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에게 날아들어 온 선물.

작디작은 0.5 밀리 사이즈의 볼펜 한 자루였다.

볼펜 뚜껑에 붙여진 작은 포스트잇에는 [ 잘 지내렴 ]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 이럴 거면 그냥 줄 생각, 하지를 말지...”



사실 선물은 후원의 일종이었다.

그런 소녀에게 한 명의 후원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의 변변찮은 소식이 일파만파 퍼지며 득달같이 달려든 후원금들 속에.

그 속에서 몇 번이고 후원을 중단치 않고 날마다 후원을 해오는 유일한 익명의 후원자.



소녀는 그런 후원자를 향한 궁금증을 키워만 갔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일까.



변변치 않을 것만 같은 후원자의 집안 사정이 가끔은 오지랖을 부려 걱정을 해보기도 했다.

결국은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혼자서 퉁명스럽게 이야기해보기도 한다.



“이럴 거면, 그냥 나도 편지 하나는 보내봐야 하나...”



고민이 되는 소녀였다.

언젠가 두둑히 날라온 후원금에 그쪽의 경제 사정이야 열악하든 아니면 빈곤하든, 처음에 소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줄어드는 후원과 그 가치에 대해 후원자의 집안 사정을 마냥 일 없을 것이라며 삼킬 수는 없던 것이다.



“근데 익명이니까 찾을 방도도 모르겠네… 씨... 글 쓸 거면 한 번쯤은 주소라도 슬쩍 남겨보시지.”

괜한 격려와 위로만 써 보내던 글만 있었기에, 옛날 것들을 헤집어봐도 수확은 없었다.



“편지…”

그녀는 편지에 써 내려 갈 이야기들을 구상 중이었다.



자신은 훌쩍 컸기에 혼자서도 건전한 알바만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이리저리 보내온 돈과 알바비 덕분에 학교는 가끔만 제하면 잘 다니고 있다고.

그간 선물해왔던 것들, 잘 보관 중이고 돈 잘 벌고 있으니 더 이상 보낼 이유는 없다고.



“...하... 모르겠다. 아르바이트나 가야지.”

편지지라도 사려면, 돈이라도 벌려면, 당장에 나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



ㅡ정말... 여기가…

“...응? 뭐야 당신!?”



소녀는 보폭을 넓혀 자기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누군가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약간 굽은 등을 가진 채 들어오는 입구에서 양손을 매만지던, 어느 남자이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아, 변명은 됐고, 경찰에 신고할 테니 그대로 계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좀, 됐다니까요? 뭘 자꾸 빌어요? 경찰 앞에서도 그렇게 빌 거에요?” 



소녀는 겁을 먹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자꾸만 양손을 매만지는 남자를 경계했다.

그리고 한 손에 든 핸드폰으로 재빨리 1, 1, 2를 눌렀다.



“...하. 다음부터는 이딴 짓 하지 마시라고요. 알겠어요?”

“...넵.”

“진짜, 이게 뭐 하자는 건지… 크게 키울 생각은 아니라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에요. 조심하세요.”

“넵.”



직후 남자는 입구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에 혀를 끌끌 차며 알바를 위해 발을 옮겼다.



*****



내심 아침에 있던 일을 걱정하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곧장 집 입구로 들어오는 소녀.

곱씹으면 자신만 손해라면서, 1층으로 들어섰다.



“진짜 요즘 그런 놈들은 얼마나 하고 싶기에 안달인 건지... 응?”



소녀의 우편함에, 작은 종이 하나가 꽂혀 있다.

소녀는 손을 뻗어 종이를 펼치고, 안의 내용을 확인해본다.



“...어? 어………………?”



*****



아가씨에게.』 

“아저씨!!!!!!!”



누군가 이것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면 급발진으로도 보이리라.

그날 소녀는 오밤중 눈물을 삼킨 질주를 시작했다.



「누군지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가기 전에 쓰고 싶은 편지가 존재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자랐는지 모르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나, 그래도 읽어준다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어디 계세요!!! 아저씨!!!”



그날 소녀는 자신에게 날아온 또 다른 글을 그 자리에서 읽어 버렸다.



「저 같은 밑바닥 인생에 붙잡히는 것 하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뻗었었는데, 아내도, 딸도, 해외 어디론가로 떠나버렸더군요.

그런 딸이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그만…! 제발요!… 제발 나와주세요!!… 아저씨!!”



그녀는 멈춤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런 바보 같은 혼자만의 외로움에 또다시 술을 들다가, 언젠가 TV에서 당신을 봤습니다.

당신은 딸을 닮았더군요.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날로 당신의 사연이 마치 딸의 울음처럼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바보같이, 혼자 외로워하다가, 다른 사람을 딸로 착각해버리는 걸 알면서도.

전 당신에 대한 후원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헉! 헉! 컥… 쿨럭...”



언제부터일까, 달리기 시작하던 그녀는 말을 아꼈다.

자신이 사무치게 찾아다니던 그 사람을 위해 말을 아끼리라 다짐할 뿐이었다.



「길거리를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걸으며 쉴 곳을 모색하던 운명까지 몰려버렸지만, 후회 없습니다.

언젠가 만나기를 바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의 마지막 선물을 보내고. 

소식이 들려오는 날에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것입니다. 」

[ 인화된 사진, 볼펜이 찍혀있다 ]

“쿨럭!...”



그녀는 자신의 폐와 심장이 단박에 쪼그라드는 고통을 겪었다.

한 손을 급히 가슴팍을 붙잡으며, 계속 뛰어만 갔다. 



「추가로 쓸 줄은 몰랐지만, 어쩌다가 당신의 모습을 봐버렸군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무척이나 딸을 닮은 모습으로, 이제는 꽤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만나 뵙게 된 건…

또 한 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 꺅!!! 끅!.. 끅...”



그녀의 두 다리는 갑자기 생겨버린 쥐 때문에 근육이 뒤틀리고 말았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그녀는, 두 다리를 붙잡는다.



「참으로 다행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제발… 끅... 제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한테… 제발... 만날 기회를 주세요… 제발...”



「그 볼펜은 당신에게 보내왔던 옛 추억들과 함께 휘갈기던 편지의 글을 채워주던 녀석입니다.」

“아저씨이이이ㅡㅡㅡ!!!!!"



「괜한 의미 부여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볼펜으로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뒤늦게 눈치채서... 미안해요... 아저씨..“



「잘 자라주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기쁩니다.」

“끄흐흐흑…"



지금 이 순간, 소녀는 자신의 고통과 설움이.

...이 편지에서 써 내려가던 내용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느꼈다.



후원자로서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그는.

그 편지로 덤덤하게 소녀 자신을 위한 시작과 끝을 알려오신 것이었다.



소녀는 쉽게 내비치지 않던 요동치는 심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워해야 한다면, 집 속에서 무지몽매하게 후원에 가치를 매기던 모습을 부끄러워하리라.



“...아니, 아가씨. 추운데 여기까지 나오시고...”

“...으아? 아, 아저씨?”

“아, 이전에 마주쳤었던 아가씨이군요. 그날은 제가 죄송해-”



와락-!



“윽! 아, 아가씨…?”

“...오다가 숨이 차고, 넘어질 것만 같고, 쥐도 나는 바람에 다리가 미칠 듯이 아파요.”

“...”

“...근데, 아저씨를 못 만날 것만 같은 망상이, 더, 더어...”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소녀.

그녀의 상반신은 힘을 잃은 하반신 때문에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

“딸, 만나고... 싶으세요?”

“...”

“아저씨…?”

“...미칠 정도로, 꿈에 그려 보면서도, 바래왔었… 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존대를 써왔다.

딱히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나면, 젤 뭘 먼저 하고 싶으셨어요…?”

“...딸, 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

“단지 그것만이라도, 언젠가는 들려주고 싶던-”



쓱-…

이내 하반신에 힘을 실은 소녀는, 그의 어깨를 잠시 빌려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아저씨.”

“...네?”



소녀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가 불편하지 않게끔.



“저, 절 보고서...”

“...네?”

“...딸. 이라고, 한 번만 불러보시면... 안될까요...?”

“...”

“...그, 정! 어려우시면!...”



소녀는, 그에게 볼펜을 건넸다.

그는 손때가 묻어나던 볼펜을 보자마자, 자신이 써오던 볼펜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저를 위해 편지, 써주실 때...

...그때는, ‘딸에게’ 라고. 써주실래요?”

“...”



그는 건네받은 볼펜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볼펜을 다시 쓰게 될 순간이 직접 왔다는 사실에, 내심 뭉클해지고 말았다.



END



후일담 1

저 이후로 소녀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보면서~

아저씨도 차츰 어색함을 풀어나가다가 같이 딸이라고 불러주면서~

으쌰으쌰하는 내용~ 


이 이후로는 아무것도 없으니 다음 편은 ‘써주세용’ 


후일담 2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써서 고멘나사이…!


후일담 3

님들 혼자서 글 겁나 썼는데 후회 삘 나는지 한번 올려봐도 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