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당가에서...운주한테 혼약을?"


"..그래."


사천운가.

사천 검각산에 위치한, 나름 이름있는 중소문파.

그곳의 소가주이자, 몆년 전 남편을 여읜 운유향은 가주이자 아버지인 운무엽한테 믿지 못할 소식을 들었다.


사천당가에서, 운주한테 혼약을 신청했다는 믿지 못할 소식.


첫번째로 놀란 부분은, 당가가 다시 운가에게 약혼을 신청했다는 점.


예전에 운유향또한 당가에 혼약이 있었지만, 유향이 지금은 별세한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혼약을 파기한 이후 쭉 당가와의 사이가 안좋았다.


두번째로 놀란 부분은...


그 혼약의 대상자가, 운주라는 것.


그야, 당가또한 알고 있을테니까.


운주는, 별세한 남편이 데리고 온 혼외자식.

운유향에게 있어, 더러운 사생아나 다름 없었다.


예전에 운가와 당가가 했던 혼약의 이유또한, 운가의 오행에 가까운 체질을 당가에 편입시키고 싶었어서 당가에서 많은 재물을 주며 혼약을 신청 했었고,

그 혼약을 운유향이 파기함과 동시에 혼약을 어긴 운가에서 많은 배상금을 당가에 줘야 했었던 일이 있었던지라, 운유향의 의문은 깊어졌다.



그야,

운주랑 혼약을 해서 당가가 얻는 이득이 없으니까.

운주는 남편의 사생아. 운가의 피가 섞여있지 않지만, 별세한 남편의 애증스런 흔적이니만큼 운가의 이름을 주고 키우던 사생아였으니까.


당가가 운가랑 혼약을 맺어서 얻을 이득은 없고, 손해만 있는 혼약을 당가가 먼저 제안한 상황.


이에 의문을 품은 운유향이었지만 운무엽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당가의 가주가, 당천으로 바뀌었다."


"....아하."


당천.

운유향의 예전 약혼자.


그 사람이면, 운주를 데려가려는 것이 납득이 됐다.


당가가 운가의 체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천이, 친구의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네가 가서 운주한테 알리고, 준비 시키거라."


"네. 그럴게요. 아버지."


.....사생아한테도, 이게 좋은 결말일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운유향은 사생아가 머물고있는 비천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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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남짓한 소년과 새가 비천각 뒤에 있는 작은 뒷산에 있었다.


한쪽 눈과 날개가 없는 새가 총총거리며 뛰어가더니, 땅에서 난 풀 하나를 콕콕거리며 쪼았다.


"이거 뽑으란거지? 비."


[쪼르르륵!]


비라 불리운 새가 맑게 울었고, 운가의 사생아, 운주는 손으로 조심스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운가에서 소년을 위해 호미따위를 줄 리가 없었고, 사실 호미가 있었어도 쓰면 안될테니까.

호미의 화기(火氣)가 문제가 될지 어떻게 아는가.


조심스레, 풀의 뿌리 하나도 상하지 않게 맨손으로 풀을 전부 뽑은 운주는 말했다.


"슬슬 연못에 사는 잉어들 밥 줘야 될 것 같으니까 내려가자. 비."


[쪼르르륵~]


동의한다는 듯이, 길게 울며 운주의 어깨로 올라타는 비와, 비가 어깨에 올라타길 기다렸다가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 소년은, 이내 산 입구 즈음에서 한 소년들을 보았다.


"아.."


운주는 소년들을 보고 몰래 피해가려고 했지만, 운주가 소년들을 피하는 것보다 소년들이 운주를 발견하는게 더 빨랐다.


"아. 저 머저리. 또 땅이나 파면서 놀았나보네?"


"아..안녕.."


운씨세가의 무력단체는 총 5개가 있다.

화예대, 수지대, 목인대, 금의대, 토신대


이 5개를 일컬어 오검각.

그리고 각 대의 대주를 맡는 운가의 방계.


화예대주, 수지대주, 목인대주, 금의대주, 토신대주.


각 대주들의 아이들.


운가의 피도 없는 주제에, 명목상 운가의 직계로 대우받는 운주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방계의 아이들.


말이야 운가의 직계라지만, 운주가 직계로서 대우받는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대주 하나 없는 비천각의 비천각주라는, 허울뿐인 이름.


"머저리라고 하면 어떻게 해~ 비천각주님이라고 해야지. 안그래요. 비천각주님? 얘가 참 싸가지가 없어요."


"태생이 비천해서 비천각주라고 욕하던건 너잖아."


서로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면서 낄낄거리는 5명의 소년.


"그나저나, 뭐 좋은 거 얻으셨나보네요? 품에 소중히 뭔가 안고있는거 보니?"


"아..아냐..그냥 가.."


"아유. 우리같은 방계한텐 보여줄 가치도 없나보다. 그쵸?"


"..아..아냐.. 자..봐.."


소년들보다 어린 운주는, 언제나 이런 식의 화법에 약했다.


소중히 품고있던 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잔뜩 겁먹어있는 아이를 보는 비가 애처롭게 울었다.


[쪼르르르륵...]


"별거 아닌 잡초를 뭐 그리 소중하게 품에 안고 다니냐? 머저리같으니.."


맨 처음 운주를 발견하며 머저리라 칭했던 아이가 이렇게 말했지만,

운주한테 비꼬며 존댓말하던 아이는, 풀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한채 말했다.


"거.. 그 잡초, 제가 버려드릴께요. 저 주세요."


"..아..안돼."


"아니. 잡초 버려드린다니까? 아~ 방계의 호의따윈 필요없다?"


"..잡초 아니야."


"됐고, 내놓으라고!"


크게 소리치며, 주변의 아이들한테 풀을 뺏으라고 말하는 소년.

소년들이, 운주의 팔다리를 옭아매고 풀을 뺏으려 했다.


[쪼르르르르륵!!!]


이에 놀란 비가 크게 울며, 하나 밖에 없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아이들을 쪼기 시작했을 때.


"이게 무슨 소란이냐."


멀리서 이 모든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운유향이, 심기 불편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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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유향은 이 사태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운유향이 나옴과 동시에,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있는 방계 아이들을 무시하고, 눈을 돌렸다.


방계한테 잡혀 땅을 뒹굴면서 온갖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생아...


'모자란 것 같으니.'

사생아에겐 과분한, 직계라는 이름값을 주고 각주라는 자리도 줬다.


...내 남편이 가지고 있던, 비천각주의 자리를.


그런데, 방계한테 아무 말 못하고 겁에 질려있으니 저따위 짓거리를 당하는 것 아닌가.


비천해서 비천각주?


방계따위가 직계를 보며 할 말도 아닐 뿐더러, 직계가 들고 있는 걸 강제로 뺏으려 하는것도 한심스러웠고,

사생아한테 지위까지 내려줬건만 아무 저항 못하고 맞고 있는 저 운주 또한, 한심스러웠다.


"감히 비천각주를 비천하다고 한 아이가 누구냐."


"....."


"내가, 네 아비들에게 알리길 바라느냐?"


"저..접니다.."


화예대주의 아이가 손을 들며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유향은, 아이의 뺨을 치며 말했다.


"주제모르는 것."


비천각은, 운유향의 남편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었다.


운유향이 당가의 혼약을 깨고 데려온 사람이 고작 무명소졸(無名小卒)이라고 수근거리던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던 자리.

날 비(飛). 하늘 천(天).

내 남편은, 언젠가 너희를 뛰어넘어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를거라고.


비록 지금은 우리의 딸. 운미리가 많이 아파서, 운미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기위해 세가를 떠나있지만.. 곧 돌아와, 그 뛰어남을 알릴거라고.


....


미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고 내 곁으로 돌아온다던 남편.

몆년째, 행방을 알 수 없던 남편.


....그리고, 사천운가의 대문 앞에서 발견된, 목내이가 된 채로 죽어있던 그녀의 남편과 그 품에 소중히 안겨있던 갓난 아이.

갓난 아이 옆에 안절부절 못하던 새가 물고있던, 주珠란 글자가 쓰여진 종이.


머리가, 아찔해졌다.


"......다들 물러 가거라."


"...네."


분가의 아이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운유향은, 이내 운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내 남편이 나와 죽어가던 미리를 버릴만큼, 소중히 여겼던 여인의 아이인가.'


이리도, 한심한 모습의 아이를.

이리도 한심한 아이의 어미를, 우리보다 사랑했었나.


그럼에도, 죽을 땐 운가에 와서 죽은..

배신자.


그리고 그런 배신자를 아직도 사랑하여,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를 아이한테 직계의 자리를 준 나.


세상이, 운가가, 당가가, 남편이, 그녀가.

모든게 다, 한심하여서.


언제나 이 아이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운유향을 미치게 했다.


머릿 속에 어지러이 떠오르는 생각을 치우고, 운유향은 운주에게 말했다.


"....품에 쥐고있는건 무어냐."


"여..여기요.."


다섯 잎의, 길다란 잎.


그 잎을 본 운유향의 입에서, 침음성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오룡초?"




"네..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쪼르르르륵!]


아이의 옆에 있던 새가 시끄럽게 울었지만, 오룡초를 보고있는 운유향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분가의 아이들이 이 풀을 뺏으려던게, 이런 것이었나.'


뒤늦은 깨달음과, 욕심이 솟아올랐다.


영약.

지금도 방 안에서 홀로 기침하고 있을 미리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영약.


자신의 친 딸.

미리를 위해서라면...


"...."


아무 말 없이, 오룡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운유향을 지켜보던 소년은, 이윽고 운유향을 보며 말했다.


"...필요하세요..?"


"...그래. 네 누이..미리한테 주고 싶구나."


"구해주셔서 감사하니까..드릴게요."


억지로 밝은 행세를 하듯이, '자! 여기요!' 하며 오룡초를 내미는 아이.


[쪼르르르륵!!]

멍청한 소리 하지 말란 듯이, 운주의 머리를 쪼는 새를 보니, 부끄럼이 솟아올랐다.


저런 새조차도 영약의 귀함을 안다.

사생아..운주가 모를리가 없겠지.


저 아이한테 있어서, 방계의 아이들이나 나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강도나 다름없겠지.


그럼에도, 딸을 위해서라면.


손을 내밀어, 영약을 받았다.


부끄러움과 영문모를 죄악감이, 오룡초를 받아든 손을 통해 등골을 타고 오르며 뇌리를 찔렀다.


"...고맙구나."


....이 아이한테, 할 얘기가 있었는데.

방계의 아이들. 오룡초. 그리고, 미리한테 영약을 가져다 줄 생각과, 죄책감까지 겹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었다.


"...다음에 다시 오마."


결국, 운유향은 그리 말하며 도망치듯이 비천각을 나왔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녁.

 딸에게 먹일 영약을, 사생아에게서 뺏었단 생각이 머리 속에서 가라앉고,

뒤늦게 운주를 찾아간 이유가 떠오른건, 미리에게 약을 달여 먹인 이후였다.


'...운주와 당가와의 혼약을 말하려고 했었지.'


...너는 이제, 사천운가에서 나가야 된다고 말하려 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