은혜라면 충분히 갚고도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할수록 이후의 행동방침은 더욱 명확해졌다.

 

 ‘어떻게든 다시 데려와야 해.’

 

 그의 은퇴 소식은 아직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알려진다면 업계에서 그를 가만 놔둘 리가 없다.

 

 한국, 아니, 한국을 넘어 외국 유수의 길드까지 그를 회유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할 것이다.

 

 자신의 길드는 강하지만, 그가 없이는 최강이 아니다.

 

 뺏길 게 뻔하다.

 

 그날, 김렛의 간부급들에겐 길드장 직통의 지령이 내려졌다.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동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시후를 찾아내라는, 양립하기 까다로운 조건의 지령이었다.

 

 ***

 

 ─뚜루루루.

 

 ─뚜루루루.

 

 ─삑.

 

 “여보세요?”

 

 한편,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조직에는 스파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밀이 세간에 풀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

 ─띵동.

 

 대답이 없다. 

 

 세경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고, 외시경에 눈을 대보아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 너머에선 그의 마력이 분명 느껴지는데도.

 

 진전이 없는 상황.

 

 그때 나선 건 반하민이었다. “에잇, 비켜봐!” 하고 나선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성큼성큼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띵동.

 

 ─쾅쾅쾅.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고, 외시경을 들여다봤다.

 

 “……세경 씨가 아까 한 거랑 똑같지 않나요?”

 

 효리의 물음에 하민은 멋쩍게 문에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던 세경은 애써 침착한 척,

 

 “외출이라도 했겠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하고 말했다. 평소 팀원들에게 지시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갈 거면 가. 난 여기 남을 테니까.”

 

 하민은 팔짱을 끼고 문 옆에 기댔다. 이하동문이라는 듯, 효리는 선물이 담긴 비닐봉투 손잡이를 꼬옥 쥐었다.

 

 의견 충돌. 그러나 두 사람보다 상급자인 세경은 말 없이 이를 악물 뿐이었다.

 

 사실, 세 사람이 한날한시에 시후의 집 앞에서 모인 것은 약속을 잡아서가 아닌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의 주소를 알아낸 건 저마다의 정보 수집을 통해서였고, 서로의 모습을 본 셋은 겉으로는 살갑게 인사를 나눴어도, 속으론 ‘저것들이 왜 여기 있지?’ 하는 의문과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협력 관계가 아니었다. 회사에서라면 몰라도 하민과 효리가 세경의 말을 따를 의무는 없는 것이었다.


 ***


 그녀들이 현관문 앞에 무작정 버티고 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못 참아.”


 가장 먼저 참을성이 한계에 달한 것은 하민이었다. 그녀는 에에잇, 하는 기합과 함께 문을 부술 기세로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찰칵.

 

 “어?”

 

 힘을 줄 것도 없이, 문은 너무나도 맥없이 열렸다.

 

 처음부터 잠겨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세경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이거 무단침입 아니야?”


 그 말에 하민은 문고리에서 손을 떼며 격하게 부정했다.

 

 “아, 아니거든? 아직 들어가진 않았잖아! ……어어, 류효리 너 뭐해!”

 

 그렇게 한참 두 사람이 당황스러워하는 사이에.

 

 ─끼익.

 

 효리가 선수를 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계세요?”라고 말하며 현관으로 올라서던 효리는, 곧 퀴퀴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집안.

 

 용인종의 동공이 세로로 수축하며 빠르게 어둠에 익숙해지자, 곧 집안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난장판이었다. 주소를 잘못 찾은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발 디딜 틈만 남기고 공간을 차지한 쓰레기더미와, 음식물쓰레기 특유의 썩은내.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님들에 놀란 바퀴벌레가 샤샤샥, 가구 뒤 틈으로 기어들어갔다.

 

 숨을 죽인 채 뒤따라 들어온 세경과 하민은 그 광경을 보고,

 

 ─꺄악!!!

 

 비명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거실 한 가운데 깔려있던 이불더미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뭐냐 너희들?”

 

 산발머리에 수엽이 덥수룩한, 꼬질꼬질한 야인이 튀어나왔다.

 

 ***

 

 여성진은 분담해서 작업을 처리하기로 했다.

 

 효리는 쌓인 설거지를 처리한 뒤 텅 빈 냉장고를 채웠다.

 

 반하민은 땀에 절은 이부자리며 쓰레기들을 치웠고, 백세경은 시후를 화장실로 데려가 녹슨 면도기 날을 새로 갈고 손수 면도를 해주었다.

 

 “가만있어요. 다칠지도 모르니까.”

 

 세수를 시키고 보니 이번엔 부스스한 머리가 거슬렸다. 머리를 감길 겸 등목이라도 시킬까 하여 “잠시 만세 해보세요.” 세경은 시후의 웃도리를 벗겼고.

 

 “……세상에, 어쩜 좋아.” 근육이 빠져 앙상해진 갈비뼈와 배를 보고 탄식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시후의 홀쭉해진 볼을 쓰다듬었다.


 ***


 목욕탕에 붙들려 간 시후가 멀끔해진 모습으로 나왔을 때, 집안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뒤.

 

 심지어 거실엔 상다리가 휘어지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집주인이 밥상 앞에 멀뚱멀뚱 서 있자, 류효리가 쭈뼛쭈뼛,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장 봐온 게 있어서 잠시 부엌을 빌렸어요.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그 말에 윤시후는 일단 자리에 앉으면서도 자문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세 명의 여자한테서, 그것도 고용된 가정부 같은 게 아니라 미인 A급 헌터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부양받고 있다.

 

 시후는 얼떨떨하게 수저를 들었다.

 

 [5]

 시후가 수저를 든 모습을 바라보며 세경은 생각했다.

 

 ‘길드로 되돌리면 안 돼.’

 

 이이는 어릴 적부터 헌터계에 몸을 담아, 몬스터와의 싸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


 ‘그는 분명 길드 내에서의 알력 행사에 지친 걸 거야.’

 

 그녀는 다짐했다. 백양 사 장녀로서의 힘을 이용해 그를 지켜 보이겠노라고.


 ‘언젠가 다시 기운을 되찾을 때까지는.’

 

 그때까지는 용돈을 달라면 용돈을 준다.


 집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해준다.


 필요하면, 손수 목욕까지도…….


 ‘시후 씨가 밥을 다 먹으면 그때 얘기하자. 내 계획에 관해서, 천천히 차라도 마시면서.’


 그녀의 비상한 머릿속에선 이미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줄 계획을 짜고 있었다.

 

 반면, 반하민은 세경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조건 길드로 되돌린다.’

 

 오랜만에 다시 본 시후의 모습은 완전히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실제로가 그렇다. 실루엣이 흐려져 있다고 할까.

 

 눈에서는 이전 같은 총기가 느껴지지 않고, 망가진 생활을 들켰다는 수치심 탓인지 행동거지에 비굴함이 묻어나온다.

 

 그를 길드로 돌려보낸다.

 

 아니, 굳이 길드가 아니어도 좋아. 길드 같은 건 자신이 직접 만들어도 된다.


 어쨌든 다시 헌터 활동을 하게 해서 예전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되돌린다…….


 ‘말 시켰다가 체할라. 밥 다 먹고 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나머지 한 명, 류효리의 경우에는─

 

 ‘…….’


 ‘시후 님께서 내가 만든 밥을 드시고 있어.’


 ‘내가 만든 밥을. 저렇게 허겁지겁.’


 ‘……아아, 가여워라.’


 ‘사랑스러워라.’


 ‘…….’

 

 ‘만약 시후 님께서 길드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이런 생활을 하신다면…….’

 

 ‘……힛.’

 

 ‘히힛……!’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밥을 먹으니까 굳었던 머리가 오랜만에 돌아가네.’

 

 한편, 윤시후는 밥술을 뜨면서 생각했다.

 

 자신을 특히 싫어하던 미녀 삼인조가, 대체 무슨 꿍꿍이로 집까지 찾아온 걸까.

 

 ‘길드에서 된통 깨졌나? 평소에 나를 괴롭힌 게 들통나서?’

 

 …라니, 자의식 과잉이지. 윤시후는 피식 웃었다.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왔지.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나.’

 

 ‘아니지, 얘네들한테 비밀번호가 무슨 소용이야.’

 

 ‘아예 이사를 가야 하나.’

 

 ‘이삿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까. 몸만 나가면 되겠다.’

 

 ‘그나저나 밥은 맛있네.’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

 

 “맛있어.”


 짤막한 칭찬에, 효리는 베시시 웃으며 다른 반찬들을 가리켰다.


 “이, 입맛에 맞으신다면 다행이에요. 이것들도 드셔보세요…….”

 

 ‘이렇게만 보면 참 이쁜데.’

 

 효리도 세경도 그리고 하민도. 앞으로 영영 안 볼 사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예뻐 보였다. 원래도 미인들이긴 하지만.


 ‘여지껏 왜들 그랬니.’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 있는 모두의 생각이 달랐다.

 

 이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그것을 네 사람은 아직 몰랐다. 저마다 다른 생각이 가끔씩 방긋방긋 표정으로 드러날 뿐.


 말이 없어도 화기애애한 지금은, 그야말로 폭풍 전 고요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