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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후,

운유향은 죄책감이 치밀어 올라 도망치듯 비천각을 나왔다.


"윽...웩..."


자기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왔다.


미리를 위해서라면, 약을 받아야 됐고,

운주를 위했다면, 그 자리에선 떠나야 된다고 하지 말았어야 됐다.


그녀는, 그걸 알고있었다.


모순된 행동.


미리한테도, 운주한테도, 이득 하나 없이 괴로움만 강요하는 선택.


그럼에도, 운유향이

소년의 감정을 배신하듯이 말한건,

소년이 모아둔 약을 거절하며 떠나야 된다 말한 이유는.


지금, 말하지 않으면, 그 아이를 떠나보낼 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 올라서.


이제와서 붙잡는건 미련이고, 잡념이었다.


끊을 수 있을 때.

끊어야 된다.


끊어야만, 했다.


감히, 이제와서 불현듯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둥. 보낼 수 없다는 둥.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됐다.

할 수 없었다.


어찌 감히, 그러겠는가.


무엇보다..


무엇보다, 운유향의 가슴 속에서 솟아 올라온 의문이, 혼란이, 판단을 계속 어지럽혔다.


남편이, 운가를 나가기 전에 한 말.


꼭, 미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서 돌아오겠다고.


고작해야 뒷산에, 저만큼 많은 영약이 숨어있을리가 있을까.

있다고 한들, 저런 영약을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비.


그 푸른 새 덕분이겠지.

날개, 눈이 1개씩 달린 기묘한 새.


영약을 찾을 수 있는 새라니.

듣도보도 못했다.


'꼭 미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서 돌아올게.'


그리 말하며 떠나갔던 남편.


세가의 문앞에, 목내이가 되어 죽어있던 남편.


남편이 데려온, 기묘한 새와 그 새가 따르는 아이.


"...윽..."


어쩌면,

'혹시, 남편은 약속을 지킨게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이.


목내이가 되어 돌아왔던 남편이...

배신자라 생각했던, 남편이.


사실, 목숨까지 걸어서 결국 미리를 치료할 방법을 데려온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계속 맴돌아서.


머리에서 맴도는 생각과, 가슴에서 솟아올라오는 죄책감을 게워내듯, 헛구역질만 계속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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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는,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채 쪼그려 앉은 채로 있었다.


이미 무릎 부근은 눈물때문에 축축하게 물들었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물대신,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된 것 같았다.


[쪼르르~ 쪼르르륵~]


"...비."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비도 화났을텐데.

울지 말라고 계속 노래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비.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비를 쳐다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냉큼, 손 위에 올라오는 비.


"..미안해."


[쪼르륵!]


괜찮다는 비의 말에, 그나마 웃음이 나왔다.


응. 내곁엔 비가 있었다.

멍청하게 다른 것도 바란 내가 욕심쟁이였지.


너무 울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온 몸에 심한 탈진감이 들어서, 주방에 갔다.


"...."


다 식은 주전자에 있는, 운부인이 끓이고 남은 차.


잔에, 차를 따라 마셨다.


"...써."


너무 써서, 오히려 머리가 맑게 개이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럴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

짐을 싸자.

떠날 준비를 해야지.


응. 내가 미련했던거였어.

처음부터, 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라다니.

멍청한 짓이었어.


그래도, 사천당가는 나를 직접 골랐대.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싫어하면 안데려갔을테니까...


분명, 미워하진 않을거야.


있지. 비.


사천당가 무엇을 가져가면 좋아할까? 같이 골라줘.




[쪼르르륵.]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비는,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고는 창고 깊숙히 들어갔다.


위험하다고 절대 못들어가게 했던 창고.


가끔, 아침에 일어났을때 비가 사라져있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비가 피투성이가 된 채 물고왔던 것들을 모아둔 창고.



[쪼륵....쪼르르륵...]


비는 부리를 떨며 그것들을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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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운미리의 눈이 운유향을 비난하는 듯이 보여서, 드물게도 운유향은 딸의 눈을 피했다.

체념, 슬픔, 안타까움, 의문...


아마도, 착각이겠지.


자신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착각임이 분명했다.

그야, 오늘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미리가 알 리가 없었으니까.


...약당에서 받아온 기침을 줄여주는 약과, 기를 보해주는 약을 미리한테 마시게 하고는 운유향은 말했다.


"오늘은, 할 일이 있으니 일찍 자거라."


"...응."


할 일.

하고싶은, 일.

운주에게, 줄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 아이를 직계로 받아들인건 나다.

양자로 삼은 것도 나다.

내 상처때문에, 그 아이를 방치한 것도, 나다.


어미라고 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단 걸 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하나의 선물 즈음은 괜찮지 않을까.


어둠이 적적하게 내려깔린 밤.


운유향은, 자신의 방에 있는 화장대의 서랍에 손을 뻗었다.


서랍에서 나온건, 2개의 매듭.

동심결(同心結)과 반장결(盤長結).


모든 매듭엔, 뜻이 있다.


동심결.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증명으로서 연인이 나눠가지는 매듭.

반장결.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하는 부부의 매듭.


'전부, 내가 만들어서 그이에게 줬었지..'


그 매듭들을 사랑스럽게 추억을 그리며 바라보던 운유향은, 이내 청색 실과 바늘을 꺼냈다.

남편이 죽은 이후, 단 한번도 손댄적 없던 바늘을 어색하게 쥐어잡았다.


내일이면, 운주가 떠난다.


이렇게 늦게서야 운주에게, 무언가.. '증표'를 주고싶어서.

두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남매라는 증표를.


그러니까... 지금 만들 매듭은,


여의결(如意結).

모든 일이 바라는대로 되길 기원하는 매듭.


여의결을 만들자고 생각한 순간, 운유향의 입에 슬픈 미소가 배어나왔다.


있잖니. 운주, 미리야.


너희들이, 왜 운가의 성을 쓰는지 알고있니.


네 아비는, 오래전 멸문한 여의 가家의 숨겨진 생존자란다.

푸를 청(靑)자를 써서 여의청(如意靑).


남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세가에도 말하지 않았으니, 자식인 너희들도 모를테지.


알고있는 사람은, 당천과 나 뿐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그 이름을 되내이니,

청색 여의결과 남편은 이름과 색이 비슷할 뿐인데,

청색 여의결이 마치 남편의 상징마냥 생각되었다.


'아이들이, 귀히 여겨줄까.'


운유향은 실소를 흘렸다.


아이들이 고작 매듭을 귀히 여길리 없으니까.

며칠만에 잃어버리겠지.


그저, 자신의 쓸데없는 망집임을 알아서 웃음이 나왔다.


...내일이면 떠날 운주.

이미 떠난, 남편.


...괜찮다.

괜찮았다.


...당천은, 운주에게 잘 해줄테다.

그는, 남편의 친구였으니까.


"..괜찮아.."


운유향은, 매듭을 만들며 그리 끊임없이 되내였다.


괜찮다.

괜찮다고.


떠나는 운주는, 괜찮을 거라고.


떠나보내는 자신은 괜찮지 않을 거란걸, 생각하지 않으려는 듯.


계속, 되내였다.


오랜만에 잡은 바늘은 아직도 날카로웠다.

그래서인지, 


손에서는 붉은 피가 만들던 여의결을 적셨고,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여의결을 적셔서,


수도없이 많은 실을 끊어내면서, 운유향은 되내였다.


"...괜찮다."


남편이 떠나가도 괜찮았다. 버텨냈으니.

운주가 떠나가도, 괜찮을테지. 괜찮고자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끊어낸 것 아니던가.


밤새, 운유향은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여의결을 짜며 괜찮노라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의결 두개를 다 짠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떠난 것처럼,

운주가 당가로 떠나가는 것처럼,


미리도, 언젠가 나를 떠나가겠지.

한달 후가 될지, 일년 후가 될지, 십년 후가 될진 모르지만.


결국 나만 홀로 남게 될테다.


이곳에.

홀로.


..

.

.

[짹. 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

....운유향은, 떠오른 햇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주를 떠나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