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혼이라니..."


이안은 자신의 아내, 티아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안 아그리파와 티아 클라우 부부는 금실이 좋다고 제국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는데, 어느 날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 당했기 때문이다.




티아는 고민한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권력욕에 눈이 멀어 추해진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양아버지이자 황제 폐하의 명령이야. 너와 이혼하고 자기 아들하고 결혼하라면서."


"황제 폐하께서? 대체 왜?"


"황제 폐하의 자녀분들은... 나이에 비해 배움이 부족하시거나, 사고가 남들과는 다른 분들이거든 제국을 이끌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느끼신 거지 그래서 친족이자 양녀인 나를 황제로 올리는 대신, 아들하고 결혼시켜서 혈통적인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려는 거야"


"거절은 못하는거야...?"


"얼마든지 거절할 수야 있지 유능한 귀족들은 차고 넘치니까. 너와 이혼하고 황자와 결혼하는 것도 결국 나의 욕심이야. 미안해 이안..."


"..."




이안의 눈가가 점점 축축해지는 걸 바라보니 티아의 마음이 점점 타들어 간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서 이안에게 사과하고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황제의 친족인 클라우 가문의 수장으로서 제국에 기여한 공적을 생각하면 보복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그리파 가문의 전 가주, 이안의 아버지는 어거스트 황제가 가장 신뢰하던 인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안의 아버지를 언급하면 설득하기는 더욱 쉬워질 터였다.




황제가 어머니를 아버지와 강제로 이혼시키고 어머니를 취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러는 행위도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를 빼앗긴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어린 나이에 가문의 수장이 되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황제가 그런 제의를 했을 때 무척이나 화가 났었다. 황제의 자리를 준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황제, 그 말 그대로 제국의 정점. 티아 클라우는 그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다.


가문의 수장을 맡았던 어린 시절에는 지지기반도 불안정하여 살기 위해 황제에게 복종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체감한다. 황제의 권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모든 이가 황제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명령에 감히 거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당장 그녀의 친부모가 좋은 예시가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마친 티아는 마음을 다잡고 이안에게 말한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언젠간 다시 데리러올게... 그때까지 꼭 기다려줘..."


이안은 마른세수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티아는 자리를 떠났다.




*




티아가 재혼을 하고 얼마 안 가 어거스트 황제가 승하하여 유언에 따라 티아가 황제가 되었다.


티아가 황제의 옥좌에 앉은 지 3년째,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9월을 '티아'로 부르는 게 어떠십니까? 폐하."


"그러면 13번째 황제부터는 뭐라고 부를것이더냐?"


"......"


아침부터 이런 얼토당토않은 아부를 들은 까닭도 있었고




"폐하, 얼마 전 체포한 반역자들은 어떻게 처분할 것입니까?"


"어디 한적한 섬에 유배 보내거라 그래도 황족이지 않으냐."


하루가 멀다하고 반역을 일으키는 선대 황제의 형제와 자녀들 탓도 있었다.


즉위하자마자 발발한 내전으로 3년 동안 지속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목을 쳐내고 싶었으나, 친족살해자라는 악명을 뒤집어쓸 가치는 없었다.




더 이상 해결할 안건이 없는 것을 확인한 티아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자 했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을 청하기엔 오후 3시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교성 탓도 있었다.


그가 불륜을 하든 말든 애초에 관심이 없었기에 눈감아 줬더니 점차 대담해졌다.


티아는 산책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근위대장인 세야누스가 호위로 붙었다.


영 찜찜하지만, 능력은 출중한 여자였다.




그녀의 남편이자 선대 황제의 자녀인 율리우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아내도 잊은 것인지 결혼 이후 동침은커녕 대화조차 몇번 못해봤다.


그 정도라면 오히려 티아도 반길 일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다른 욕구가 크기 때문이었을까?


티아는 광장 기둥에 쓰인 낙서를 보았다.


원래라면 볼 가치도 없는 헛소문들이나 괴담이 적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천박한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그 내용은 그녀의 남편, 율리우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율리우스가 성당에서 수녀들과 난교를 벌였다느니, 결혼도 안 한 영애, 심지어 귀부인을 임신시켰다느니...


당장 이 낙서를 한 인물을 찾아내 처벌하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점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세야누스가 말한다.


"폐하, 어떻게 처분하시겠습니까?"


티아는 생각했다.


'그래... 이 기회에 이혼하고 이안과 다시 결혼하는거야... 저쪽에서 명분을 줬고, 반대할 황족들은 모조리 유배당했으니...'


하지만 티아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익숙한 얼굴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쭉 봐왔던, 3년 만에 만난 그 익숙한 얼굴에 티아는 반가워하며 소리친다.


"이안!"


이안은 티아를 인식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티아를 지나친다.


세야누스가 이안을 변호하듯 말한다.


"이안님은 1년 전에 재혼하셨습니다. 분명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함이겠지요."


"... 재혼... 했다고...?"


"예..."




세야누스는 다음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황제의 표정이 퍽 재밌어 말을 잇기로 결정했다.


'내전이 일어날 때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았는데'


"아시니우스 가문의 아가씨께서 이안님을 오랫동안 짝사랑하셨나 봅니다. 폐하와 이혼하자마자 상심한 이안님께 다가가 2년간의 구혼 끝에 결혼하셨지요."


"당장 이혼시켜. 물론 가능하겠지?"


세야누스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야 가능은 하겠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황제의 명령에 의구심을 품는다는, 내전에서 티아를 여러 번 구한 그녀가 아니라면 변명의 기회조차 없이 처벌받을 행위였고, 자신조차 제대로 변명하지 못한다면 처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이 틀어진다면 자신이 여태 쌓았던 공적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장담할 수 없는 도박을 시작한다.


그런 리스크를 걸면서도 돌아오는 것은 고작 어린 황제가 후회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세야누스는 그런 한 줌의 희열에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광인이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티아의 기분이 나빠 보인다, 세야누스는 이제부터 신중히 말해야 한다.


세야누스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할 말을 검토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말한다.


"이안님께서는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아시니우스 가문의 아가씨께서는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셨고, 그 덕분에 이안님께서는 상심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티아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문조차 무사하지 못할 발언을, 세야누스는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그런데 폐하, 어찌하여 선대 황제와 똑같은 행보를 걷고자 하는 것입니까?"


"어......?"


만약 티아가 이안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자신과 결혼한다면, 그것은 선대 황제가 행했던 행보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행복해진 사람은 황제 한 사람뿐이었다.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병을 얻어 죽고, 어머니는 폐인이 되었다.


이번에도 티아가 똑같은 짓을 벌인다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겠지.


"아..."


티아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것 인지 깨닫고는 멀어져가는 이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뒷모습이 점차 멀어져간다.


마침내 지평선 너머로 이안이 사라졌을 무렵, 세야누스가 말한다.


"폐하,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래..."


티아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안이 사라진 방향과 반대 방향인 황궁으로.




어차피 시간은 흘렀다. 율리우스는 진작에 여자를 끼고 어디론가 놀러 나갔겠지.


다음날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내일은 원로원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하던가? 연설문을 준비하려면 휴식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위장이 쓰려온다.


행복을 걷어찼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금방 다시 행복을 되찾을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황제 따위... 하지 않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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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야기에 감명받아서 써봄


후붕이들 취향에 맞게 이야기를 아예 다른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정도로 아주 많이 각색하긴 했지만 말이야 


실제 역사에서 티베리우스 인생이 참 기구하더라고 모티브가 된 티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아우구스투스가 혐성이라는게 느껴지더라


뭐?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빕사니아와 티베리우스를 강제로 이혼시키고 장모(율리아)와 결혼시켜?

뭐? 티베리우스의 어머니도 그런식으로 뺏어왔다고?

뭐? 원래 후계자 줄 마음 없었는데 원래 후계자인 조카와 외손자들이 요절해서 어쩔수없이 준거라고...?


이 지랄을 당해왔는데도 삐뚤어지지 않은 티베리우스 당신은 대체...


이렇게 역사 인물들 중에서도 재밌는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많더라고 나중에 기회되면 또 써올게


TMI. July -> Julius, 즉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주사위는 던져졌다'로 유명한 그분), August -> 아우구스투스에 따왔다고 한다.

만약 티베리우스가 9월을 티베리우스로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게 관습이 되면서 달력이 존나 복잡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