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 9천자 임박 주의*


단풍으로 만개한 산 속.


작은 요양원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 누군가 방문했다.


“환자분.”


“-...”


“환자분 아드님께서…”


“-...뭐라고요…?”


“이걸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아파트 정도의 높이로 된 요양원의 꼭대기 층에서, 어떠한 장신의 사내가 거뭇거뭇 백발이 피고 있던 여자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어느 비닐봉지에 감싸진 편지지 하나와, 녹음파일 하나가 저장되있는 휴대폰 하나.


여자는 조심스레 편지를 펼쳤다.


.

.

.


전 당신들처럼 울음을 삼키지 못해, 이곳에서 울려 합니다.


이제 그만 버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인생은 역겨움의 연속입니다.


잠에 빠져선 제 앞의 차디찬 공기를 물 만난 사람처럼 허우적 대던 날 누군가가 보기라도 한다면 전 얼마나 두려울까 항상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에 전 회의적이거나 반감을 가진 적은 일절 가지려 해본 적이 없었지만, 단언컨대 제 위의 존재들은 충분히 비난할 것이 뻔합니다.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고 그런 저만의 사고방식 속에서 제가 자유로이 느낄 수 있던 감정은 단 하나였습니다.


부끄러움.


읽을 가치조차 없던 공부의 결과물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두에게 있어서 비교물의 대상이 되버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쳐버려 앉은 제 앞으로 뛰노는 애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얻어버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전 이 모든것에 대해 조금의 반감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결과물에 신경을 갉아먹던 제게 당신들은 더 많은 학원으로 절 보내버렸습니다.


구닥다리 서열싸움에서 유치하게 떨어져버린 제게 당신들은 더 많은 과외를 붙여버렸습니다.


헐거워진 나사로 쓰러져버린 인형 같던 제게 당신들은 구닥다리 도장()으로 절 보내버렸습니다.


수많은 감정과 기억으로 접합된 뇌는, 현재로선 죄스럽게 썩어빠진 제 일상만을 열거하는 서랍일 뿐이었습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있습니까?


‘그들의 일련의 과정으로 내게 주신 전유물을 이따위로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며, 스스로를 세뇌할 길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전 그저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 바로 가족, 전 가족을 위해서, 해야만 했습니다. 


라고 배웠습니다.


스스로를 세뇌하니 그런 생각은 들더군요.


당신들은 절 보며 그 고통에 얼마나 허덕이셨을까 하며, 때론 바닥을 사무치게 내리쳤는데 말입니다.


절 적대하시던 그 눈빛은 파렴치한 절 뿌리채 뽑아도 조금의 변명조차 담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전 당신들에게 있어서 무엇이었습니까?


속죄를 위해 남아있어야 할 죄인이었습니까?


당신들에게 있어선, 제가 죄인이었기에 그렇게까지 해버리신게 아닙니까?


그렇고 그런 완곡한 주장만 내새우던 당신들에게 몹쓸 사연 하나가 있던건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모든 정의로운 행동은 당연하게도 인간으로서 얻은 기억과 경험에 수반한걸 압니다.


당신들의 기억과 경험은, 자유롭게 뛰노던 놀이터에서 매정하게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감옥으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모든 기억이 당신들을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걸 압니다.


당장에 우리의 친척을 보세요.


친척은 조금의 사활 조차 경험해보지 않은 딸과 아들이 성인이 되버린 지금에서도 집 안에서 뒷바라지 하며 키우고 계셨습니다.


친척의 딸과 아들은 사랑에 헌신하던 부모님 덕분에 조금의 모난 부분 없이 자라버렸고, 그 어디에도 부딪혀본 적 없었기에, 공포스러운 기억이 주마등에 나타날것이 두려워 그들은 경험에서 숨어버렸었습니다. 


친척은 끝내 일생의 말로에 자식들을 끝까지 뒷바라지한 기억을 술안주 삼다 임종하셨단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전 그날의 당신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결국 남은 화살은 제가 감당해야 했죠.


당신들은 강경했습니다.


죽어버린 친척과 조금의 생사경 없이 관조적으로 지낸 딸과 아들에게서 얻어버린 기억은, 다음에 제게 있을 경험을 완전히 비틀어 버렸다고 말하더라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이 절 인간 취급 할 정도로 만들려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커가던 와중에도 심적으로 도태된 제게 있어서 당신들의 행동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온 몸을 감싸던 저의 모든 것을 벗겨선 모두에게 먹이처럼 던져버린 듯 했습니다.


또다시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교복 주머니 속 찰그락 대던 100원 동전 몇푼이 전재산인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몇십권씩 묶여 버려진 만화책들 위로 쌓여만 가는 문제집들을 막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꺼진 휴대전화 속에서 날 쫓던 막연한 통화 몇십통이 부끄러웠습니다.


저에게 항상 입히시던 옷은 아마도 고급스러운 것이었겠죠?


차도와 인도 사이를 거닐었던 그때 또한 그랬었습니다.


그런 옷차림도 단지 밖에 나왔을때나 입었을 뿐입니다.


집에서는 조금의 사치도 부려선 안되는 사실에, 전 그만 진저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됐습니다.


바보같이, 당신들 때문에, 친척 때문에, 나지막이 빌던 소원 하나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세뇌했습니다.


“난 이렇게 말해선 안돼.”

“이렇게 생각해선 안돼.”

“생각해 봐.”

“너의 모든 전유물은 지금껏 내가 그들의 피조물이었기 때문이야.”

“생각해.”

“고통스러운 것도, 행복했던 것도, 전부 그들의 은총이 있었기 때문이야.”

“생각.”

“괴로운 것도 잊어버릴 수 있어.”

“내가 잘하면 잊어버릴 수 있어.”

“그들이 허락했기 때문에 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하라고.”

“난 할 수 없더라도 해야 해.”

“불가능하다 말한들 해야 해.”

“난 그래야 해.’


이 괴로움도, 집에 가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그렇게 속으면서 집에 들어갔었던 걸 아십니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날은 유난히 적막함이 집안을 감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책상을 울리는 진동음, 귀를 고통스럽게 닳은 전화의 수신음은 끊길 틈이 없었는데, 그건 어머니의 전화였죠.


의자에 앉았다가 잠시 잠들어버렸었는데, 들려오는 수신음에 전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었죠.


한번 들어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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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야.”


“옙.”


“-너 뭐해?”


“네?”


“-생각있어?!”


“...네?”


“-몇시야 지금?”


“하아… 잠깐만요, 지금 5ㅅ-”


“-뭐?”

“-너 한숨 뭐야?”


“...잠깐, 뭐라고요?”


.

.

.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 갑작스러운 인사불성 스런 외침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잠시 크게 숨을 내쉰 것 뿐이었지만, 당신은 어떡하셨죠?


.

.

.


“부모님한테 한숨을 그따위로 쉬어?”


“...”


“하, 진짜…”

“오냐오냐 하면서 키워줬는데 버릇없이 대들고 있지?”

“너 진짜, 잠깐만.”


“...”


“당장 짐싸.”

“컴퓨터는 갖다 팔아버릴 거니깐 그렇게 알아.”

“아니 어떻게 부모한테 한숨을… 하…”


“...”


“너 진짜 그따위로 할래?”

“그딴거 후레자식이나 하는 거야. 알아?”


“...예.”


“대답하지마.”

“진짜 내가 뭐가 잘났다고 너같은 놈한테 뭘 사준건지…”


“...”


“엄마 친구 만나고 오는 길인데, 내가 너때문에 고개를 못들어서…”

“걘 성적 높다던데, 넌 그정도도 못해?”

“잘하는 것 같아서 선물도 샀는데, 이거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부모 속썩이니까 재밌어?”

“아빠한테도 이 얘기 들어갈거니까 그렇게 알고, 당장 짐싸서 나가.”

“꼴도 보기 싫어.”


“...”


“에게? 대답안해?”


“옙…”


“어쭈. 사과는 안해?”


“죄송합니다…”


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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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


편지를 떨리는 손으로 붙잡느라 더 꽉 쥐어버린 여자. 


그런 바람에 편지가 조금씩 구겨지며 점차 열이 달아오른 손에 땀이 흥건해져선 편지를 적신다.

 

계속해서 읽어내려 가던 여자는, 이내 들려오던 음성파일에 숨길 수 없는 죄악을 들어낸다.


을씨년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표정엔 변함이 없었고, 이내 바싹 매말라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조금씩 여신다.


“아아…”


차마 고통을 이기지 못해 짧은 신음을 흘리시는 듯 했다.


하지만 변함 없이,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내려 가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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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들과 조금의 이야기라도 나눴다간 십중팔구 비난과 매도로 만실이 될게 뻔했으니까.


그러곤 이도저도 안되니 제게 메시지를 보내주셨었죠?


[엄마: 까똑 보냈는데 대답도 안해?]

[엄마: 아주 그냥 지금이 네 세상이지? 그치?]

[엄마: 뭐라도 된 것 마냥 부모님한테 대들고 싶지? 그런 거야?]


그거 아십니까?


전 까똑에서 들려오는 알림음은 얼추라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핸드폰을 한 번 압수하신 뒤로 메신저를 제외하곤, 까똑을 포함해 모든 SNS를 막아버리신게 누구였죠?


아무래도 막아버리는 과정에서 당신들은 차단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신 모양이시죠?


[엄마: 걍 넌 전화도 문자도 하지마.]

[엄마: 제발 걍 너 하고 싶은대로 사시고요.]

[엄마: 엄마는 너같은 자식 모르는걸로 할게?]


당신의 사랑, 잘 보이시죠?


그때의 저에겐 조금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분명 눈앞은 흐릿한데, 눈물 같은 액체가 안구를 적신 상태는 아니었고요.


어떠한 감각도 들지 않아 이빨로 입술과 혀를 짓이기지만 이것마저 별 커다란 고통이 들지 않기까지 하니, 사람 더 미쳐버리죠.


무엇이 됐든, 그당시 전 제 몸상태를 생각해볼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당신들의 바람 대로, 전 짐을 쌌습니다.


단지 그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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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라 불리우던 존재는, 잠시 편지를 내려놓고선, 양 손으로 머리채를 붙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


그저 그 존재만 들어있던 병실이었기에 고성방가를 내지르기엔 너무나 완벽한 곳이었다.


“아들아… 아들아…”


이내 엄마라 불리우던 존재는 어줍잖게 아들이 앞에 있는 듯한 흉내를 내며 계속해서 부르기 시작한다.


“아들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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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매 순간 제 어깨를 짓누르고, 얼마나 짓눌렸는지 궁금해져 다시 두 팔을 올려 고통을 상기시키는 일련의 순환과정이, 당신들에겐 얼마나 재밌었을까요?


이런 고통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제게 있어서 이런 과정에 적응이 되어 다음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즐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 조차 즐길 정도로, 전, 많이 망가졌었습니다.


이젠 무엇이 교육이고 사육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식 속에서 흘러나오던 혐오는 당신들의 매질 몇번에 꼬리내린 파블로프의 개 마냥 묻혀버렸었죠.


이후론 일말의 기대감이 충족될 수도 있거니와, 나지막이 바라던 소원을 당신들이 이뤄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바람 때문에, 조금이라도 묻어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생각을 단 하나로 정리하려고 했었습니다.


쌓고 쌓는 블록을 억지로 구겨 넣어 바깥으로 몇개씩 세버린 것처럼.

너무 많은 것을 구겨넣어 안에서 부셔저 버린 잔해에 찢겨버린 꾸러미처럼.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끼워 넣으려 몇 번이고 사정 없이 망치로 찍어 내리는 것처럼.


근데 말이죠.


유독 이날은 이 생각에서 귀결되지 않더군요.


사실 이런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나요?


개새끼처럼 자라버린 자식에겐 안락사가 정답이지 않습니까?


그것만이 당신들과 저의 족쇠를 푸는 유일한 정답이지 않나요?


헌데, 안락사는 저를 위한 정확한 비유가 될 수 없죠.


결국 제가 바라는 정답은 삶의 말로였던 겁니다!


한때 저의 친척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삶의 종지부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들보다도 더 빨리 삶의 종지부를 볼 수만 있으면 그것보다 명쾌한 대답이 어디 있을까요?


매번 저를 앞서가던 당신들은 뒤쳐지는 절 조금이라도 죽여버릴 만한 구실을 만들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바리바리 싸맨 짐이랑, 그렇게 도망가버렸는데, 이런!


아빠가 죽어버렸네!


멍청하시게도 도로가를 넘나들던 절 쫓으시다 달려오시던 차에 박아버리셨네!


늑골이 부셔지고 뼈가 살 밖으로 튀어나와선 도로가에서 피를 흩뿌리시기까지! 


민폐도 이런 민폐는 없는데 말이죠.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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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한때 어머니였던 존재는 아버지에 관한 대목에서 끊어버리고 말았다.


“우웨엑…”


아무래도 흰색 바탕의 환자복은 이제 그 쓸모를 다한 듯 했다.


딱히 저런 행동에 관해 별다른 대처는 없었다.


점점 고통스러워 할수록, 어머니였던 존재는 더 빠르게 읽어 내려가시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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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민폐라니, 완전 버러지나 다름없네, 우리 아버지!


안됐네요! 홀아비, 과부의 탄생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존재하지 않아요. 


항상 아버지라는 작자와 대면할 일이 있다면, 엎드려 뻗친 뒤에 제 전신을 방 한켠에 박아 놓으셨던 골프채로 휘두를 일밖에 없으셨으니깐요.


그때마다 눈은 바닥을 향했고, 끝나고 나서도 바닥을 향했고, 그렇게 잠들었었어요.


그때마저도 전 당신들이 께지 못하게 몰래 방문을 열어젖혀 거실 속 서랍에서 약을 찾는데 전전긍긍 했었죠.


아버지께서 과거에 어떤 치욕을 겪으셨는지는 몰라도, 옛날의 경험이 지금의 절 가르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나봐요.


근데 그것도 이젠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네요.


소식을 들었어요.


중형 크기의 차에 치여 몇번이고 굴러나가떨어진 아버지.


소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까 저 찾을 겨를도 없이 돈 버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셨었죠?


그리고 또 한번 소식을 들었어요.


당신이 찾아갔던 그날, 끝내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하셨었죠?


하필 그런 골든타임이 다가왔다 생각하시던 순간에 대출도 쓰셨고.


결국 돈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며 빠져나갔고, 마치 누수에 눅눅해져 쓰러져버린 골판지 마냥  쓰러져버린 집안 상황에.


그때마저도 돈 갚으려 전전긍긍 하시다가, 끝내 과로로 쓰러지신거.


어머니.


얘기 잘 들었어요.


그때 염색약 따위 필요없던 갈색 빛의 머리카락은 어디가고, 이젠 백발만이 머리에 만개하셔선, 손 쓸 기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지셨더군요.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버지가 그렇게 치여버린 날에, 전 그냥 도망갔었어요.


그리곤 모든 것을 재정립 해보았죠.


절 옥죄던 세뇌에 대해.

이미 기회를 잃어버린 친척에 대해.

그들을 보고 자란 당신들에 대해.


당시에 전 이 모든것에 대해, ‘자살이 답이야!’ 라고 외치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다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도망쳐버린 이후로, 누구도 절 쫓거나 찾아오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전 당신들과 어떠한 관계로도 이어지지 않을 운명이니, 저로썬 더욱이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절 계속해서 찾아오신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이겠죠?


그에 이유는 대충 짐작하였지만,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관계가 있었다면, 당신들이 절 사랑하신 방식에 관한 것이란건 알 수 있었어요.


사랑해서 때릴 수 있었고, 사랑해서 매질할 수 있었고, 사랑해서 그렇게 몰아넣을 수 있었다.


사랑해서 미워했고.


사랑해서 혐오했고.


사랑해서 뿌리쳤다.


이것이 정녕, 당신들이 사람을 사랑하신 방식입니까?


당신들의 사랑은 멍청이라도 사랑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랑이 아니었던 겁니까?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몇개의 땀줄기가 옷을 적신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저 사랑한다며 절 향해 올곧게 뻗으셨던 등과 팔을 기울여 주시면 안됐던 겁니까?


부엌에서, 거실을 통해, 제 방으로 부드럽게 뻗어오던 밥내음에 손에 쥐던 것들을 놓아버리고선 한달음에 기뻐하며 다가갈 순 없던 겁니까?


    새롭게 시작한 아침에 서로를 위해 인사하고,

각자의 자리에 선 정오의 시간을 서로를 위해 격려하며,

고단한 하루를 끝마칠 밤에 서로를 위해 또다시 인사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이해하며 합을 맞춰나가는 사랑.


매끄럽게 멀리 나가던 보폭을 줄여주며 한달음에 뻗던 손을 잡아주는 사랑.


 저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대해, 우리가 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저같은 멍청이를 사랑해줄 수 있습니까.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는.


모든것이 지겨워질 쯤 또다시 사랑한다며 그렇게 사랑하는.


그런 멍청이는 이제 없습니다.


이렇게 내뱉은 토사물이라도.


이젠 사랑해줄지도, 사랑받을지도 모르니깐요.


.

.

.


아무런 기색이 없으시다.


그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실 뿐이다.


창밖으론 가을로 물든 나무가 형형색색으로 만개하였다.


이곳은 그들 사이에 지어진 요양원의 꼭대기.


“-...”


“...다, 읽으셨는지요.”


“...끄흐흡!…”


호흡이 불규칙해진 듯 한 모양새로, 울음을 삼키고 있다.


몇번이고, 울음을 삼키다가, 결국엔…


“끄흐흐…”


이제서야.


울음을 터뜨리신다.


“이제야.”


5분.


그 사이의 전율을, 있는대로 다 읽어드리려 하였다.


.

.

.


“다 진정이 되셨는지요.”


“-...옙.”


기운이 조금 회복되셨는지 울음을 그치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꽤나 감동이었습니다.”


“.-...?”


“감동이었습니다.”

“...”


“...어머니.”


“...어어? 뭐? 네? 어머…니? 잠시만? 어머니? 자, 잠시만-”


저벅저벅…


장신의 남자는… 그렇게 나는, 병실 밖으로 향하였다.


“아, 배웅은 안해주셔도 되요.”


“-아들!!!!! 아들아!!!!!!!!!!!! 제발!!!!!!!!!!!!!”


대성통곡 하시며 또다시 특유의 괴성으로 날 향해 울부짖고 계신다.


“...잘 쉬세요.”

“오늘은.”


“-아들아!!! 아들아!!!!! 제발!!!...”


“...하하, 그렇게까지 반응해주시니, 행복하네요.”

“기뻐요.”

“그럼 이만.”


드르륵…


“한번만 내 이야기ㄹ-!”


쾅.


문이 닫히며 목소리도 한순간에 닫혀버렸다.


“흠…”


요양원을 나오면서는, 쥐잡듯 뛰쳐나왔다.


그리곤 발을 옮겼다.


.

.

.


“하…”

“이런곳에 계시고 아버지는…”

“유골은 찾기 꽤나 어려웠는데 말이죠.”


“...근데, 용케도 찾긴 했네요.”


그나마 있어보이는 술 한병을 든 채로, 한 공원을 방문했다.


검빛 양복으로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어른들로 만실인 공원이었다.


“뭐, 잘 지내셨어요?”


몇층을 오르고, 몇개의 방을 거치고서야 아버지의 이름과 사진이 박힌 유골함을 찾아냈다.


“...흠, 역시 할말은 없네요.”


너무나 충동적으로 찾아가 버린 아버지였기에, 더이상은 말을 아꼈다.


“대신 이 편지 하나 전해드리고 갈게요.”


쓱…


“어머니도 잘 읽어보셨던데, 아버지도 한번 잘 읽어보세요.”


유골함을 넣은 칸 앞면에, 편지 하나를 붙였다.


“...전 그냥, 그럭저럭 잘 지냈내요.”


차마 컵을 가져오지 않은 바람에, 술은 개봉하지 못했다.


“그냥, 다음에 또 태어나시면.”


저벅저벅-.


“그땐 많이 사랑해줘요.”

“....어머니는.”


쓱-.


잠시 뒤돌아 보았다.


“...제 편지, 많이 사랑해주셨거든요.”


저벅저벅…


그렇게, 난 사라졌다.


어느 날, 어느 한 여인은 요양원에서 홀로 편지를 가슴속에 품은 채 안고 계셨다.

어느 날, 어느 한 유골함 앞으로 편지 하나가 붙여졌다.

어느 날, 어느 한 청년은.


어느 날의 대면에, 눈물을 흘리며.


그저 웃어버릴 뿐이었다.



음... 이게 맞을까요?

(사실 잘 모름)

분량 조절 실패했는데 후회보단 피폐에 더 쏠린듯해요.

여기까지 와주셨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