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목 안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

또 각혈인가, 최대한 조용하게 핏덩이를 내뱉는다.


"..."


입에 남은 쇠맛을 느끼며, 피를 뱉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아플 때가 아니니까. 아내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고, 딸은 중요한 때라고 했으니까.


아득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식칼을 들고 요리를 시작한다.




**********





"아침 먹어."


실수로 베어버린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다, 아내의 나갈 준비를 깨닫고는 말을 건넨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마무리하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맞자 한껏 표정을 찌푸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바쁜거 알면서 그래!?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쓰지 마!"


알았어, 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다시금 느껴지는 이물감에 말을 삼켰다.

그 대신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그대로 입을 가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피를 뱉어내는 빈도와 양이 늘었다.

처음에는 한 주에 한 번, 그것도 가래 정도의 작은 양이었지만..


"..큭."


지금은 휴지 한가득, 혹은 세면대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양이다.

원인은 모른다. 병원은 가 본적 없으니까.

이미 충분히 민폐를 끼치고 있다. 아내도 회사 생활이 스트레스일 텐데, 짐을 더 줄순 없으니.


-쾅.

현관문이 과격하게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간건가, 서둘러 뒷정리를 마쳐 화장실에서 나온다.


"..."


당연하게도 준비해놓은 식사는 줄어들지 않았다.

난 평소대로 원래 아내의 자리였던 곳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을 삼킬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




"아침 먹고 갈거야?"

"..."


쾅, 대답없이 현관문이 열렸다 닫힌다.

사춘기라고 했었나. 딸은 나와 단 한마디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미움이라도 받는 건가.. 딱히 그런 짓은 안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딸을 탓할 순 없다. 알려주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중요한 기간'이니까. 내가 받아주는 게 당연한거다.

뭐, 아침을 안 먹고 나가는 건 몸에 안 좋지만..


"..우윽."


..또인가.

한 시간에 한 번 꼴이잖아, 이거..


"..이,거 갑자기.."


습관적인 혼잣말에 잔뜩 긁혀있는 목이 자극받는다.

..한두마디 더 뱉었다간, 다른 것도 함께 뱉어버리겠네.


이제는 능숙해진 피 청소법으로 바닥을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병원까진 그렇고, 진통제 정도는 사올까.

이대로라면 능률이 떨어지니까.




**********




"-서,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앞자리에 앉은 백의 남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실수로 약국에서 피를 뱉어버리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암에 걸려 있었다. 어느정도는 예상했지만

의학적인 용어가 난무해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무슨 암이라는 건 들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남은 수명이 며칠인지만 알려주세요."

"..2주 정도 남았습니다. 혹시 모를 수술을-"

"아뇨. 괜찮습니다."


의사가 날 걱정해준다.

죄송하지만 환자가 될 시간이 없어서요.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없습니다. 부디 남은 생은 평안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람한테 걱정받는 건 오랜만이네. 감상에 빠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실례했습니다."


일단 집에 돌아가서, 뭘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볼까.




**********




"다녀왔어."

"어서 와. 저녁 준비 됐어."


가까스로 아내의 귀가에 맞춰 저녁을 만들어낸 나는, 그녀에게 식사를 권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건 한숨과 날카로운 눈빛. 무슨 말이 이어질지는 뻔했다.


"이렇게나 시간이 늦어졌는데 당연히 저녁은 먹고 왔지. 정리해줘."

"알았어."


그래도 혹시 딸이 먹을수도 있으-

..아, 학원 비는 타이밍에 먹는다고 했지. 내 정신좀 봐.


아침처럼 아내의 자리에 앉은 나는, 식사를 시작하려다 잠깐 멈칫한다.

내가 암이라는 거, 말은 해 둬야겠지. 갑자기 죽으면 당황할테니까.


"저기, 나 할말이 있는데."

"나중에 해. 지금 바쁘니까."


내가 뱉은 말이 단칼에 잘린다.

'그래도-'하며 대화를 이으려던 날 이물감이 막아세웠다.

아내가 보고 있는데 피를 뱉을 순 없지. 음식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넣는다.


그래, 대화 정도는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까.




**********




아내에게는 말이 잘리고, 딸에게는 대화가 거절당한 다음날.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온 나는 한 포스터를 발견했다.


'완벽한 가정부! 집안일 안드로이드를 구매하세요!'


라는 포스터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구석에 있는 포스터가 자길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직 장바구니엔 아무것도 담지 않았다.

홀린듯 장바구니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그 포스터를 집어들었다.


판매는 2층에서 한다. 전자제품을 파는 곳에 같이 있는 모양이다.

..한 번, 구경만 해볼까.




**********




"이 기계는 원하는 얼굴로 만들수도 있습니까."


안드로이드의 손을 만져보며 생각한다. 정말 기술력이 좋아졌다고.

손등에 새겨진 일련번호만 아니었다면 구별하지 못하겠는걸. 하며 생각하던 도중 직원의 대답이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그건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안 됩니다. 대신 최대한 닮은 얼굴을 찾아드리겠습니다."

"저와 체격이 비슷한 남성형이면 됩니다."


아내가 매달 주는 용돈을 단 한번도 쓰지 않아 돈만은 여유롭다. 이런 기계정도는 잔뜩 살 수 있을 만큼.

분명 기계니까 나보다 집안일을 더 잘하겠지. 쓸데없는 대화로 아내와 딸을 화나게 만들지도 않을 거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모델을 추천드립니다."


직원에 안내를 따라 간 곳에는, 나와 체격이 엇비슷한 안드로이드가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앞치마를 새로 안 사도 되겠네. 생각하며 눈으로 훑어본다.


"구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기 대화 설정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반말로 됩니다. 친근한 느낌의."


기계가 주인님 거리며 따라붙는 건 좀 거북하니까.

계산이 끝나자 직원이 안드로이드에 전원을 넣은 뒤, 목 뒷부분과 자신의 단말을 연결해 이리저리 조작했다.


"네, 이걸로 설정이 끝났습니다. 고객님을 주인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대로 데리고 가실건가요?"

"가지고 가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도 반응이 없길래 잠깐 의아했으나, 직원이 "고객님이 가시면 따라갈거에요."라고 하길래 일단 자리에서 벗어났다.

오, 진짜 따라오는구나.

일단 얘랑 같이 식자재나 사볼까, 생각했다.




**********




"아침에는 요리를 만들어서 아내와 딸한테 밥 먹을거냐고 물어보고, 안 먹는다고 하면 알아서 처리해."

"알겠어."

"아내랑 딸이 둘 다 집 밖으로 나오면 집안일을 해. 딸 방은 싫어하니까 들어가지 말고."

"알겠어."


요즘 AI는 대화로 학습시킬 수 있어서 좋네. 생각하며 안드로이드와 대화한다.

이 녀석이 묘하게 나랑 목소리가 비슷해서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만 빼면, 대화 성능도 만족스러웠다.


"옷은 내 방 맨 아래쪽 서랍에 있는 거 대충 꺼내입어. 그것 때문에 체격이 비슷한 거니까."

"옷이 들어가기엔 작아 보였는데."

"얼마 없어서 그래. 내 통장 접근 권한 줄 테니까 사고 싶은 옷 있으면 사."


그리고, 하며 아내와 딸의 대화법을 알려주려다 말을 삼킨다.

응. 진통제를 받았다고 해서 피를 안 뱉는 건 아니니까. 잠깐 안드로이드를 정지시키고 화장실로 이동한다.


"괜찮아?"


안드로이드에게 손바닥을 펼쳐 따라오지 말라 표시한 후, 엄지손가락을 올려 괜찮다고 표현한다.


"커흑..!"


..피의 양과 고통이 더 심해졌다. 약 정도는 처방받을 걸 그랬나.


세면대에 피를 잔뜩 게워내고 난 후,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며 안드로이드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목 안에 이물감은 사라졌지만, 어째선지 어지럽고 심장이 아팠다.

아니, 뭐가 '어째선지'야. 너 암이잖냐.


양손으로 볼을 가볍게 친 뒤, 크흠대며 안드로이드에게 다가간다.


"-------"


"미안, 늦어버렸어."하고 말하려던 목구멍에서 바람이 샌다.


"-----!"


..아까 뭔가 진득한 걸 뱉어내긴 했는데, 이렇게 된건가.

안드로이드는 내가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 걸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길래, 레시피를 적는 노트를 꺼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내가 하려던 말은 이걸로 끝. 아내랑 딸한테 많이 말 걸지 말고. 상대쪽에서 대화하면 네가 아는 선에서 대답해줘.'


안드로이드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엄청 빠르게 움직이네.


"왜 말로 하지 않는거야?"

'목소리가 안 나와. 이것도 암 때문인지 몰라도 나 암이거든.'

"병원은?"

'가봤어. 이미 시한부라 2주 후에 죽는다네.'

"..."


안드로이드가 침묵한다. 위로의 말을 찾는 중인가.

빠르게 '위로는 필요 없어.'라고 적어 안드로이드에게 보여주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내와 딸, 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어?"

'기다려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려던 나는, 잠깐 멈칫하며 행동을 멈춘다.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이 몇 년 전이더라.



'아니다, 그냥 내 의안 접근 권할 줄테니까 알아서 분석해봐. 둘 다 여자고 나이차이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알아볼 수 있지."

'일단 전원 끌게.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 킬테니 기다리고 있어. 절전모드로 해두면 되나?'

"응. 그렇게 해두면 돼."


목 뒤쪽에 스위치가 있다고 했었지.

그 스위치를 내리려던 찰나, 안드로이드가 한마디 더 꺼냈다.


"굳이 스위치를 내리지 않아도 돼. 스위치는 켤때만 필요한 거거든. 명령으로도 끌 수 있어.

게다가 지금 의안 접근 권한을 받는 중이니 조금은 기다리는 게 좋아."

'아하, 실수 할 뻔 했네.'


머쓱한 탓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기다리면서 뭐하지. 크흠대며 생각하던 찰나..


"그나저나, 의안은 왜 낀거야?"

'기계가 분위기 바꿀줄도 아네. 뭐 됐어.'


안드로이드가 질문한 탓에, 대답하며 시간을 보냈다.

..의안 접근 권한을 주는 건, 의외로 오래 결렸다.




**********




"..저기."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후, 해놓은 요리를 정리하던 중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어, 어? 왜, 딸?"


아니, 낯설긴 하지만 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다.

반 년정도 목소리를 못 들어본,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내 딸의 목소리다.


"..이거."

"초콜릿? 그게 왜?"


딸의 표정이 살짝 구겨진다. 빨리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아직 의식이 몽롱해 늦어졌다.


"..누가 했어?"

"아, 선물? 그거 내가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하고 올려놓은.."

"필요없어."


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이 식탁에 초콜릿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정리하던 걸 멈춘 뒤, 식탁에 둔 초콜릿을 집어들고 딸을 뒤쫓았다.


"잠, 잠깐만! 초콜릿 싫어하니? 어릴때는 좋아했잖.."

"..어린애 취급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할 일은 내가 할테니까 신경쓰지마."


쾅.

방문이 닫힌다.

..뭐가 문제였을까. 달달한 걸 싫어하나?

하고, 머리를 긁으며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갔다.




**********




"..나, 내일 좀 멀리까지 나갈건데."


어찌저찌 요리를 정리해낸 뒤, 씻고 잠들 준비를 마친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그래서."

"저녁까지 안 돌아올수도 있으니까, 없으면 저녁은 알아서 처리해줘."

"그래."


아내는 대답하자마자 이불을 덮고 눕는다.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묻어나온다. 여기서 더 말을 걸면 화낼텐데.

아냐. 그래도 이유정도는 알려야지. 갑자기 사라지면 당황할수도 있잖아.


"왜 그러냐면-"

"아 알았어.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


이번에도 말이 잘린다.

..지금 하려는 말은 진짜로 중요한 말인데. 귀찮다는 듯 반응하기에 약간 상처받았다.


"그래도-"

"아, 알겠다고!!"


신경질적인 고함. 순간 내 뇌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내가 그걸 하나하나 들어야 돼!? 그 정도는 알아서 해!!"

"..."

"나 요즘 바쁘다고 말했잖아!? 돈도 안 벌어오는 주제에 피곤하게 만들지 마!!"

"..알았어."


잠깐 자리에 선 뒤, 쥐어짜듯 대답한다.

..뭐, 내 아내는 내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쓰겠지. 딸도 마찬가지고.


내일은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와야겠네. 습관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아내의 방을 나갔다.




**********




"일주일 만에 키는 건가, 일어날 시간이란다 기계야."


아내와 딸이 모두 집 밖에 나간 정오. 조심스럽게 안드로이드를 킨다.


"현재 시각 13시 25분. 작동을 시작합니다."

"기술이 발달해도 기동은 늦는건가."


기계적인 딱딱한 음성이 흘러나온 뒤, 안드로이드의 눈이 잠깐 푸른빛으로 빛난다.

그 후 기동이 완료된 안드로이드는 눈을 몇번 깜빡이더니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고, 내게 안부를 물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나오네."

"일시적인 거였어. 나 본가 갔다 올테니까, 잠깐 내 역할좀 하고 있어."

"가족한테는 뭐라고 설명할까?"

"집안일만 제대로 하면 뭐라 안해. 애초에 아내라 딸 둘다 나 미워해서 그런거 안 물어볼거야."

"어째서 미움받고 있어?"

"글쎄다, 나는 모르지."


입은 앞치마를 벗어 안드로이드에게 입혀놓고, 청소기를 찾아 안드로이드에게 건네주-


"컥, 크흡..."


-려 했는데, 순식간에 피를 뱉어버렸다.

..이렇게나 순식간에? 내 상태가 심각해지는 건가?


"괜찮아?"

"괜,찮아.. 그 앞치마도 청소해놔.."

"각혈을 하는 암은-"

"괜찬,다니까.."

"알겠어. 그럼 청소를 시작할게."


오, 역시 기계답게 순식간에 의견을 바꾸네. 믿음직해.

안드로이드가 청소를 하는 동안 나는 뒷처리 후 옷을 갈아입었고, 지갑을 챙겨 집 문을 열었다.


"다녀와."


멈칫. 안드로이드의 말에 잠깐 행동이 멈춘다.

마지막으로 배웅을 받아본 게 언제였더라, 아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지 않으며


"다녀올게."


하고, 대답했다.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였다.




**********




"..다녀왔어요. 어머니, 아버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야, 내가 귀가를 알리는 건 외딴 산 속의 묘지였으니까.


"간만에 찾아뵙네요. 죄송해요. 시간이 없었거든요. 전업주부도 은근 할 일이 많네요."


시선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어머니의 묘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매번 내 어리광도 받아주셨는데, 어째선지 지금 그리워졌다.


"그래도 어머니처럼 담배는 안 핍니다. 아니, 끊었죠. 냄새 배는게 은근 심하더라구요.

술은.. 마셔본지 오래되긴 했네요

마침 두 분이 좋아하셨던 술을 가져왔으니, 오랜만에-"


챙긴 배낭을 내려놓고는, 지퍼를 열어 술을 꺼내려던 그 순간..


"2주라고, 했, 었는데.."


마치 토를 하듯 피가 쏟아져나왔다.

손이 피로 한가득 물든 걸 보고 깨닫는다. 아, 지금 죽는구나.


다리에 힘이 빠지고, 목구멍이 불타오르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2주 후에 죽는다며. 이 돌팔이 의사야.

부모님 앞에서 죽는다니 불효자네! 생각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당신, 뭔가 느낌이 달라진 것 같은데."

"그래?"


남편이 멀리까지 나갔다 온다고 말한 날의 2주 뒤, 그러니까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그날.

오랜만에 자세히 들여다본 남편의 얼굴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평소에 자세히 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레시피도 뭔가.."


연애할 때 먹었던 것과 다르네,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바쁘다며 아침을 안 챙겨먹은 게 누군데.


"기록대로 만들었는데?"

"..으음, 평소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해야 하나."


얼버무린다.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되새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해서 결혼한건데 너무 폭언했나.


분명 상처를 받았겠지,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생각하며 남편을 훑어보는데, 도마를 닦아내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의외로 깔끔-

..잠깐만, 반지는 어디로 갔지?


"당신, 설마 반지.."


게다가 손등에 문신까지?

나도 모르는 새 남편에게 다가가 손을 확인한 나는, 잠깐 혼란에 빠졌다.

..이거, 안드로이드한테 달려있는 일련번호 아닌가?


"이거 뭐야."

"그야 일련번호지. 처음 봐?"

"일련번호인 건 알아. 그게 왜 당신 손에 달려있냐는 거지."

"..안드로이드한테 일련번호가 달려있는 게 뭐가 이상한데?"


잠깐 의식이 멈춘다.

안드로이드였다고? 언제부터?


내 남편이 아니었냐, 라고 물으려다 멍청한 질문이란 걸 깨닫고 말을 바꾼다.


"..내 남편. 그럼 내 남편은 어디있어?"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관련된 음성 기록이 있어. 재생할까?"

"재생해봐."

"녹음을 재생할게,

-나 본가 갔다 올테니까, 잠깐 내 역할좀 하고 있어.

-가족한테는 뭐라고 설명할까?

-집안일만 제대로 하면 뭐라 안해. 애초에 아내라 딸 둘다 나 미워해서 그런거 안 물어볼거야.

-어째서 미움받고 있어?

-글쎄다, 나는 모르지.


추정컨데, '본가'라는 곳에 있는 게 아닐까?"


..저번에 나갔다고 온다고 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남편이 아니었던 건가?

그, 그럼.. 난 지금까지 저 기계가 남편이라고 착각했던 거야..?


"음성뿐만 아니라 기록된 영상도 있는데, 재생할까?"

"재생해봐."

"영상을 재생할게. 아까 들려줬던 부분은 제외했어.


-컥, 크흡..

-괜찮아?

-괜,찮아.. 그 앞치마도 청소해놔..

-각혈을 하는 암은-

-괜찮,다니까..

-알겠어. 그럼 청소를 시작할게."

"당신!?"


안드로이드가 띄운 영상에는, 말을 멈추고 피를 토하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가야 할텐데, 영상에 담긴 남편은 대충 흘린 피를 정리한 뒤 집을 나갔다.

왜, 왜 저러는 거지? 어디 아픈가?


"이 이후로는 기록이 없어. 돌아오지 않았거든."

"내, 내 남편이 왜 저러는 거야!? 알고 있어!?"

"관련 영상을 재생할게. 방금 보여줬던 영상의 과거 시점이야.


-왜 말로 하지 않는거야?

-'목소리가 안 나와. 이것도 암 때문인지 몰라도 나 암이거든.'

-병원은?

-'가봤어. 이미 시한부라 2주 후에 죽는다네.'


나와 필담을 나누던 때의 기록이야. 아마 암 때문이라고 하던데.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안드로이드가 보여준 건 최소 2주 전의 기록이다. 그때부터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영상에서 남편이 보여준 글에는..


'이미 시한부라 2주 후에 죽는다네.'


...


아니, 아니다. 그럴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아마 지금은-"

"..노트. 영상에 나오는 노트 어딨어."

"자기 방 세번째 서랍에 넣어두는 걸 봤어. 가져올까?"

"아니.. 내가 가져올게.."


가능성을 부정하며 남편의 방으로 걸어간다.

설마. 몰래카메라, 그런거겠지. 내가 짜증냈으니까.


깊게 심호흡하며 문고리를 잡아 돌려, 남편의 방으로 들어간다.


"뭐,야. 이 방..?"


사람이 사는 곳이 맞아?

여기, 아까 영상에서 본 창고잖아?


분명 기억상으론 남편의 방이 맞는데, 생각하며 잠깐 굳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에 창고가 있었나?

드레스룸이라면 모를까, 창고는 확실히 기억에 없었다.


..머릿속에 최악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눈을 질끈 감으며, 그 가능성을 입에 담아 안드로이드에게 묻는다.


"..내 남편, 평소에는 어디서 잤어?"

"식탁에 엎드려서, 매번 지쳐 잠들었어."

"..."


손을 꽉 쥔 탓에,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아프다.

하지만 감히, 감히 손을 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체 왜 몰랐을까. 그렇게나 쇠약해 보였는데.


곧바로 창고, 아니 남편의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걸어갔다.

나갈 준비를 하자. 남편을 찾아 오는거다.


"나도 나갔다 올게. 오늘 안에 안 돌아올테니 딸 오면 요리해줘."


미안해, 지금이라도 사과할 수 있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네, 학원에서 돌아온 뒤 잠깐 생각한다.

엄마는 그렇다 쳐도, 아예 아무도 없기는 쉽지 않은-


"..깜짝이야."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식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으음.. 왔나.."

"..왜 여기서 자?"

"미안.. 저녁 먹고 왔어..?"


잠긴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일어난 그는, "뭐라도 만들어줄게"라며 주방으로 이동했다.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 거절하려 말을 준비하는 나였지만..


"..."

"흐아암.."


뭔가 굉장히 처량해 보였기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원하는 요리는 있어?"

"아니, 마음대로 해."

"알겠어."


내 말을 들은 그는 곧바로 작은 노트를 참고하며 요리를 시작했고,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라도 말을 걸어야 하나, 어색한 침묵이 견딜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동안 대화를 거절한 건 자신인데.


"..요리는, 얼마나 걸려?"


간신히 쥐어짜낸 말이 이거라니. 잠깐 내 자신이 한심했다.


"약 3분 50초 후에 요리가 완성될거야."

"기계같은 대답이네."


분위기를 풀어주는 건가, 잠깐 미소짓는다.

그렇게나 쌀쌀하게 대했는데, 이렇게-


"기계니까, 당연히 기계같은 대답을 하지."


...?


알 수 없는 말이 귀를 통해 들어오자, 행동이 멈춘다.

살짝 올린 입꼬리도 내릴 생각을 못한 채, 멍청하게 아까 한 말을 되묻는다.


"..기계, 라고?"

"응. 안드로이드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내가, 다시 움직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




"..안드로이드라는 건 이해했어. 근데 왜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던 건데?"

"절전모드였거든. 한 시간 전에 일이 끝나서 쉬고 있었어."

"..굳이 식탁이었던 이유는?"

"의안으로, 여기서 잠들어야 한다고 학습했으니까."


누구에게 학습했는데, 내뱉기 전 입을 다문다.

..뭐, 누가 샀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겠지.


질문을 바꿔 의안의 주인을 묻는다. 누구의 의안으로 그 사람을 학습한 건지 궁금했으니까.


"누구의, 의안이었는데?"

"내 주인. 그러니까 네 아버지의 의안으로 생활을 학습했어."

"..그 사람 의안 안 끼는데."

"15년 전부터 의안을 꼈다고 했어.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닐까?"


15년 전, 이라는 울림에 잠깐 기억을 더듬는다.

..아니, 기억을 더듬긴 뭘 더듬어. 그 때의 기억은 없는 게 당연하지.


"음성 기록을 재생할까?"

"..?"

"의안을 낀 이유에 대한 음성 기록을, 재생할까?"


..그걸 말해줬다고? 가족도 아닌 안드로이드에게?

아니, 안드로이드여서 더 쉽게 말한건가. 알다가도 모르겠네.


"재생해줘."

"음성 기록을 재생할게.


-그나저나, 의안은 왜 낀거야?

-기계가 분위기 바꿀줄도 아네. 뭐 됐어. 별 얘기도 아니고.

최대한 간추려서 말하자면, 딸이 실수로 눈을 찔렀거든."


달칵, 잠깐 사고가 멈춘다.

..내가? 눈을 찔렀다고?


"-병원 가서 수술하고, 어찌저찌 해결해서 안대 쓰고 다녔어.

근데 딸이 무서워 하더라고. 그래서 비싼 의안을 산거야.

-하지만 지금 딸은 널 미워하잖아? 의안 산 거 후회하지 않아?

-역시 깡통은 깡통이네. 아빠라는 건 원래 그런거야. 어떻게 미워하고 후회하겠어.


기록은 여기까지야."


...


나, 때문에..

난 그 사람, 아니 아빠의 눈을 잃게 만들어 놓고 그렇게 험하게 대한 거야..?

그러면서도, 아빠는 날 한번도 미워하지 않았다고..?


어지럽다.

누군가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 듯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아파온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괜찮아?"


-흐릿하게, 안드로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과하자.

지금이라도 괜찮을테니, 사과하러 가자.

언제부터 아빠가 사라졌는진 모르겠지만, 이 안드로이드는 알 터였다.


"..우리 아빠, 지금 어디있어?"

"기록을 재생할게."




**********




"미치겠네.."


무작정 남편의 행방을 찾아 차를 몰았건만, 도저히 남편의 '본가'가 어딘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 결혼하기 전 인사드리려 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쓸데없이 드라이드만 하고 올 꼴이잖아.. 지하 주차장에서 잠깐 핸들에 머리를 박고 한숨쉰다.

전화도 꺼져있고,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잖아.


..아니,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그 때, 들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단 한마디, 나가기 전 그의 한마디만 들었다면..

내가 말을 자르지만 않았다면..


'어린아이도 아니고 내가 그걸 하나하나 들어야 돼!? 돈도 안 벌어오는 주제에-'

-우윽.

갑자기 올라오는 구토감에, 억지로 회상을 종료한다.


뭐가, 뭐가 어린아이같다는 거야. 이 멍청한 여자야.

뭐가 돈을 안 벌어 온다는 거냐고. 이 멍청한 여자야..


사랑해서 결혼한 거잖아. 사랑해서.

어떤 상황이든 널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이잖아.

..암, 에 걸린 주제에, 평소처럼 열심히 집안일을 해준 멋진 사람이잖아.


시야가 흐려진다.

머리를 박은 핸들이 조금 축축했다.


그립다.

하고 생각하자마자, 내 자신이 우스워진다.


그립긴. 2주 동안 남편이랑 기계도 구분하지 못한 주제에.

그렇기에, 그렇기에 더 그리워진다.


마치 그가, 자신을 한낱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 생각한 것 같아서.

내가 그에게 사랑을 보여주지 않아 한 생각인 것 같아서.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나왔지만, 도저히 입꼬리를 내릴수가 없었다.


비웃음 받아도 싼 여자. 그리 생각하며.




**********




아니, 우리 아빠가 죽었을리가 없다.

암에 걸린 정도로 죽을 나약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분명,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건 나와 엄마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것이다.


내가 그런 고마운, 사랑하는 아빠에게 모질게 대한 불효녀라는 말이야?

아니, 그럴리가 없다. 분명 아빠는 날 용서 해주실거다.


"괜찮아?"

"본가, 라는 곳은 너도 모른다는 거지."

"응. 의안은 엘레베이터에서 신호가 끝겼거든."

"..."


..사과할 수 있는걸까.

영원히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괜찮아, 아빠는 꼭 돌아오실 테니까."

"다시금 말하지만, 시한-"

"조용히 해."


안드로이드의 헛소리를 차단시키며, 식탁에 앉아 돌아올 사람을 기다린다.


"-슬슬 현실을 직시해. 넌 사과할 수 없어,
시한부라는 말의 의미를 알잖아?"


머릿속에서, 짙고 어두운 소리가 끈적하게 울려퍼진다.

속이 메스껍다.


아니, 기다리면 될거야. 기다리면 돌아오셔서 평소처럼 내게 요리 해주실 거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해보지만 메스꺼움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두통이 생겨난다.


""-괜찮아?""


안드로이드가 뱉는 목소리에, 어째선지 아빠의 말이 겹쳐 들린다.


""신경쓰지마.""


아아, 그런가.

내가 아빠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저 "괜찮아"라는 한 마디였던 거구나.


그렇게나 날 아껴준 사람인데.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데도, 고작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랑해준 사람인데.


가장 많이 나눠본 대화가 "괜찮아"라니.


'신경쓰지마.'


심지어 그 대화의 끝이, 내 거절이라니..


"우윽.."


메스꺼운 속이 한껏 날뛰며, 구토감이 극에 달한다.

안된다. 아빠가 그토록 열심히 청소한 바닥인데, 여기서 게워낼수는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멀디 먼 화장실로 향한다.







"---------------"







-아프다.

게워낸 위가, 따끔거리는 목구멍이, 흐릿한 머리가 아프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텅 비어버린 위에서, 따끔한 걸 뱉어낸다.

..평소에 갖은 이유를 대며 저녁을 먹지 않아, 텅 비어버린 위에서.


"이런, 느낌인가..?"


감히, 아빠의 각혈과 내 구토를 비교해본다.

증상은 다르더라도, 고통 자체는..


"...윽."


아니, 아니지. 몰려오는 구토감에 입을 막으며 생각을 철회한다.

비교할 것도 없다. 지금 내가 받는 고통은 내가 불러온 고통이니까.

자기가 자기를 역겨워해서 나오는 역겨운 구토니까.




**********




"..영상 기록, 재생해줘."

"-아침에는 요리를 만들어서 아내와 딸한테 밥 먹을거냐고 물어보고, 안 먹는다고 하면 알아서 처리해.

-아내랑 딸이 둘 다 집 밖으로 나오면 집안일을 해. 딸 방은 싫어하니까 들어가지 말고."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의 묘 앞에서 죽었다.

..한가득의 피를 쏟아낸 후, 고통속에서 죽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이미 떠나버린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옷은 내 방 맨 아래쪽 서랍에 있는 거 대충 꺼내입어. 그것 때문에 체격이 비슷한 거니까."


한동안 남편의 사진을 찍지 않아, 남은 건 안드로이드의 영상 기록 뿐이지만.


"미,안. 미안해.."


기록이라도 남은 게 어디인가. 감사하면서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영상을 마주한다.

아아, 진작에, 진작에 잘 대해줄걸.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다.


"--------"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제대로 사과하고..


"-애초에 아내랑 딸 둘 다 나 미워해서 그런거 안 물어볼거야."


피식, 다시 나를 비웃는다.

아니, 언젠가는 이럴 운명이었다.

잃어서야 소중한 걸 깨닫는 여자 따위가, 후회한들 무슨 쓸모겠는가.

난 딱 이 정도다. 곁에 있는 걸 소중히 대하지 않으면서, 막상 잃어버리면 대체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


만약, 아주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잖은 생각을 하며, 또다시 눈물을 쏟아낸다.




**********




'오늘의 일기. 오늘이 며칠인지는 잘 모르겠다. 달력 사는 거 까먹지 말걸ㅎ

신기하게도 왼쪽 눈이 다시 보인다! 요즘 과학 최고!

그래도 미묘하게 불쾌한지 어린 딸은 여전히 날 무서워했다. 뭐, 내가 잘 하면 되겠지.

근데 그렇게나 이상한가..? 난 위화감을 전혀 못 느끼겠는데. 여자는 다른건가?'


"..저도 몰랐어요."


15년, 아빠가 의안을 꼈을 때부터 눈치채지 못 했다.

..의안 탓이라며, 현실도피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체 왜 싫어했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오늘의 일기.

실수로 딸을 상처입힌 모양이다..

분명 어릴 떈 단 걸 좋아했는데, 취향이 바뀌었나?

초콜릿은 세번째 서랍에 넣어놨다. 나중에 사과해 둬야지."


사과할 대상은 이제 없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이미 녹아 흐물흐물해진 이 초콜릿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대화라도 많이 해둘걸.


굳이, 거절하지 말 걸.

미지근한 초콜릿을 살짝 움켜쥐고, 다시 아빠의 일기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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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오타 검수 안했음

쓰는 도중에 6000명 대회도 열렸네ㅋㅋ 가능하면 참여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