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국 국세 나날이 번창해 가고


이전 삶과 다른 생 살며 좋은 옷 좋은 음식 모든 걸 누리며 살게 되었구려.



이번 생 오라버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좋은 분이시요. 소첩은 이제 거리 돌아다니면 절반 사람들은 알아보는 유명한 연기꾼이 되었소. 내 인기 실력이 대단하여서 모두가 박수를 치더라오. 소첩은 그저 그 광경을 보고 웃었습니다,



아아. 서방. 서방님, 전생의 나의 서방님이 오늘의 달을 보니 더욱 그립소....



김자에 귀남 자를 쓰는 부모 자식 없는 한낱 군밤장수를 남편으로 맞이한 것도 서러운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팔아봤자 돈도 안될 군밤을 아이들에게 무푼으로 나누어주는 꼴이 서러워 서방님에게 못되게 대했습니다.



내가 그리 모질게 대하였는데도 서방님은 그저 저 실력 좋지 않아 저 잘못이라 여기며 홀로 눈물 지었겠지요.



그때, 그것을 깨달았으면 소첩이 정신차리고 그때라도 마누라 노릇해주었어야 했는데. 그때 소첩의 마음은 너무나 상해서 그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남편감이 되지 못한다고 더 모질게 대했으니, 이 소첩이 참 밉겠지요.



내 품에 서방님과 나의 아이를 안아들고, 아이의 눈을 보았을 때,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콩알같은 아이가 눈을 굴리며 이 몸이 지 어미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서방님께서 결국 군밤 팔며 번듯하지는 못하더라도 어엿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서방님 앞에서는 비록 이런 집 말고 양반님네들 기와집 살고 싶다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참 기뻤습니다.


그 날, 마지막으로 서방님이 군밤 팔러가던 떄. 그때 소첩이 서방님에게 무어라 말하였는지...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서방님이 군밤 팔러 가고. 집 연탄구멍에 연탄을 넣고, 서방님 기다리며 아들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소첩과 우리 아이는 육신을 빠져나와 혼의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소첩이 주인집에 세들어 살던 것처럼, 이 낡은 집에서 연탄을 세게 뗴운 것이 화근이겠지요.


이 어미 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저 아이와 함께 마치 곱게 잠든 듯한 소첩과 아이의 몸이 보였습니다.


서방님께서는 우리의 곱게 잠든 듯한 몸을 흔들며 일어나라고 외쳤죠. 그리고는 또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셨습니다.


그게 왜 서방님의 잘못이라는 말입니까. 잘못이라면 연탄 가스가 새나가는 집을 소개해준 업자 잘못이오. 옛 부자 주인집 댁마냥 연탄을 세게 떼운 소첩의 잘못이거늘.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서방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서방님께서는 80이 넘는 세월을, 공군한 군밤장수로 살아가시더군요.





그렇게 80의 세월을, 한낱 필부로 살아가시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흘러보내는데, 소첩은 서방님에게 아무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서방님에게 '팔자 고치게 해준다'하고 군밤값 내고 돌아간 노인이 저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저를 북악산 산신령이라 부르며, '저 자 운명 바꾸는 만큼 처자와 처자 아이의 딱한 운명도 바꾸어 주겠소'라 하시더군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곱게 차려입은 채 막 어미의 품에서 태어난 아기씨가 되었습니다.


나이 먹으며 세상 배우니 제가 알던 세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10살 쯤 자신은 도성의 유력 상인의 딸이고, 지금이 1868년이오. 망국까지는 50년 언저리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랏님이 의회를 세우고, 도로를 정비하고, 청국에 대사를 보내고, 도성에 면암 선생이라는 선비가 데려온 불란서 난민 천명이 신불랑거리인지 무엇인지를 세웠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너무 이상했습니다.


전생서 조선을 지키려 했다고 배운 대원군은 흉참한 이름의 당을 세워 도성 사람들에게 나랏님 위대함과 민의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다녔고, 이 나라가 월남국에 군병을 보내는 등 저가 알던 역사랑은 너무 달랐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을사년, 본래 나라가 망국에 치하던 해. 이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청은 천자가 납시어 공화정을 선언하였고 왜국 또한 그들의 흉참한 본성을 나랏님 덕분에 접어버리고 대신 도덕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소첩은 이 새로운 세상에서 너무나 좋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라버니, 아버지, 어머니. 전부 있는 세상에서 사랑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서방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소첩의 현생 나이도 이제 50이거늘, 분명 이 세상에 소첩이 있는데 서방님이 있을리가 없을진데, 서방님의 얼굴을 아직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소첩이 크게 잘못을 저질러 만나기 싫으신 것이옵니까? 소첩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으시옵니까?



아아, 서방님, 나의 천하시여, 나의 밤장수 서방님, 부디 나를 만나러 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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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존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귀남으로서는-이번 삶의 인물들에게 저절로 저번 생의 인물들을 대입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하늘 거스르고 역천 할때라며, 자신에게 부르짖던 대원군에게는 전생에는 얼굴도 보지 못했던 아비가 생각나었고,


이 전란 속 세상에서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 위선 펼치고 군자를 버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김옥균에게는 전생 일제 시절에는 욱일기 흔들며 대일본 제국 만세를 부르다가, 광복 이후에는 태극기 흔들며 북쪽의 공산당 때려잡는다고 군인에 입대하였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큰형이 보였으며,


나라를 망친 주범이라고 배운 민비. 지금은 그 포착한 전생의 성정을 버려 그럭저럭 마누라 노릇 잘하고 지금 생의 아비인 대원군 하늘로 가기 전 서로의 관계도 원만하게 진전되었던 중전에게는 전생의 저 아내가 보였고,


민비와 자신 사이에 낳은 세자에게는 자신의 아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적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자식과, 새로운 세상의 아내와 아비까지는 왕 노릇, 상전 노릇 할 수 있게끔 만들자고 결심한 것이. 벌써 여기까지 왔다. 저는 한 것이 하나도 없건만 어찌 조선국과 천하 운명이 이렇게 좋은 쪽으로 비틀릴까.(그것이 곧 귀남의 실력이오, 귀남의 성덕이었으나 귀남은 저 자신을 항상 낮게 보았기에. 이 모든 것이 저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던 귀남은 문득 전생 자신 아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북악산 산신령이 자신도 구름재 열살배기 아이 이명복에게 빙의시켜 주었거늘, 저 전생 아내라도 그런 은덕 베풀어 주지 않았을까.



평생 못난 서방 만나 힘들게 살다, 그토록 원하던 집 얻고는 허무하게 가버린 이였다. 귀남은 저 하늘 달빛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 쉬었다. 왜인지 귀뚜라미 소리가 오래오래 울려퍼지는 것이 '지존이라는 게 참 쓸데없는 생각하면서 산다'라면서 저를 꾸짖는 기분이 들었다.




그 밤, 경북궁 뒤뜰에는 조선의 지존이 아닌, 아내 그리워하는 군밤장수 하나만이 걸텨 앉아. 저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전생의 노래인 희망가를 늘어지는 목소리로, 낮게, 하지만 울분이 담긴 목소리로 내불렀다.



군밤장수의 울분찬 노래는 곧이어 도성의 번듯한 거리를 넘고, 거리 넘어가는 전차들과 자전차들 사이를 넘어, 곧 번듯한 기와집에 앉아 남편 그리워하던 여인에게 닫았으니, 그녀는 그저 '옛 생각하니 옛 노래가 떠오르는구나'하며 넘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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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이란 대체역사물에서 참전용사이자 군밤장수 노인인 주인공이 고종에게 빙의한 후 자신한테 모질게 대했던 아내 생각하며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회로돌아서 써봄.

비슷하게 빙의자+빙의자 전생의 후순이로 여러 작품이 가능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