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금방 돌아간다니까!"


말 잘듣던 딸, 후순이는, 대학을 가고 나서 완전히 변했다.

그동안 수능이다, 내신이다, 그런 것에 데여서였을까

여기 저기 치이기보다는 여기 저기를 취해서 다니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꼈다.



"너 자꾸 그러면 통금 건다!"


아버지의 말에도 그 순간만큼만 예,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 정도였을 뿐이지

다음 날만 되면 다시 또 한 잔 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걱정은 이해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서 돌아가셨으니까.

근데, 그러면, 술 먹고 운전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빠랑 약속 지켜. 운전 하기 전엔 술 먹지 마. 그것만 지키면, 아빠 차 마음껏 끌고 나가도 돼."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술 좀 줄여. 너 간이 침묵의 장기인 건 알지? 간에 문제 생기면, 어느 날 갑자기 훅 가는거야."


그렇지만, 사랑과 과보호는 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한 잔, 저 사람과 한잔.

뭐, 술보다는 술자리가 좋아서 만나는 거지.

아니, 술 사준다는데, 공짜인데, 안 가?

쟤가 나한테 고백한 거 차긴 했지만, 아니, 찼으니까, 좀 미안해서, 그래서 한잔 좀 할 수도 있지.



매일 매일이 술자리였고

결국, 후순이의 아버지는 후순이에게 잔뜩 화를 냈다.


"너, 수강신청 시간표 봐봐. 앞으로는 내가 너 태워줄 테니까, 그 이외엔 나가지 마."


성인이 술자리 하나 제대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후순이는 반항을 하려고 했지만

후순이의 아버지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서 그만두었다.




"후순아. 오늘 너 생일이잖아. 생파 안 해?"


"아, 우리가 술 사준다니까? 요즘 자꾸 빼네, 너?"


학과 동기들, 선배들이 자꾸 후순이를 꼬셔대던 그 날.


"오늘은, 너 생일이니까, 집에 케이크 사 놨어. 딸. 미안해. 엄마가 그렇게 된 뒤로는, 아빠가, 마음이 조금 그래서 그래."


그래도, 아버지의 말에, 조금 마음이 약해져서 술자리를 거부하고 집에 돌아온 후순이의 생일날


아버지와 단 둘이 먹는 자리는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잠깐만, 후순아. 아빠 잠깐 일이 생겨서, 조금만 나갔다 올게. 잠깐만 기다려."


그리 말하고 아버지가 나간 사이 몰래, 후순이는 아버지의 차 키를 훔쳐서 술자리로 향했다.





붓고, 마시고, 떠들고. 친구들, 선배들은 모두 자기를 떠받들어 주고,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고, 잔뜩 웃고.


그러다 핸드폰을 보면, '어디야?' 라고 떠 있는 아버지의 메세지.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한창 마시다가


'너 어디야? 언제 올 거야? 너 또 술자리야? 빨리 돌아와. 안 돌아오면, 내가 너 찾으러 갈 거야.'


라는 메세지에, 후순이는 드디어 일이 좀 커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기는 떠나기 싫었다.



잔뜩 마시고, 새벽 세시. 아무도 없을 시간, 이 쯤이면 아버지는 주무시겠지, 하고, 후순이는 그제서야 술자리를 파했다.

아버지의 화는 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지, 뭐, 하고, 대리운전을 콜했다.


그 날따라 대리운전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한 시간이요?"


"죄송합니다. XX회사 회식 때문에, 여기가 사람이 좀 밀려서..."



에이 뭐

새벽 세시인데

길거리에 누구 있겠어?




차를 몰았다. 조금 밟아보았다.

앞은 잘 보였고, 기분은 들떠올랐다.


"뭐야, 운전 별거 없잖아."


천천히 갈까 하고 조금 차를 몰다가

그래도 아빠가 기다리니까, 집에 빨리 가서 아빠에게 사과하면 봐 주겠지


하고 엑셀을 밟다가, 쿵, 하고 멈췄다.


"아, 씨발, 뭐 박은 거야."


재수도 한참 없네, 하고 뭘 박았나 슬쩍 내려보았다.





익숙한 점퍼. 손에는 자그마한 케이크.


"... 아냐, 설마... 설마, 아냐..."


손에 쥔 편지봉투. '사랑하는 딸에게' 라고 적힌.


"아냐, 아니지? 아빠 아니지? 아니...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어느새 희끗희끗해지고 듬성듬성해진 뒤통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뒷태.


"... 아니야, 아닐 거야, 진짜, 진짜 아닐거야..."


흐르는 붉은 피, 미동도 없는 몸.


"... 아... 빠?"


후순이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사람이

자기 생일을 축하해줄 물건들을 든 채로

그렇게 싸늘하게, 차에 치여 누워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만취한 운전자가, 자신의 부친을 차로 친 뒤, 옆에서 누워 있는 채로 발견되어있습니다."


뉴스의 소리가 멍하니 들렸다.


"저거, 당신 일이에요. 죄책감이 좀 드세요?"


앞에 있는 형사의 말도 멍하니 들렸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습니까? 대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빠에게 혼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었는데. 친구들과 생일 날 한 잔 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대리운전이 안 잡혔을 뿐이었는데.


"옆에는 왜 누워있었어요?"


한참 울었던 것은 기억이 났다. 일어나라고 소리친 것도 기억이 났다. 오열하다 쓰러진 것도 기억이 났다. 시끄럽다고 주민이 신고했다고, 경찰이 온 뒤, 자신과 아버지를 흔든 것도 기억이 났다.


"것, 참, 음주운전이고, 고의성이 없고, 초범이니까, 법원에서 반성하는 태도 보이면 뭐 어떻게 될 수도 있을 거에요."


"... 안, 아니요... 아니, 아니, 그... 그냥, 그..."


생각하는 말은 많은데

말이 이어지진 않았다.


"아니, 이러려고 한 게, 아빠, 내가, 그... 어, 그... 흑, 그게, 아빠한테, 그..."


형사 앞에서

후순이의 말은, 끝없이 입 속으로 나오려다가 속으로 맴돌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긴, 입 밖으로 내밀려 하더라도, 들어줄 사람이 이미 없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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