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어머, 무슨 일이니?"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어머니는 저녁식사 준비로 한창이었다.

누나나 어머니나 마주하기 어색한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조금은 더 편했기에.

나는 근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녁식사가 다 되기까지는 아직 좀 남았는데."

"괜찮다면 누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건 어떠니?"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기억이 돌아오는데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구나."


"아,아뇨... 괜찮아요."

"무엇보다 누나는 지금 자고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누나를 대하는게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누나는 아름답고, 평소에 사이가 좋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방금 전과 같은 광경을 목격 하고서도 아무일도 없던 것 처럼 살갑게 대한다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숨긴다고 노력했건만, 결국은 티가 났던걸까?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가스 불을 끈 후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셨다.


"...무슨 일 있니?"

"아직 모든게 낮설지? 이해해..."


어머니는 조심스레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담긴 손길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큰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 의문점이 해소되기 전까지, 여유는 사치에 불과했다.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방금 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저기, 여쭈어 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응? 뭐니? 말해보렴."

"내가 아는 선에서는 모두 대답해줄게. 후훗."


"그... 아까전의 누나... 말인데요."


내 입에서 누나가 거론되자마자 어머니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어머니는 애써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게... 조금 복잡하단다..."

"알고... 싶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채념한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몇달 전, 지원이 너는 갑자기 쓰러졌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리고 너가 쓰러질 때... 누나는 네 바로 곁에 있었단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만 마음에 병을 얻고야 말았어..."


어머니는 조금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모르는 집안의 뒷사정을 알 수 있는 기회.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이후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를 떄 마다, 방금처럼 누나는 저렇게... 스스로를 해치곤 해..."

"누나는 지금 지원이 못지않게 도움이 필요한 상태란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당분간 누나와 함께 지내라고 한거고..."


"그렇... 군요..."


"...미안하구나. 아직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몹시 혼란스러울텐데,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그런 일이 있는줄도 모르고..."

"제가 쓰러졌다니... 걱정만 끼처드린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책하지 마렴.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다."

"엄마는 오히려 기쁜걸. 이렇게 지원이랑 다시금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네?"


"아, 지금쯤이면 다 됐겠다. 위층에서 누나 좀 불러오겠니?"


"ㄴ,네? 네... 알겠습니다."


기분탓일까. 방금 어머니께서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리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처럼, 내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너무 과민한 걸지도 모르기에.


그건 그렇고 누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제서야 누나가 보인 반응이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혈육이, 그것도 자신의 앞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으니...

누나 방문 앞에 도착한 나는 말없이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누나..."


잠시 뒤, 누나는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하지만 누나는 어딘가 불인해 보이는 눈빛을 한 채, 내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 방 안에서 일어났던 난동 때문에 그런거겠지.


"지...지원아. 그러니까 아까전에는 말이야..."

"미...미안해 내가 잠시 이상해졌나봐... 그,그러니까..."


누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어...어어...??"


"내려와. 엄마께서 밥 먹으래."

"난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누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도 잠시.

이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고...고마워... 지원아..."

"미,미안해... 누나가 미안해..."


나는 울먹이는 누나를 대리고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물론 누나를 완전히 맹신하는건 아니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둘 다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사사로운 의심따위 잠시 접어두는것이 좋았다.

둘 다 나의 과거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인 만큼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누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테니 말이다.


"어머, 왔니? 다들 자리에 앉자꾸나."


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어느새 저녁 식사 상차림 준비를 모두 마쳐놓으신 상태였다.

수많은 고기 반찬들을 비롯한 생전 처음 보는 요리들까지. 기름기가 넘치는게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테이블을 꽉 채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이,이렇게까지 준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누나... 원래도 이러셨어?"


"으,으응? 아...아니??"


"오늘은 우리 아들도 돌아온 날이니까 엄마가 조금 힘 좀 써봤단다? 후훗."

"자~ 오늘은 행복한 날이니 다들 즐기자꾸나~!"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와 반찬, 그리고 반합들.

모두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물건들이었다.

뭐, 우리 집 물건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누나는 아까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평소 보여주시던 어두운 표정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지은 채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 둘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것도 아니었고 밥이 잘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요리가 맛이 없는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뭐랄까, 몸에서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나의 이상 현상을 알아 채신건지는 몰라도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으셨다.


"입맛에 안 맞니?"


"네? 아,아뇨? 맛있어요! 맛있죠... 네..."


"...그렇다기엔 줄어든 밥 양이 너무나도 적은걸."

"미안하구나. 엄마가 요리하는게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저기, 엄마?"


누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걸까. 나로써는 이 분위기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미안하구나. 이렇게 밥상을 크게 차려본게 오랜만이란 뜻이었어."

"어쨌거나, 잘 못 먹겠니? 다른 음식이라도 괜찮으면 가져다 줄까?"


"아,아뇨...! 다 먹을 수 있어요! 너무 맛있는데..."


나는 밥을 크게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하지만 거북하기는 여전한 상태.

병원에서 너무나도 오래 있던 탓일까? 아마 아직 소화기관이 집밥에 적응을 하지 못한 듯 싶었다.

결국 나는 밥을 절반도 먹지 못한 채 수저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죄,죄송합니다... 기껏 절 위해서 차려주셨는데..."


"아냐아냐~ 아직 퇴원한지 얼마 안된 상태라는걸 엄마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구나."

"전혀 미안해 할 필요 없단다 아들. 그렇다고 밥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고... 죽이라도 해줄까?"


"아,아뇨아뇨...!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우리 아들이 퇴원했는데, 엄마된 사람으로써 그런것도 못 해줘서야 되겠어?"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렴? 아주 금방 만들어 줄테니까 말이야. 후훗."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시금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아직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을텐데,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불현듯 누나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 지원아..."


"응? 왜 누나...?"


"그,그냥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고... 엄마도 다 좋아서 그러시는거니까..."


"좋아서... 그러시는거라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네가 깨어나기를 엄청 에전부터 손꼽아 기다렸거든."

"엄마도 분명히 즐거우실거야... 네가 무사히 돌아온 것 만으로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니까..."


"아,알겠어 누나... 고마워."


누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내게 웃어보였다.

억지티가 팍팍 나긴 했다만 그래도 그것으로 족했다.

내가 그녀를 대하는게 어색한 만큼 그녀도 나를 대하는게 어색하기 마련일텐데.

누나는 누나 나름대로 최대의 노력을 내게 쏟아붓고 있었다.


비록 기억은 모두 잃어버렸다지만 누나가 내게 보내는 호의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눈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괜한 의심을 한게 아닐까. 비록 석연치 않은 부분이 일부 있긴 하다만, 그래도 이토록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가족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설령 그것이 위선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렴 좋았다. 왠지 마음속으로 이 광경을 계속 바라왔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대로, 누나와 대화를 나누니 과거의 기억이 일부 되살아나는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일부 과장이 섞인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전처럼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처럼 멍한 상태는 아니었으니.

대화에 활색도 돌았겠다, 나는 병원에서 깨어난 이후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들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누나는 몇살이야?"


"어...어어...?"

"스물두 살 이긴 한데... 그것까지 모두 잊어버린거야...?"


"으응... 나도 내 나이 인식표 보고 알았으니까..."

"쨋든 스물 둘이면 대학생이겠네? 누나는 학교 안 가?"


"휴학... 중이니까... 아마 안 가지 않을까?"

"휴학이 뭔 뜻인지는 알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 정도 일까봐?"

"그런데 휴학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그야 너가 쓰러졌으니까..."


"아..."

"미,미안. 내가 괜한걸 또 물어봐서..."


"에,에에? 괜찮은데... 미안할 필요 전혀 없는데..."


사람들간의 거리를 좁히는데는 대화만한게 없다고 했나.

시접잖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나와 누나 사이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기억을 잃기 전에는 얼마나 우애가 깊었을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문득 나의 과거가 몹시 궁금해졌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내 삶, 나의 과거, 나의 근본 등등. 모든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나 자신을 찾는다라. 충분히 흥미있고 흥분 될 만한 소재였으니까.

 

"대단하네... 누나 정말 굉장한 사람이었잖아?"


"ㅁ,뭘 그렇게 까지 말하고 그래... 아니야... 헤헤..."


"그럼 나는? 나는 뭐하던 사람이었어?"


"어,어어? ㄴ...너... 말이야...?"


"응! 나도 누나처럼 학교라던지, 그런거 다녔을거 아니야!"

"저기, 예전의 난 어땠어? 알려줘! 궁금하단 말이야!"


"그,그게... 그러니까... 너는... 그...."

"어...어엄마아?! 지원이 죽 덜 됐어요????"


하지만 어째설까.

누나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화제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조금 전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그 느낌과 동일한 불편함이 드는것은 어째서일까.

그녀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지만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왜? 뭐 말하면 안될거라도 있어? 아님 뭔가를 숨기고 있다거나?"


"ㅁ,뭐어...??"


단순히 농담식으로 찔러보듯 던진 말이었지만, 누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방금 전 까지 나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을 만큼 무서운 인상.

불현듯 그런 누나가 몹시나도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왜 그...래?"

"내가 뭐 잘못 말... 한거야...?"


"...넌 고등학생이었어."


누나는 몹시나도 딱딱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몸이 굳고 경청 하게끔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너는 학교를 가지 않게 된거고."

"...당분간 아마 학교는 가지 못할거야. 아직 복학 절차가 다 완료되지 않았거든."


"뭐어...? 그,그런..."


"누나 말이 맞단다."


"어,엄마...???"


잠자코 누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때, 불현듯 어머니가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깜짝 놀란 내게, 어머니는 특유의 나긋나긋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말해준 것 처럼, 복학 절차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어."

"그래서 말인데. 아마 올해 말까지 우리 지원이는 집에만 있어야 할거야."


"예? 그럼 제 학업은..."


"미안. 우리도 정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봤지만 이게 최선이었단다."

"우리 지원이는 아무런 생각 말고 치료와 회복에 전념하면 돼... 알겠지?"


어느덧 내 옆에 앉으신 어머니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녀의 손길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한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못 간다는 사실 자체는 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것은 어째서 그걸 이제서야 말씀해 주시냐는거였다.


물론 집에 도착한건 오늘이다만, 내가 깨어난것 마저도 오늘인건 아니지 않은가.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내가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 학교를 다니는지 안 다니는지 정도는 이야기 해 줄수도 있었을텐데.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죽을 모두 비운 뒤, 나는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였는지. 대체 무엇을 그토록 꽁꽁 숨겨대며 쉬쉬하는지를.

만약 주변에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궁금한 사람이 찾아 나서야 하는 법.

그리고 그 첫번째 관문은 바로 누나 방 옆에 위치한, 굳게 닫힌 문이었다.


분명 아까 전, 내가 이 방을 언급하자마자 누나가 기겁을 하며 말려댔었지.

누나는 밥을 먹고 있고, 어머니는 설거지 중. 그야말로 혼자만의 탐험을 떠나기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문 손잡이를 향하여 서서히 손을 뻗었다.


"아들? 거기서 뭐하니?"


하지만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대체 언제 올라오신건지는 몰라도 어머니께서 웃으며 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나는 황급히 손을 숨긴 채 시치미를 때며 말했다.


"ㄴ,네? 보시다시피 누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죠...?"


"누나? 누나 방은 왜?"


"졸려... 서요? 누나가 제 방이 없다고 자기 방에서 자라고 했거든요."


"그래? 그런데 지원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누나 방 앞이 아닌데?"


어머니는 나긋나긋하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조곤조곤 압박해오셨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이 상황을 타계할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결국, 바른대로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그...그게... 그냥 궁금했어요."

"죄송해요...! 이 방이 뭐하는 공간인지 너무 궁금해서..."


하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말없이 나를 안아주실 뿐,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내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으셨다.


"저런... 겁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네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집일텐데, 궁금한것이 당연하겠구나."


"..."


"저 방은 손님방이란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잠가 두고 있었어."

"미안하구나. 엄마가 조금 더 네게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내게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신 뒤, 도로 밑으로 내려가셨다. 다리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후 한참 동안이나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나는 도망치듯 누나 방으로 향했다.


***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 집에 온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생전 처음보는 두 여성이 자신들을 나의 가족이라 주장하질 않나, 그들 중 한 여성에게 덮쳐지질 않나.

의심가는 구석도 한 두개가 아니었을 뿐 더러, 당분간은 이 집을 나가지도 못하고 그녀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니.

앞길이 막막했다. 미래에 대한 근심이 너무나도 깊어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길 한 세월.

불현듯 문 너머에서 자그마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옆으로 드러누워 자는 척을 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나는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숨쉬는 것 마저 잊어버린 채 온 몸의 신경을 청각에 집중하였다.


"..."


이윽고 주변을 맴돌던 발걸음이 끊기고, 주변은 조용해져 조용히 울리는 나의 심장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나는 한껏 더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긴장이 흘러서 온 몸이 찌릿찌릿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우으응."


누워있던 나의 등 뒤로 누군가의 감촉이 느껴졌다.

적절한 무게감과 몸통을 감싸오는 두 팔. 아마 그 누군가는 나를 껴안고 있는 듯 했다.

설마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깨어있는 티를 내서는 안 됐다.

그런데, 그 누군가의 손길이 조금 이상했다.


"...으응... 지원아아..."


이 목소리, 분명 누나였다.

하지만 대체 왜? 어째서 누나는 지금 내 몸을 더듬고 있는거지?


누나의 손놀림은 더욱 대담해져 처음에는 복부에만 머물러 있던 손도 서서히 위아래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심산인지는 몰라도, 동생 된 도리로써 이대로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누나의 거친 숨결이 나의 귓가에 닿는 순간, 나는 잠꼬대를 하는 척 하며 옆으로 돌아 누웠다.


"...!"


내 행동에 당황했는지, 누나는 벌떡 일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누나를 때어놓는다는 1차적인 목표는 달성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 누나가 아직 방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숨을 죽인 채, 누나의 발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지원아. 자?"


그러나 행동이 어설펐던 탓일까?

위화감을 느꼈는지, 누나는 내게 바싹 붙어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솔솔 불어오는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아 너무나도 간지러웠지만 움직여서는 안 됐다.

잠시 뒤, 누나가 몸을 기울여 자그마한 목소리로 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

"자는거 맞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형식상으로는' 수면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일말의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을 때 즈음.

나는 옆자리에 느껴지던 무게감이 어느덧 사라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드디어 갔구나, 라며 안도함과 동시에 눈을 뜬 그 순간.


"...헤헤. 역시 안 자고 있었잖아."


이게 왠걸.

어느새 누나는 내 위에 올라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있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나는 자그마한 비명도 하나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고야 말았다.


"흐응...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야...?"

"내가 말했잖아... 나와 함께 지내야 한다고..."


누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를 그윽하고도 퇴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나는 애써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왜애~ 왜 피하는거야? 내가 부담스러워?"

"날 봐... 날 보라고오~"


"..."


"저기~ 계속 자는 척 할거야? 이미 다 들켰는데에~?"


나의 반응이 없자 누나는 한층 더 대담해졌다.

그 전까지의 손길이 옷 바깥에만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옷 안까지 파고들었다.

느껴지는 이질적인 촉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따금씩 몸을 떨뿐, 온 힘을 다해 버틸 수 밖에 없었다.


"후훗... 이래도 버티는거야? 이래도?"

"정말~ 나랑 자는게 싫어어? 난 우리 동생과 같이 자는거 좋은데..."


한 층 더 힘을 얻은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나의 살결 위를 서서히 유린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나의 약점을 찾아 공략해 나가는듯한 그녀의 손놀림은 이질적이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했다.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누나는 지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많이 아픈 상황이니 너가 좀 이해해 달라고.


하지만 마냥 편하게 언제까지나 그녀를 받아줄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나도 어딘가 아프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누나."


"어."

"말했다. 히힛..."


"그만해 누나."

"나 정말 화낼거야."


"어...?"


누나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발언을 뒤늦게 후회하며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상황은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뒤였다.

방금 전 까지의 기색은 어디가고, 그곳에는 단지 공포에 떠는 한 명의 어린아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방금 뭐라ㄱ... 화 낸다고...? 화났...어? 나 떄문에...??"

"어...어어.... 지...지원아... 그,그러니까 난... 나는...."


"저,저기 누나. 잠깐, 잠깐만 진정해봐."

"나는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해보라고...!!"


"으...으아아... 미,미안해애... 미안해애애...!!"

"아아...!!! 내가 또 너를... 또 너에게...!!!! 아아악...!!!!!"


결국 또 다시 시작되고만 누나의 발작.

의도치 않게 트리거를 당겨버린, 나의 어리석은 행위를 저주하면서도 내 머리는 한없이 침착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 누나에게, 나는 천천히 다가가 어머니가 하셨던 것 처럼 그녀의 복부에 강한 주먹질을 가했다.


"끄흡...!!! 그웨에에엑...."


이내 누나는 희멀건 게거품을 쏟아내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혈육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죄스러웠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휴지를 가져와 주변을 갈무리 한 뒤, 누나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다행히 누나는 멀쩡한 듯 했다. 어디까지나 외견상이긴 하지만.


"하아..."

"미안해 누나..."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새벽 5시.

잠을 다시 자기에도, 그렇다고 깨어있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잠에 든 누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망가트려 버린걸까.


문득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누나 옆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청했다.

비록 잠깐이지만, 그래도 밤을 새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 문득 귓가에 또 다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발, 누나 그만 좀..."

"...응?"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곤히 잠에 든 상태였다.

방금은 대체 뭐 였을까. 나는 고개를 숙여 누나의 소리에 더 집중했다.


"...워니... 우리 지워니..."

"미아... 미아내..."


방금 전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누나의 잠꼬대 소리였다.

나는 내심 안심함과 동시에 도로 자리로 돌아 누웠다.

하지만 누나의 잠꼬대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내용도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우리 지워니이... 누나가... 우우..."

"누나가 다 망쳐버려서어... 미아내애..."


망쳤다니. 대체 무엇을?

나는 숨을 죽인 채 누나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잠꼬대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아... 왜 항상 이럴때만..."


김이 샌 나머지, 나는 다시금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오늘 하루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피곤에 지쳐있던 나는 머잖아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그것이 깊은 잠인지.

아니면 지난날의 이면인지는 알 수 없었으면서도.


***


근친 드리프트 아니니까 안심하세요(갠적으로 근친물 별로 안 좋아함)

대신 어째서 지원이가 저 정도로 극혐하는 반응을 보이는지 잘 기억해 두면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