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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이 떠오르고 있다.


나무와 끊없는 마찰을 겪던 두 팔과 다리에는 면사포에 갈린 듯한 고통이 찾아오고 있었다.


암전된 세상 속에서 조금이라도 적응하려 노력한 두 눈은 발가벗은 신체와, 썩어 문드러져 가는 발을 비출 뿐이었다.


전조 없는 악천후가 이곳을 덮치는 날에는, 돌틈 사이로 계속해서 수많은 빗방울이 미칠듯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 무엇에도 저항할 수 없던 난 썩어 문드러지는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가짜라 불리우던 존재의 목숨 연명을 위해, 내 허기를 달랠만한 방법을 찾던 그들은 벌레를 방생했다.


매우 차갑고도 좁은 방 속에 그것들을 풀어버렸다.


남은 것은 그들이 내 입가를 서성이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조차 내 입가로 오기를 그만두었어도, 그들이 한 손에 들던 곰팡이 핀 빵, 정체를 알 수 없는 독버섯, 돼지에게나 줄 듯한 잔반이 내게 날아오곤 했었다.


“하하.”


지극히 자연스러운 섭취가 이어지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 찾아오는 인분의 부글거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인분은 내 뒤로 묶인 울타리를 타고 흘러, 슬프게도 내 발 아래로 당도했다.


그들과 차가운 접촉을 거친 두 발은 점점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헀다.


와중에도 쏟아지는 악천후에 위로 투둑거리며 내려오던 빗방울을 먹기 위해 궃은 애를 쓰던 나였다.


어떻게든 발을 그들과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잠드는 순간마저 발을 들어올릴 수는 없었다.


이제 내 아래서 썩어 문드러져 가는 인분은 내 침전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다시 말해 지금에선 연습용 인형을 향한 취급으로써는 썩 나쁘지 않았다.


몇번이고, 하루에도 찾아와주는 이들이 많았으니.


갇혀 지낸지 1년이 지나버린 순간부터, 가문을 제외한 초대받은 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고마웠던 점은, 온갖 벌레와 기생충으로 위장 속 허기를 달래주던 내게 썩어버린 빵이나, 돼지나 먹을만한 잔반을 주었다는 점이.


그 점만이라도 고맙게 느껴지리라.


그리곤 난 또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리곤 빌었다.


그리곤…


그들이 우리 가족의 탈을 쓴 괴물이길 바라면서.


그들이 날 멀고 먼 곳까지 잡아와서, 아무 이유 없이 고문하고 있기를.


그들이 말한대로, 그들이 추론하던대로. 


내가 가짜이길 바라면서.


내가 가짜임이 밝혀지면, 나갈 수 있음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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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전 가짜에요. 저 괴물이에요. 그러니까 저좀 풀어줘요. 인정했잖아요.”

“얘들아, 나 괴물이야. 난 막내 흉내를 내고 있는 괴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풀어줘.”

“용사 아저씨!!! 나 괴물이야! 이제 그만 흉내 낼 태니 이것좀 풀어줘!!!!!!”


핏-.


화르륵-...


쑤컹-.


목발처럼 쓰이던 지팡이도, 손을 지핀 화염도, 기사의 검도, 내 제안에 대한 대답이 될 리는 없는데…


아니야.


언젠가는, 날 풀어줄거야.


계속해서 인정하다 보면, 날 풀어주겠지?


그렇겠지?


맞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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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3년…?


저벅저벅-...


“어…?”

“...누나…! 동생아…!”


““...””


“계속 안내려오더니, 무슨일이야…?”


“...괴물 자식, 폐인같이 기른 머리카락좀 없애러 왔어.”


“뭐…?”


화르륵-...


“자, 잠깐 누나. 그 불마법은 잠시만 생각을-”


치이익-.


“아아, 아아아아!!!!!!!!”


“마나 좀 더 조달해줄래? 레이?”


“응! 언니!”


“아아아아아아!!!! 뜨거워!!!! 뜨겁다고!!!!!”


여동생 레이는, 누나인 리에와 항상 함께했었다.


이런 독방을 내려올 순간에는 특히나.


특히나.


특히.


히.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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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히?


괴물?


"킥킥."


난 괴물이야.


난 가짜야.


난 그 가짜야.


가짜라고…? 


내가…?


응.


난 괴물이야.


괴물.


…좀 더 생각이 필ㅇ-


“이거 풀어!!!!!!!!! 난 진짜 가짜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발!!!!!!!!”


"왈왈왈!!!!!"

"컹컹!!!"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알겠어? 난 그냥 개새끼라고!!!!!”

"그러니 풀어줘!"

“풀어줘!!!!!!!”


“제발!”


'풀어ㅈ!-"


끼익-...


어?


“누구야?”


뭐야, 그냥 저벅저벅 들어오는 놈은.


“...”


“...?”


온 몸에 흙이란 흙은 묻히고 다녀 하얀색이었을 옷이 누렇게 되서는, 그 위로 갈색 조끼 하나 입고 있을 뿐인 그런 남자애가 내 앞에 서있다.


“...엥, 사람?”


“...뭐야.”


“아저씨는 괴물이에요?”


“...몰라. 아마도.”


“근데 왜 사람이에요?”


“...너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아, 친구들이 이곳에 괴물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뭐?”


“그래서 가장 용감한 애가 내려가자고 해서, 직접 내려와봤는데…”


“개나 소나 오는구나…”


“근데… 생각보다 쾌적하네요. 괴물이 청결하다니.”


한 놈이 편의를 위해 도중에 나를 제외하고 청결 마법을 걸어버렸거든.


딱히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 입을 다물었다.


“음… 근데 아저씨는 사람이잖아요. 괴물은 아닌데요?”


“정작 그런 괴물이란 것도 본 적도 없으면서…”


“음… 괴물이라면!”


재밌는 것을 마주한 듯 방긋 웃으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남자애.


몇번 접힌듯한 종이를 펼쳐선, 내게 보여준다.


“...탈?”


두꺼운 종이를 얼굴 모양대로 잘라서, 이마에는 염소뿔 모양으로 잘라 두어번 놓은 듯한 탈 이었다.


“어때요? 무섭죠!”


“...”


“아저씨가 정말 괴물이라면, 이런 탈을 쓴 사람처럼 무서워야죠!”


“...”


“음… 아저씨는 괴물이기를 원해요?”


“...몰라. 모르겠어.”


“그래도 원한다면 없는 것보다 나을 거에요! 잠시 고개좀 내려주세요!”


“...하.”


당장에 별 의도 없이 온 남자애에게 괴상한 짓을 할 이유는 일절 없었으니, 그렇다고 들어줄 필요도 없었지만.


“이 탈…”


그대로 써버렸다.


고무로 된 줄은 다행히 머리카락이 다 잘려 버린 머리에 잘 맞는다.


편의를 위해 두 눈과 입이 위치할 곳은 다 뚫려 있던 상태였다.


“음, 이제야 많이 무서운 괴물이네요!”


“...”


“조금 더 있고 싶은데, 엄마가 찾을 것 같아서, 안녕히 계세요!”


“...”


교육좀 잘 시키시지, 친구들끼리 이딴 곳에 올 생각이나 하다니…


“...”


얼굴에 달라붙은 이질감은, 당장에는 팔과 다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까끌까끌한 느낌 때문에 거부 반응은 가끔씩 있었으나,


“...괜찮네.”


몇번의 심적인 실랑이를 지나니, 점차 쓰고 있던 종이 탈이 괜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괴물같이 보인다니…”


이전에 발광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다시 사색에 잠겨버렸다.


내가 괴물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저 이곳에서 나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두의 폭력에 더불어 무수한 매도가 빗발치는 이곳에서 아직도 잘 살아있는 내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괴물 같은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젠 모르겠어.”


난 무엇을 위해, 언제까지 내가 괴물임을 인정해야 할까.


그들이 내가 괴물임을 확인하면, 끝은 평화롭게 끝내며 보내주기나 할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남자애가 내게 씌워준 이 탈 덕분에.


정말 괴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어지러워…”


그저 그랬던 이야기에 현혹 돼 본적 없어 보이던 남자애는 날 사람이라 불러줬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물이라며 스스로를 하대할때, 처음으로 사람이라 불렸다.


스스로를 괴물로 느낀 것 중 또다른 것은, 이 어둡고 차가운 방 속에서 쇄도하던 고통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미없는 투항에도 끄떡없는 괴물같은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그런 이야기 하나 들어보지 않았을 남자애를 만나고, 탈을 쓰고, 이제서야 괴물 소리를 들은 지금은.


…편안히 잘 수 있겠다, 잠시라도 편안히 잘 수 있겠노라고, 난 생각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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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암막 커튼으로 빛이 거의 차단되버린 내 방.


이제 막 깨어난 눈은 5년 전과는 다르게 어둠속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


스스로의 치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제의 일이, 생생히 기억 나기 시작-.


“...일어났는가.”


“...시발, 뭐야.”


이내 암막 커튼은 누군가의 손짓 한번에 허공 속 충격으로 완전히 젖혀졌다.


그리고 내 앞엔, 익숙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발, 다들 꺼져.”


들이받을 준비가 된 멧돼지처럼, 침대 발 아래에 떨구었던 검을 집으려 몸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뭐야.”

“뭐냐고, 이거.”


“성녀한테 부탁해서, 전신에 흐르는 모든 긴장감이랑 노폐한 이물질들을 잠재우는 마법을 썼어.”

“...짧게 말하자면, [진정] 마법이지.”


“미치광이 마냥 자해질 하니까 니네들 배알 꼬여서 그러는거네.”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생각해도 좋아.”

“...가문의 막내아들, 아니…”

“...루이.”


“역겨우니까, 내 이름 부르지 마.”


방과 복도를 잇는 문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그가 용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평생 수많은 존재들과 합을 겨뤘고, 용사라는 지위에 필적할 존재들과 여럿 만나봤지만…”

“...후우…”


“닥치라고 했잖아…?”


성녀가 걸어둔 진정 마법 때문에 내 입은 쉴 새 없이 화살이 되어 용사를 저격하고 있었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난 평생, 그런 죄악을 저지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루이.”

“나를 위해 내려졌었던 성검은, 더이상 내가 쓸 수 없게 조치해 두었다.”


“...”


“난 이제, 용사라 불리지 않을 거야.”


“...무책임하잖아 개년아. 누굴 위해서 그딴 짓거리를…”


 “...오른편에.”


“뭐?”


“원한다면, 오른편에 세워둔 성검으로 날 찌르도록 해.”

“복부든, 척추든, 척수든, 얼마든지 찌르도록 해.”


“...큭…”

“결국 너같은 용사새끼랑 같은 놈이 되라는 거잖아.”

“어떻게든 이상한 길로 꾀어내려는 건 알겠다.”

“시발련아.”


근육이 조금씩 돌아오던 오른팔 덕분에 성검을 잡을 여력이 생겼으나, 별 흥미는 느끼지 못하였다.


묵직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제아무리 피부가 곪아 썩어버린 환자일지라도 쥘 수 있을 법한 무게였다.


“...”


성검이 계속해서 부정적인 마음 속 환부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소름끼치게 다가왔기에 금방 놔버렸다.


“...허. 용사 파티원 새끼들까지 왔구나.”


““...””


“너희들은 날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을 알아. 적어도 내 앞에서 자기 무기에 나같은 새끼 피 묻히기 싫다고 온갖 유난 다 떨던 놈이란건 알아.”


““...””


“용사를 비롯해서, 당신들이 지금 할 짓은 이 영지에서 꺼지는 일 뿐이야.”

“...그러니, 제발 꺼져.”


그럼에도, 용사와 그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수중에도 어떤 이야기 하나 풀어놓지 않았다.


줄초상을 치르고 온 사람처럼, 나를 반쯤 죽어버린 시체로 대할 뿐이었다.


“아들아… 루이…”


“...애미애비라는 새끼가, 이딴 것도 생각 하나 안하고…”


“...끅…”


“언제까지 눈물만 질질 짜고 있을건데요.”

“..씨이발…”


곧이어 이질감이 들게 하던 이마에 안착했던 안대를 눈으로 가져갔다.


“꺼져, 제발. 다들 꺼져.”


““...””


그러나 그 누구에게서도 방 밖을 나서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난 그들의 발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내게 들어서고, 내게서 나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나마 흥미롭게 느끼던 유일한 소리.


긁히는 쇳소리는 단단한 철 신발을 신고 있던 용사의 것이었고,

뭔가 부드러운 것이 돌과 부딪히는 소리는 양말 혹은 슬리퍼를 질질 끌던 가족의 것이었으며,

이도저도 아닌 평범하게 긁히는 소리는 일반적인 신발만을 고수하던 학우들의 것이었다고.


“...후우…”


남들이 조용히 내게 그 치부를 보여주는 것은 아직 나의 뇌로썬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나만 물어보자. 내 몸상태는 왜 이렇게 양호한거냐…?”


“머리카락은… 나랑 언니가.”


“멍자국이나 골절부분은 저번에 내가 불렀던 현자 붙잡아서 약 받았었어.”


“나머지 잔 흉터나 잡다한 상처는, 너희 어머니와 엘프가 도맡아 치료해줬지…”


“선생님은… 다른 학급 선생님들이랑 합심해서 치료약을 하나 만들어왔어.”


단 한번에 질문에 우수수 달려오는 여러마리의 개 마냥 짖기 시작하는 사람들.


“...아카데미는 시간이 차고 넘치나보네?”


“...루이…”


어머니 옆에 서계신 선생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힘자랑 한답시고 한 팔 내 목에 끼워서 마음껏 조르다가 내 경추 부러뜨린 새끼는 어딨어?”


곧이어 난 선생님 옆에 한 줄로 선 학생들을 흘끔 벗은 안대 밖에서 쏘아보기 시작했다.


“루이..! 그, 그건 실수였어… 미안해, 미안해!... 많이 아팠을텐데… 그것도 모르고 난…”


사과에 능숙하지 못한 한 여자아이가 변명하듯 이야기한다.


“아아, 그냥 닥쳐.” 


지금쯤이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용사의 목소리는 곧 존귀한 이의 어명이 되어 나를 향한 경외감과 반성이 루이라는 이름의 나 자신을 저 위로 올려 보낼 정도로 귀했어야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궁궐을 세울 기둥이 되어, 산해진미를 쌓아올릴 바구니와 그릇같은 혈육으로, 이에 내게 너스레 해맑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기에, 조금씩 묻어나오는 진심어린 사과로 들려야 했다.


학우들의 목소리는 말괄량이이자 유별난 것과는 다르게 재치있는 답변만을 구사하던, 순수하고도 순수하며 도덕은 무엇이고 사악은 무엇일지 물어보기 바쁠만한 목소리로 들렸어야.


“...”


…들렸어야.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그들에 대한 가치있는 경외감은 없었다.


가치없는 하등한 사과와 진절머리 나는 변명으로 점철된 자리임은 몰라도, 그들을 향해 더이상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거나, 느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 영지에서 추방당할때 그들의 뒷모습에 화살이 하나라도 박히길 바라는 나의 바람일 것이다.


그들이 외치는 것은 관 속이 아니라 침대 속에 파묻혀 피가 옷깃에 조금씩 묻어나던 시체를 향한 넋두리에 불과했다.


나를 위한 중대한 처사가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고 마무리 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차라리 5년의 독방으로 날 보내버리곤 무시해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게 사람을 향한 이런 종말적인 믿음은 설사 옛말의 극락왕생과 불로장생을 위해 사람을 맹신하려 하는 사람일지라도 터져버린 풍선 조각만도 못한 믿음만을 품고 살아가는 나와 상생하려 하겠는가.


우후죽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나를 향한 깊은 사죄는 시체를 위한 애도로 치부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사람은 사람과 살아가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괴물은 괴물과 살아가야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괴물인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와 견원지간이다.


상생하기 이전에 그들은 검을 들고 활을 들어 그 단출한 무구로 날 양단할 사람들이다.


언제든 그들의 이빨이 독기서린 칼날로 이내 관통당하며 부여잡게 될 내 심장을 생각한다면, 난 그들에게 경외감이라는 감정을 추호도 내줄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웃긴게 뭔 줄 알아?”

“지난날의 추억이 부서진 뼈 한번 어루만져 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어슬렁대는 당신들 수발을 내 온 몸으로 받아준게 전부야.”

“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기억하는 사람?”


““...””


“봐봐 씨발. 아무도 대답 못하지?”

“다 똑같은 족속들이야.”


그때의 계절은 돌아오는가.


내 방 창문 너머로 올곧게 서있는 종탑으로부터 울려오는 소리에, 마지못해 책상에서 단잠을 청하던 나였음에도 울리는 종소리에 괜스레 마음이 편해졌던 난.


어쩌면 내 손목까지 닿고 있던 따뜻한 잠옷과, 마지못해 날 번데기처럼 감싸도 괜찮다 말할 수 있던 넓코 커다랐던 이불에 조그마한 몸을 비집고 들어가 잠을 이루었던 그 계절을 마지막으로 갇혀버렸던 난.


그 계절이 돌아오는가, 하며.


마지못해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냥.”

“저번에 그 독방에 갇혀있었을때 그 종이탈.”

“그거나 줘.”


그런 무례한 말 한마디에 드디어 그들의 웅성거리는 발재간이 방 밖을 통해 들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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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은 해놨었구나?”

“그때도 강제적으로 벗기길래 굉장히 좆같았었는데.”


쓱-...


단순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용도의 종이 치곤, 몇 년이 지났을 것임에도 상태는 양호했다.


반가운 마음에 탈을 써보았다.


“...하!”


이제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나갈거야.”

“나 따라올 생각 하지 마.”

“그 누구도.”

“내가 사창가 창남으로 일하는 꼴 보고 싶으면 따라오든지.”


그렇게 어줍잖게 사과하다 차마 끝내지 못한 학우를, 용사를, 가족을, 내게 왔었던 영지 사람들을. 


“명령이야.”


지나쳐 나왔다.


저벅저벅-...


“5년만의 외출이네… 그 남자애부터 찾아야지.”


정문은 생각보다 손쉽게 열렸다.


그 다음으로 더욱 커다란 자태를 뽐내던 철창 문 또한 그러했다.


문이 가로막는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풀밭 위를 가로지른 철창 문을 열고 나갔다.


“...병신새끼들.”


그 누구도, 내 허리춤에 자퇴서를 끼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적을 파기 위해 어떻게든 찾아낸 계보를 찢어발겨 나라는 존재에 대해 쓰이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도 간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넓고 넓은 영지를 나갈 채비를 언제든 끝마칠 자신이 있노라 하며 외치던 짧고 짧은 독백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남은 것은 그 남자애와, 일의 원흉, 소정의 작별인사 뿐이다.


내가 지나쳤던 그들에게 이 일에 관해 추호의 정보도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진해서 찾으려는 꼴 하고는.”


베일이 벗겨지기 이전의 일을 스스로 캐 물을 생각을 하자니, 어쩐지 마음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한 몫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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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커졌어.”


“그 망할 흑병만 뿌리고 오자니까.”


“그따위로 불성실하게 흉내내니깐 이딴 꼴이 일어난거야. 


“...찍.”


“하지만 필요했어. 그 누구도 생쥐라는 족속은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하수구에 버렸으니까.”


“...덕분에 망할 흑병이 전신에 들러붙어선, 다가가면 전부 사망이야.”



녹조가 낀 오염수가 흘러가던 하수도 속.


별로 달갑지 않은 초록색의 액체 위로, 조금은 커다란 몸통에 작은 손과 발로 찍찍거리던 존재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때묻은 손을 거친 생활수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일직선으로 뻗은 하수도가 처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살던 작은 존재들은,


“찍…”


자신들의 두 번째 범행이 세간에 밝혀질듯한 느낌에 노심초사 하면서도,


“...저번에 보낸 놈은 실패했어. 이젠 우리가 같이 해야 해.”


다음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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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으어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몸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써버렸습니다...

평소에 몸간수 잘할걸 이게 진정한 후회지...

아무튼 여기까지 와주셨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