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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가 떠나는 날. 아침.


운가에서 준비한 패물을 들고 운주가 떠나는 일에 운가의 사람들은 불만을 토했다.


무명잡졸의 사생아를 키워준 후에, 운가의 재산까지 나눠줘서 다른 곳에 보내냐는 방계의 하소연이 운가의 곳곳에 은밀하게 울려퍼졌다.


저 사생아의 아비는, 운유향과 당천의 약혼을 파기하게 하여 운가가 당가에 막대한 피해보상을 하게 했었고,

저 사생아는 또다시 당가와 약혼하여 패물을 보내는구나.


직계가 당가에게 재산을 전부 빼앗기고 있다는 하소연.

방계 사람들의 입에서 운가 직계에 대한 불만이, 한탄처럼 터져나왔다.


다행이라면, 운주가 있는 비천각은 검각산으로 통하는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일까.

다행이라면, 직계가 있는 곳 주변에선 사람들이 말을 조심한다는 것일까.


운무엽도, 운유향이 이 소문에 대해 모르고 있는 지금.


"....."


자신의 방 안에서, 운미리는 앉은채로 눈을 감고있었다.

그야, 눈을 뜨면 보이는건 선명한 증오일테니까.


자신이, 이런 몸으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지금 뛰쳐나가 운주를 떠나지 못하게 할텐데.

지금 뛰쳐나가, 감히 입을 여는 분가의 목을 쳐버릴텐데.


..운무엽의 머리를 날려버릴텐데.


미약하게 박동하는 심장에 분노가 차올랐다.


병약한 운가 직계. 즉,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운주를 희생양으로 만든 운무엽.

핏줄을 우선하는 늙은 노괴.


죄인은 누구일까.


병약하게 태어난 자신?

운주를 희생양 삼은 운무엽?

운주를 외면한 운유향?

아무 말도 없이 죽어버린 아버지?


뭐가 되었든, 전부 역겨웠다.


눈을 감고있던 미리가 눈을 떴다.


저 멀리. 밤새 중얼거리며 바늘질을 하던 운유향이 일어나서 운미리에게 다가오는 소리.

저 멀리. 운주가 자신의 소박한 짐을 전부 포장하고 비와 대화하는 소리.


그리고, 방계의 대주들이 소근거리는..


눈엣가시같은 가짜 직계가 데릴사위로 사라지니,

허약한 운미리만 죽으면 본인들 중 한명이 가주가 될거라 서로 낄낄거리는 소리.


"미리야. 일어났니?"


"...응."


운미리는, 세가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소리를 듣고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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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괜찮아?"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서일까.

기운없는 발걸음으로 비가 내 말을 외면하며 걸어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어."

비에게 변명하며, 남은 일을 생각했다.

이미 짐은 전부 마차에 실었고,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젠, 작별인사만 하면 되겠지.


"가자. 비."


운가를, 떠나러.


[쪼르르르륵...]


비는, 결국 그리 작게 울며 어깨위로 올라왔다.


천천히, 마차가 있는 정문으로 걸어갔다.


방계의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작은 섭섭함.

그래도, 마지막인데 인사도 하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마차가 있을 곳으로 걸어갔다.


데리러 올 마부는 당가에서 보낸다고 했었지.

그곳에 가서 서있으면, 될테다.


그리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도착한 마차.


그 앞엔,


"...어?"


운부인과, 누이가 있었다.


왠지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는 운부인과, 콜록거리면서도 이쪽을 보고있는 누이.


그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왔구나."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며 다가온 운부인이,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줬다.


따스한 손길.


"...손을, 내밀어 보거라."


"네..네!"


당황스러웠다.


이윽고, 손목에 걸리는 푸른 매듭 하나.

아름다운 매듭에, 정신이 팔렸다.


"...운주야."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아니. 

...기뻐서.


멍하니 나온 대답.


"네..네..? 왜 그러세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운부인.

그 끝에, 어렵사리 나온 말.


"...잘 지내렴."


"가..감사합니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뻤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기에.


"..운부인도, 건강히 잘 지내세요."


그래서였을까. 평소에는 하지 못했을 말을 하게 된 것은.


내 말을 들은 운부인의 눈동자가 다급히 커지는 모습을 봤다.


"운..!"


운부인이, 무언가를 다급하게 말하려고 할 때.


문지기가 외쳤다.


"...당...당가의 가주께서 오셨습니다!"


열리는 문 앞에 보이는 한 사람.


흑색 일색의 사내.

차가운 눈매의 사내였다.


이윽고, 잠시 두리번 거리던 사내는 일직선으로 똑바로 다가왔다.


"안녕. 운유향."

--마부하러 왔다.


내 장인어른이자 당가의 가주. 당천.


한 가문의 가주가, 홀로 다른 가문에 마부를 하러 왔다고..?

솔직히, 미친 사람 같았다.


"...이 아이인가."


나를 힐끔 내려다 보며 그리 말한 사내는, 담담히 말했다.


"작별인사가 끝났으면 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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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당천이 운주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당천이 데려가기 전, 아이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운부인.


처음으로, 운주가 나를 지칭한 말이 운부인이었다.


"하하..."


어미조차, 아니었다.


"흐...읍..."


운주는, 나를 어미로조차 생각 안했다.


섭섭해야 될텐데.

분노해야 될텐데.


고작 사생아를, 입히고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될텐데.


정작, 그 말을 들은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머리는 운주의 말에 납득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어미답게 행동한 적이 있어야 어미로 생각하겠지.


미리를 방으로 먼저 보내고,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로 걷는지는 몰랐다.


그냥, 본능적으로 걸었다.


걷고, 걷다가,


정신차려보니 도착한 곳은 비천각의 뒷편에 있는 남편의 묘.


그 묘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왔다.


'당신의 아이가, 오늘 운가를 떠났어요.'


난, 무엇을 질투하고 있었을까.

어미 없는 아이를, 질투하고 있었을까.


그리 애정을 바라던 아이를.

고독하게 해놓고선.


이제와서 그 아이에게, 어미라고 듣고 싶어하는게,

부끄럽고, 슬프고, 괴로워서.


'...미안해요.'


운미리도, 운주도, 무엇하나 지키지 못했다.


운주는 영약을 가져갔을게 분명했고,

영약이 없는 미리는 죽겠지.


'미안해요. 여보.'


하염없이 묘를 끌어안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어둠이 적적하게 내려 앉은 저녁.


탈진할 정도로 눈물을 흘린 몸에, 추위가 스며들어왔다.


천천히, 비틀거리는 발로 비천각으로 향했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싶었다.

아니. 그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진짜, 운주가 없다는 것을.

떠났다는 것을.


더이상, 그 아이에게 어미로 불릴 기회는 없다는 것을.


비천각에 들어서, 운주와 차를 마셨던 곳으로 가기위해 낡은 장지문을 열었다.


그리고, 운유향의 눈에 보인건,


그 안에 있던건,







정갈하게 정리해놓은 영약들.

운주와 차를 마셨던 식탁 위에 있는, 쪽지 한 장.


"....아..."


비틀거리며, 쪽지를 보려갔다.


봐야, 했다.


[잘 지내세요. ■■■]


작별인사의 뒤에있는, 검은 먹자욱.

글자를 썼다가, 먹으로 눌러 덮어 쓴 자욱.


"아...아아...!"


그 글자는, 어머니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운유향의 절규가, 저 하늘높이..


멀리 멀리,


사천의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1장

구름을 나간 구슬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