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 약 5천자 주의*


[


어머니에게.


“으앗 따거!!”


“으휴, 조금만 참아.”


그런 뾰루퉁한 상태에 한껏 볼을 부풀리며 잠자코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머릿니가 가득한 내 머리카락을 대신 씻겨주시던 어머니가 자리를 함께했다.


기억 저편에서도 느껴지던 날카로운 손톱은 위험함을 과시했지만, 그때 감겨주시던 머리의 감촉은 잊을 수 없었다. 



***



“눈물 뚝.”


그 이야기에 흐르는 눈물은 못 박힌 듯 멈춰버렸다.


“착하지.”


눈가는 적셔지고, 눈썹을 녹아드는 고드름처럼 그 끝에 눈물이 열매를 맺는 듯 하며 방울이 생겨버렸다.


“아이구…”


혹독한 추위에, 고온다습한 열기에 조차 끝내 손을 펼치고 손바닥으로 더러워진 그릇을 몇번이고 문지른 그 손으로.


“괜찮아?”


내게 괜찮냐며 물어봐주는 그 손과 입이.


오랜 저항에 이기지 못해 주부습진이 생겨버려, 한층 푸석푸석해진 그 손이.


“...네.”


내게 맺혀버린 눈물이 적신 눈가를 닦아주던 손바닥을 마음껏 적시길 바란다.


점차 푸석푸석 해져가는 그 매마른 땅과도 같은 손에 기름지며 광택지는 손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



“아들은 뭘 하고 싶다고?”


“...커서 사람이 될 거에요.”


“사람이 된다고…?”


“언젠가 부터 그저 받기만 했던 은혜를 다 갚고 나면…”


“아~ 엄마랑 아빠한테?”


“...넵. 오글거리긴 한데, 다 갚고 나면 그제서야 절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이구 울 아들 멋지네~ 기대할게~!”


어머니를 위한 쉼은 어디 있는가 하니, 그곳은 곧 부엌으로 옮겨지는 발로 알 수 있었다.


“거실에 있는 게 더 편하지 않아요? 등받이 가능한 배게도 있잖아요.”


“아… 아직 할 일이 남아있네요~.”

 

오랜 시간 동안 눌러 앉아 버린 의자는 우리 집에서 떠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닳아버린 그 다리에, 가끔 심각하게 응시하기도 하는 자그마한 균열들에.


이미 주인이 있음에도 그 위험을 무릎 쓰고 의자의 구석에 집을 지어버린 거미까지.


그런 어머니를 위해 의자를 선물하려 하니, 지금도 쓸만하다며 바쁜 손을 그런 날 위해 손 사례를 치려고 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 방석을 선물하려 하니, 지금도 쓸 수 있는 방석이 많다며 이상한 검댕이 묻어버린 먼지 덩어리 방석을 쓰시는 어머니.

 

“걱정 안 해도 돼. 아들.”


그런 말에 감사했고,


“그런 돈 더 좋은 곳에 써. 문제집도 부족하다면서.”


그런 말에 스스로의 치부를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울 아드님은 걱정 안해도 되네요~.”


장난기 어린 말에 그런 내가 또다시 토라지면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라며 해주었던 얘기에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



‘아아, 어머니.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역설적이게도 은혜 갚기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볼 수도 없는 당신의 바보같은 아들은.


조금이라도 미어지는 구멍을 매꿔보려 애씁니다.


의자가 필요하냐 물으며 전 어색하게 지갑을 흔들며 몇푼의 동전소리를 들려주고.


방석이 필요하냐 물으며 직접 조립해주셨던 바퀴 달린 의자에 깔린 방석을 가지고 오니.


때마침 그런 저의 영락 없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에 웃어주시던 어머니.


그저 열심히 해달라며 격려해주시는 모습에.


전 그 날도 돌아갈 수 있던 겁니다.‘


그렇게 또다시 글을 썼다.


훗날을 기약하며 또다시 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



똑똑-.


“아들, 안 자?”


“...조금 더 하다가, 잘게요.”


“씁, 지금 시간이 몇신데. 빨리 자.”


“곧 시험이라 어쩔 수 없어요. 먼저 주무세요.”


“...”


끼익-.


쿵.


지독한 낮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몸서리를 치던 알람을 틀어야 했다.


잠들지 말아야 할 시간조차 지독한 낮잠의 수마가 몰려와 끝끝내 몸서리를 치던 알람을 틀어버리려니.


똑똑-.


“...이거라도 마시면서 해.”


컵만이 담길 조그마한 쟁반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이 보인다.


책을 비추는 스탠딩 전등 위로 올라온 컵의 김이 확실히 보였다.


홀짝-.


뜨겁다.


그러면서도 달다.


“식히지 말고, 따뜻할 때 먹어야 효과 있어.”


어쩌면 연거푸 마실 용기가 생겨버린 걸지도 모른다.


홀짝-.


역시 뜨겁다.


데워진 입천장은 그 뜨거움의 여파로 인해 내일 아침까지 그 괴상한 까끌까끌함을 뿌리칠 수는 없겠으나.


그 달콤함은 견줄 만한 곳이 없으니, 이윽고 그 목넘김이 반복된다.


홀짝-...


알람보다도 더 달콤하고 커다랗게 울려퍼진 어머니의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차는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데워진 입천장이 있어서일까, 끝내 몰려오던 수마가 서서히 잠드는 기분이었다.


“...후.”

“...맛있네.”



***



“아들, 정말 안 갈 거야?”


“...넵, 공부해야 해서. 오늘은 엄마랑 아빠 끼리 다녀오세요.”


“응,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쿵-...


“...”

“후...”



***



스스로가 내뱉은 구절이 있었다.


그때 내뱉은 구절은 평생 잊지 못할 구절이었기에, 나는 더욱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거센 투항을 폭죽에 비유하고 싶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쳐 끝내 점화되고, 장엄하게 그 불꽃을 날려 널리 만개했음 하는 막연한 바람에.


나는 가족과의 시간을 멀리하고 있었다.


‘완전히’ 까지는 아닐지언정 ‘조금이라도’ 놓아 바라고 바랐던 그 꿈을 위해서는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



따르릉-! 따르릉-!


“아… 으.. 무슨 소리야…”


문득 잠에서 깨버린 시간.


초저녁의 시간 속 암막 커튼으로 내 방이 어둠에 묻혀버린 시간이 되버렸다.


달칵-.


문득 잠들어버린 나를 깨워버린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


“...아들.”


“...아빠?”


“주소 부를테니, 당장 택시타고 와. 당장.”


“...네.”


.

.

.


““아이고… 아이고…””


아아.


이윽고 돌아가셨네.


너무하시기도 하셔라.


작별을 위한 손짓은 어디로 간 것인가.


끝내 어머니는 잠드셨네.


어둠으로 뒤덮여 가던 겨울 초저녁에 어머니는 잠드시고 말았네.


아들이라는 미련한 존재를 위해 움직이시던 중 어머니는 잠드시고 말았네.


그 자리에서 어머니는 외로이 잠드시고 말았네.


멈출세라 난 잠들지 못하고 말았네.


이윽고 잠 들으셨네.


너무하시기도 하셔라…


““아이고… 아이고…””



***



장례식장 속 인파는 흑과 백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한번이라도 들렀던 자들을 위해 지은 밥을 준비하고, 따뜻한 국과 반찬을 내가려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곁을 지키며 국은 얼마나 뜨거우며 밥은 딱딱하지는 않은지 걱정중인 이모.


많은 조문객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술잔을 조금씩 기울여가던 아버지.


그런 어른들 가득한 조문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어리고 어린 동생들.


“...형…”


“오빠…”


“야… 괜찮냐?”


까닭 없이 그들은 연거푸 위로를 토해냈다.


“...아, 온 줄 몰랐어. 와줘서 고마워.”


“...동생아, 하…”

“...진심으로, 슬프다.”


“...그렇다고 다들 스케줄 간수 잘 해. 여기에 시간 뺏기지 말고.”



***



“뭐라고요, 아빠?”

 

“편지 쓸 수 있는데, 우리 아들이 써볼까?”


작디 작은 유골함을 들고 있던 내게 아버지가 제안한 이야기.


이곳에 글을 남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급히 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써볼게요.”



***



어머니에게.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이 됩니다.


이는 눈물이 됩니다.


아이고 소리를 외치며 들던 유골함은 제 손에 없습니다.


어디로 가버리신 겁니까.


집으로 돌아가신 겁니까.


늦은 밤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겠다며 버티다가, 그런 절 직접 데리러 와주셨던 그 도서관에 계신 겁니까.


재밌을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하던 저의 뒤로 커다란 팝콘 통과 탄산 가득한 음료수를 양 손에 이고 저와 함께 봐주셨던 그 영화관에 계신 겁니까.


졸업을 위해 값비싼 화초를 사들고 오시고는, 학교 속에서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얼굴을 보려, 사진을 남기려, 친구들을 보여주려 조바심을 내던 저를 위해 찾아와주신 교실 속에 계신 겁니까.


정겹게 타고 놀다가 끝내 멀미하심에도, 같이 멀미하며 무엇도 제대로 입에 넣지 못하는 절 위해 데려가셨던 대관람차에 계신 겁니까.


오랜만의 여행이라며 기뻐하시며 손수 장만하신 선글라스와 썬캡, 양산을 꺼내드시고는 이윽고 도착한 곳에서 발그레 웃으며 아버지와 함께하신 사진 속 장소에 계신 겁니까.


혹여나, 의심이 되어 말하는 것이지만.


미워지는 제가 잘못된 것입니까, 어머니.


사람답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사람이 되어버려 그런 사람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그런 사람.


그조차도 그리 과분했던 것일까요.


아아, 어머니.


아버지가 들려주신 어느 노래의 구절이 기억납니다.


나는 참 바보라고, 엄마만 봐도, 봐도 좋다면서…


아아. 


어느덧 죽음은 바퀴에 밀려나가는 화장을 보여줄 뿐입니다.


아아,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어머님과 이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별을 불러야 한다면 부탁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고등학교를 끝마칠 졸업식에 함께 사진을 찍어주시면 이별하겠습니다.


덥수룩하기만 하던 머리카락을 간신히 종자만 남긴 채로 잘라버리고 기차에 오를 저를 배웅해 주시면 이별하겠습니다.


끝끝내 외칠 충성을 우리 아버지와 함께 들어주신다면 그제서야 이별하겠습니다.


몇번이고 보내는 편지에 잘 읽었다는 말을 귓가에 들려주시면 그제서야 이별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연거푸 절을 하며,

끝끝내 자리를 지키며,

조문을 반가워 하며,

새벽이고 깨며 그 향을 지켰으니,


어머니께서 싫어하시던 여름은 지나가고,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던 가을은 지나가고,


추위와 추위 속에 제가 갇혀버린 겨울은 머지않아 끝나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봄은 머지않아 돌아온다 하였으니,


끝끝내 봄이 돌아옴을 알리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올 때.


마지못해 눈물 흘릴 저를 위해 다시 한 번 그 손을 빌려주신다면,


눈가에 맺혀버린 이 미련한 눈물을 그 손으로 닦아주신다면,


그제서야,


이별. 하렵니다. 



***



“하암… 일어났어?”


“아, 아빠 일어나셨어요?”


“우리 아들내미가 아빠보다 더 부지런하네, 허허…”


“에이, 저도 바쁜 몸이니까요.”


“하긴야, 그렇겠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


“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게요.”


저벅-...


“그때 글…”


그렇게 진중하게 써버렸던 편지는, 또다시 오롯이 내게 쥐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것은 나를 위한 회신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다녀올게요~.”


문을 있는 힘껏 열고 나갔다.


***


어머니.


쉽게 쓰여져 버린 글은, 그만큼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아주 쉽게도 일어나지나 봅니다.


어렵게 쓰여져 버린 글은, 그만큼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어렵게도 일어나지고요.


제가 어머니를 향해 보낸 글은 오랜 시간 어렵게 생각하며 보냈음에도 훌훌 털어버리며 가뿐히 일어나지길 바랍니다.


당신의 아들 올림.


]


.

.

.


“흠… 이게 편지라고?”

“아빠는 눈이 안 좋아서 제대로 못 읽겠다… 하하…”


“뭐, 괜찮아요 아빠. 다 쓴 것 같아요.”


“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따로 고칠 부분은 없고?”


“하하… 아빠..”

“전 처음부터 지우개를 챙길 생각 해본 적 없어요.”


“...그러냐.”

“...아들. 정말 많이 컸구나.”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저에게 치열했었던 그 순간들을 모두 담고 나니.


이는 더 이상 편지가 아닐 수 있었다.


이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 있었다.


그저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그 순간과 시간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눌 대화는 정말, 평범할 것이다.


그런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할 것이다.


내 이야기를 받아줄 어머니의 손은 차갑겠지만, 조금이라도 눈물 흘릴 내 눈가를 어루만지던 그 차가운 손은 곧이어 그 겨울로부터 날 녹여줄 것이다.


.

.

.


!!! 후기 !!!


으아 잠이 오는 시간이군요!

여기까지 와주셨다면 감사합니다!


+


도중에 노래의 구절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 노래인 '어머니와 고등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SggibFJq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