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파조사님께서 등선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 있다지요


‘협俠을 행함에 후회는 없었노라’


저는 협이 무엇인지 압니다.

검을 잡은 지 10년조차 지나지 않은 녀석이 무엇을 아느냐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불로 터를 다진 마을이 다시금 불로 사그라들던 그날

비루한 화전민들을 산적에게서 구하겠다며 나선 무인들의 등에서 협을 보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날 본 등 뒤를 따라가고 싶어 무작정 검을 휘두르기만 하던 모습을 하늘이 가엾게 여기셨는지 우연히 뵙게 된 노사老師께서 주신 목패 하나가 저를 이 문파로 이끌었습니다.

길게 기른 수염이 마치 신선 같았던 문주님.

항상 진중한 모습으로 검식을 펼치던 대사형.

뺨을 도화빛으로 물들인 채 몰래 당과를 건네주던 아가씨.

열 살이 넘어 늦게 무공을 접한 저를 따뜻하게 받아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사께서 다녀가신 이후 차가워진 모습으로 수군거리던 말도 기억합니다.


‘어르신의 제자도 아닌 것이’


‘무지렁이 화전민 녀석’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아가씨께서 문주님의 명으로 폐관 수련에 들어간 이후 저는 더 굳게 검을 쥐었습니다.

눈을 감고도 펼치는 기본공이 어설프다며 상승의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말에도 검을 놓지 않았습니다.

약관을 넘기고도 기본공을 벗어나지 못한 문파의 수치라는 소리에도 제 검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협을 행하다 검이 부러지면 돌아와.’


폐관을 마친 아가씨께서 처음보는 차가운 얼굴로 검을 내어주신 날 

문파의 검보다 두꺼워 날조차 세우지 않은 그 검을 쥐고 산문을 벗어나던 그날은 검을 놓고 싶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그래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의 무인들처럼 협을 행하기 위해 무공을 배웠으니까요.

협을 행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니까요.


산적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했지요.

강해지기 위해 비무도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절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초대를 받았습니다.

무림맹이란 단체를 세우는데 자리를 빛내달라더군요.

그날 먼발치에서 문주님과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를 떠났습니다.

제 검은 상했을지언정 부러지지 않았으니까요.


아가씨께서 제게 손을 뻗는 듯 했지만 착각이었겠지요.


저는 다시 협의 길을 걸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처럼 제 등에서 협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외에서 마교가 준동했다.’

‘민초를 죽여 피를 마신다.’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 남지 않는다.’


내가 가야할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협의 끝은 그 곳에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위해 홀로 길을 막으며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마교주가 쓰러지는 날,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 검이 부러졌습니다.


유난히 푸른 하늘만이 눈에 담기는 그 순간에 하늘을 가린 건 아가씨의 모습이었습니다.

차가운 얼굴이 아닌 도화빛의 뺨과 물기 가득한 눈망울을 한 얼굴.

어째서 울고 계신 걸까요

저는 슬픈 표정을 짓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명하신 대로 검이 부러질 때까지 협을 행했는데.


협을 행함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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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형식+장편을 쓰고 싶었는데 쓰고 지우고 반복하다 영원히 반복할 것 같아서 단편으로 고침

근데 단편으로 고치니까 많이 부족함

작가님들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