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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안녕.."


"....."


"하세요..?"


마차에서 내려 어색하게 인사하는 '자칭' 약혼자를 보며

당은주는 한숨쉬었다.


아니, 쟤가 뭐 그리 귀하다고 아버지가 마차의 마부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거기서부터 기분 나쁜데,


좀 멋진 사람을 데려올까 싶었더니,

자신보다 2~3살은 어려보이는 아이가 나오지 않나.


소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서오렴!"


그래서, 환히 웃으며 소년을 반기는 어머니한테 괜사리 심술이 났다.


"...저 방에 갈래요."


"얘! 자기소개는 해야지!"


"....당은주."


"저는, 운주라고 해요."


"어머, 이름도 비슷하니 잘 지내겠구나."


그 말에, 괜시리 기분이 나빠져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방으로 돌아가기 직전.


[쪼르르르르륵!]


새의 울음소리.


소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새를 보고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쁘다.."


"어..얘는 비라고 해요!"


"...너, 따라와."


소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 새는 마음에 들어.

방 안에서 구경해야지.


겸사겸사, 중독도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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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초미령은 말했다.


"저 아이인가요."


"..그래."


자신의 남편이, 가주가 되어가면서까지 데려오려고 노력한 아이.

딱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게,


애정을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은 아니었다.


소년의 사정을 남편인 당천에게 듣고, 대충 짐작하고 있던 초미령은 안타까운 눈길을 잠시 보내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보."


"왜?"


"우리 딸이 전에 찝쩍거리던 후지기수한테 했던 것처럼 화난다고 운주를 중독시키면 어떻게 하죠..? 한동안 고생할텐데."


합리적인 의심.

불구로 만들려고 했던걸 참았는데, 왜 자신이 혼나냐고 갈갈이 외치던 딸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리고, 당천이 말했다.


"....여의 가의 핏줄은, 태생적으로 만독불침이야.

아니. 만독불침이라기엔 어폐가 있지."


그것은, 모든 독에 대한 해독력이라고 봐도 무방한...


태생적으로, 만독불침萬毒不侵보다 상위의 만독해萬毒解를 타고나는 일족들.

그런 놈이 어쩌다가 목내이가 된 채 죽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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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당천은, 중독된 채 이름모를 산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독공은, 강한 독이 약한 독을 잡아먹는다.

그렇기에 내공의 기반으로 잡은 독이 얼마나 강한지가, 독공의 힘을 나타내는 법.


가문 내에서 아무런 힘이 없던 당천은, 가문에서 아무 영약도 제공받지 못하고 그저 당가에 들어가면 누구나 배우는 내공을 독으로 전환시키는 독공밖에 쓸 줄 몰랐다.


무공은 알려주되, 독은 주지 않는 세가의 늙은이들.

언제나 임무를 끝내면 독을 주겠다고 거짓말하는 늙은이들과,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임무를 하는 자기 자신.


다른 후계자들처럼 독초나, 독단을 제공받지 못하는 이상, 그들의 사냥개처럼 살아가다 죽게 되는 것이 확실시 한 인생.

그리고, 오늘. 당천이라는 이름의 사냥개의 필요성은 끝이 난 듯 싶었다.


"킥킥..독을 주겠단 약속은 지켰다."


암살 임무를 끝마친 후, 그에게 낄낄거리며 독을 투여한 것은 당가의 후계자 중 한명이었으니까.


학정홍을 기반으로 한 산공독과 미혼산, 그리고 화골산의 복합독.


산공독으로 내공을 흐트러지게 하고,

미혼산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며,

죽으면, 화골산으로 뼈를 녹여 증거인멸까지.


영물까지는 아니지마는, 꽤나 강력한 독인 학정홍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복합독이니만큼, 당천이 직접 해독할 수도 없었다.


당가의 빌어먹을 늙은이들같으니라고.


다른 후계자들은 이것보다 더 좋은 독을 내공삼아 독공을 써도 당천의 발끝조차 못따라오는데.

본인들의 후계자가 추혼비접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이 당천의 탓은 아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열등감인지, 본인들의 후계자로 무슨 부귀영화를 볼 생각인지.

자신은 쓰지도, 구경도 못해본 독을 처음으로 경험해보는게 그 독으로 독살당하는 거라니.


차라리, 이런 독을 내공으로 삼게 해줬으면..


쿨럭. 토혈과 같이 터져나온 한탄.


아.

...초미령한테, 꼭 돌아간다고 했었는데.


중독된 채 이름모를 산까지 쫒겨서, 눈 앞도 흐물흐물하고 검붉은 피를 토하기도 수차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에게 투여된 독보다 더 강한 독을 찾아내, 그것을 내공의 기반으로 삼아 극복하는 기연정도일까.


학정홍의 독을 이길만한 건, '영물의 독' 밖에 없었으니까.


"큭..."


가능성 없는 일을 생각하며, 땅을 뒹굴었다.


"쿨럭..."


있을리 없는 독물을 찾아 땅을 헤집으며, 피를 토할 때.


"뭐야? 누가 왔나 했더니.. 평범한 인간이네? 여기 누님이 잠든 곳이니 조금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푸른 머리칼의 사내.

아니면, 아까부터 있었는데 미혼산 덕분에 눈치 못챈 것일 수도 있지.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란 듯한 말투에, 어이가 없어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런 반박을 했더랬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중독당한 인간이다만.."


"오...그건 생각 못했네. 우리 일족은 독같은거에 중독되지않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태생부터 그런 일족이 어디있나.

있으면 진작에 당가에서 연구하고 해부했겠지.

미친 인간 같으니라고.


마지막으로 보는게, 초미령이 아니라 이따위 미친 남자라니..

한 많은 인생을 한탄하며,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기가 힘들었을 때.


"...뭐. 누님이 잠든 곳에서 시체 보는 것도 싫긴하네.--야. 내 피 마실 힘 정도는 남아있지?"





그게, 여의청과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내 독이 사라졌다만."


"...? 응. 내가 해독했지."


'고맙다고 말해도 좋아!'라고 하는 남자에게, 당천은 열불이 나서 소리쳤다.


"내 독공도 사라졌다고!!"


남의 내공까지 해독해버리는 미친 인간.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목숨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이거."


"지금 여기서 죽나, 당가에 돌아가서 죽나. 독공을 잃어버린 이상 내겐 매한가지다.."


머리를 감싸쥐는 당천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 짓던 남자는 말했다.


"야. 너 독 필요하다고 했지?"


"...그래."


"이거, 가져가라."


툭, 하고 던져지는 검푸른 구슬.

화악 하고 풍기는 진한 독기.


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그 남자는,


"...독각화망의 내단? 이런걸, 어디서..."


"영물이 나 좋다고 찾아오는 몸인지라. 부럽지?"


당천에게, 새 삶을 준 은인이기도 했다.




--------------





"빨리 가라니까 말은 참 안들어요."


"최소한 독공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가야된다."


그리 말하고,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던 당천은 잠시 후, 운기조식을 멈추고 말했다.


"여의청. 너는 왜 이런 산에서 홀로 사는거냐. 누님의 묘를 지키기 위해서냐?"


"묘..? 아하하. 아니. 아냐. 그냥.. 더는 세상에 나서기 싫은 절세고수같은 느낌..?"

---누님이야 때가 되면 일어나겠지.


작은 말로 해서 들리지 않는 말을 무시하고는, 당천은 생각했다.

허. 미친 인간. 힘을 숨긴 고수라는 환상때문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 말이지?

그럼에도 어찌하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설득해야지.


말을 고르던 당천은, 이내 입을 열어 말했다.


"....원래, 절세고수는 은둔해 있을 때가 아니라 은둔을 풀고 나왔을 때 멋진 법이다."


"딱히 그런걸 바라지는 않는데. 굳이 바라는게 있다면 술이 다 떨어져서 채우고 싶다는 것 정도?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싶긴 하네."


"...그럼, 나랑 세상구경 좀 하러 가자. 겸사겸사 술 좀 먹고."


"돈 없다."


진짜로, 미친 놈.

내게 준 독각화망의 내단만 가져다 팔아도 금은보화 쯤이야 넘치도록 끌어모을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말했다.


"나 사천당가 사람이다."


네 술값즈음이야 내가 내 줄 수 있다고.


"...킥. 좋네. 가보자."


그리 말하며, 사천으로 그를 데려온 건, 자신이었지.



--------------



사천에서 그와 술을 마시기도 여러번. 

오늘도 가문에서 일어난 일을, 그와 같이 술을 들이키며, 한탄했다.


"강제로 약혼이 걸렸다. 내게는 초미령밖에 없는데..."


"그러냐. 어디, 누구인지 얼굴 좀 보자....오? 이쁘다?"


미친 인간.

미친 놈.

미친 친구같으니라고.


어찌 저찌, 운유향과 여의청이 이어져서, 자신도 문제없이 초미령과 이어질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


"..운가로 가냐."


"그래."


"..잘 지내라."


"너도. 임마."


그렇게, 오래 헤어지게 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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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각화망의 내단을 기반으로 다시 독공을 쌓아올린 그가 당가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을 때.

그의 부하가 말했지.


"...운가에서, 청 대협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여의라는 성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청.


"...다시 말해라."


"...청 대협이, 죽었습니다."


여의청이,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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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여의청이 죽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 수년을 썼지만, 여의청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여의 가家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긴 했지만..

이는, 신빙성조차 없는 글귀에 불가했고.



고대의 기록에 허무맹랑한 내용이 몆 줄 쓰여있는게 전부인 글.


뭐?


용龍의 후손?

말같잖은 소리.


그런게 있다치면 모용세가는 북두칠성의 화신이요, 황보세가는 거인의 피가 섞였고, 북해빙궁엔 태초의 지모신이 잠들어있겠지!

이름있는 산봉우리 하나마다 신선이나 절세고수 하나, 둘씩 숨어있고 말이다!


단 하나. 알아낸 것은,


....운주.


그 아이가, 여의청의 죽음을 죽음을 밝힐 유일한 열쇠임이, 분명했다.

여의청이 실종된 몆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흔적.


그러니,


"...운유향..."


그 아이를, 데려가야겠다.

여의청을 잊지못해, 그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차별하는 네게, 더 이상 운주를 맡겨두고 있지 못하겠다.



그러려면 일단...


가주가, 되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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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과거를 떠올리며 초미령과 대화하고 있던 당천에게, 누군가가 뛰어왔다.


당은주.

자신의 딸.


운주랑 같이 방에 들어갔을텐데, 왜?


"...아빠...!"


"왜 그러느냐."


"그, 약혼자가 화나게 해서, 아주 약간 아플 정도만 독을 썼는데..!"

-걔가, 눈을 뜨지 않아...해독도 안돼...도와줘 아빠...



....여의청의 자식이, 중독됐다고..?

그럴리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