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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역시나야.

 

오늘도 어딘가 한 켠 짙게 눌어붙은.

 

마치 얼룩 같은 죄책감이 나의 마음에 후회를 불러왔다.

 

 

딱 한 번만 더

 

오빠를 만날 수 있다면.

 

 

“아.”

 

그날은 유난히 날이 서 있던 거 같다.

 

한 방에서 나오는 남성.

 

피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나의 오빠. 후붕.

 

“진짜 구리네.”

 

나는 언제나 오빠에게 비난을 한다.

 

“언제까지 한심하게 그림인가 뭔가 철없는 꿈을 잡고 있는 거야? 오늘도 방구석에서 변태처럼 불 다 꺼놓고 스크린 보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겠네.”

 

오빠는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하루종일 자기 방에 박혀 매일 공부한다.

 

“그거 알아? 너 진짜 한심한 거. 그것도 아주 진짜, 진짜로 한심해. 어서 철드는 게 나을걸? 아니 그 나이 먹고도 그러는 거면 이미 늦은 건가.”

 

입에서 되는대로 내뱉는 폭언.

 

남이 들으면 심하다 싶은 폭언을 스스럼없이 오빠에게 던져댄다.

 

“니 인생 말아먹는 건 자유지만. 그건 네 퀘퀘한 방 안에서 혼자 썩으면서 하면 좋겠어. 그니까 나 있을 때는 되도록 이면 그 구린 낯짝 들고 나오지 말라고.”

 

이기적이지만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풀이다.

 

항상 이렇게 말하고는 너무 심하게 말했나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렇게라도…. 최악의 방법으로라도 스트레스를 안 풀면 정말로 나 자신이 무너져 버릴 것 같으니까.

 

일주일 중 5일이나 있어야 하는 최악의 장소인 학교 때문에.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은 월요일이지.

 

죽어도 가기 싫은 학교 때문에 더 날이 선걸까.

 

 

곧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고 저녁이 차려졌다.

 

오빠도 나와서 식탁에 앉고 식사가 시작된다.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

 

언제나처럼 엄마는 내 학교에서의 생활에 관해 묻는다.

 

순간 움찔했지만. 최대한 침착을 찾아 무덤덤하게 답했다.

 

“응. 뭐 평소대로지.”

 

나는 다행히 대답이 적당하게 나온 것에 안도하며 계란말이를 집었다.

 

“우리 딸이 평소대로라면 최고네.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얼마든지 말하렴.”

 

내 말에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응.”

 

난 감정이 터지지 않도록 짧게 답하였다.

 

하지만 죄송해요. 아빠.

 

평소대로라면 그건 최악이니까요.

 

그래도 진짜 학교생활이 어떤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엄마와 아빠에게 걱정 끼치기도 싫고.

 

무엇보다 오빠가 이런 사실을 모르면 좋겠으니까.

 

“…너는 공부 잘하고 있나.”

 

그리고 오늘은 드물게 아빠가 오빠에게 질문하였다.

 

오빠는 적당하게. 그리고 그저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아빠는 그런 오빠를 나무랐으며 오빠도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아빠와 엄마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편…. 아니 오히려 거치적거린다고 여긴다는 걸 내가 옆에서 봐도 알고 있다.

 

나에게 쏟는 사랑은 오빠에게 전혀 가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오빠는 그런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며 쥐죽은 듯이 박혀서 넘기고만 있다는 것을.

 

나는 그런 오빠의 모습은 조금 싫다.

 

물론 오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보다 제일 쓰레기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오빠에게 실례겠지.

 

“잘 먹었어~”

 

나는 그 자리에 더 있는 건 힘들어서 그렇게 말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주말은 폭풍같이 지나가 버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일주일의 시작이자 가장 싫은 요일.

 

이제부터 학교에서 있을 일들을 생각하면 진짜 죽고 싶어지니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움직여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쳐다보지마 기분 나쁘게.”

 

그만 반사적으로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왔다.

 

뭐 기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나은가.

 

어쩔 수 없이 걷는데 오늘은 웬일로 오빠가 같이 걸었다.

 

“야 더 떨어져서 걸어. 아니 애초에 항상 나 먼저 가고 출발하라고 했잖아. 너랑 같이 걷기 싫다고 몇 번을 말해줘야 이해하겠어?”

 

살짝 진짜로 짜증이 나며 오빠를 쏘아붙였다.

 

긴장을 풀 수 없다.

 

언제 그 녀석들과 만날지 모르니까.

 

가장 볼품없는 모습을 남에게, 그것도 오빠에게 보인다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순 없는 거다.

 

“하아……. 알았어. 미안해.”

 

오빠는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사과했다.

 

역시 오빠도 사람이니까 월요일 아침부터 폭언을 들으면 엄청 짜증이 나겠지.

 

“뭐야 왜 니가 한숨을 쉬고 난리야. 월요일부터 짜증 나게. 집에 있는 것처럼 그냥 박혀있으면 좋을 텐데. 알았어? 누누이 말하지만 절대 학교에서 아는 척도 하지 마.”

 

하지만 이쪽도 물러날 순 없다.

 

진짜로.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안 된다.

 

절대로 마주칠 일이 없도록 당부하면서 오빠에게 짜증을 내었다.

 

그리고 난 먼저 뛰쳐나갔다.

 

그래도 역시 너무한 쓰레기 여동생이네.

 

늘 자기중심적에 아무리 학교에서 마주치기 싫었어도 아침부터는 너무했나.

 

언젠가. 아니 내년이면 반이 바뀌니까….

 

그렇게 돼서 여유를 조금이라도 찾으면 오빠에게 사과할까.

 

뭐…. 이런 폭언을 퍼붓는 최악의 여동생을 용서해줄지가 문제지만.

 

염치없지만 언젠가는 어린 시절의 오빠와의 사이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그렇게 되면 오빠의 그림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어느새 증오스러운 학교에 도착하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내 반에 도착했다.

 

이 순간은 몇 번을 겪어봐도 긴장된다.

 

나는 쿵쾅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내 책상으로 발을 옮겼다.

 

책상은 아니나 다를까 낙서로 가득했다.

 

(언제 죽냐)

 

(잘난 척하는 우등생 극혐)

 

(병X)

 

한눈에 들어오는 큰 글귀만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여러 글씨체와 여러 도구로 쓰인 악담들이 자신의 책상에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역시.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이고 익숙해지지 않네

 

언제나 자신에게 집중되는 인간의 악의는 몇 번을 겪어봐도 힘들다.

 

불합리함과 두려움, 공포, 분노, 자괴감 등등.

 

어둡고 어두운.

 

독하고 끈적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와 심장을 족쇄어오는 느낌.

 

그리고 이렇게 되면 그것이 쌓인다.

 

스트레스.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에서.

 

이런 감정이 든다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로 몸 전체가 터질 것만 같아.

 

“윽…!”

 

거기다가 역한 냄새가 뒤늦게 코를 찔렀다.

 

책상 밑 서랍 공간에 우유가 터져있었다.

 

보아하니 시간이 꽤 된 듯 보이고 지금은 꽤 이른 월요일 아침인 것을 생각해볼 때.

 

이 낙서들과 우유는 금요일 방과 후에 한 짓들이겠지.

 

그리고 그걸 어렴풋이 예상해서 일찍 나온 내 자신도 싫어.

 

그래.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이런 내가 싫어.

 

진짜.

 

정말로.

 

나는 화장실에서 걸레를 가져와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겨우 수업 시작하기 전엔 다 지울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까 의자도 어디 갔는지 없네.

 

“하하하….”

 

그만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그 악의 또한 점점 나를 찔러온다.

 

수업시간도,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언제나.

 

마치 투명인간과 싸우는 것 같은 이 느낌은.

 

항상 음습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공격하고 떨어뜨린다.

 

그리고 익숙하다지만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망할 스트레스는 또 내 안에 쌓여만 간다.

 

원래부터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올라와서 괴롭힘당하는 아이를 보았다.

 

그래서 도와주었다.

 

그런데 괴롭힘의 타겟이 내가 되었다.

 

원래 괴롭힘당하던 아이까지 합세해서 나는 괴롭힘 당했다.

 

그것뿐인 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래도…. 너무 힘들어….

 

괴로워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편할 정도로 나는 지쳐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들킨다는 것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

 

결국, 바보같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그저 소중한 사람 한 명을 상처 입히는 거로 이 스트레스를 푼다는 바보 같은 스토리.

 

그러면서도 속으로 자기혐오와 자괴감으로 고통받는 멍청이.

 

그저 지금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길 빌고 있었다.

 

 

겨우겨우 버티듯이 방과 후가 된다면 나는 잠시나마의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오늘따라 더욱 괴롭힘의 강도가 심했지만 그래도 응.

 

괜찮아 버텼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을 나가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 비….”

 

장마 때를 연상시키는 비 때문에 바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아 어떡하지?

 

분명 비 온다고 들었던 것도 같은데 우산은 안 들고 왔고.

 

엄마한테 연락을 할까?

 

아니야.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가 데리러 오다가 그걸 그 녀석들이 본다면 어찌 될지 상상하기도 싫어.

 

그럼 어떡하지?

 

여기 서 있다가 그 녀석들이랑 만나도 최악인데.

 

역시 맞는 걸 각오하고 뛰어갈 수밖에….

 

“후순아.”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간담이 서늘했지만 이내 나를 부른 목소리가 오빠인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아. 어? 오ㅃ…. 아니 뭐야 너 학교에서 말 걸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하지만 안도할 건 아니었다.

 

이러는 순간에 그 녀석들이 내가 오빠랑 있는걸 볼지 모르니까.

 

나는 오빠를 서둘러 내보내기 위해 폭언을 하려고 준비했다.

 

입을 떼려는 순간 내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다.

 

“어…. 이거…….”

 

이건…. 접이식 우산…?

 

그런.

 

그럴 수가.

 

난 지금부터 또 오빠를 대차게 씹어대려고 했는데?

 

그보다 오빠 그거 우산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

 

항상 싫은 소리만 하는 여동생을 위해 그 하나뿐인 우산을 준다고?

 

어째서야 이런 최악의 여동생은 비 정도 맞아도 상관없잖아.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분명 오빠는 나에게 우산을 양보해줬어.

 

어찌 됐든 간에 고맙다고 하지 않으면….

 

“아…. 그…. 고……. 고…….”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 오빠에게 폭언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해본 적이 없었구나.

 

감사 인사를 어떻게든 하려 쥐어짜 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우물쭈물대는 나를 놔두고 오빠는 가서 고맙다는 말 하나 제대로 못 전했다.

 

“나 진짜 구제 불능의 여동생이구나….”

 

오빠의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래도…!

 

우산을 양보해줄 정도의 정이 오빠에겐 남아있다!

 

아니 그런 것보다.

 

그냥 오빠가 나에게 우산을 건네주었다는 그 사실이.

 

지금은 그저 기뻤다.

 

정말로.

 

아주 많이!

 

지금까지 괴롭힘당해서 올라온 어두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다.

 

진짜로 날아가 버려서 행복이란 감정이 가득 차버렸다!

 

“오빠….”

 

그래.

 

사과하자.

 

지금까지 내가 대했던 오빠에 대한 태도.

 

오빠를 상처 주었던 말들.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과하자.

 

오빠에게 받은 우산, 그 마음이 지금 내 손에 있다.

 

이 우산을 그대로 가져가서 오빠에게 전하자.

 

내 진심을.

 

지금까지의 사과도.

 

지금 처한 내 상황도.

 

오빠에 대한 나의 마음도.

 

전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부 전하겠어.

 

분명 오빠는.

 

오빠라면 받아주겠지.

 

그리고 다시.

 

다시 한번.

 

오빠와 둘이서.

 

어린 시절의 그때로…!

 

오빠.

 

오빠….

 

오빠…!

 

“아 우산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빌릴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에 그 녀석이 와서 내 손의 우산을 낚아챘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