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regrets/89393415





 혼란의 시초는 도시 전체에 울려퍼진 사이렌 소리였다.


 훈련 따위가 아닌 실제 상황이니 조속한 대피를 권하는 다급한 목소리.


 동시에 모든 공영 방송에서도 언리얼 신드롬의 발현을 경고하는 가운데.



 마침내 하늘에서부터 강철의 거인들이 내려왔다.


 붉은 빛의 흉광으로 막 해가 진 초저녁의 어둠을 몰아내고.


 폭발음과 치솟아오르는 불길로 평화에 젖은 일상을 조각내면서.



 그렇게, 세 사람이 평생을 살아온 후챈시는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



 후순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꿉친구의 누나이자 친한 언니이기도 한 후진이 참여한 리스폰 스타 K의 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 후진이 대중의 질타를 받게되자 그 자리엔 함께하진 못해도 책임에 공감하며 가슴을 부여잡았고.

 

 거기서 돌연 소꿉친구인 후붕의 무고함을 밝히는 증거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대로 무너져내려 오열하던 게 불과 삼십 분도 채 안 된 일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정신이 없을진데.... 현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양, 가상 속에서 볼 법한 비현실 속으로 그녀를 내던져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후순 그녀뿐만 아니라 이 도시 전체를.


 

 콰아아아아앙ㅡㅡ!!!!!!


 

 "꺄아악ㅡ!!!"


 

 늘 오가던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사거리, 그곳에 처박힌 전투기의 폭발에 후순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언리얼 신드롬에 의한 현실 구현화가 급속도로 퍼져나간 뒤 벌써 수년 째. 

 

 후순은 그동안 스스로가 이 뒤바뀐 세상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여겼었지만, 그게 터무니없는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TV나 인터넷 매체 속에서나 보던 언리얼의 현실 구현화가 어디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정도의 감상이었던 데 반해....


 직접 눈 앞에 맞닥뜨린, 현실을 침범하는 가상이란 이다지도 폭력적일 수가 없었으니까. 



 이따금씩 들려오는 방송에선 연이어 군이 사태의 종식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며 호소해오고 있었으나, 그게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란 사실은 방금 무력하게 격추당한 전투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후순은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서 그녀와 후붕이 다니는 학교, 현 시점 그녀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살기 위해서였다.


 비록 명문대 진학율은 후챈고보다 아래지만, 운동장 아래를 깊게 파 비상시엔 대피소로 쓰이는 대규모 실내 체육관은 그녀가 다니는 학교의 장점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일 대피권고에 제 때 따랐다면 아마 그곳에 후붕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렇게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예광탄의 궤적에 두려움에 떨고, 지금 이 순간도 간헐적으로 지면을 뒤흔드는 폭격의 진동을 견뎌 가면서.


 그나마 부모님이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신 게 천만다행이라고, 그러니 어떻게든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의지로.


 몇 번이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달린 끝에 드디어 학교에 도착한 후순의 입에서 문득 탄성이 새어나왔다.



 "아....!"

 

 

 학교 앞에선 평소에는 못 보던 군인들이 시민들을 통제하며 차례로 대피소 안으로 인도하는 중이었다.


 언젠가 마주친 적 있는 낯익은 학생들 몇몇도 대열 안에 있는 광경에 그녀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이 혼란 속에서 그나마 아는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리도 안정될 수 있다니- 하고 내심 신기해하면서도.


 어쨌거나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다시 후붕이를 만날 수 있단 그 생각에 후순이 이제껏 잔뜩 날을 세우고 있던 긴장의 끈을 잠시 놓았던....


 그러던 순간이었다.

 

 

 "찾았다, 이후순....!"


 "....너!"



 갑작스레 손목을 낚아채이는 바람에 놀란 후순은 이내 상대를 확인하곤 낯빛을 굳혔다.


 욕망으로 징그럽게 번들거리는 눈빛, 미처 숨기지 못한 가학성이 새어나온 표정, 거기에 본디 조각 같았던 콧날 대신 자리한 어딘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콧대의 기괴함까지.


 손목을 붙잡은 손아귀가 그녀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원수, 금태양의 것이란 사실을 인지한 후순은 불같이 화를 내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불현듯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섬뜩한 불안감이 뇌리에 경종을 울려대는 가운데, 후순은 금태양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이거 놔아!"



 온 힘을 다해 잡힌 팔을 잡아당기고, 자유로운 나머지 팔로 놈의 가슴팍을 쳐댔지만 금태양의 억센 손아귀는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놈의 입가에 걸린 소름끼치는 미소가 그녀가 거세게 저항할수록 더욱 진해져만 갈 뿐이었다.


 후순은 점차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후붕이 사라진 직후에 느꼈던 것과 같은 무력감이 다시금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 그 악랄한 본성을 들키고도 끝까지 능글맞은 가면을 벗지 않던 평소와도 다른 금태양의 얼굴에.


 놈의 등 뒤로 얼핏 보이는 밴 안에서 그녀 쪽을 보며 실실대는, 소중한 소꿉친구를 짓밟고 괴롭혀댄 예의 양아치들의 모습에.


 이대로 끌려갔다간 무슨 짓을 당하게 될 지 짐작된 후순은 문득 후붕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스로가 염치없다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사랑하는 소꿉친구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온 힘을 모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담아, 그대로 놈의 고간을 차올렸다.

 

  

 "이! 거! 놓으라고ㅡ!!!"


 "끄아악ㅡ!! 이, 이 시팔년이 진짜....! 아악!"



 끔찍한 소리, 이어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발등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터진듯한 불쾌한 감각에 후순은 붙잡혀있던 손목이 자유로워졌음에도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사타구니가 걷어차인 고통에 꺽꺽대던 금태양. 놈은 그 와중에도 후순을 붙잡으려는 듯 집요하게 손을 놀려댔다. 


 그에 지켜보던 양아치들도 어느샌가 표정을 굳히고선 놈을 돕기위해 밴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지만.



 "거기, 무슨 일이지?"



 마침 때아닌 소란에 대피작업을 돕던 군인들의 이목이 그들 쪽으로 쏠렸다는 게 후순으로선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총까지 든 군인들에게 개길 생각은 못한 건지 놈들은 도로 밴 안으로 꽁무니를 뺏으니까.



 "반드시, 반드시 죽여버릴거야! 니년도! 김후붕 그 새끼도!"


 "반드시 죽여버릴거라고ㅡ!!!"



 그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부축받아 겨우겨우 차에 올라탄 금태양이 벌게진 눈으로 후순을 노려보며 이를 갈아대고.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후순이 떠나가는 놈들의 밴을 경계하며 재빨리 군인들 쪽으로 달음박질치며 안도하던 와중.



 재앙은 불현듯 하늘에서부터 떨어져내렸다.



 

 쿠우우웅ㅡㅡ!!!



 

 지척에 일어난 지진과도 같은 거대한 충격과 풍압.


 훈련받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 가운데.


 울려온 이명에 귀를 틀어막으면서 엉거주춤 상체만 겨우 일으킨 후순은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잊은 채 떨려오는 시선을 위로 향했다.



 "흐, 흐아....!"



 바보같지만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감정이.... 공포가 벌려진 입 사이로 새어나왔다.


 옆으로 쓰러진 대민지원 차량의 헤드 라이트에 의해 비춰온, 거대하고 또 거대하다고 거듭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시커먼 기계의 위용. 


 거미의 형태를 닮은 네 개나 되는 육중한 다리는 하나하나가 교량의 기둥과도 같았으며, 그 위에 달린 인간형의 상체가 들고 있는, 성인 남성이 들어가도 충분할 것만 같은 거대한 구경의 포신까지....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절망했다. 심지어 군인들조차 부질없는 저항이란 생각에 총구를 떨구고 말았다.


 자신들이 서 있는 대피소 방향을 향하는 흉흉한 붉은 빛의 모노아이에도.


 보는 것만으로도 떨려오는 그 거포의 포구가 자신들 쪽으로 겨눠져도.


 그 무시무시한 중압감 앞에서 한낱 인간은 개미와도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린 듯한 무력감과, 최소한의 생존 의지마저 꺾어내는 허탈감 때문에라도.


 후순을 비롯한 대피소의 모두는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주저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주황빛으로 달궈지는 포구의 안쪽를 보며 곧 있으면 찾아올 끝을 절감하고 있었을 때.



 [ ㅡ전부 엎드려! ]

.


 콰득ㅡ!!



 사족보행 로봇의 바로 지척에 틀어박힌, 그녀보다도 크고 뾰족한 노란색의 탄환. 그 직후 들려온 누군가 목소리에 후순을 비롯한 이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숙인다.


 이어지는 건 벼락을 연상시키는 로고가 달린 탄두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맹렬한 전류의 폭굉과 거기에 휘말리며 순간적으로 무력화된 적.


 그리고.


 

 쿠웅ㅡ!!

  


 저항할 방법 따윈 없을 걸로만 보였던 사족보행 로봇의 앞을 막아선, 마치 자신들을 지키겠다는 듯 등을 진 또 다른 인간형의 거대로봇을 바라보며....


 대피소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직감했던 것이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조차도 미처 생각 못 한 구원이.


 까마귀(Raven)의 날개를 하고 전쟁터가 된 도시에 당도한 순간이었다.



 

  *   *   *




 - 요는 적의 격파보다는 피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겁니다, 레이븐.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라고, 에어의 브리핑을 듣던 후붕은 생각했다.



 - 피난이 완료되지 않은 지금, 도심 한가운데에서의 대 AC전은 자칫 재앙과도 같은 인명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 하여 미사일이나 폭발류의 무장은 현재로썬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레이져나 플라즈마 계통의 무장을 주로 하기엔.... 안타깝게도 기체의 EN 출력이 따라오지 못할 거고요. 단기결전이라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차분히 상황을 분석해가며 안정감을 주는 그녀의 목소리. 


 그게 실은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후붕은 마치 루비콘에서의 일을 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에게 한편으론 의아함을 품었다.


  

 [ 레이븐.... 그래도.... 저는.... ]


 [ 사람과.... 코랄의.... ]



 조력자의 관계로 시작하여 서로의 목적이 상충된 끝에, 마지막에는 결국 파국에 이르렀던 그 때의 기억....


 하지만 후붕은 곧 상념을 털어내고 브리핑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그에겐 고민에 빠져 있을 시간같은 건 없었으니.



 - 그렇기에 제안을 드리는 게 다음의 어셈블리(Assembly)입니다....



 *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스턴 니들 런처로부터 발사된 대전시킨 대형 니들로부터 방전된 전류가, 바주카를 발사하기 바로 직전의 4족 AC를 저지해낸, 그 잠깐의 틈을 타고....


 대피소 앞을 막아선 후붕의 AC가 반대쪽 어깨에 장착된 펄스 실드를 전개, 한 타이밍 늦게 발사된 상대의 포탄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은.



 허나 정작 그 기예에 가까운 행위를 성공시킨 후붕의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몸이 떨려오는 게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기체를 흐르는 충격잔류 때문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방금까지의 모든 게 찰나에 불과한 사이 벌어진 일임에도, 그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좀처럼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그야 후순이 죽을 뻔 했으니까! 그것도 자신의 눈 바로 앞에서.



 아무리 밀어내려 마음을 다잡아도, 설사 더 이상 자신과 엮이지 않았으면 바래왔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계속 살아갈 자신이 없는 후붕 스스로의 문제 때문이지, 그녀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바랬던 게 결코 아니었으니까.



 AC에 동조하느라 고양되었던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는다.


 후붕은 새삼 언리얼과의 계약이 가져오는 중압감과, 그 계약을 맺은 게 자신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품었다.


 어차피 그가 없었어도 언리얼의 현실구현화는 언젠가는 벌어질 예정이었을 터. 그리 될 바에는 지금 이렇듯 지켜낼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은 게 어디냐고.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한 후붕은 마지막으로 한 번, 스크린을 곁눈질하며 뒤늦게 대피소 안으로 부랴부랴 들어가는 후순과 사람들의 모습을 시야에 담아냈다.


 그리고....

 


 - 옵니다, 레이븐!



 그와 다르게 한눈따윈 팔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에어의 경고신호. 


 그에 다시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후붕은, 막 전기 쇼크로부터 벗어나 무기를 조준하던 적을 향해 AC를 돌진시켰다. 


 

 쾅ㅡ!!


 

 그리고 이어지는 건 순수한 질량의 충돌!


 채 몇 초도 안되는 짧은 주파거리였건만, 어썰트 부스트 덕에 폭발적으로 가속된 AC의 충돌질량은 기껏 시스템을 복구해가던 적 4족 AC의 락온을 다시 헝클어놓기에 충분했고.


 다음 순간, 낮은 위치에서 살짝 젖혀있던 왼팔이.... 그 팔뚝 어림에 고정된 흉악한 파일 벙커가, 그대로 상대의 코어 유닛을 향해 쇄도했다.



 투쾅!



 그 터져나오는 작약의 위력을 최대치로 실어낸 첨두에.


 미사일의 직격탄도 능히 견뎌낼 수준의 장갑이, 그 안에 감추고 있던 중추계통 채 꿰뚫리며 일대에 후폭풍을 일으켰다.




 

 - 제네레이터 반응.... 소실.


 후붕은 깊게 틀어박힌 파일 벙커를 도로 빼낸 뒤, 자신이 침묵시킨 상대를 잠시 내려보았다. 


 그렇게, 자신이 다시금 전장에 섰음을 실감하면서, 그는 여기저기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도시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의 미션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니까.


 

 * 



 - 후붕이 4족 AC를 격파하기 불과 몇 분 전.



 "바, 밟아! 밟으라고!"



 금태양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운전석을 연신 발로 차대며 발악했다. 


 낭심을 차인 고통이 아무리 끔찍했어도, 인간을 개미처럼 밟아 죽일 수 있는 거대 병기의 등장 앞에선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 법이었기에.


 일단 살아야 이후순에게 복수하든 뭐든 할 거 아닌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 미친 규모의 언리얼 신드롬이 끝나기만 기다린다면 그 개년에게 대가를 물을 방법은 차고도 넘쳤으니까.



 자신의 남성성을 훼손시킨만큼 여자로써의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고 말리라고 


 거기에 겸사겸사 그년이 죽고 못 사는 김후붕까지 아예 병신으로 만들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거라고, 그가 사타구니를 부여잡으면서도 사악한 생각을 이어가던 와중이었다.



 쿵ㅡ!!



 일순 몸이 붕 뜬다는 느낌이 든 것도 잠시, 공중에서 균형을 잃은 밴은 무려 몇 바퀴나 구른 끝에 도로 한 복판에 처박혔다.



 "씨팔! 씨파알...."


 "어허윽....!"


 

 구르는 차량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친 끝에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금태양과 양아치들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본능적으로 밴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방금 전의 충격 때문에 뒤틀린 건지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도 않은 문.


 그나마 깨져있는 앞 유리를 향해 앞다투어 기어가던 그들의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진 건 바로 그 때였다.


 

 새로이 나타난 인간형 로봇이 먼저 나타났던 4족 보행 로봇에게 뭔가를 깊게 찔러넣는 광경.


 바로 눈앞에서 건물만한 거대 병기가 격돌하는 위압감과 박력에 빠져나가는 것도 잊고 멍하니 위만 올려다보던 것도 잠시.



 "어, 어어...!?"



 서서히 뒤로, 금태양과 양아치들 입장에서는 그들 바로 위로 쓰러지기 시작한 4족 로봇.


 경악한 그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겠답시고 발버둥을 쳐 댔지만, 꺾이고 얽혀버린 팔다리로는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으아, 으아아... 아아아아아악ㅡㅡㅡ!!!!!!"



 끝내, 그들 모두가 함께 좁아터진 밴을 관으로 삼아.... 그리고 현실에 나타난 거대 병기를 봉분 삼아 쓰레기처럼 묻혀버리기에 이르렀다.



 누가 내질렀는지 모를 비명조차 파묻혀 사라진 뒤, 방금 전까지의 격렬함이 마치 거짓이라는 양 일대가 침묵에 휩싸인 가운데.


 한때 그들의 몸 안을 돌았을 진득한 핏물만이 자유를 찾아 조각난 아스팔트 위로 흘러나왔다.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들의 것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한심하고 부질없는 최후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후붕의 AC 무장 목록입니다. 실제 게임 내 밸런스나 실전성은 둘째 치고 인상깊음 + 작중 묘사에 맞게 구성했으므로 혹여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모쪼록 봐주시길....


왼 어깨 - SI-24: SU-Q5 펄스 실드


오른 어깨 - VE-60SNA 스턴 니들 런처


왼손 - PB-033M ASHMEAD 파일 벙커


오른손 - DF-GA-08 HU-BEN 개틀링건



 사족입니다만.... 원래 금태양 혼자 차 안에 버려진 채로 격전의 와중 밟혀죽고, 나머지 양아치들은 후붕이 피한 레이져에 시체도 안남고 증발당하는 걸로 구상했었는데 오늘 날이 아닌지, 도저히 표현이 안되네요. 


 그리고 전투씬 쓰는 거 겁나 어렵네요. 생각해둔 후회 포인트는 현재 진행되는 싸움을 비롯해 2~3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