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 땅 위에 영원한 황량함만이, 숨 죽어버린 고요만이 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늘에는 남아 있는 그 붉은 흔적이 피 흘리고 있었고 대지는 메마르고 갈라진 채 그 문드러진 피부 사이 형언할 수 없는 그 색채를 토해내고 있었다. 


키보토스라 불린 이 장소 - 

한 때는 소녀들의 웃음이, 그리고 청춘의 풋풋함이 하늘조차 채워버릴 것처럼 가득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희망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던 땅.

하지만 더 이상 이 공간에서 소녀들의 웃음은 들리지 않는다.


새도, 조그마한 소동물들도, 살아있는 그 무엇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갈라져 버린 대지의 피부에서 새어나오는 그 황량한 숨결만이, 그리고 가끔 흩날리는 그 모래 먼지들 위에 바스라져가는 그 시멘트 덩어리의 건물들만이 - 이 곳에 한 때 사람이 살았으며 그들의 감정을 나누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모든것이 끝났지만 여전히 밤은 깊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어둠. 

영원같이 걸어야 할 것 같은 끝없는 그 좁고 어두운 통로.

희망이라는 것을 바라는것조차 과분할 정도로 끝없이 깊기만 한 심연의 구덩이. 

붉게 물든 하늘, 내려다보는 그 눈동자. 


모두가 주저 앉아 그 날을 휘저은 그 광기에 몸을 맡기면 될 일이었다. 

스스로의 영혼과 마음을 포기한 채, 아래의 바닥에 몸을 던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희망이라는것은 어둠에서 더욱 처절하게 빛나는 법이다. 


안광.


살아있는 눈동자의 빛이었다. 

모든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었을지라도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았다. 



////


"여기야 ! 히후미 ! "


아지타니 히후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꽤나 오랫 동안 숙이고 있던 히후미는 그녀의 뒷편에서 들어오고 있던 햇살을 정면으로 받게 되어 잠깐이지만 눈을 찌푸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부자연스럽게 머리를 하늘쪽으로 먼저 치켜들어야 했는데, 이는 그녀가 위치한 공간이 지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자연스러운 몸돌림에, 그녀를 부른 그 소녀보다 그녀의 머리 위에 펼쳐진 그 '하늘'이 먼저 히후미의 눈에 들어왔다. 


'..아..'



하늘은 맑았고 조금이지만 구름도 끼어 있는 것 같다. 

검지 않은.. 하얀 구름...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었지만 히후미는 본인이 구름을 쳐다본 지 꽤나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가 뭐였을까? 하늘엔 매일 같이 구름이 떠 있었을텐데..


시간이. 어쩌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면 하늘을 오래 쳐다 볼 이유 자체가 없기 때문일수도 있었다. 

그녀는 맑은 하늘을, 어쩌면 그 하얀 구름이 아주 오랜만에 하늘에 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에 위화감을 느끼는 그녀 스스로에게도 조금의 놀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소녀들은, 아니 - 적어도 그녀는 오랜만에 아무 감정 없이 그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 뭐야..? 뭐라도 찾은거야? "


그녀를 부른 소녀, 조그마한 몸집의 귀여운 소녀가 종종걸음 쳐다가온다.

시모에 코하루 - 분홍 머리의 소녀가 위치한 낮은 지대에서 올라오려 하는 히후미의 뒷편을 살폈다. 

조금의 기대감이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아..아니에요. 그냥.. 잠깐 눈이 좀 부셔서.. "


히후미는 바닥에 기울어진 채 무너진 천막의 입구에서 고개만을 내민 채 대답한다. 

낮은 지대의 천막은 기울어져 쓰러져 있었고 소녀들에게는 기울어진 천막을 세울만한 기술이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그녀들 중 가장 몸이 성한 히후미가 천막 속으로 기어 들어가 고개를 숙여가며 물자를 찾는 중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히후미의 대답에 코하루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우으.. 오늘은 조금 괜찮은 걸 먹을 수 있나 싶었는데.. "


히후미는 그녀의 아이같은 투정에 잠깐 미소 짓다가 그녀의 비어버린 한쪽 눈을 가린 머리 위의 날개를 바라보고는 눈을 돌린다. 


...


아비도스.. 

아비도스는 무너졌다. 그녀들이 몸을 의탁했던 그 학원은 증오와 원망, 그리고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죄책감을 연료로 삼아 움직였으나 그 원망의 정점에서 그 달콤한 증오를 흩뿌려야 할 구심축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마치 모래위의 성처럼. 위에서부터 무너지는, 여름날 녹아내리는 얼음의 성처럼. 


타카나시 호시노. 아비도스의 여왕. 

폭군. 악마. 피의 여왕. 살아있는 단두대.. 

그리고.. 한 때 그녀들의 친구 .. 


타카나시 호시노의 통치는 '통치'라고 부를만한 것조차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바람대로 움직이고 바람대로 먹고 바람대로 죽였다. 

그녀와 웃고 떠들었던 소녀들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변덕에 의해 목이 잘리고 그 목이 내걸렸다. 

그녀의 앞에서 춤추지 않은 소녀들도, 그녀의 앞에서 조그마한 실수를 한 소녀들도.

모두 죽었다. 마치 광대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의 앞에서 춤추며 죽어갔다. 


모든 과정에는 이유도 없었으며 그 인과도 불분명했다. 

아비도스의 소녀들은 원인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호시노의 변덕, 그녀의 기분..

그녀는 단순하게 - 증오를 - 공포를 흩뿌렸고 그 감정의 부산물들을 당연하다는듯 집어삼키며 동시에 집어 삼켜져 갔던 것이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호시노를 예전부터 알았던 히후미였기에 - 그리고 그녀의 동료들이었기에 그것이 호시노의 본성이 아님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는 기관차 같았다.

자기 자신조차 부수길 원하는 광인의 무도 같았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 잔악한 통치를 스스로 버티지 못했다고 믿는다. 온 몸에 피를 묻힌 그녀가 울고 있었다. 

온 몸이 칼로 난자된 채, 바닥에서 숨이 끊어진 -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시체에서 흘러 나오는 핏물 속에서 호시노는 웅크린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당시의 그녀는 절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웃는다 - 모든것이 우습다는 듯이 , 그리고 세상의 모든것이 우습다는 듯이 피투성이로 킬킬 웃어버렸다. 

그 웃음은 조금씩 광기에 물들고 새어나가서.. 어느 순간 그녀를 덮어버렸고 그 때부터 그녀는 늘 비릿하게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명의 소녀들에게 총과 칼을 쥐어준다. 서로를 죽이라 명령한다. 

이 공간에서 한 명만이 살아나갈 수 있다고.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 명의 소녀에게 주목되고 있었다. 

호시노는 그 누구도 눈을 돌리는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 두 소녀는 친구였었다. 



..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그 잔악한 통치는.. 

호시노의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었다. 


호시노의 죽음이 남겨진 아비도스에 알려진 것은 트리니티의 하늘을 뒤덮은 그 붉은 광기가 아비도스에 도착하는 것과 비슷한 즈음이었다. 

이미 혼란스러웠을 그 트리니티의 대피소를 핏빛으로 완전히 물들인 그 '광기' 

그 광기 그 자체가 아비도스에 도착했을 때 - 아비도스의 소녀들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나 앞날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해방감'에 가까웠다는 점은 아비도스에서 호시노라는 인물이 차지했던 그 역할에 대한 반증이 되리라.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소녀들은 그제서야 그 끔찍했던 그 아비도스에서 몸과 마음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녀들이 느낀 그 날의 해방감이 소녀들에게 어떤 구원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가득 덮은 그 붉은 빛 - 그리고 내려오는 그 광기에 침식된 아이들은 미쳐갔다. 몸이 변형되었고 이윽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녹아내렸다. 눈동자가 붉게 물든 - 그리고 무언가에 침식된 아이들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었으며, 먹을 게 없어지자 자기 자신을 뜯어먹다 사라졌다. 


여전히 살아남기를 원하는 아이들은 하늘을 피해 달아났다. 더 깊은 지하로,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

호시노의 통치 당시 - 죽음이 예고되어 있던 그 황량한 지하감옥이 - 살아있는 소녀들의 희망이 될 지 누가 알았을까?


모여있는 소녀들은 하늘을 가득 덮은 광기와 죽음을 바라보지조차 못하며 생각했을 것이다. 

이건 벌이라고. 

한 때 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 죄 없는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 몬 그녀들에 대한 신벌이라고.

그렇기에 살아남은 소녀들은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이제는 그녀들을 용서하지 않을 '선생'에게 용서를 빌었다. 


소녀들이 용서를 비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 종교에 가까운 믿음에 근거한것만은 아니었다.


히후미는 정확하게 모든것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 트리니티에 선생님이 살아계시다는 소문이 꽤나 알려져 있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뜬 소문 정도로 취급 받던 소문이었지만 , 아비도스의 여왕이던 타카나시 호시노가 ( 그녀는 한 번도 아비도스 밖으로 나간적이 없었다 ) 트리니티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그것 이상으로 설명되는 이유가 없었고, 당시 트리니티를 가득 덮은 그 광기에서 도망 친 트리니티의 '살아남은' 아이들이 ( 그 아이들은 대부분 몸이 성한 경우가 잘 없었다 ) 트리니티에 선생님이 살아계시다는 그 사실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 ( 모두는 아니지만 ) 선생님의 생환을 아비도스의 인원들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가 선생님에게 닿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선생님이 살아계시다는 그 불분명한 믿음 속에 더해지는 것은 의문일 뿐이었다.


선생님은 왜 돌아오신걸까

선생님이 돌아오셨다면 지금 어디에 계신걸까? 무엇을 하고 계신걸까?

하늘을 뒤덮은 저 광기가 돌아오신 선생님조차 삼켜버린 것이 아닐까?


애초에.. 선생님이 우리를 용서하실까? 

그녀들의 기도조차.. 과연 선생님께 닿을 수나 있는 것일까?


닿지 않는 기도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소녀들은 자신들을 좀먹는 - 그리고 저 하늘에서 울리는 것 같은 그 광기 속에서 선생님을 부르짖었으나 그에게는 어떤 응답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히후미와 보충수업부의 인원들도 모두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선생님이 살아계실까? 트리니티를 가득 채운 그 죽음속에서.. 선생님이 아직도 무사하실까? 

아니면.. 선생님의 생환이라는 그 처음의 전제부터.. 모든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었지만 당시의 히후미는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은, 살아남은 아이들은 내심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이 기도하는 이유는 버틸 수 없는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기 위함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의미없는 믿음 속,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어느날 - 평소와도 다를 것 없이 절망스러운 그 어느 날.. 히후미는 틀림없이 보았던 것이다.

최후였다. 모두가 최후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히후미는 옆에 선 그녀의 친구 시라스 아즈사를 바라 보았다. 왼쪽 손목부터 모두 잃어버린 채 그녀의 남아있는 한 팔로만 그녀의 총을 꽉 잡아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즈사 역시..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히후미는 그 눈동자에 안타까움을 느껴 그녀의 총을 쥔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 손을 - 꽉 잡아주었던 것이다. 

마주잡은 손 사이로, 아즈사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는것이 느껴졌다. 

두려움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즈사는 고개를 돌려 히후미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소녀들은 조그마한 웃음을 지었다.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히후미는 주머니에서 본인의 총을 꺼내 아즈사를 겨누었다. 아즈사 역시 팔을 들어 히후미를 겨누었다. 

최후는 ... 서로를 알아보지조차 못하는 광기속에서 끝내지 않으리라. 


하늘을 내리쬐는 그 이상한 붉은 빛이 지하의 잔해를 부수었다. 건물을 통째로 뜯어내고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렇기에 모두는 - 그 공간의 소녀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얼굴을 파 묻었다. 


하늘을 .. 하늘을 봐서는 안 돼. 

우릴 바라보는.. 저 눈동자를 절대 마주해서는 안 돼.


눈을 꽉 감은 히후미는 조금의 침묵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눈을 떴는데 - 이는 그녀가 아즈사를 편안하게 만들어 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즈사가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면 - 그녀의 모든것은 본인이 끝을 지어줘야 하리라.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것은 괴물은 아니었다. 맞은편의 아즈사 역시 - 그녀를 같은 눈빛으로 - 그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으니까.


.. 붉은 빛이 그녀들을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광채가 너무도 눈부셔서 하늘의 저 눈동자가 그녀들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


히후미는 그 날의 그 광경에서 - 슬픔과 함께 어떤 감격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섬광의 방패였다. 그녀들을 지켜주는 태양이었다. 


..소녀들은 그 방패를 본 적이 있었다. 


하늘을 가린 채 소녀들을 머리 위에서 지키고 있는 그 타오르는 태양은 영혼이었다.

영혼을 녹여서 갈아낸 그의 흔적이었다. 

흘러내리는 선생의 상흔이었고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적어도 히후미는 - 그 이유조차 알 수 없게도 -  머리 위를 타오르는 태양에서 선생님이 돌아가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  

그의 흔적을 느끼면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먼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든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녀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슬픔을 꿰뚫고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운 그 수 많은 섞인 감정들을 한 단어로는 설명해낼 수 없을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워서 그녀는 입밖으로 어떤 단어도 토해낼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압도하는 그 감정에 몸을 맡긴 채 - 그녀는 '아..' 하는 신음을 흘리면서 눈물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은 꺼지지 않았다. 적어도 - 그 붉은 광기가 그 섬광에서 눈을 돌린 채 시어버린 그 눈동자를 감기 전에는 결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돌리지 못한 것은 - 그 눈부신 광기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들에 가까웠으리라.

그 날 - 그 구원의 빛을 내리 쬔 소녀들은 -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도 그 날의 일을 함부러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 "


코하루와의 의미없는 재잘거림 속에 - 잠깐의 생각에 잠긴 히후미의 뒷편으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룩거리는 움직임 - 얼굴에 흉하게 화상자국이 난 소녀였다. 


" .. 하나코..! 들어봐.. ! 히후미가 천막 안에서 이런 걸 찾았지 뭐야..! "


히후미가 찾아 낸 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천막이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막 안에는 쓸데없는 책 더미 - 그리고 종이 상자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책 더미는 쌓아놓으면 바람이라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고 - 태운다면 장작이라도 되어 줄 것이었기에. 


그리고 살아남은 소녀들에게 그 종이쪼가리들은 장작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그녀들은 즐거웠던 과거에 남겨진 흔적을 아주 오랫만에 발견했기에 조금은 들뜬 기분이 되었던 것이다.

코하루가 지금 들고 흔드는 책은 - 조그마한 캐릭터북에 가까운 것이었다. 코하루는 꽤나 오랫동안 이런 아기자기한 것들을 본 적이 없는지라 , 어쩌면 그 사실 자체에 흥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코하루의 조그마한 흥분은 - 장난스러운 하나코를 더욱 장난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후후.. "


"..뭐.. 뭐야.. 왜 그렇게 웃는거야..? "


" 저는 코하루가 좋아하는 책이라도 찾은 줄 알았지 뭐에요 " 


"..뭐..뭐..! 사형..! 사형이야..! 야한 건 사형 !"


코하루는 병아리처럼 튀어 오른다.

히후미는 이 모든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미소 짓는다.

...모든 것이 멸망해야 할 이 세상은.. 아직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웃을 수 있다. 

그 미소는 많은 것을 함축한 웃음이라 지금도 이 땅 위를 걷고 있는 소녀들이 가진 희망이 느껴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 그리고.. ! "


하나코가 갑작스럽게 손뼉을 짝 쳤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 하나코가 자주 하던 동작 중 하나였다. 


".. 아즈사와 3팀이 식량 창고를 찾았답니다..! "


" . .! ! "


코하루도 - 히후미도 기뻐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최근들어 특히 배고파했던 코하루는 반짝거리며 방방 뛰기까지했다.


"다행이에요. 최근에 먹을 게 떨어져서 걱정스러웠는데.. "


"응응.. 맞아..! 지금 돌아가면 바로 먹을 수 있을까? 나 오랫동안 배고팠단 말야 "


" 후후.. 우선은.. 식량을 나누는 일부터 해야겠죠? 좋은 건 치나츠님이 드셔야 할 테니까요 "


"...헤에.. 뭐가 있을까? 치즈빵..? 피자샌드위치..? 고기도 있을까? 치나츠님은 고기를 좀 드셔야 할텐데 "


" 맞는말이에요. 치나츠님은 몸을 생각하셔야 해요. 무엇보다 그 분은.. "


..." 치나츠님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


히후미는 그녀들의 대답을 정리해주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배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흔적. 그가 살아있었다는 증거. 그가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사실까지.


////



치나츠는 그 날의 일이 어떤 우연의 일치 - 혹은 어떤 기적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친 소녀들이 그녀를 찾은 그 날 - 냉정하게 그녀들을 끊어낸 이 후 문에서 돌아섰다. 

그녀들의 고통과 - 멸망을 기도하며 그녀들의 생명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침대로 걸어나가던 그녀는 우연히도 방에 설치 된 조그마한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


그리고 치나츠는 - 선생이 말한 적 있던 것 -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흔적을 밟을 수 있었다. 

거울을 비치는 그 세계에서, 선생이 그토록 두려워하였던 보여서는 안 될 그 '자국'에 본인도 발을 들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검은 구멍 - 그녀의 마음 속 나버린 - 선생님을 잡아쥐고 흔들고 있는 그 심연의 흔적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을 차지한 그 검은 구멍은 너무도 작은것이라, 무엇인가가 뻗어나오지도 - 무엇을 빨아들이지도 못한 채 그저 꿈틀거리고만 있었는데 그녀는 그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그 심연이 커져가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놀라움에 눈을 돌린 치나츠는 그제서야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 -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눈동자는 .. 


.. 그토록 변해버린 선생과 닮아 있었다.


....


부글거리는 그 검은 구멍을 바라보던 치나츠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몸 돌려 나온 그 문을 향해 달렸다.

문을 열고 피 흘리고 있는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소녀의 부상은 심각했다. 무엇인가에 꿰뚫리고 그 꿰뚫린 흔적 사이에서 끊임없이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붕대..! 붕대가 필요해요..! 안에 응급도구함이 있을거에요..! "


치나츠는 옆에 선 다른 소녀에게 응급도구함을 가져오라 지시했고 달려나간 소녀가 곧 응급도구함을 찾아왔지만 그 안에는 이상하게 붕대만이 없었다. 


'..왜.. 왜.. 붕대만 없는걸까? ' 


죽어버린 분홍빛 머리의 소녀 - 구원을 바랬던 그 소녀의 팔에 감긴 붕대. 이제는 그 소녀만이 알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소녀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피를 바라보던 치나츠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 그녀는 그녀의 머리를 묶은 그 소중한 머리끈을 풀어헤쳤던 것이다. 

그 머리끈은 그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녀가 한 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은 - 너무도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 그것은 '물건' 일 뿐이다. 

사람의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소중한 머리끈을 붕대삼아 그녀의 상처를 감싸쥐었다. 검은 붕대가 피투성이가 되어 갔으나 어느 순간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 

기본적인 응급처치가 끝나고서 그녀는 조금 더 소녀의 몸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다른 소녀에게 소녀의 다른 쪽을 부축하게 하고는 - 의료실이 위치한 곳으로 비틀거리며 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동했을 때 - 소녀의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렸고... 총소리가 커져 갔고.. 무엇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치나츠는 기억을 잃었다. 


---


"...씨발..!! "


치나츠를 찾은 처형부의 소녀들은 애꿏은 바닥을 강하게 걷어찼다. 

샬레의 벽을 부수고 들어갔으나 샬레에는 그 누구도 없었기에 - 

단지 샬레의 정문 앞 바닥을 더럽힌 그 핏자국들과 누군가를 끌고가다 중간에 끊겨버린 그 흔적만이 이 곳에 치나츠가 있었으며 그녀가 다른 장소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어쩌지.. ? 아코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텐데..? "


소녀들은 아코의 명령을 받으면서 - 아코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소라사키 히나의 뒤를 잇는 다른 종류의 폭군이 될 것이었다. 

손에 든 총을 휘휘 내 저으며 명령을 내리던 아코는 당시에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녀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소녀들을 자비없이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소라사키 히나라는 인물의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에게 저항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았다.

그녀는 소라사키 히나처럼 합리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어떤 명령에 대해 -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단순히 그녀의 명령을 잘 따르지 못했다는 그 이유로 - 그녀는 소녀들을 죽여 없앨만큼 잔혹한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어쩌긴 어째.. 방법을 찾아야지.. "


다른 소녀가 바닥에 고개를 숙인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색의 피투성이의 물건을 집어든다. 


"..이거.. 치나츠가 항상 머리에 차고 있던 거잖아..? "


" ... "


"... 그 년.. 어딘가에서 죽었을거야. 이렇게 개판이 났는데.. 살아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이 대피소에서 그 년한테 호의적인 사람은 없다고 "


".. 맞는 말이야.. "


"... 잘 들어. 치나츠는 죽은거야. 우리가 샬레를 부수고 - 머리를 터뜨려 없애버린거라고 . 내 손에 이건.. 그 증거고 .. "


처형부의 소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시원하지 못한 결말이었지만, 소녀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말이기는 했다. 



//////



망가진 아비도스를 떠나 이동한 히후미와 보충수업부의 인원들이 트리니티의 방향으로 향한것은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모든것이 시작된 곳, 모든 것이 끝난 곳 - 

그녀들은 확인하길 원했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이든, 세상의 멸망에 관련된 것이든.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 트리니티에서 살아남은 채 방황하고 있던 소녀들의 집단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리더는 히노미야 치나츠였다. 한 때는 대피소에서 가장 원망 받던 그녀였지만 대피소의 소녀들 중, 더 이상 그녀를 원망하는 소녀는 없었다.

치나츠 역시 자연스럽게 그녀들을 용서했다. 그녀들 한 때의 잘못을 받아들여 주었다.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그 날 하늘을 비춘 그 빛나는 태양은 - 그녀들이 다시 원망과 증오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치나츠는 어쩌면 소녀들의 희망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선생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대신 받아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에.

치나츠는 특별 취급 받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 필요에 의한 특별 취급은 그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 

살아남은 새 '대피팀'의 인원이 된 히후미는 무너진 히나의 '대피소'를 수색하는 중이었는데 -

히후미는 군데군데서 선생님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주위를 자주 둘러보아야만 했다. 

그러다 히후미는 우연찮게 모래에 묻힌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했다.


... 카드..? 


불에 그을려 검게 변했고 부러지고 망가져 사각의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카드 모양으로 생긴 얉고 날카로운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더 이상 기능조차 하지 못할것이 명백할 정도로 망가진 물건이었지만, 히후미는 홀린듯 그 카드의 흔적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히후미는 멍하게 모래에 묻힌 그 자국을 바라보다 -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 선생님 "


" 선생님은 쉬고 계신가요? 어딘가에 계신가요? "


히후미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들릴 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 대상만큼은 너무도 명확했다. 


" 저희는 많은 것을 잘못했어요. 어려서 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잔인하고.. 어리석은 실수였다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


그녀는 조금의 말을 삼켰다. 그 날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슬픔이, 절망이, 미움이.. 한 때 이 키보토스의 소녀들을 휘감았던 그 감정들 역시 그녀를 거쳐간다.


"..매일.. 정말.. 매일밤을 후회했어요. 모든 것을.. 저희가 했던 그 모든 행동을..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없을만큼 후회했던 것 같아요 .. "


".. 저희한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거를 돌릴 수 있는.. 아니면 선생님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라도요 "


히후미는 다시 한 번 말을 멈추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망설였다. 

자신이 키보토스의 소녀들을 대신해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어도 괜찮아요. 저희는 더 이상 서로를 증오하지 않아요. 원망과 후회 속에서만 살지는 않을거에요. "


히후미의 머릿속에  - 그 날의 빛나는 태양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들을 지켜주던 그 섬광이 - 그리고 선생님의 다정하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울린다. 

히후미는 이상하게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냈다.


".. 용서해주셨으니까.. 선생님이.. 마지막 순간에 저희를 용서해주셨으니까.. 저희는 그 용서를 결코 잊지 않을거에요 "


" 저희는 ㅡ 그 날의 용서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


그 태양은.. 그녀들에 대한 용서였다고. 

선생님의 다정하던 본성이 불러 온 하나의 기적이라고. 


믿고 있다. 

모두가 깨닫고 있다.


"..언젠간... 틀림없이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다시... 선생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날이 있겠죠? "


" 후후.. 다음엔.. 절대 선생님을 떠나지 않을테니까요 "


말을 마친 히후미는 고개를 든다. 

후련함과, 앞날에 대한 어떤 자신감이 묻어나는 동작이었다. 


"...히후미..! 어서 가자..! 치나츠님이 우리를 찾으신대..! "


멀리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히후미는 고개를 돌려 소녀들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듯이 고개를 다시 돌려 '선생'의 흔적을 살폈다.

히후미는 살짝 미소 짓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선다. 

소녀들을 향해 달려나간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 역시 부드럽게 불고 있었다. 

봄이 찾아오고 있다. 

바스라져버린 세상이지만 - 그녀들의 세상조차 바스라진것은 아니었다. 


곧 꽃이 필 것이다.




키보토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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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실패군요"


소녀는 혼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 그 눈앞의 거대한 모니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입을 여는 소녀 - 그녀 자신만이 비추고 있었다. 


".. 몇십번.. 몇백번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에요.. 이건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어요. "


소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하늘빛의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 소녀들은 선생님을 결국 믿지 못하고.. 선생님은 어떻게든 배신 당합니다. 절망뿐인 과정..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


...


"..그래도.. 이번 선생님은.. 학생들을 저버리지 않았네요... 이걸.. 희망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


..


".. 무엇이 문제일까요? .. 이런 희망은.. 일시적인 것일뿐이에요. 색채가 지나가면 다음 위험이 오겠죠. 황혼이 찾아오고, 다른 존재들이 키보토스를 노릴거에요 "


..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죄 없는 선생님이 감당할 수 있는 비극이 아니에요. 모른척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


...


"..무엇이 문제일까요..? 정말.. 어디서부터 어긋난걸까요?.. 어쩌면.. 어쩌면.. "


중얼거리던 소녀는 눈을 들어 눈 앞의 모니터를 바라본다. 어두운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반사된다. 

소녀는 어딘가를 다쳤는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가.. 관망만 한 것이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바깥 세상에서.. 같은 현실을 재생만 시키는 3자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소녀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간이 멈춘 듯 - 그리고 소녀는 꽤나 오랜 침묵속에 빠져들었다. 

.. 만약.. 이번 계획조차 실패한다면.. 기회가 많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을 댓가로 반복하고 있는 이 현실의 반복을 자신이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하려는 계획은 - 지금까지의 재생보다 내 몸에 훨씬 많은 부담을 - 더 나아가서 마지막이 될만큼의 위험이 될 지도 모른다. 


...


하지만.. 다른 세상의 사람은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만큼 나는 이기적이지 않다. 


오랜 시간 숙고하던 소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 눈 앞에 놓여져 있던 태블릿을 주워들었다. 그녀에게 남은 신비를 사용해 -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한다. 


".. 선생님.. 곧 다시 뵙도록 하죠 "


지금까지의 실패가 본인의 관망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 그리고 이 세상의 결말이 영원토록 반복된다면 소녀에게도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결말을 아는 자신이 - 직접 변수로써 개입하여 선생님을 지켜줘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그를 믿고, 그에게 다가오는 그 이빨들에게서 선생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선생님. 키보토스를.. 꼭 구해주세요. 


소녀의 형체가 신비에 의해 바스라져 간다. 그리고 소녀가 바스라질수록 - 그 태블릿에 들어있는 어떤 형체가 선명해져 간다. 

소녀는 그 태블릿을 향해 바스라져 가는 고통을 참으며 말을 걸었다.


"..당신의 이름은.. "


소녀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태블릿 속의 소녀를 향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 아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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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지막 편입니다. 사실 원래 계획했던 소설은 이것보다 길었어요. 외전이 몇 개 더 있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까 .. 너무 질질 끄는 것 같고, 스스로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라 메인스토리부터 끝내자는 느낌으로 결국 완결을 지었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려주셔서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이렇게까지 길게 쓰게 될 줄은 저조차 몰랐습니다.

그래도.. 진짜 책임감을 가지고 , 끝까지 써내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패러디 소설인데도 연중없이 50화 넘게 완결을 낸 저한테 조금은 칭찬을 해주고 싶네요 .


진짜 읽어주신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셔서 - 댓글보면서 힘을 정말 많이 얻었습니다.

중후반부터는 저도 조금 정리가 잘 안되는 느낌이라 .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급하게 쓴 느낌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진짜 처음으로 써 본 소설인데 소설을 쓴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네요. 

전업 작가분들 진짜 존경합니다.


언젠가 제가 다시 열정이 살아나고, 키보토스의 플룻을 조금 더 다듬을 수 있으면 노벨피아나 좀 메이저한 사이트에 조금 더 자세하게 짜고 치밀하게 구성해서 다시 연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많이 사랑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저도 재밌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조금 받았구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읽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재했는데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진짜로 저도 재미있게 쓴 소설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소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원래는 키보토스 완결 이후에 개그물 외전을 하나 연재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 키보토스 이야기 자체가 '선생'이 직접 쓴 소설인거죠. 키보토스에서 근무하는 센세가 후회물 중독이고 근무하기 전에도 후회물을 좋아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사료도 없고 해서 <자기 세상의 인터넷 - 아카>에 후회물 연재를 했는데 ( 자신의 사심이 어느 정도 담긴 ) 그 소설이 호응을 얻어서 선생도 재미있게 소설을 쓰다 - 

그 소설이 키보토스에 유출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키보토스의 소녀들은 눈이 돌아가서 작가를 찾아 찢어죽이기 위해 추적에 들어가고

작가라서 이 소설을 숨겨야 하는 선생의 리얼 후회물 소설이었는데 -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학생으로 이런 고어물을 쓰는 선생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서 쓰기가 힘들더라구요 ㅋㅋ


아무튼 이건 각설하고 - 

다들 올해도 후회물 많이들 보시구 재미있는 소설 많이 찾으시길 바라면서 - 마지막 인사 드릴게요. 언제 다시 소설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올해도, 내년도 다들 행복하세용 .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