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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드.”


 

내가 꺼낸 한 마디에, 로드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아스트라이오스 반역자들의 수장인 룬웨이 오즈

마가 처형당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

 

지금 상황에서 그런 발언은 위험하네.

 

나는 동기를 잃고 싶지 않아.”

 

내가 그 룬웨이 오즈마다.

 

머리카락이 색깔이 하얗게 바뀌었다고 알아보는 이 하나 없을 줄이야.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네.”

 

“그래야지, 이 친구야. 무구가 없어 보이는데, 때마침 나도 무구점에 갈 생각이었거든. 동행하겠는가?”

 

라리에트의 명령을 이행하러 라파엘로 대공령으로 오자마자 카트라 저하의 죽음을 알게 된 지라, 혼자서 그녀의 죽음을 곱씹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서 떠벌거리는 로드를 떼어 놓고 싶었다. 

 

허나 나는 검을 잃은지 오래되었고, 라파엘로 대공령에 아는 무구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카트라 왕세녀 저하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의무가 있었다. 

 

원래 그녀의 약혼자는 나였으니까.

 

과거의 일이지만 그분을 남편으로서 평생 보필하겠다고 맹세했으니까.

 

누이. 

 

나를 미워하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왕세녀 전하까지 이리 만들어야 했습니까?

 

그분을 비참하게 만들어서 제가 후회하기라도 바라셨습니까?

 

의문이 피어올랐다. 

 

허나 나와 누이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

 

바로 이 라파엘로 대공령에.

 

운이 좋아서 누이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의문을 해결할 수 있겠지.

 

“자, 자. 뭘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가. 이 동기만 따르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무구를 소개해 주겠네.”

 

나는 아까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안에서 나는 이미 과묵한 자로 단정된 것인지, 그는 말없이 앞서서 시장으로 나아갔다.

 

나는 원래 오른팔이 있어야 할 곳을 대체한 의수로 주먹을 쥐었다. 

 

메타트론 황궁 기술자가 만들었는지, 마력이 퍼졌다. 

 

하지만 주먹을 쥐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검을 잡았던 감각이 살아날 리도 없었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룬웨이 오즈마는, 아니 윈드는 명예로운 아스트라이오스의 기사단장은커녕 기사도 아니게 되었구나.

 

누이의 배신이 아니었다면 기사단장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을까.

 

아니, 과거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이에게 후회를 돌려주는 일이었다. 

 

설령 과거의 원수, 라리에트 황제의 손을 빌어서라도.

 

“이곳이 바로 라파엘로 대공령의 내로라하는 무구점이 있는 무기 거리라네!”

 

“참 넓군. 그리고 시끌벅적해.”

 

“당연하지. 라파엘로 대공령의 무기 거리는 용병들의 성지니까.”

 

“용병들의 성지라.”

 

“자, 빨리 가세나. 서둘리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것은 다 나가 버린다고.”

 

“……알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기 거리로 들어갔다. 

 

검을 쓸 수 없는 평민 용병 윈드는 어떤 무구를 구해야 할까.

 

일단은 누이와 카트라 저하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무구 생각으로 머리를 채웠다. 

 

누이에게 후회를 바칠 방법은, 그녀의 뒷배인 라파엘로 대공을 암살하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

 

 “오, 체격을 보면 검 꽤나 쓸 것 같은데 단검과 밧줄이라니. 용병단 척후라도 지망하고 있는 겐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사대 시절, 라리에트를 암살하기 위해 전직 아스트라이오스 암살 길드 수장에게 기술을 배웠다. 

 

물론 평민 출신이었던 그의 사지는 개의 먹이가 된 지 오래였다. 

 

아스트라이오스 암살 길드 수장의 기술로 누이와 대공에게 복수하면 그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일까. 

 

황제를 죽이기 위해 배운 기술을 황권을 강화하는 데 쓰게 될 줄이야.

 

내가 검사 같은 체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암살자의 무기를 구매했는지 의문을 품은 로드가 내 몸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의수와 의족을 발견한 그는 화들짝 놀랐다.

 

“정말 미안하네, 윈드. 팔다리를 잃었을 줄이야.

 

내 배려가 부족함을 사과하겠네.”

 

“괜찮네.”

 

나는 대강 대답하고 방금 구매한 단검 중 두 자루를 쥐었다. 

 

멀쩡한 왼손에만 가벼운 단검의 감각이 느껴졌다. 

 

오른손으로 마력을 담아 투척하면 거리도 늘고 강도도 세질 터.

 

원거리에서 단검을 던져 대공을 죽인다.

 

룬웨이 오즈마답지는 않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호위 임무에 척후가 필요할지 의문이군.”

 

“그래. 호위 임무였지. 용병단에서 무엇을 호위하는지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내가 아는 이에게 들은 따끈따끈한 정보라네. 잠시 가까이 와 보게.”

 

로드가 빨리 가까이 붙으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남자와 살을 맞대는 취향은 없었지만, 남들이 들으면 안되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 같아 일단은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붙자, 그가 속삭였다.

 

“우리의 호위 대상은 바로 대공비의 장례 행렬이라네.”

 

“뭐?”

 

순간 놀라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에 용병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큰 소리 내지 말게! 호위 대상이 반역자의 관이라는 것을 알면 누가 의뢰를 맡겠는가?”

 

“카트라 저하는 반역자가……”

 

내가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로드가 내 입을 막았다. 

 

“아이고, 이 사람아. 제발 그놈의 ‘저하’ 소리 그만하게. 

 

자네도 목이 잘리고 싶은 건가?”

 

아무리 라리에트의 비호가 있다 한들 아스트라이오스 출신 평민 용병 윈드로서 반역자가 되면 이번에야말로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

 

나는 로드의 손을 떼어내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 저하는 메타트론의 반역자지.

 

그리고 나도.

 

“미안하네, 로드.”

 

“알면 되었어. 다시는 사람 많은 곳에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게.”

 

“그런데…… 담배는 어디서 살 수 있나?”

 

“아, 그건 또 명물 거리가 있지. 따라오게나.”

 

내가 담배로 화제를 돌리자 정색했던 로드가 촐랑거리며 앞장섰다. 

 

+++

 

 저녁이 되자 로드와 헤어졌다. 

 

무구와 담배를 사느라 돈을 거의 쓴 나는 노숙을 결정했지만, 그는 여관을 예약했다 한다. 

 

경박했지만 괜찮은 자였다. 

 

속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장례 행렬 호위는 내일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들판 구석진 곳에 잠자리를 꾸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곳에서는 부디 자유로워지시길.”

 

그녀의 영혼이 담배 연기를 타고 천국으로 가기를 빌며 손을 모았다. 

 

“그리고 룬웨이 오즈마의 이름을 바칩니다. 신은, 메타트론의 용병 윈드로서 당신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단검을 들어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 행동이 돌아가신 저하께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의 기사단장이자 왕국 유일의 공작이었던 ‘오즈마 룬웨이’와 작별을 고하는 행위였으니까.

 

“그럼 신은 가보겠습니다.”

 

나는 계속 연기를 피워 대는 담배를 두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흑복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에 띄는 흰 머리카락은 로브로 감췄다.

 

암살 장소인 대공성의 사전 답사를 위해서였다.

 

구조를 알아 놓아야 암살이 더 수월해 지겠지.

 

소드마스터로서 모아 놓았던 마력과 의수의 마력을 합치면 잠입 자체는 가능할 터.

 

대공성 안에 배치되어있는 병력, 대공이 쓰는 내실의 위치……

 

알아야 할 것들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나는 대공의 가족이나 빈객(賓客)이 쓰는 앞문이 아닌, 사용인이 드나들고 시체가 나오는 뒷문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 안으로 숨어들어 드나드는 병사들을 한 명 한 명 세었다. 

 

행색을 보니 문지기는 아니었다. 

 

“이리로 나오시죠, ……주님.”

 

“고마워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녀는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대공에게 그러한 대접을 가치가 있었다. 

 

“다음부터는 대공 전하를 모시고 난 다음 이곳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러죠.”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누이였다. 

 

결사대로서 어둠 속에서 만나다 보니 밤눈만 밝아져, 누이의 옷차림까지 또렷이 보였다. 

 

코르티잔이나 입을 법한 가슴이 파인 드레스.

 

심지어 치마 부분은 허벅지가 트여 있어 보기 남사스러운 속옷이 보였다. 

 

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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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 후붕이 여러분은 들판에서 담배 연기를 피우지 마는 데스.

 

오늘 딸깍상 삽화의 주인공은 후붕상 윈드(전 룬웨이 오즈마)인 데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