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고어 주의!)

(전편) https://arca.live/b/regrets/87777449




 (후순이 포지션) 그레이스의 모습. 




A급 더블 플러스 히어로 그레이스.

사상 최강의 초능력자.

포브스 선정 ‘세계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 100인 중 1위’

   

모두 그녀를 수식하는 말이다.


현대인은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 유별난 변이나 초능력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 즉 '비능력자'. 둘, 선천적 변이로 인해 초능력을 얻은 진화형 인간, ‘초능력자’. 


계급마다 플러스, 마이너스로 세세하게 나뉘기도 한다. 최상위 계층인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히어로의 등급은 A급이 끝이라 A급 히어로라 불리지만 그녀를 위해 더 윗등급을 만들어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타 A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초능력자.

   

그리고 과분하게도 그녀는 내 어머님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능력자에게는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고, 어머니 같은 경우는 그 절대적인 능력에 감탄하며 동경해왔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알 수 없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왜소한 체구에서 괴력을 뿜어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며, 자유자재로 물건을 들어 올린다.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늘을 날거나, 순간이동, 엄청난 괴력과 스피드, 투시력, 독심술, 히어로 같은 능력자들처럼 특별한 힘을 쓰는 상상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 5년 전... -


1시 20분.  아카데미 기념 대학병원 응급실


갑자기 한밤중에 병원에서 온 다급한 전화를 받고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려던 아버지는 오늘따라 유난히 안색이 안 좋아보였다.


"넌 자동차로 먼저 가 있어... 나는 일단 날아서 애를 데려갈게..."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낭랑하고 예쁜 목소리다. 상대를 몰랐다면 젊은 여학생의 목소리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고 기계처럼 사무적인 답변.


평일 늦은 밤이라 시내에는 차가 별로 없다.  어머님은 굉장한 속도로 나를 태우고 시내를 날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후 시내에 있는 한 응급실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 아마도 비행 신기록인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속도 자주 안 좋았고 연구소에서 약도 두 번이나 먹었던 기록이 있으니 내 피를 검사해 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가 정신없이 나를 데리고 응급실에 온 것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 지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어제는 낮에 입학준비식 이 있었고, 바이올렛와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바이올렛이 먼저 속이 좀 안 좋다고 약속을 취소했다. 


한 30분 기다렸나? 


대기실 맞은편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이분이..."


 의사는 심각한 듯이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사실 아이분이 무능력자이십니다." 


부모님 두 분 다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 네???? > 


"이럴수가..여보.."


 "....." 


어머님은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고선 끝내 말을 이었다.


"다른 능력은 어떻게 된 거요?" 


"다른능력은... 아쉽지만 120번이나 출력을 검색해본 결과...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라..."


 "젠장..!"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려쳤다. 


나는 화들짝 놀래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을 맞출래야 맞출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당황해서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기분 나쁜 티 정돈 내지만 우울이 들어찬 적나라한 상태까지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나름 분위기를 살릴려고 대답을 해보았다


"아빠.... 괜찮아. 무능력이어도 돼" 


오해가 생겨났다. 서로 도울 일을 찾기 위해라도 가족 사이만큼은 솔직해져야 했다. 동트는 새벽, 가능한 담담하게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지금껏 눌러 담은 불안과 고통의 정체성에 대해.


"..아들.. 엄마가 무슨 사람인지는 알아?" 


"몰라요..." 


아버지는 말을 하려는 듯 안 하려는 듯 입을 움직이셨다. 


"아니다.. 나는 그래도 너를 언제나 사랑한단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바쁘신 연구원이라고 들었고 아버지는 무슨 TV 영화에서 볼법한 과학자이셨다던가? 그후로 아버지는 실종했다.


난 내가 갈 곳을 정해야했다. 끝없이 도망쳐야하는 삶. 확률에 기대어 생사를 결정하는 어느정도는 안정적인 삶. 나는 결정했고, '소년병' 이라하나? 정확히는 군부대 엔지니어 이란 곳에 갔다. 


하지만...


콰작!


"으악아아아아아아아!"


그녀들은 장난으로 내 앞에 있던 남자에 그것을 손으로 뜯어내고 깔깔거리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 이 녀석 좀 봐~" 


"무능력자래 ㅋㅋ"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선생님이라 불리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친절했고, 사람들은 그녀들이 어린나이에 참 착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어지고, 우리와 그녀들만이 남았다. 그녀들은 여전히 웃었지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죽였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죽였다. 


"ㅋㅋㅋㅋㅋ 다음번에 보자 찐따야?" 


그녀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지.? 나는 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거냐고!)


그때 벌컥 일어나 소리쳤다. 


"야 이 자식들아!"


그녀는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찡그린 표정은 이내 증오로 가득 찼다.


나는 순간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하지만 그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심한 공포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러면 오늘은 너 4 5번갈비뼈랑 전두엽를 심장이랑 도려내서 뽑은 뒤에 그걸로 맛있게 갈비구이로 해먹자. 맛있겠지? "


나는 그 한마디에 압도당했다. 


"..." 


나는 그렇게 하교를 하게 되었다. 


무능력자 거주구역을 지났을때...


그곳은 마치 수세기 전 화제로 뒤덮인 유럽,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등학생 초능력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 같았다. 


성한 모습의 건물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혹여나 말끔한 모습의 건물을 찾았다 하더라도 한 발짝 옆으로 움직여 바라보면 무너져 내린 건물의 뒤편이 눈에 들어왔다. 


뼈대만 남은 건물들은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듯이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뼈대만 남은 건물들 주위로 뼈대만 남은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다. 


딱딱히 굳은 살점과 내장기관만이 남은 시체들은 파리가 날아와 가능한 모든 공간에 알을 까놓았고, 꿈틀대는 구더기가 자신의 구역임을 알리기 위해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바삐 오갔다. 


파리 알과 구더기를 먹기 위한 개미들 또한 줄을 지어 차례로 도착했다. 인간보다 앞서 생존해온 그들이 눈앞에 펼쳐진 무료 뷔페의 기회를 놓칠 일이 없었다. 들개들이 무언가를 입에 물고 바쁘게 오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인을 알 수 없는 사람의 토막 난 팔이나 다리였다. 


그러한 들개 자신들도 앞다리나 뒷다리가 하나 씩 없거나 귀 한쪽이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결핍을 다른 종의 상실로 채우려는 듯 한 기괴함이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런 참혹한 모습보다도 훨씬 나를 공포를 느끼게 한 모습은 바로...


"하...언제까지 이 고통이 계속되는 거지?" 


"그러게요..."


"그래도 오늘은 별이 아름답네요..."


그러한 모습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그들에 공허한 눈동자였다.


그리고 나도 하늘을 올려봤다. 오늘따라 유난이 별들이 많았다. 


"이쁘긴 하네..."


그리고 '나' 역시 아무것도 '안'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 오늘 길, 멍하니 버스 창문 밖만 바라본다. 


오늘도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싫은 일을 참으며 해냈구나. 


내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칭찬 대신 내일은 또 어떻게 사나 하며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 나는 무능력자다.


10명 중 9명은 초능력을 갖고 태어날 정도로 초능력자가 흔한 세상에서 나는 초능력이 없는 '무능력자'였다.


DNA 검사결과 친자 일치율 : 100%.

[능력 등급 평가 : 무능력자]


신분증에 쓰여 있는 이 몇 글자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쳤다...


어린 내가 있었다. 어린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설사 초능력이 없어도 뭐든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뭐든지 될 수 있을것 같았고, 나는 나를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저 멍청한 어린시절에 환상에 불과했다...


초능력이 없었지만 히어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분명히 비웃을 꿈을 간직하며 앞을 향해 달려왔지만. 가면 갈수록 히어로의 꿈에서 멀어졌다.


나의 유일한 낙이자 취미는 히어로의 영상을 챙겨보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는 뭐... 어머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하늘 위의 존재가 돼버리고 최근에는 거의 만날 수조차 없었다...


(나 '마마보이' 기질인가?)


그래도 어머니는 내 영웅이고 동경 대상이며, 또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일찍 깨닫고 현실을 살아갔지만 나는 남들보다 오래 환상을 살았다. 


나는 자신의 재능을 과신했고 불가능한 노력을 했다. 대가는 자명했다.


11년 동안의 시간은 지옥에서 사는 일과 같았으며 하루하루를 후회와 분노와 절망으로 채워 보냈다. 깊은 물속에 빠진 것은 육신이 아니라 눈을 감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죽지 못하는 시체. 


수만가지의 이유로, 그녀들의 '교육'에서 노예처럼 기었다.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며, 거역은 곧 죽음이었다. 콘크리트에 핏자국이 되거나 손위에서 찣어졌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전히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법을 배웠다. 재능있는척하기, 명령 따르는것처럼 보이기, 눈치보기, ...가학심을 자극하지 않기. 물론 이를 배워도 죽을사람은 전부 다양하게 죽었다.


정작 바깥에서는 시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히어로들을 보면서 이러한 이중성이 심한 히어로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을 해본적은 꽤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이 지났을까. 우린 그녀들의 "교육"에서 살아남았다. 어느새 몇명정도만이 남아있었다. 고생끝에 모든걸 끝낸, 우리에게 있던건...


아무도 없는, 있을 리 없는 집에 도착해 옷을 벗었다. 


그토록 답답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던 옷인데 벗어도 벗어도 몸은 가볍지 않았다. 


속옷만 입을 채로 침대에 몸을 던진다. 그리곤 조용히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에 집중한다. 


위이잉 하며 돌아가던 냉장고는 적정온도가 되었는지 털털거리며 작동을 멈췄다. 


점점 고요가 다가오자 옆집 도어락 소리와 문 여는 소리가 침묵을 잠깐이나마 깼다. 


그 침묵과 고요에 익숙해져 갈 때쯤. 예정에 없던 잠에 빠져버렸다. 잠깐 잠이 들었나? 


하고 시계를 보니 밤 12시. 다시 잠이 들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무겁던 몸을 일으켜 바닥에 늘어져있는 옷가지를 보며 한숨과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흔하던 술취한 아저씨의 고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적막한 고요였다. 


이불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크게만 들렸고 심장소리조차 들릴 거 같았다. 


항상 슬픔은 이유 없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울컥했다. 


대체 뭐가 이리 비참하고 슬픈 걸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 


이렇게 힘든 걸 아무도 몰라준다는 거? 


울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울지 않으려고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순간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는 생각 하나에 슬픔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울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것 같았다. 


힘들게 버텨왔던 것들을 버틸 수 없게 된다는 거니까. 증발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힘든 것을 잘 버티고 외로움을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살아가기 위한 합리화라는 걸 오늘 울음을 토해내며 깨달았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힘들거나 외로웠던 일들, 누군가와 이별하며 슬퍼했던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늘 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울음을 통해 전부 쏟아낼 수 있을까? 


또다시 이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며 점점 두려워졌다. 


오늘도 슬픈 하루를 보내며 스스로는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 라며 위안했다.




길베르트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꿈에서도 바라온 취직에 성공한 자의 기쁨의 눈물일지, 아니면 자신이 노력해온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은 비참한 무능력자 어린아이가 흘리는 후회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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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 주의!)


그녀의 모습이 문득 흐려지며 흔들렸다. 


눈물이구나.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잘리는 순간 길베르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옆의 책상 테이블 위에는 병안에 포르말린 용액과 같이 담겨진 길베르트의 장기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양쪽 손, 코, 귀, 콩팥, 내 간을 여러번 자르고 재생시키고 또다시 잘라서 완성시킨, 바느질로 꿰매어서 온전한 형태를 띈 내 간덩이와 폐 한쪽, 그리고 일부를 절개한 뒤에 뜯어낸 내 대장과 소장의 일부가 포르말린 용액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한번만...


자신을 안아주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가 산산조각 난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씨발!!! 짓지 마!!! 진짜 토나올 것 같으니까 그 징그러운 상판때기에 슬퍼 죽겠다는 표정 좀 짓지 마!!!"


처음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차디찬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건.


그것은 그 어떤 비수보다도 날카롭고 아픈 말이었다.




아프다...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 짜증나!!  오늘은 네 턱이랑 혀도 좀 뽑아야겠어.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 곳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는 흥건한 피와 썩어 문드러지고, 뜯겨진지 오래되버린 크고작은 살점에는 더러운 고름과 수많은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매번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던 어머님은 몇 년이 지난 사이에 확연히 바뀌었다. 


멈추어 선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작은 움직임에 쉽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산란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가 느릿하게 감은 나는 피곤한 눈꺼풀을 비볐다. 복잡하게 꼬인 머릿속으로 어머니의 전화 통화 내용을 곱씹기 시작했다.


어릴때도 그랬다. 히어로라 불리던  형제 자매이란 사람은 술과 폭력을 일삼았다. 생물학적 어머니란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끊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죽고 싶었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고문을 당한 오늘 마를 새 없는 눈물을 그렇게 쏟았다. 


세상에 다녀간들 무수한 지구 역사에 점 하나 찍지 못하였구나. 진심을 담았다고 믿었던 인간관계란 허망한 것이어서, 스스로 방어벽을 쌓아 올린 세월 동안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안부조차 겨우 묻고, 힘들 때 제 일처럼 나서줄 친구 하나 곁에 없구나. 


이대로 나의 삶이 사라진들 주위에 충격 그 이상의 그리움과 슬픔이 남긴 할까. 차마 두고 갈 수 없다면 우리 엄마와 금쪽같은 여동생들. 한심한 생각이 파도처럼 몰아치며 그렇게도 주륵주륵 눈물이 흘렀다.


그것이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든 생각이었다.



길베르트는 느릿하게 천장을 응시했다. 그는 언제 자신의 머리가 잘렸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잠시 고민하던 길베르트는 이내 뒤죽박죽인 기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 기생충, 쓸모없다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느려져버렸나. 


테이블 위에는 내 신체를 1대1 비율로 맞춰진 인체모형 그림이 달려있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나에게서 뜯어간 뼈 조직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아, 참고로 이 뼈 조직은 아마 '반쯤'은 채웠을 것이다.



땅바닥에는 조촐하게 준비한 선물과 음식들이 바닥을 나뒹구느라고 있었다.


땅바닥에는 기적처럼 부서지지 않은 샴페인병 과 갈기갈기 찢어진 선물 카드도 있었다.


땅바닥에는 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마음들이 갈가리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카드 위에 쓰인 글귀들...

   

 

'엄마 그레이스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싶은 길베르트로부터.]


갈가리 찧어진 카드처럼 정성스레 카드를 준비한 주인도 몸과 마음이 문자 그대로 갈가리 찧어져 육편 조각이 되어 바닥에 있었다.



다르다...


너무나 다르다...


직접 그녀의 곁에서 바라본 그녀의 사적인 면에 대한 진실은... 내가 알던 당당함과 긍지, 정의로운 영웅심에 찬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설마 그녀가 이토록 오만하고 잔혹한 성품을 지닌 인간... 괴물이 피에 굶주리고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줬다.


오늘...


처음으로...


그녀의...


'본성'을 알아버렸다...


그녀는 작게는 폭주족 테러범 소매치기부터 크게는 정재계의 흑막이나 공해기업을 혼내주는 등 정의의 사자로서 활동했지만...


그녀는 그저 스스로 애정결핍과 외로움이란 감정에 잠식되어 매일 밤마다 부들부들 떨면서 술만 들이키던 알콜중독자이자


겉으로 무엇도 드러내지 않지만 무엇이든 다 포함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과 무한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막강한 힘과 권력에 자아도취 되어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서 오만하고 독선적인 독불장군 같은 존재였고


불행한 어린시절의 영향으로 심각한 강박적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실천 불가능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어렸을 때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 때문인지 범죄자를 끔찍하게 살해하면서 절정하는 잔혹하고 변태 같은 취향마저 지니고 있었다.


몰래 사람을 죽이고 천연덕스럽게 히어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성격에 결함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정신나간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고 남들을 자신과 어울릴 가치도 없는 열등한 존재라고 깔보는 선민의식을 지니게 된 가엾은 이였다.


그러나 웃기게도 그녀가 어째서 그런것인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지배자는 스트레스가 심하는 법이니까. 언제 어디서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자가 나타날까 두려웠으니까.


듣자 하니 오늘 그녀는 도둑을 잡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를 죽였다고 한다. 그 탓에 오늘 높으신 분들한테 욕을 한 바가지로 처먹었다고.


마침... 스트레스를 풀어줄 샌드백이 나였다...


하지만...


진짜 가슴 아픈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왜? 너 같은 쓰레기를 왜 낳아서..."


음정에 높낮이도 별로 없는 무미건조한 말이 자신이 맞은 광선보다 더 뾰족한 날이 되어 박혀 들었다. 길베르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녀는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길베르트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걸 보았다.


진심이었다. 적어도 어머니는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매번 정부에서 온갖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면서도 어머니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길베르트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 길베르트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그가 자신을 보고 낯선 사람인 양 고문시키다니 전혀 뜻밖이었다. 




그래, 참 꼴이 좋구나.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였니?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 했으나 눈가가 촉촉이 젖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 아플정도로 운거같다.




생일 날.. 내 소중한 조각 중 하나가 날 떠나서 이제 아프지도 않고 행복할텐데... 




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고있다.




배신을 1년에 2~3번 꼴로 당해봤지만.... 




이거는 그딴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아픔과 슬픔이었다.




오늘은 내 11살 생일이다 생일 선물이나 격려의 말 같은 건 진작에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한번만...


안아주시면..



나는 서서히,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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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귀염둥이! 길베르트, 우리가 지난 번에 넣어둔 와아아아인이... 오, 세상에. 너 울어?" 


바이올렛...


길베르트는 종종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깼다. 한밤중일 때도 있었고 새벽녘일 때도 있었다. 길베르트는 약에 취해 흐늘거리는 시야로 애써 방 안을 훑었다. 적어도 그녀를 빼고 지금 당장은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없었다. 뭐, 있다고 해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짜증났는지 내심 퉁명스럽게 대답해 버린 길베르트


"왜 구해주고... 데려왔어?"


"그야... 네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도움..."


문득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머릿속으로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그녀가 그렇게 높은 직위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바이올렛은 고작 '무능력자' 하나를 구하겠다고 '정부'와 적대 관계에 설 것도 아니고.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신분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옷자락 사이에서 상자를 끄집어 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금방이라도 그것을 떨어트릴 것만 같았다. 


눈을 뜬 길베르트는 자신에 몸을 확인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지가 멀쩡히 붙어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일까.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눌러넣은 길베르트는 숨을 골랐다


다행히 그녀가 치유 능력을 써서 치료해 줬나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찬란한 금발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감고서 가만가만 숨을 내쉬고 있는 바이올렛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지금 눈앞에 소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의 모든 정신은 오직 자신에게 보내진 신원미상에 상자와 그 속에 동붕된 미지에 편지에 팔려있으니까...



-아베쎄의 벗들


친애하는 길베르트, 세계대전 기간 동안 우리의 영광스러운 조국은 권력과 진보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우뚝 솟았으며, 우리 군대의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노력 덕분에 전쟁이 끝났고 세계는 다시 태어나는 상태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지구의 상처를 정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오늘 우리 국민의 평화, 번영, 여유로운 삶으로 가는 길은 기술을 통해서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구축 할 기술. 창조 할 기술. 개선하고, 배우고, 성장할 기술. 나는 당신에게 우리 저항군  '해방자' 아베쎄의 벗들의 일원으로 초대를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디 우리와 함께하기를...

-앙졸라스 총리


길베르트는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그 편지 내용을 따라서 평생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 떠난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할까.... 글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게 왜 나한테..." 


또다른 편지를 뜯어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안녕, 길베르트. 


오늘도 여기는 여느 날처럼 조용하지만 시끄럽게 흘러가고 있단다. 물론 시끄러운 건 남편잃은 과부들이 혼자서 중얼대는 소리와 어머니와 친척들이 나는 불만에 가득 찬 소리들 뿐이지만. 그래서 오늘은 색다른 걸 해보기로 했지. 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가 지금에서 몇 년이 흐른 뒤일지는 모르겠구나. 


편지를 쓰는 지금에서 고작 몇 달이 지난 후 일지 아니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일지 말이다.네가 할아버지가 다 되어서 이 편지를 받는다면 너보다 어렸던 놈이 버릇없이 편지를 썼다며 지팡이를 휘두를지도 모를 일이지! 

(이 부분의 필체는 왠지 신나보였다.)


 길베르트, 지금 이 시기가 네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려운 시기라는 건 알고 있단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우리 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우리를 믿듯 우리는 너를 믿는 다는 사실이란다. 물론 그건 네가 세기에서 불리듯이 영웅이라서가 아니란다. 네가, 내가 알고 있는 길베르트이기 때문이지. 네가 등에 짋어진듯한 짐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단다. 너는 내 소중한 아들이니 말이야. 젠장, 저것들이 또 밑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저 놈의 입을 다시는 못 벌리게 만들던가 해야지! 그럼 이만 줄이마. 이 편지가 도착할 때가 언제인지 궁금하니 꼭 답장해다오. 


ps. 네가 정말 할아버지가 되었다면 답장은 안 해도 된단다 그때면 내가 없을 테니!‘ 


"이런 게 가능해..?"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여전했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언제나처럼 다정했고 따듯했다. 편지를 상자 깊이 쑤셔 넣고 길베르트는 울고 있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너지고 있는 걸까.


"괜찮아? 길베르트?"


그녀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울렸다.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그녀는 왜 하필 이때 안아준걸까.


어린 젊은 날들의 패기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당당함이 처참하고 잔인하게 무너지고 있을 걸까. 위로해 줄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는 절망일까.


앞으로 갈 곳은 정해져 있다. 배터리가 연결된 스마트폰에 지도 앱을 켜고 칼텍 연방에서 프랑지아 공화국 뤼미에르 까지의 경로를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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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시각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승리.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승리.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앙졸라스 총리




(다음편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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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영감이옴) 


글쓰기 생각보다 어렵다. 담에도 시간나면 틈틈이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