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와 멸시의 한 가운데 서있는 자에게 따스한 한마디를 건네라. 


어쩌면 그렇게 서서 버티고있는 유일한 이유가 당신일 수 있으니. 



***** 


방대한 마나가 살아 숨쉬는 아이란 대륙. 


흉포한 마물을 물리치기 위해 인간은 마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기사, 혹은 마법사라고 불렀다. 


기사들은 베지 못하는 것을 베고, 마법사는 발하지 못하는 것을 발했다.



""크라라라락!!"" 


"발목!! 발목을 베라!!" 


"끄아아악!! 내..! 내 팔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을 베고 발하지 못했다. 


이 세계가 그런 은혜를 준 것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크하아아악!!!"" 


"브..! 브레스다!! 모두 피해.." 


방금까지 살아숨쉬던 기사 몇이 타다 만 고깃덩어리가 된 것은 단 몇 초만의 일이다. 



"막아!! 마법사들 베리어!! 빨리!!" 


"아.. 알겠...? 케헥!" 


"히이... 히이익! 제임스...?" 



모든 것을 막아내는 베리어를 가볍게 갈라내고, 모든 것을 베는 검에  흠집도 나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용.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존재였다.



단 몇 초만에 5명이 죽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들 모두가 마나를 자유롭게 다루는 마나 유저였음에도.



하지만 인간이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음에도 아이란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던것은 다름아닌 조직력에 있었다.



10 명이 넘는 사람이 전투불능이 되었음에도 아직 승기는 충분했다. 


백에 가까운 마나 유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리라.



점차 시간이 흐르자 용의 화염은 사그라들었고, 그 비늘도 벗겨져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카....학..." 



짧은 단말마와 함께 쓰러진 용. 


그 주변으로 기사들이 모여들더니 각자 가진 검으로 확실히 숨통을 끊어놓는다. 



"하이고... 빡센거... 역시 쉽지 않네. 용 사냥은..." 


"그.. 그러게말입니다. 네이트 상급 기사님."



"오~ 그래도 살아남았구나 스튜어트? 역시 기대받는 유망주는 다르네." 


"아, 아닙니다... 말씀 감사합니다만, 아직 많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이 신병 혹은 견습 기사와 마법사였음에도 스튜어트의 몸은 아주 멀쩡해보였다. 


"너 같은 유망주를 최전방에 보내다니. 이래서 권력이 무섭다니까..." 


"그.. 전 아무것도 안했는데 어째서..." 



"네 재능을 탓해라. 그러게 누가 도련님을 대련에서 압살하래?"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동부 기사단으로 발령 받은게 어디야." 


"그 독한 양반 입장에서, 기사단이 아니라 어디 개척지 자경단장으로 보내버릴 속셈이었을텐데." 


"맞습니다 하하..."



아이란 대삼림 서부에 위치한 아이란 왕국은 국경 동부가 가장 위험한 곳이다. 


수 많은 마물의 침입과 더불어 가장 강한 존재. 드래곤을 상대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튜어트가 개척지같이 사지나 다름없는 곳으로 발령받지 않은건 그의 재능 덕분이었다. 


평민 출신에 집안도 부유하지 않았던 스튜어트는 높은 마나 감응력으로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에 오르고 기사 서임을 받았다.



그만큼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중앙 기사단장의 아들을 곤죽을 내버려도 기사 딱지를 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능에도 불구하고, 스튜어트는 항상 노력했다. 


그의 기사도는 '약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마음 속 영웅은 그런 것이었기에.



그래서 스튜어트는 결코 기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 무엇도 그의 기사도를 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자 그러면 수고했고, 이제 마무리 해야지." 


"예? 어떤 것 말입니까?" 


"저거 보이나? 작은 도마뱀같은거." 


"...예."




네이트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 보이는 것은 수박만한 도마뱀 한 마리. 


아니... 등에 나있는 조그마한 날개를 보니 도마뱀은 아닌듯 했다.



"저게.. 뭡니까?" 


"아~ 넌 용 사냥이 처음이라고 했었나? 그럼 모를만도 하겠네."



"용들은 보통 무리를 지어다니는데, 이렇게 떨어져나온 녀석들은 꼭 아이를 데리고있거든." 


"아.. 그렇습니까?"



스튜어트는 마음 속으로 찜찜함을 느꼈다. 


'어쩌면 저 용이 이렇게 강력히 저항한 것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사단이 용을 막지 않았다면 사상자가 발생했을지 모를 일이었기에... 마음 속 동정심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네이트가 한 말을 듣기 전까진.



"그리고 헤츨링은 강력한 엘릭서나 다름없는 귀중한 녀석이지." 


"...예?" 


"우리같은 동부 떨거지들한테 엘릭서는 단장급한테나 지급되지만, 이렇게 노획물은 현장 근무자들한테 알아서 나누라고 하거든." 


"너한테도 돌아갈테니 기대하라고..? 저거 한 입이면 마나 수련 2년치는 거뜬할테니까."



순간 스튜어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부모 용을 죽이는 것까진 이해가 됐다. 


저 용을 내버려두면 인간이 죽으니까. 


실제로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땐 이미 10명이 넘은 사람이 잡아먹힌 뒤였으니까.



하지만, 저 작은 아이에겐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이건 기사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돼지나 다름없는 행동이지 않은가.



부모를 죽인 뒤 자식도 죽여야하며,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그것을 먹겠다고 말하는 네이트를 스튜어트는 반쯤 미친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 뭐야 스튜어트 너 표정이 왜..." 


"...네이트 상급기사님?" 


"앙? 왜 그러지?" 


"이 곳에선 그게 정상인겁니까?"



스튜어트의 말을 듣자 지금까지 장난스럽던 네이트의 표정이 일변했다.



"하아... 스튜어트 네가 하고싶은 말이 어떤지는 대~충 예상이 가지만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바보같더라도 저는 기사로 남겠습니다." 


"눈을 감은 돼지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뭐?? 이 새끼가..!"



스튜어트는 순간 몸을 헤츨링 쪽으로 가속시켰다. 


"야!! 크룬드! 코스! 이 새끼 잡아!!" 


하지만 그 둘은 갑작스런 상황 때문인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스튜어트에게 제압 당했다. 



"야..! 스튜어트!! 야!!" 



같은 마나 유저라고 해도 격이라는게 있다.


일반적인 마나 사용자를 마나 유저라고 부르며


그 윗 단계, 마나를 이용하는 경지를 넘어 마나와 하나가 되는 익스퍼트.



그리고 마나 익스퍼트는 이곳 동부 기사단 내에서도 몇 명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토벌에 참가한 자들 중에서는 토벌부장이나 일부 상급기사 뿐이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일반 기사였음에도 익스퍼트였다.


그를 쫒을 수 있는자는 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렇게 옆구리에 헤츨링을 끼고는 대삼림 심부를 향해 달려간지 어언 30분이 지났을 때 쯤. 


몇 분 동안은 그를 쫓아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더이상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더욱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이 아이를 해칠 수 없도록. 



***** 



쉬지않고 달린것이 몇 분 째였는지 기억조차 안날만큼 달린 뒤에야 스튜어트는 발걸음을 늦췄다.



"허억... 허억..." 


"하... 저질러버렸네... 어디까지 들어온거지...?"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너무나 깊게 들어온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변은 푸르다 못해 짙은 녹색을 띌 정도의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한담..."



그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였다. 


1. 이 헤츨링을 들고 다시 돌아가서 용서를 빈다. 


2. 이 아이를 데리고 이 숲에서 살아간다. 


3. 대삼림 반대편 성룡국으로 향한다. 



첫 번째는 죽어도 선택하고싶지않은 선택지였다.



두 번째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 대삼림에는 자신보다 강한 마물들이 존재했다. 


또 자신보다 약하더라도 수가 셋 이상이면 스튜어트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다.



가장 그럴듯한 선택지는 세 번째였다.


아이란 대삼림을 둘러싼 여러 왕국들 중 단연 강한 나라를 꼽으라고하면, 모국인 아이란 왕국 그리고 대삼림 서부를 차지하고있는 성룡국이다.



성룡국의 이름에 용이 들어갈 만큼, 그들은 용을 신성시하는 풍습을 가지고있다.



"그래도 성룡국이라면 아이란보단 낫겠지.."


"그럼... 길은 정해졌으니.."



기사이길 포기하면서까지 이 아이를 구해냈다.


혹자는 그런 바보같은 짓을 왜 하냐고 비판하겠지만.


스튜어트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약자를 구하는 검'


그것이야말로 내 정의, 기사도이니.



그렇게 다짐을 마쳤을 때일까?


옆구리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응...?"


커다란 도마뱀처럼 생긴 이것이 용이라니.


방금까지 치뤘던 전투에서 느꼈던 용과 이 아이가 주는 느낌은 천지차이였다.



"...꽤 귀엽게 생겼구나. 헤츨링은."


검붉은 비늘과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의 몸은 마치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도마뱀을 안아들고 구경하던 찰나


그의 기감에 무언가 느껴졌다.



지금껏 대삼림을 가로지르며 꽤나 많은 마물들의 기감이 느껴졌지만 지금것은 그것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맥이 자신을 바라보는듯한 압박감에 아이림의 발은 얼어붙고 말았다.




산맥이 하늘을 날며 자신의 눈 앞에 내려앉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니 산맥은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용이.



'아까와는... 격이 다르다..'



"인간. 어째서 헤츨링을 들고 이런 곳에 있는거지?"


머릿 속을 파고드는 염화가 움츠려있던 스튜어트의 정신을 깨운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지금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스튜어트는 쓰러질 수 없었다.


"이... 이 아이를 먹으려는 자들로부터 도망치다.. 길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드래곤의 입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재밌는 농담이구나."


"여가 네 정체를 모를것이라 생각해 거짓말을 하느냐?"


"그 복장은 아이란 왕국 기사단의 복장이며, 넌 그저 그 아이를 독식하고싶을 뿐이지 않은가."



"아.. 아닙니다!! 저는... 이 아이가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겁니다."


"제 힘은 스스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전 기사이기에."



그렇게 말하자 드래곤은 아까보다 입을 크게 벌렸다.


'... 웃는건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스튜어트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곤 거대한 형상이 점차 줄어들더니 눈 앞의 드래곤은 성숙한 미인으로 변해있었다.


연청색의 긴 장발과, 각진 거대한 뿔, 그리고 연노란색의 빛나는 눈동자.



"후훗.. 기사가 그런 족속인지는 몰랐구나."


"여가 아는 기사는 자신보다 약한 자를 갈취하는 강탈자일 뿐이었거늘."


"그래서. 네놈의 그런 사탕발린 말을 여가 믿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스튜어트의 전신에 형언할 수 없는 압도감이 엄습해왔다.


헤츨링을 들고있던 팔에 점차 힘이 빠지고, 뒤로 돌아 도망치고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정도로.



하지만.


스튜어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의 품 속에서 잠들어있는 아이를 위해서.



압도 속에서 스튜어트의 손은 칼집을 향했다.


심장으로부터 마나를 약동시켰다.



'싸워야한다... 최소한 다른 곳까지 벗어나야해.'



"...?"


"네놈. 지금 여와 싸우려는 것이냐?"



그 말을 듣자 스튜어트는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들켰다...'


질겁하는 느낌과 함께 칼을 뽑으려고 하는 그 때, 드래곤이 보인 반응은 극적이었다.



"푸핫...! 푸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 여... 여와 싸우려고 한다니... 아하하핫..."



"...왜 웃으시는.."


"아하하핰 너.. 넌 참으로 이상... 아니 특이하구나!!"


"여와 싸우려는 자가 몇 년 만인지!! 하물며 인간이! 아하하하하하!!!"



그는 여전히 긴장한 채로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 앞의 드래곤은 그 압도감을 거두었다.



"게다가 네 품 속 그 아이가 너보다 강할 것인데, 그리고 꼭 껴앉은 모습이... 아하하하하!"


그 말을 듣자 부끄러움이 엄습해왔다.


스튜어트 본인이 이 헤츨링과 일대일을 한다면, 아마 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네 놈의 진심! 잘 들었다."


"본래라면 여와 싸우려 한 자는 죽음으로 갚아야 마땅하나. 그 의도가 의도이니."



"그.. 그럼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겁니까?"


"그래. 허나 넌 이 숲에서 그 아이를 지킬만한 힘이 없다. 그건 너도 잘 알텐데?"


"예..."



"어떻게 하려는지는 대략 예상이 된다만... 성룡국으로 갈 생각이더냐?"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하여.."



"으음...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겠지."


"이거 참.. 미안해서 어찌해야.."


"성룡국은 멸망했다. 여의 손으로 직접 멸망시켰지."


"예?"



그 말을 듣자 스튜어트의 뇌가 일순 멈췄다.


자신의 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뭐가 어떻다고..?'



"... 성룡국이 멸망했단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것을... 그 드래곤님..."



"여의 이름은 네이아!! 위대한 땅을 두른 자!"


"그리고 멸망한 성룡국의 쌍왕 중 하나이니라!"



'난 지금 뭐랑 싸우려고 한거지...?'



*****


이번 대회에 맞춰서 옛날에 썼던 '우는 용왕'이라는 단편을 리메이크해서 써봤는데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네.


이번엔 장편이기도 하고, 세계관도 더 탄탄하게 해보려고 이것저것 추가함.


좀 더 웹소설스럽게 써보려고 했는데, 솔직한 반응 보고 다음 편은 더 가볍게 가는것도 고려하고있음.


댓글로 어떨지 알려주면 고마울듯!!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세계관을 좋아해서... ㅋㅋㅋㅋ ai 일러스트으로 캐릭터도 좀 뽑아봤음.


퀄리티가 높진 않은데 몰입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