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누이의 뒷배라.

   

구미가 당기는 표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양 무릎을 꿇었다.

   

기사가 아닌 황제의 사냥개였기에, 기사의 예법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그래야지.”

   

라리에트는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었다. 

   

“이걸 가지고 가려무나.”

   

그녀는 내 손에 종이 한 장과 주머니를 쥐어 주었다. 

   

주머니에는 은화와 동화 수십 닢, 그리고 며칠간 먹을 수 있는 건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라리에트가 건네준 종이는 메타트론 제국에서 발급한 용병증이었다.

   

[윈드]

   

그 용병증의 주인은 ‘윈드’라는 이름의 평민이었다.

   

그의 신원을 보장하는 칸에 옥새가 찍혀 있었다. 

   

오늘부터 그의 이름이 나의 이름이라는 듯.

   

“바람처럼 나타나서 죽이고 바람처럼 사라져라.

   

참 귀여운 이름이지 않니?”

   

내 주인께서는 사냥개가 아니라 애완견 이름을 지어 놓으셨군.

   

나는 속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완견처럼 헥헥거리는 것 보다는 차라리 과묵한 것이 나았다.

   

“그럼 가 보렴. 대공령은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성공하면 뵙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도도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열었다. 

   

대충 이곳으로 나가라는 의미겠지.

   

나는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 그대로 나갔다. 

   

+++

   

 메타트론 제국의 제도(帝都).

   

오랜 투옥 생활 덕분인지, 제도의 저자는 익숙한 듯 낯설어져 있었다.

   

허나 용병들이 의뢰를 받는 곳은 대강 알고 있었기에, 용병단에서 라파엘로 대공령의 적당한 의뢰를 받았다.

   

라파엘로 대공령으로 떠나는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정규 용병이 아닌 떠돌이 용병들이었다.

   

막 용병이 된 신참이거나, 실력이 없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밑바닥 용병.

   

아스트라이오스 왕국의 기사단장이었을 때는 그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돈이 필요해 칼으로 근근이 밥벌이를 할 뿐인, 무인의 명예도 모르는 버러지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허나 지금은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인생은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일.

   

기사단장이었던 자가 사냥개이자 떠돌이 용병이 될 줄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용병단 대기실에는 침대도 없이 모포로 감싸진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을 뿐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돌바닥과 창살 뿐이었던 감옥보다는 편안했다. 

   

그래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잠깐 눈을 붙이려 했는데, 넉살 좋은 용병 하나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반갑네. 내 이름은 로드. 자네 이름은?”

   

“윈드.”

   

“오, 윈드라. 나나 자네나 이름이 ‘드’로 끝나니 이것도 인연 아닌가.”

   

로드가 내 등을 팍팍 쳐 대며 웃었다. 

   

용병인 그로서는 친근함의 표시였겠지만, 기사단장이었던 룬웨이 오즈마는 그 행위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손을 떼라고 고함치고 싶었다.

   

허나 고용주의 건물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으니, 무시하기로 했다.

   

“참 과묵한 친구군. 사연이 있으니 떠돌이 용병이 되었겠지. 이해하네.”

   

“이해했으면 말 걸지 말아 주게.”

   

“거 참. 동기끼리 차갑기는. 자네도 라파엘로 대공령으로 가나?”

   

“그렇네.”

   

떠돌이 용병으로 같은 날에 의뢰를 받았을 텐데 동기라니.

   

허나 대꾸해 주기도 싫어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동기간의 정으로 따끈따끈한 소식을 하나 알려 주겠네. 서부 마탑주 칼리오페 사마엘리스가 대공령을 방문했다는군.”

   

“칼리오페 사마엘리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대공과 친한 마탑주 중 ‘사마엘리스’라는 성을 가진 귀족이 있었나.

   

“아.”

   

“음? 혹시 짚이는 게 있나?”

   

콧대 높은 마탑주가 대공을 만나기 위해 대공령을 방문할 일은 많지 않다.

   

그리고 아스트라이오스 정벌군의 선봉이었을 때부터 성정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던 그와 친밀한 마법사는 없다시피 했다. 

   

필시 그 마탑주는 을의 입장이었다. 

   

대공을 모시는 마탑주라.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한 명밖에 없군.

   

“레이웨이 누님이군.”

   

“음?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닐세. 마탑주와 대공이 맡기고 용병단에서 중계한 의뢰라.”

   

“자네도 역시 기대되나 보군! 보수가 얼마나 쏠쏠할지. 잘 하면 용병 생활을 청산할 만큼 벌지도 몰라.”

   

“건투를 비네.”

   

“이제야 좀 살갑게 대해 주는군. 나야말로 자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

   

로드는 주먹을 내밀어 보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지 알 수 없었다.

   

“이 친구야, 산골짜기에서 살다 왔나. 자네도 주먹을 쥐어 보게.”

   

“이렇게?”

   

나도 그를 따라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로드가 자기 주먹으로 내 주먹을 밀었다. 

   

나를 모욕하는 건가?

   

“이건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정말 시골자락도 아니고 산골짜기에서 살다 온 건가? 이건 동료가 서로를 북돋아 주는 인사법이라네. 용병 생활 하면 많이 하게 될 거야. 잘 기억해 두게나.”

   

“머릿속에 새겨 두겠네.”

   

나는 대충 대답을 해주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더는 대화하기 싫다는 기색을 보이자, 로드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입을 다물었다. 

   

“라파엘로 대공.”

   

나는 표적의 이름을 입속에서 되뇌었다. 

   

아스트라이오스 정벌의 선봉에 선 노장이자, 카트라 왕세녀 저하의 남편.

   

잘 됐다. 

   

대공이 누이의 뒷배건 말건, 그는 존재만으로도 분노를 불타게 했다. 

   

나는 놈을 저하의 남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저하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결사대원이 하나하나 죽어 나갈 때,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분.

   

누이를 후회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만큼 카트라 저하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대공을 암살한다면 행복해하시는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라파엘로 대공령이오!”

   

용병들을 태우는 공동 마차.

   

마차를 몰던 마부가 그 자리에 멈춰 크게 소리를 쳤다. 

   

“어서 타세.”

   

로드가 나를 데리고 마차 앞으로 갔다. 

   

다른 용병단에서도 의뢰를 받은 이가 있었는지,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 타 있었다.

   

저들이 아무리 흉악해도 메타트론의 반역자만 할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빈자리에 앉았다. 

   

“자네 정말 담이 세군. 정규 용병들이 두렵지도 않나?”

   

“딱히.”

   

로드는 말상대가 필요한 듯 계속 말을 걸어 왔다. 

   

허나 마차에서나마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기에 단답으로 답하고 눈을 붙였다.

   

“출발하겠소!”

   

덜컹- 

   

마부의 출발 선언과 함께, 첫 임무지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였다 깨니―

   

“도착일세, 윈드. 얼마나 피곤했으면 도착 소리도 못 들었나?”

   

나는 라파엘로 대공령에 서 있었다. 

   

수도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라파엘로 대공령.

   

이곳에는 벌써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대공령의 용병단 건물에는 검은 천이 걸려 있었고, 정규 용병들은 죄다 가슴에 검은 천을 달고 있었다. 

   

“누가 죽기라도 한 건가.”

   

나는 검은 베일을 쓴 채 고개를 숙이고 거리를 다니는 여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로드가 내 팔을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일주일 전 라파엘로 대공비가 죽었어. 

   

오늘부터 장례식이 시작했고. 

   

대공 전하의 딸뻘인 한참 어린 아가씨라는데. 참 안됐지.”

   

“대공비가, 카트라 저하가 돌아가셨다고?”

   

그 한 마디에 용병증과 자금이 들어 있는 자루를 떨어뜨릴 뻔했다. 

   

건강하신 분이었다. 

   

그런 저하께서 벌써 돌아가실 리 없었다.

   

분명, 분명히 누군가의 음모가 있었다. 

   

대공이나 누이 같은 간악한 자들의……

   

“카트라 ‘저하’? 아, 자네 아스트라이오스 출신이었구만. 그래서 제국 사정에 어두웠나 보군. 자네 마음은 알겠네. 나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한 소왕국 출신이니까.

   

그런데 어떡하나? 말이 좋아 대공비지 대공 전하가 떠맡은 반역자인데.”

   

“저하는 반역자가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자루를 든 손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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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얀순이인 라리에트 황제인 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