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용사로 선택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내가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아마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이런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용사로 선택 받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아빠!!!!!!"


"우리 딸,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달려든  딸, 리즈를 안아들으며 물었다.


"엄마가 날씨도 좋은데 소풍 가제!!"


"좋네, 어디로 가는데?"


"대수림! 실키 이모가 세계수도 다 자랐다고 보러 오래."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겠네. 갈까?"


"가자!!!"



-그 덕분에,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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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그때 내가 그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칼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아마 지금처럼 아프진 않았을 거다.


당시엔 내가 하는 일들이 옳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에 그렇게 멍청한 일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리에."


"언니.무슨 일이야?"


"오늘 종전 기념식 때문에 가주님이 불러."


"...먼저 가. 준비만 하고 나갈게."


"알겠어. 늦지 말고."



-그것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까.



*

내 어린 시절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제국 제일 무가의  적장자 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빈약한 재능.


불길하다 여겨지는 검은 머리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항상 나와 비교대상이 되었던 누이들.


제 어미를 잡아먹은 자식이라는 이름까지.


천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조건들을 하나같이 전부 쥐고 태어났던 탓에, 가족들은 물론 사용인 들 조차 나를 소 닭 보듯 대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미워했던 건 내 둘째 누이, 리에 베른하르트 였다.


사실 따져보면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사람이기는 하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은 것도,뭐 하나 특출난 점이 없으면서도 오직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소가주 자리를 물려받게 된 것도 나였으니까.


그러한 그녀의 증오심은 곧 폭력으로 화하였고,그녀는 시시때때로 내게 폭력을 가하였다.


"너따위가, 너따위가 뭐라고!!!!"


그래. 그날도 다른 날들과 같이 그녀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차라리 언니가, 차라리 내가!!!"


아마 또 소가주 자리 문제로 가주님이랑 한판 싸우고 온 듯 했다.


참 웃기지.


내가 원한 적 도 없는 것 때문에 이런 꼴 이라니.


저렇게 절실히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몇배는 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데 도대체 왜 나를.


하도 맞아서 익숙해진 고통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파앗


"?"


하늘에서 떨어진 빛줄기가 날 감쌌다.


"이게 무슨..."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그녀도 손을 멈추고 멍하니 빛을 바라보던 무렵, 가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가주님을 뵙-"


"되었으니 팔을 내어라."


처음보는 가주님의 당황한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주춤거리며 내민 팔의 소매를 걷어 그 안을 확인한 가주님의 얼굴은 점차 더 굳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곱 획이 모여 원을 그리는 문양.


주신께서 선택한 용사에게서만 발현된다는 성흔이 내 어깨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주님...이게...."


"따라오거라."


그리 말하는 가주님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신전에는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잔뜩 긴장한 사제들이 우리를 마주했다.


"베른하르트 공작. 이 아이가...?"


"일단은,맞소. 검정 결과는 다르길 바란다만."


그리 말하곤 나를 내려보는 차가운 시선에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역시, 나 따위가 용사일 리가 없지.


고작 소가주 자리도 무거워 하는 나에게 세계를 구하라는 사명이 당차기나 한가.


차라리 그녀들이면 모를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다행인 일인데, 분명 그럴 건데,  


'흐읍'


왜 이리 서러운 기분이 들까.


알 수 없었다.


사실 난-


"-사님."


"ㄴ,네?"


날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와 앞을 바라봤다.


근데 사람들이 안보이는데..?


"주님의 종이 고귀하신 용사님을 뵙습니다."


어?


일제히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의 모습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들이 뱉은 말의 내용은 그것 따위와는 바할 바가 안되는 충격을 주었다.


내가 용사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는가 보다.


"말도 안 되지 않소! 이 아이가 용사라니!!"


얼굴을 붉힌 채로 사제들과 언쟁을 하는 가주님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던 찰나, 사제 한명이 천에 싸인 무언가를 들고 와 내게 내밀었다.


"용사의 성검. 용사만이 쥘 수 있는 검으로, 용사의 자격을 나타냅니다. 부디 이것을."


사제의 말에 따라 그가 받쳐 들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이윽고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사위를 메우더니 곧 갑옷으로 변해 내 몸을 덮었다.


"아아...용사님...."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까지 생긴 상황.


가주님은 언쟁을 멈췄고 사제들은 감격에 찬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그 후로도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해결된 끝에,


나는 마왕을 죽일 결사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

"용사님, 곧 출발할 시간입니다."


"네. 곧 나가겠습니다."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난 끝내 얼떨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당장 내가 용사가 된 것 만 해도 놀라 죽겠는데 존재조차 모르던 마왕이 일으킨 전쟁을 막으러 가야 한단다.


그것도 대륙을 횡단 해가면서.


'애초에 그런 놈이 전쟁을 일으켰는데 왜 몰랐던 거지?'


갑작스런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결사대에 참여하는 게 결정된 후 내게 전해진 마왕의 정보를 보면 말 그대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당장 제국의 전력을 모두 쏟아부어도 죽일 수 있을지가 궁금한 수준인데, 그런 놈에 대해서 알려진 게 하나도 없고, 결사대 하나 빼고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뭔가...뭔가 있는데...'


"용사님?"


"네, 지금 나갑니다."


다시금 들려온 하녀의 목소리가 날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다시금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하녀를 따라 저택 밖으로 나섰다.


"가주님과 공녀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진행되는 작전 이기 때문에 가문 내에서도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은 직계 혈족들과 몇몇 심복들이 끝이다.


그런만큼 가주님이 직접 배웅하러 나오신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후문으로 향하자, 말 한필과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베른하르트 가의 명예에 먹칠하지 마라."


.....배웅이랍시고 나와서 저런 말부터 할 줄은 몰랐지만.


"예. 그리 하겠습니다."


그나마 입을 열어준 가주님은 양반이었다.


첫째 누이, 리제는 아예 입을 열지도 않고 있었고,


리에는 한술 더 떠서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뭐 그리 미운 건지.......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이 욱신거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무탈하시길."


"다녀오거라."


이게 전쟁터로 나가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태도가 맞는지 모르겠다.


"잠깐."


"..네?"


말머리를 돌려 나가려는 순간, 들려온 리에의 목소리에 말을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걱정이 되기는 하는 모양-


"소가주 인장, 내놓고 가."


-일 거라고 기대했다. 멍청하게도.


"당장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전장으로 가는데, 인장을 들고가는 건 위험하잖아? 혹시 분실할 지도 모르고."


저게 나보다 소가주 자리를 더 걱정하는 거 같아 보인다면,착각일까.


"안그래도 정세가 불안한데, 소가주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리면 가문의 위신이 상해."


저게, 내가 죽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처럼 들린다면, 비약일까.


"그러니까. 전장에서 돌아오기 전까진 가문에서 맡아 놓는 게 맞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


참담한 심정을 담아 가주님을 바라보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리에의 말이 옳아."


심지어 계속해서 침묵을 고수하던 리제조차 그녀의 편을 드는 상황.


나는 어쩔 도리 없이 품속에서 소가주의 인장을 꺼냈다.


-탁


잽싸게 인장을 채가고는 환히 웃는 그녀를 보자 무언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넝마가 되어 겨우 버티던 내 정신력이 한계를 맞았다.


"....다녀오겠습니다."


다시금 말머리를 돌려 저택을 벗어났다.


-다그닥,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그 적막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죽어 돌아가면 슬퍼할 사람들이 있을까?'


가주님? 재능없는 나 대신 누이들에게 공작위를 물려줄 명분이 생겼다고 기뻐할거다.


리에? 굳이 말 할 것도 없다.


리제? 내 장례식에 얼굴이나 비칠 지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죽었을 때 더 기뻐할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죽는게 옳은 선택이 아닐까?


꾸역꾸역 살아 돌아가는 것보다 깔끔하게 죽는걸 반겨줄 사람들이 더 많은데,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점점 내 마음속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이 피어났다.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행복해지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죽음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다.


'그래도 마왕은 죽이고 죽어야지.'


마왕을 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용사 뿐.


내가 사라지면 마왕을 막을 수단이 없다.


내가 아무리 쓰레기여도 나 하나 편하자고 세상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을 만큼 악인은 아니다.


"....가볼까."


목표는 마왕과의 동귀어진.


그러려면 일단 결사대의 나머지 인원들과 만나야겠지.


다행히도 집결지가 여기서 크게 멀지는 않다.


대충 하루만 가면 도착할 수 있겠지.



.....그렇게 죽음을 향한 여정이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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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사람들은 약간의 계기만 있으면 미치는 법.

단지 주인공은 그 계기가 존나게 커서 그만큼 크게 미쳐버린 것 뿐.


여기서 처음 써보는 소설이라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재밌게 봐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