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이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내 모습에 담겨진 그 처절한 내 모습.

생명을 갈망하며, 또 그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그 모습.

오직 살린다는 생각으로 어리석게 임하는 그 모습.

죽음을 극도로 혐오하는 내 의무.

그럼에도 살릴수 없었던 내 지난 날들.

그 눈빛은 날 병들게 하고, 날 갈망하게 했어.

오직 살린다는 마음으로 어리석게 임하는 그 모습.

이건 내가 아니야.

선한 의무를 가진 내가 아니야.


어느덧 내가 의사로 일한지도 벌써 오 년이 다되어 간다. 환자들은 가지각색으로 난동을 피우고, 울부짖고, 선함에 힘차게도 반항한다. 그런 환자들을, 난 정말로 귀찮아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생명이 이 병원을 통해서 갈린다는 사실에, 어쩌면 감정은 그 처절함에 고장난걸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고요한 병원 입원실에서, 각자 다르게 입원한 환자들을 보며,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하나 든 체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이동이 불편하신지 그의 딸로 보이는 이의 부축을 받으며 움직이셨고, 저 어린아이는 하얀 모자를 쓴 체 휠체어에 앉아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옆에는 링거봉이 같이 쓸쓸이 끌려가고 있었다.

나도 결국, 늙고 늙어, 결국 이들과 같이 병들고 낡은 내 몸이 되어버린 다면, 난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난 아직 여자니 뭐니, 그런 사람을 아직 사겨본적이 없었다. 혼자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그 고독이 오래가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나설 용기는 없었고, 수술실도 같이 들어간 적은 거의 없었다.

내 의사생활도 돌이켜 보면 혼자였다. 같은 동료들은 나를 그저 말 없는 한 조용한 동료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날 모르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침묵은 무엇을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만든다면 용기로 채우지 못하는 후회만 남길 뿐일까.

참 퍽퍽하다. 앞길이, 내 앞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서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정말 컸다. 그럼에도 난 그 욕구를 참아내며, 앞에 기회가 와도 그저 다른 이가 해결하게 허둥지둥 하는 척 했다. 되려 내가 실수하면 나에게 인정은 커녕 욕이 돌아올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누굴 살린다는 용기로, 내 의무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명을 살릴 수 없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난 왜 살리지 못한다는 공포가 두려운 걸까. 살 수 있었던 그 운명이, 내 부족한 행동으로 죽어버린다는 생각에, 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덜덜 떨고있는 걸까.


그렇게 사방을 허무하게 둘러보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도와줘! 여기 환자가 죽어가고 있어!“

난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한 아저씨가 공포에 절인 눈동자로 사방을 보며 처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계속 도와달라며 울부짖었고, 난 의사라는 사명감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외침에 응했다. 하지만 난 얼떨결에 커피를 떨리는 손으로 놔두며, 헤메이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 공포가 날 다시 멈추게 만들었다.

불행이도 여기에 의사는 나 뿐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흰 옷차림의 날 보며,

”뭐해! 환자가 죽어간다고! 빨리 오란 말이야!“

나에게 구원하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난 땀을 흘리며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그를 따라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환자가 작게 발작을 하며 입에는 거품을 문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난 사람들의 시선과, 또 약간의 기대하는 그 느낌으로, 난 그 환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응급처지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사명을 하는 순간, 영웅이 될것인가, 아님 운명을 갈라치는 살인마가 될것인가. 그 갈망과 처절함이 날 더 떨리게 만들었고, 진정 원한다는 내 마음은 뇌와 심장을 심하게 움직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금방이라도 환자와 같이 발작할 것만 같았다.


다행이도, 그 간절함에, 난 영웅이 된 것 같았다. 환자는 안정을 되찾았고, 이윽고 다른 의사들이 오며 그 환자를 진정시켰다. 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정신없이 허공을 봐라볼때, 뒤에서 갑자기 따뜻함을 느꼈다. 바로 복도에서 외친 남자가 난 안긴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연신 감사다하고 말했다. 등 뒤에 축축함이 좀 거슬렸다.

난 정신없이 괜찮다고, 그만 진정하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의무를 다하여, 사람들의 뇌리에 영웅으로 남은 나의 첫 순간이었다. 사람들의 웃는 모습과 그 박수치는 소리를 내 온몸으로 느꼈다.

환희! 그래,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욕구가 처음으로 해소되어 그 시원함과 부드러움이 내 마음에 쉽게 녹아내려 닿았을 때, 그때 난 행복은 물론 그 이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살린다는 마음, 그리고 그 헌신의 행복, 이게 의사를 하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 사건에 사람들에게 많은 칭찬을 들었다. 병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보며 수근거렸고, 같은 동료들도 내 성공에 의외라며 날 칭찬하였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인정받은 날. 이 만큼 행복한 날은 또 없었다.




사람은 달콤함을 한 번 맛보면, 그 순간만을 쫒아가게 돼. 무엇이 그 길을 막든, 끝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다시 맛볼려 하지.


난 아무래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저녁에 그 때를 떠올리며 기쁜 마음에 잠을 청하고 기분좋게 일어났지만, 마음은 그것 보다 더 한 감정을 원했나 보다.

지난 몇일 동안은 내 성공을 모두가 알아주었지만, 또 몇일이 지나면 그 성공은 서서히 사람들 말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성공이 점점 뭍혀지는 것이다. 서서히 나의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다시금 내 침묵의 인생인 평상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난 그 영광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작은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결국 이 성공도, 의사에게는 의무였고, 그 의무를 영광이라고 돌려 말할 것도 이제는 필요가 사라졌다.


하지만, 난 그 의무를, 다시 이행하고 싶었다.


그 영광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로 내 귀를 젖어들게 하고 싶었고, 칭찬과 환희를 내 몸에 다시금 뭍고 싶었다. 다시 인정받고 관심을 받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 너무 근질거렸다.

사람은 한 번 성공을 하면 그 행동이 다시 성공한다고 확신한다 했나. 마음도 그 확신을 꺼내며 날 움직이게 만들었고, 날 다시 그 영광의 순간으로 돌리려 날 유혹했다. 욕망이, 그 의무로 감싼 욕망이 다시금 더럽게 덮어진 순간이었다.

그 기쁨을 느끼기 위해 난 계속 위독한 환자들이 있는 입원실을 왔다갔다 하며, 늘 사람이 위기에 쳐한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모두들 평상시 답지 않게 건강했다. 모두 완치되었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꼴만 보고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좋아야 하는데, 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분명히 심각한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절로 기회가 오지 않는 이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결국 침묵의 내 인생이 돌아올 때가 다가오니. 난 처절했다.


결국 난 꺼냈다. 기회가 나오지 않는다면 만든다는 그 심정으로, 난 약품 창고에서 독… 하나를 꺼냈다. 이건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곳에서 독을 꺼낼 때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때 미치도록 갈망했다. 그 영광을.

그건 더이상 의사인 내 모습이 아니였다. 그저 영광만 바라는 악마일 뿐, 그래서 난 내 죄악을 애써 무시하고, 처음으로 한 환자에게 독을 주입했다.

그 환자는 예상대로 발작하며, 사람들은 다시 날 보며 간절히 애원했다. 살려달라는 그 외침을 듣자마자, 난 기뻐하며 그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내 응급처치로 다시 살리니, 주위에서는 다시 찬사가 들려왔다.


다시 느끼는 이 환희와 찬사! 마음은 만족하며 춤을췄고, 나도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감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건 절대코 내 영광이 아니였다. 이건 내 악행을 가까스로 치운 것 뿐이었다.

난 이걸 영광으로 생각하며 계속 이런 행동을 해왔다. 내 악행을 감히 의심할 자도 없다. 설마 의사가 이런 짓을 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안심하며 그 짓들을 계속 해왔다. 그리고 내 마음은 관심과 인정으로 점점 행복에 찌들었지만, 점점 썩어갔다. 마음이 검하게 문드러지며, 성공이라는 마약을 주입해 난 그렇게 살아왔다. 내 마음은 점점 죽어갔고.

의무로 감싸진 껍질 속에는, 이제 욕망만 가득 찬 쓸데없는 마음이 되었다.




연극은 영원히 이어질 수 없어. 언젠가는 모든 걸 들어내는 순간이 올것을 알게될거야. 그럼에도 멈출 수 없으면, 넌 그때 끝난거지.


“약 주입할께요.”

“네..”


“잠시만요.”

”네?“

”그 약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제가 계속 약을 확인하는데, 이 약은 처음 보는데…“

”이번에 새로운 약을 주입할려구요.“

”…저기. 그냥 늘 주던 약 주세요.“

”왜요?“

”… 그냥. 왠지 불안해서요.“

”괜찮아요. 제가 독약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뇨, 그냥… 저기, 그냥 다른 의사 불러주세요.“

”왜요?“

“불러주세요. 어서요.”

“….”

“지금 뭐해요? 어서요.“

”…..“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잠시만요 잠시만… 억-”


”가만히만 계세요. 살려드릴 테니까.“


그리고 결국 그 환자가 발작하고, 사람들이 그 환자를 향해 다가올때, 난 쇼를 하듯 사람들이 몰린 것을 보고, 그 환자를 다시 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죽었다!


그 환자가 죽었다. 차가운 흰자만 내 보인 체, 입은 떡 벌리며 심장박동도 멈추고 삐- 소리만 내며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난 뒤로 쓰러졌다. 

이때까지 저절로 온 기회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그래도 운명이라는 변명으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 테지만, 이건, 내가 죽인 거잖아…

마음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리고, 난 이제 깨달았다. 내가 뭔 짓을 저질렀는지. 살린다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내 뒤틀린 욕망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도 날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날 살인마로 보는게 아닌, 그저 실패한 사람으로 보았다. 난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더 심한 부끄러움을 느겼다.

내가 의사라는 모습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난 이제 의사가 아니다. 이제 사람도 아니다. 난 이제 괴물이다. 욕망에 휘둘린 어리석은 괴물….


곧 이어 경찰이 왔고, 날 잡아갔다. 끌려가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날 충격적이게 보았고, 수근거렸다. 그리고, 동료들도…

심문소에 끌려가고, 나에게 범행 동기를 물어보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실패로 인해 녹아버려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난 이제 인간이 아니고, 말 할 노릇도 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나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대답해 보세요. 왜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래서, 결국, 난 말했다.

”네. 내 욕심때문에 죽였습니다.“

“욕심이요?”

”네, 참 사람이란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하.. 살리는건 이렇게 각오를 해야 하는데, 죽인다는 건 또 이렇게 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