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곤살레스로 만들었음


 “의사선생님, 저희 애는 괜찮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반점열입니다. 이 약을 먹고, 이 연고를 몸에 발라주면서 몸을 청결하게 유지시켜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최근의 환자들은 기이한 일 투성이다. 반점열 환자가 늘어났고, 야생동물들의 활동도 심상치않다. 환자가 나가자, 창밖으로 푸드덕하며 까마귀들이 힘차게 날아갔다. 오늘도 포식을 한 것이겠지.


“하아…”


 그래도 공작령에 가까운 이 마을은 괜찮은 편이었다. 반점열의 약재는 구하기 쉬웠고, 다행히도 처치를 빨리 한다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으니. 약재를 정리하고 있자니, 문 바깥에서 마차소리가 들렸다.


“길시 의사선생님 계십니까?”


  문이 열리며 꽤나 괜찮아보이는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마을의 평민들과 다르게 꽤나 깔끔한 옷을 입은 남자였다.


“제가 길시입니다. 누구시죠?”


“저는 대 헬린드 공작가의 집사장을 맡고있는 몸입니다. 길시 선생님의 실력은 공작가에서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제도 출신의 의사가 계시다고…”


“굉장히 부끄럽군요. 그저 일개 의사일뿐입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길시 선생님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함께 성까지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어떤분을 진찰해야하죠?”


“그건… 성까지 같이 동행해주신다면 말씀해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래도 최근 발병하는 반점열의 약은 꽤나 많이 배포되어서 다행이다. 아마도 근처 마을의 급한 환자는 조금 멀겠지만 공작령 근처의 의사에게까지 가보아야겠지.


 나는 외진 가방과 최근 유행하는 반점열의 약재등을 마차의 짐칸에 올렸다. 문앞에는 [외진]이라고 적힌 간판을 세워놓고 마차에 올라탔다.


“정말 감사합니다, 길시 선생님.”


“그래서 이런 외곽까지 오셔서, 저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은 의사를 찾으신다면 공작령 근처에도, 제도에서도 찾으실 수 있으셨을텐데요?”


“이제부터 듣는 일은 모두 비밀에 부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집사장은 잠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오고 마차는 금새 조용해졌다. 고요의 주문이었다.


“최근 에실 영애께서 미상의 질병을 앓고 계십니다.”


“최근 유행하는 반점열이 아닙니까?”


“공작가의 몇몇 사용인들이 그 반점열에 걸렸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피부가 창백해지시고, 오한을 느끼시고, 심한 두통을 호소하십니다. 공작령에서도, 제도에서도 여러 의사를 불러보았으나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단순한 감기나 유행하는 기침병은 아니라는 말이겠지.


“길시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 것도 공작 부인께서 팔방으로 찾아다니신 덕분입니다.”


 공작령 근처의 마을이라고는 해도 나같은 작은 마을의 의사까지 찾아오게 된 것을 보면 정말 간절한 모양이었다. 곧 마차의 덜컹거림이 들리기 시작했고, 주변의 소란이 커졌다. 


“공작령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창밖을 바라보자소란스러운 주민들 사이로 헬린드 성이 높게 서있었다. 저 모습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머리에 찌르는 두통이 느껴져서 살짝 머리를 붙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아니, 분명 저 성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헬린드 성, 헬린드의 광인…


“아.”


 그 때 나의 기억이 아닌듯한, 마치 무언가를 보는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컨트롤러를 쥐고 게임을 하는 나. 그 게임의 이름은,


“신 오브 헬린드.”


    -    -    -    -    -


 신 오브 헬린드. 전생이라고 해야할까, 왜 갑자기 떠오르게 된 것일까. 아니 정확히는 게임을 하던 내가 떠올랐다. 그건 내가 아니지만 나였다. 생생한 기억들이었다. 신 오브 헬린드를 플레이하던 나의 기억이었다.


 신 오브 헬린드. 중소 인디게임팀이 만든 게임이었고, 메트로바니아 형식의 게임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인디게임이었지만 꽤나 준수한 도트그래픽에 노래가 좋아서였다.


 이미 폐허가 된 공작령에 괴물을 잡기위해 여러 모험가가 도전한다는 형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는데, 정확한 스토리는 기억이 안나지만, 마지막에 헬린드 성에서 헬린드의 광인이라는 보스를 잡으면 클리어였다. 그리고 히든 보스가 있었는데…


“도착한 모양입니다… 길시 선생님?”


 그 순간 집사장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하하하… 순간 공작성의 위엄에 압도된 모양입니다.”


 순간 이상한 소리를 하며 얼버무렸다. 집사장도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웃었다.


“하하, 처음 보는 분들은 그러시기도 합니다. 무려 200년의 전통이 있는 성이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들어가시죠.”


 집사장이 손벽을 치자 성의 큰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안뜰과 정원을 지나 가장 큰 건물이 아닌 작은 저택크기의 집에 들어갔다.


“에실 아가씨께서는 이 별채에서 몇몇 사용인들과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 길시 선생님이 한동안 묵으실 방도 이곳으로 준비해두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집사장은 나와 짐을 나누어들고 별관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메이드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단하게 방을 안내받고 당장 필요한 도구만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메이드가 정중하게 고개숙여 인사했다.


“저는 이 별채의 메이드장을 맡고있는 수입니다. 지금부터 아가씨의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수건과 물병을 든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별채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고풍스러운 문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가씨, 들어가겠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가보니 침대위에서 몸부림치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성인이라기에는 조금 어려보이는 외견, 한눈에 봐도 고통스러워보이는 표정과 소리.


“나, 나가…”


“이분은 새로 오신 길시 의사선생님이십니다.과거에는 제도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근무하셨던…”


 메이드장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 베게가 날아왔고 들고있던 물을 살짝 엎질렀다.


“닥쳐! 머리가 지끈거리니까…”


 메이드장은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고 물과 수건을 협탁에 올려놓고 내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한동안 제대로 주무시질 못하셔서 상당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십니다. 조심히 부탁드립니다.”


 익숙하다는듯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 수. 창문의 짙은 색의 커튼은 방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그녀는 조용해진 방 안에서 조금씩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에실 아가씨. 잠시 진찰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원래라면 이런 귀족의 진찰에는 사용인이 한명 붙기 마련이다. 진찰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메이드장인 수조차 진찰에 함께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녀가 이 저택에서 지금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


 그녀는 잠시 몸부림을 멈췄다. 가만히 누워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핏발이 선 팔을 잡고 이윽고 놀랄수밖에 없었다. 차갑다. 사람이 아니라 시체를 만지는 것처럼. 왕진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그녀의 가슴에 대보았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터질듯이 뛰고있었다.


“...기분나빠.”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협탁에 있던 물병을 붙잡았다.


“나가. 너도 아무것도 못하니까, 나가라고.”


 분명 예전의 나였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게임속의 자세한 설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것은 광혈화. 게임 내의 묘사와 일치한다. 신 오브 헬린드의 특징적인 상태이상인 광혈화는 지속적으로 체력을 깎는다. 하지만 그만큼 데미지가 높아지고 공격을 통한 흡혈효과가 생겼다.


 게임내에서는 1단계가 되면 붉은 반점이 났다는 알림이 뜨고, 2단계에서는 춥고 심장이 고동친다고 나왔지. 3단계는 화면이 흑백으로 변했던 기억이 있다. 이 게임의 히든 보스를 클리어하려면 광혈화 상태이상을 3단계까지 들어갔다가 완벽히 치유해야했다. 지속적인 흡혈로 체력을 유지하면서 클리어하는 방식이고, 3단계부터는 체력이 굉장히 빨리 줄었으니까 난이도가 높아졌었다. 


 잠시 기억을 되짚던 나는 찬물을 뒤집어 쓰며 생각에서 벗어났다.


“나가, 아니면 병으로 머리를 깨버리겠어. 으윽…”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병을 들어보려했지만 아까 물을 뿌린 것이 마지막 힘을 짜낸 것이었는지, 이내 병을 땅에 떨어뜨렸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방은 물투성이에 엉망이 된 상태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가씨.”


 광혈화 상태이상은 일정 게이지를 가지고 있었고, 2단계의 완전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진행속도를 되돌려 주는 약이 바로 반점열의 약이었다. 최근 야생동물의 광폭화, 마을에 도는 반점열도 모두 광혈화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팔에 주사를 꽂았다. 붉은 피가 조금씩 주사를 채웠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반점열의 약과 지금 막 뽑아낸 피를 그녀의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신음하다가 입에 들어온 이물에 그녀는 놀라서 뱉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꽉하고 잡았다.


“저를 한번만 믿고, 그대로 삼켜주십시오.”


“...윽…”


 그녀는 비릿한 혈향을 느끼는지 살짝 신음하더니 약을 삼켰다. 이윽고 그녀의 숨이 차분해지더니, 쌔액쌔액 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휴…”


 광혈화에는 흡혈이라는 기믹이 있었으니까, 피를 먹인다.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아마 반점열의 약만 먹는 것보다 즉발적인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얼굴을 뒤덮은 긴 금발을 가지런히 정리하자 그녀의 얼굴에서는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편안함이 보였다. 나는 방의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었다.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떠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방 바깥에는 메이드장 수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는 어떠하십니까?”


“지금은 약을 드시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다만 물이 엎어졌으니, 청소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 환기를 하지 않은듯 하여 창문을 열어두었으니, 청소가 끝날 무렵에 닫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녀는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된 나를 그제서야 눈치챘는지, 다른 메이드를 불러 목욕을 준비해주었다. 목욕을 하면서 생각한 것은, 광혈화의 완전 치료.


“헬린드의 공작…”


 신 오브 헬린드의 배경은 분명 폐허가 된 공작령이다. 아직 공작령은 건재하니 미래의 일이라는 말이겠지. 그리고 보스 헬린드의 광인을 잡고나면 나오는 시조의 눈알. 이걸 부숴야 광혈화의 치료가 이루어지면서 히든 보스인 헬린드의 공작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내용. 잡아야 하는 보스인 헬린드의 광인도, 그가 가지고 있는 시조의 눈알도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헬린드의 공작을 만난다고 하여 일개 의사인 내가 그를 죽일 수 있는지조차도 불분명하다.


“하아…”


 일단은 그녀의 진행도를 늦추며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    -    -    -    -    -


 시끄러워, 나가, 심장이 멈췄으면 좋겠어.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어. 너도, 누구도, 구해줄 수 없으면 죽여줬으면 좋겠어.


‘...실례하겠습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쓴 약, 하지만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비릿한 혈향이 무척이나 달콤하다.


“저를 한번만 믿어주십시오.”


 달콤하고 따뜻해. 앞에 보이는 남자는…


-    -    -    -    -    -    


 다음 날, 아침이 지나고 점심이 되기 전까지 나는 거의 기절하듯 잤다. 여행의 피로도 있었지만, 갑자기 떠오른 기억들이 내 머리에 부하를 준 것이겠지.


- 길시 선생님? 아가씨께서 선생님을 부르십니다.


 문 바깥에서 메이드장 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세수를 하던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옷을 걸쳐입고 그녀의 방문 앞에 섰다. 자고 일어난 머리가 정리되면서 불안한 상상들이 떠올랐다. 어제 그렇게 치료한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면 어쩌지? 사교도나 이단자로 몰리면… 공작령 한가운데에 머리만 효수되겠지…


“하아…”


 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왕진가방과 약을 챙겨서 방을 나섰다.


“아가씨, 길시 선생님이십니다.”


-들여보내.


 그 방문이 열리고 어제의 그 방이 보였다. 여전히 짙은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하지만 오늘 유독 다른 점은 침대에 앉아있는 아가씨. 그녀의 금발은 어제처럼 헝클어져있지 않았고, 무려 유독 하얗던 피부도 혈색을 되찾았다.


“메이드장은 잠시 나가줘.”

 수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표현도 없었다. 아가씨는 붉은색 눈을 내게로 향했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무감정한 눈에 나는 도둑이 제발저리듯 말을 시작했다.


“어제 아가씨를 치료한 길시입니다. 일개 의사가 허락도 없이 아가씨의 몸을 만진점, 의심스러운 치료를 행한 점, 모두 사죄드립니다.”


“아니 괜찮아. 이리 가까이 와봐.”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았다. 살짝 깍지를 껴보고 더 당겨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센지,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 끌려갔고 팔을 붙잡고 내 셔츠를 위로 거뒀다. 팔에는 어제의 주사자국이 남아있었다.


“어제 너가 먹인건, 네 피야?”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치료에 필요한 것이었고…”


“너는 나를 구…”


 그녀는 이윽고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살짝 머뭇거렸고, 다시 당당한 표정을 짓고는 질문했다.


“너는 나를 치료할 수 있는거야?”


 표정은 무표정을 유지하려는 듯 했지만, 소녀같은 눈매와 입에서는 지금까지 고통받은 설움이 흘러넘쳤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네, 아가씨가 저를 믿어주신다면.”


 내 팔에 붉은 자국이 남을정도로 잡고있었는데, 놔줄때에는 간단히 풀어줬다.


“어제 치료에 대해서 설명해.”


“먼저 광혈화라는 질병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공작령 근처에 퍼지고 있는 반점열은 광혈화의 전조증상이라는 것. 광혈화의 적성이 있는 사람은 점점 광혈화의 영향을 받아 흡혈귀에 가깝게 변하며, 없는 사람은 단순한 좀비가 되어버린다는 것. 진행을 늦추려면 반점열의 약을 먹어야한다는 것, 그리고 버티기위해서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시조의 눈알이라는 아티팩트를 부숴야만 모든 광혈화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어디있는데?”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있던 아가씨도 궁금증을 표했다.


“제가 들은 소문으로는 헬린드의 광인이 가지고 있을겁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구나…”


 그녀는 협탁옆에 있는 벨을 들어서 흔들었다. 그 작은 종소리가 메이드장을 불러왔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그리고 시조의 눈알이라는 아티팩트에 대해서 조사해줘.”

“네.”


“그리고 이 의사, 길시와 점심을 먹겠어. 2인분의 점심을 가져와.”


“알겠습니다.”


 메이드장은 아까도 그랬듯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점심 수발이 필요하신 것이라면 제가 아니라 메이드 중 한명을 부르시는게 나으실텐데요?”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야.”


 그건 그렇지. 조용히 납득한 나는 어제보다 아가씨의 상태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왕진 가방에서 간단한 도구를 꺼냈다.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눈의 핏기도 괜찮아졌고, 피부는 아직도 하얗지만 어제처럼 핏발이 서진 않았다. 


 청진기로 그녀의 가슴에 손을 대자 살짝 움츠렸다.


“어제보다 고통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아니면 만지는 것에 대해 고통이 느껴지나요?”


“아니, 괜찮아. 두통도 많이 줄었어.”


 심장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뛰고있었다. 팔을 잡아보니 차갑지만, 확실히 열기가 느껴졌다.


“다행이네요. 만약 아프기 시작한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아마 피를 섭취하셔야 할텐데, 제 피를 섭취하시는 것이 가장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 않으실테니까요.”


“응.”


 그런 간단한 검진이 끝나고 메이드장이 가져온 점심을 먹고 나는 다시 피를 채취해서 약과 함께 그녀에게 먹였다. 몇달간 제대로 숙면도 취하지 못하고 고통받았을 그녀를 생각해서 방의 커튼을 치고 나갈 때, 그녀는 편안한 모습으로 살짝 웃음을 띄고 있었다.


-    -    -    -    -


 두통으로 지새운 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앓는 낮. 며칠인지, 아니 몇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번 찾아오시던 어머니도, 어머니가 부른 의사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떠드는 소리는 두통을 심해지게만 한다. 안그래도 아픈데, 쓴 약까지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모두 밀어냈다.


 하지만 저 의사는 자신의 피까지 나에게 먹였다. 실제로 괜찮아지게 도와줬다.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나를 구해줄 사람이다.


-    -    -    -    -


 그렇게 며칠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증세는 호전되었지만, 거꾸로 발작증세는 조금씩 빨라졌다. 3단계로의 진행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


“길, 길시! 길시를 데리고 와!”


“아가씨! 제가 왔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저녁의 약효를 제대로 받지 않았는지 그녀는 발작을 시작했다.


“메이드장은 방을 나가줘요! 문앞에 따듯한 물과 수건만 두고 가주십시오.”


“길시!”


 메이드장은 신속하게 방을 나갔다. 그녀의 침대에 급하게 왕진가방을 내려놓고 주사기를 찾기 시작했다.


“으으으…”


 그녀가 몸부림치자 침대가 흔들렸다. 약은 꺼냈고, 주사기를 꺼내다가 그 일은 일어났다.


“끄으으…”


 몸부림을 치던 그녀가 돌변해서 나를 덮쳤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아가씨와 나는 굴러떨어졌다. 짙은 커튼을 뚫고, 창문 밖에서는 하얀 만월의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하아, 하아…”


 달뜬 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내 내 팔을 모두 붙잡고 나의 목을 물었다. 작은 못을 들이민듯한 고통과 피가 흐르는 느낌보다는 아가씨의 차가운 입안과 미끌한 혀가 느껴졌다.


“츄읍…”


 그녀는 내 생피를 빨고있었다. 피를 빨면 빨수록 그녀의 이성도 돌아왔는지, 손아귀의 힘이 풀렸다. 나는 아까 들고있던 약을 어떻게든 그녀의 입안에 넣었다. 흥분한 숨소리만이 방을 울렸다.


“같이 삼키세요. 피도 괜찮아질때까지 삼키세요.”


 그런 남사스러운 시간이 몇분이나 흘렀을까. 그녀는 내 어깨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붉어진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눈물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들어서 침대로 다시 올려두었다. 문 바깥에 있는 수건과 물을 가지고와서 입 근처에 묻은 그녀의 피를 닦고 말했다.


“많이 힘드셨죠.”


 그 말이 기폭제였을까, 그녀의 눈에서 진주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숨죽여 끅끅대며 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숨죽여 울던 그녀는 어느샌가 내 팔을 당겼다.


“길시, 아직 피가 나.”


 목덜미부근을 만져보니 아직도 피가 흐르고있었다. 그녀는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리와.”


 가까이 가자 그녀가 내 목덜미를 핥았다. 아까처럼 목덜미에 느껴진 매끈한 혀의 감촉에 나는 순간 몸서리를 쳤다.


“아가씨!”


“풋, 장난이야. 이리와. 닦아줄게.”


“제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붕대감아줄게.”


“그것도 제가 혼자서…”


“두번 말하게 하지마.”


 아가씨도 뭔가 하고싶으셨나보다 하면서 나는 결국 침대에 앉아서 왕진가방에서 붕대를 꺼냈다. 셔츠를 풀고 목덜미부근을 보이게 했다.


“...아가씨?”


“...어.”


 어깨부근의 피를 조심스레 닦는 그녀. 붕대를 건네주자 어깨부터 가슴까지 둘둘 말아버렸다. 리본을 묶고는 내 등을 살짝 만졌다.


“됐어.”


 나는 다시 셔츠를 입고 왕진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길시?”


“네, 아가씨.”


“오늘 같이 자주면 안될까?”


“네?”


 잘못 들었나?


“...불안해.”


 다시 발작할까봐 두렵다는 말인가. 나는 방근처의 소파를 그녀의 침대 옆에 두고 협탁을 치웠다.


“제가 오늘밤은 방에 같이 있을테니, 걱정 마십시오.”


“...”


 그녀는 이내 돌아누워서 잠을 청했다. 내 생각이지만 피도 저렇게 먹었으니 아무래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는 약을 먹는 시간마다 주사로 뽑는 피의 양도 두배로 늘려서 처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    -    -    -    -


‘같이 자자는게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발작이 시작되었을때, 이전보다 훨씬 무서웠다. 물에 들어가본적 없던 물고기가 물의 달콤함을 느끼고, 다시 물에서 끌어올려진 감각이었다. 머리를 내리치는 두통, 그리고 식은땀과 함께 전신에 고통이 퍼졌다.


 그 순간 한사람만 생각났다. 길시. 어떻게든 길시를 부르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달콤한 그의 살향이 느껴지고 항상 마시는 익숙한 피맛, 하지만 어느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나서 상황을 이해했을때는 두려웠다. 내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가 이런 나를 두려워해서, 혐오해서 떠날까봐. 하지만 그는 어깨를 내어주고, 약을 먹여주고, 원하는 만큼 먹으라고 했다. 


 나를 침대로 데려다줄때, 광혈화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마음의 두근거림인지 모를 심장박동이 나를 지배했다. 그뒤에 이어진 무엇보다도 따뜻한 한마디가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는 나도 모르게 그의 피를 다시 핥고, 붕대를 감아주다 그의 등을 보고는 손을 놀렸다. 


 하지만 괜찮다. 그는 분명 나를 구해줄 단 한사람이니까. 이런 일로 나를 싫어할리가 없다. 그래서 조금 더 밀어보았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인지 같은 침대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저 소파를 갖고와서는 나보다도 일찍 잠에 들어버렸다.


‘미워.’


-    -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를 반겨준 것은 메이드장이었다. 소파에서 자고있는데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길시 선생님, 아가씨, 공작님께서 오늘 점심을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공작, 아마 누구보다 시조의 눈알에 대해서 알만한 인물이었다. 그를 만나 시조의 눈알을 한시라도 빨리 찾는다면 모든 광혈화를 치료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네.


 아가씨도 그 말을 들었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아가씨, 혹시 공작님은 어떤분이신가요?”


“아버님은…”


 그녀는 살짝 말을 흐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조금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엄격하셔, 내가 이렇게 아프고나서는 한번도 오신적이 없으셨는데 너가 내 증상을 호전시켰다고 들으시고 아마 만나보려고 하시는 것 같아.”


“그렇군요…”


 엄격한 인물이라. 하지만 딸을 낫게 하는데 필요한 물건이라면 찾아주겠지.


“일단 오늘은 반점열 약의 투여량을 늘리죠. 공작님앞에서 흡혈같은 치료를 할 수는 없으니.”


“으응.”


 뒤로 돌아서 약과 주사기를 준비하자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사기를 잡은 손을 붙잡았다.


“저기… 어제처럼 마셔도 될까?”


“예?”


 그녀는 내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아가씨, 흡혈 방식은 치료에 전혀 상관이…”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셔츠를 전부 풀렀다. 어제 자기가 묶어놓은 붕대도 천천히 풀었다. 그게 마치 연인같아서 나는 어색함을 참지못하고 한마디했다.


“...적어도 약은 먼저 입에 넣어주세요.”


“..응”


 그녀는 내 손에서 약을 낚아채고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목덜미에 이빨을 박았다.


“윽…”


 어제보다는 상냥한 고통사이로 차가운 입과 혀.


“츄읍…”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껴안듯이 서있었다.


-    -    -    -    -


 일이 좀 있어서 오랜만에 써서 올림. 지금까지도 가끔 썼는데 올릴만큼 좋아보이질 않아서 썼다 그만두고했다가 후챈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힘내서 써봤어. 다음편도 곧 올릴게. 두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