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히어로 가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가문이 되었다.


3년전, 내가 고2때 나는 심부름으로 동네 마트에 나갔다가 우리집 방향으로 심상치 않은 거대한 붉은 벼락이 내려치는걸 봤다.


혹시나해서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지만 겉으론 별일 없어 안도하던 찰나,


집안은 난리가 났다. 집 안 모두가 감전되어 부르르 떨고있던 것이다.

  나는 소방관을 꿈꾸던 사람이였고, 동네사람들을 불러 빨리 대처해서 다행히도 전원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 재앙의 씨앗은 여기서부터 시작된거 같다


깨어난후 이것저것 신체검사를 한 결과

아버지는 일반인보다 근력이 월등하게 강화되었고

어머니는 비행능력을 얻으셨고

지병이 있으시던 할아버지는 피부와 골격이 강철보다 단단해지셨고

누나는 순간이동, 초등학생인 여동생은 염동력을 얻었다.  이게 그냥 번개가 아니였던거 같다고 의사는 말했다.

  정부는 이 전대미문의 재해에 대해 보상해주고, 초능력이 생긴 우리를 보호해주는 대신 히어로 협회에 가입하라 권유했고 우리 가족은 승낙했다.


그렇다. 나를 제외한 우리가족 전부는 히어로가 되었다.


그날 이후 인생은 바뀌었다. 일단, 대외적으로 나는 천애고아가 되었다. 


 초능력자라면 눈에 불을키고 찾아 해부하려는 미친 과학자 집단이나 빌런들에게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제외한 벼락맞은 모든 가족들은 공식적으로는 사망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만 고아원에 보내지거나 한건 아니다.

대외적으론 그렇지만, 실제론 협회소속 안전가옥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다.


 하지만 난 결국 실제로 천애고아가 되었다.

가족들은 이제 새 신분으로 정체를 숨기고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리그렛 시티의 세계 톱티어의 범죄율은 그들이 다시 모일 시간을 도저히 내주지 않았다.

예전처럼 모두가 다 같이 모이는 일은 거의 다섯달의 한번 꼴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쉬고있는 다른 가족은 볼수있지 않냐고?

아니었다. 우리가족들의 새 신분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옛날부터 다크 히어로로서 활동했다가 얼마전에 전향한 가족이라는 컨셉이였고, 협회에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해대는 턱에 그나마 모이는 날도

방송사나 언론사에 인터뷰를 가게됐고, 가족 전체가 아닌 각각 개인으로서도 스케줄이 생기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아무것도 안하는' 나에게 이것들을 관리하라 시켰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안한다 생각했지만 나는 사실 존나 바쁘다. 학교가야지, 집안청소나 세탁, 식사준비 등도 전부 이젠 내몫이 되었다.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고생하는 가족들 조금이라도 쉬길 바랬으니까. 이렇게 집안일을 끝내면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던게 벼락 이후의 내 인생이였다.

  이런 와중에 스케줄 관리도 해달라니 어쩔수 없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선 '돕지도 못하면 이런거라도 해야되' 라는 강박이 있던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그들의 스케줄관리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다. 스케줄을 조정해둔다한들, 빌런들이라도 나오면 깨지기 일수였고 욕먹는건 나였으니까...  이런식으로 몇번 깨져서 가족의 평판이라도 안좋아지면 가족들은 나를 비난했다.

 이런일을 겪고나면 사람은 심란해지고, 안하던 실수도 하게된다. 그날 집안일은 엉망이였다.

  가족들은 더 격렬하게 날 비난했다

우리가 욕먹는건 네 탓이다

나이가 몇인데 이런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

능력도 없으면 이런거라도 잘해야되는거 아니냐

밥만 축낼꺼면 그냥 나가라


아니 내탓이냐고 설사 내탓이여도 초보인데 실수할수 있는거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그들은 초능력자이자 히어로이고 난 무능력자니까.

대들면 죽는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되었다


이렇게 생활한지 어느덧 3년쯤 되가던 때였다.

나는 어느 빌런들에게 납치당했다.

나름 치밀한 놈들이였다. 내가 매니저로 있는걸 보고 수상해서 조사했더니 한 집에 사는 유사가족인걸 알아냈으니 날 인질로 삼아 한탕 벌겠다는 놈들이였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너희집에 사는 xxx을 납치했다. 그를 살아서 다시보고 싶으면 돈을 내놔  식으로 연락했지만 하나같이 '그는 우리 가족이 아니니 맘대로 해라' 라는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대외적으로 나는 그들과 남남이 맞으니까.

  가슴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자식인데 고민한번 안하고 바로 그런말을 하다니


슬퍼할 새도 없이 난 빌런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서 온몸을 쳐맞고, 밟힌체 뒷골목 어딘가에 버려졌다가 한참 뒤 순간이동으로 찾아온 누나 품에 안긴걸 끝으로 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입원해있었다. 전치 16주의 중상이라고. 

그동안 가족들이 한번씩은 병문안을 와주었지만

죄따 한소리씩 하고 갔다


 어머니는 내게 우리(히어로들)에 대해 불지 않았냐

 아버지는 호신도구라도 챙겼어야되지 않냐

그나마 누나는 상황을 설명이라도 해줬다. 전화추적을 하는데 생각보다 범위가 넓어 늦었다고. 다시 이런일 생기면 복잡해지니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서럽다. 

나라고 능력 없고싶어서 없나. 아니 지들도 없었으면서 나한테 이래도 되나

내가 매니저일 하고싶어서 했냐

하다못해 경호라도 해주지 그랬냐 

그리고 왜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냐 난 가족도 아니냐


눈물이 났다. 분명 가족이였는데 왜 나만 이런취급인지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해서 울었다.

하지만 병실이니 소리죽여 울었다. 여기서 시끄럽게 울었다간 자기들만 나쁜놈 된다고 욕할것이 분명하니까....


다음날, 이번엔 할아버지와 여동생이 같이 병문안을 오셨다.

 이젠 병문안이 고맙지 않았다. 이번엔 또 뭐라 한소리 하려나  하고 속으로 한탄할 뿐이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여동생은 내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상황이 이해가 안되서 벙쪄있는 나에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어제 네가 소리죽여 우는걸 네 여동생이 봤다고 알려주더구나. 많이 힘들었지? 너희 애비를 대신해 내가 사과하마"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고마움, 서러움 온갖 감정이 눈물에 실려 흘러내려갔다. 

 이제는 말할수 있다. 내 솔직한 감정을.

나는 할아버지께 모든걸 말씀드렸고, 할아버지는

 난 언제나 네 편이니 이제 네가 원하는걸 해라. 내가 지지하마   라고 웃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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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부부는 눈을 떴다.

오늘 준비된 아침식사는 뭘까 하고 기대하던 그들의 눈에 보인건, 시리얼을 말아먹는 할아버지와 여동생이였다.

 아버지는 물었다.  '아들이 식사준비 안해주덥니까? ' 아버지는 괘씸한듯 보였다. 화가 살짝 난거같지만

 더욱 화나있는, 아니, 화를 억지로 눌러놓은, 폭풍전야와도 같은 표정의 자신의 아버지(할아버지)를 보고는 괘씸함이 가라앉고 긴장감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이젠 너희 아들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보내버렸다. 다시는 너희 귀찮게 할 일 없을게다'


어머니는 반박했다 

 '이건 말이 안되잖아요. 내 배 아파서 내가낳은 자식인데 아버님이 뭔데 보내요?'


'그럼 그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 그런식으로 대하는건 말이 되고?'


사실 그들도 알고는 있었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응급처치 해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었을 것이라고 의사가 알려줬지 않았던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처음으로 그 서툰 손으로 밥을 해줬을때는 기특하지 않았던가


매니저일을 봐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투덜거리는거 하나 없이 들어줬을때는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던가


'그건... 그건...'


히어로일을 한다는건 무척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 법이다. 빌런들의 볼꼴 못볼꼴 다보기도 해야되고, 빌런을 놓쳐서 협회 간부에게 욕도 먹을때도 있고, 민간인이 죽은 모습도 볼때도 있다보니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닌데, 방송국에선 펑크냈다고 비난까지 해버리니 임계치를 넘어 폭발해버릴 수 밖에.


그래서 그 화풀이를 아들인 그에게 한것이다.

처음엔 미안했지만 이게 반복되다보니 양심은 무뎌지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감정 쓰래기통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자신들을 위해 희생해줬으니 당연히 들어줄거라는 거짓된 믿음과, 내가 히어로인데 이정도 희생은 보답인샘 쳐주라는 거만함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결국 아들이 납치된날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나?

하필 아침에 방송 스케줄이 있다고, 그는 가족이 아니다 라고 말하라고 가족들은 말하지 않았던가


유일하게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할수 없다고. 내 손주를 내가 안구하면 누가 하냐 격노했지만, 딸이 경찰과 협력해서 추적하는 조건으로 방송에 끌고간 것이다.


'그렇게나 착한 아들에게, 세상천지 둘도없는 효자가 그렇게 다쳐서 돌아왔는데 뭐라고 했다고? '


할아버지의 비아냥에 그들의 심장속 죽은 죄책감이 다시금 일어났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발언을 다시 생각했다

 배신자 취급을 한 어머니는 누가 배신자였는지 깨달았다. 아들을 배신한건 자신이였음을

 호신구라도 들고다니라던 아버지는 절망했다.

할아버지도 손자를 지키지 못했다고 화내는데 아버지 실격임을

  누나는 자신을 저주했다. 사실 한창 자유로운 또래들에 비하면 거의 묶인듯 살고있는 애를 걱정한답시고 그딴말이나 내뱉는 거짓말쟁이 라고


모두가 후회하고 있을때, 가장 어린 여동생은 말한다


 '저도 알아요. 오빠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래서 그래왔던것을. 이젠 우리가 오빠를 행복하게 해줘야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린 오빠를 보내줘야되요'


그래도 언젠간 다시 연락이라도 해볼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던 부모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더는 싫다고, 무능력자는 무능력자랑 사는게 맞는거같다고 그러더라. 어차피 가족도 아니잖아요 하고 울면서 외쳤어! '

  할아버지는 벼락맞은 이후 한번도 손댄적 없던 담배를 태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보내줄테니 돈이라도 필요하지 않느냐 라고 말했더니 

 괜히 계좌 추적이라도 당했다가는 오히려 나만 다시 잡혀서 또 민폐나 끼쳤다고 욕먹을거 아니냐. 이젠 돈도 얼굴보기도 다 싫다   그러던거 내가 조만간 전부 현금으로 줄테니 적어도 가끔씩 내게 안부라도 전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니 너희에겐 번호를 알려줄수 없다'


그렇게, 아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어 날개를 달고 날아갔고


그들은 그들을 지탱해주던 날개같은 아들을 잃었다.


날개를 잃었지만, 그래도 히어로인지라 그들은 살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 바쁘게 일했다.

히어로 일을 핑계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잊어버린 날개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는 종종 손자와 만남을 가졌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겪고도 정의감이 남아있는건지, 그냥 어릴적 꿈인건지, 소방관이 되어 보람있는 삶을 살고있다고 자랑하는 자신의 손자를 보며 

그를 축복해주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자이자, 이젠 아들도, 동생도 아니게 된 그는 소방관으로 능력자ㆍ비능력자 구분없이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일하는 위인으로 칭송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