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소년이 마을을 걷고 있다.

조금 어색함이 담긴 미소를, 옆을 걷는 검은 머리의 소녀에게 지으며.


두 사람의 이야기의 막이 오를 때, 저 두 사람은 어떠한 길을 가는 것일까.

소년은 소녀와 함께 다시 바깥 세상을 목표로 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녀와 함께 이 마을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여자의 눈이 무언가를 알아챈 듯 가늘어진다.


 

「하아... 무례자가 여기까지 온 건가요...」



다음 순간, 여자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소녀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과거에 수많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녀의 변해버린 모습임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뺨은 쑥 들어갔고 희고 고왔던 피부는 더러우며, 한때 빛났을 금발은 칙칙한 데다가 몸에 두른 옷은 군데 군데 닳고 찢어져 꾀죄죄하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왼손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만이 푸르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는 그저 동쪽을 목표로 했다. 그날 들었던 『동쪽 나라』라고 말한 여자의 말에 의지한채.


거리를 떠날 때 가져온 여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났다. 

그 뒤로는 들판의 짐승을 잡아먹고 강물을 마시며 낮에는 쉬는 것도 잊고 계속 걸었고 밤에는 반지를 안고 길가에서 잤다.


그저 『소년을 만난다』 라는 망집과도 같은 생각 만이 그녀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동쪽 나라에서 어떤 산 속에 시즈키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소녀는 산길을 나아간다.


이 앞에 소년이 있다. 소년과 재회했을 때, 이 여행도 끝난다.

소년도, 소년과의 나날도, 소년과의 미래도 다시 돌아 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녀는 자신이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잃어버렸다』고, 되찾을 수 있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기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믿으려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에도 정도가 있어요』


 

언젠가 들은 방울 소리가 울린다.

눈 앞에 그 때 본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무례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요.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언제부터 그곳에 나타났는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의 여자가 묻는다.



「이 앞에 마을이 있는거죠? 그곳에 『그』가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나는 거기에 가는 거야. 나는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돼!」



여자를 노려보며 소녀가 외친다.

이 여자는 자신과 소년의 사이를 방해하는 존재라고 인식했다.



「그에게 사과하는 거야! 그리고 그와 다시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하려던 말은,



「필요 없다고 말했을 거에요. 그런 건 그 아이의 무덤 앞에서 하면 된다고」



여자의 목소리에 가려진다.


 

「전에 말했지만 그 아이와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 손으로 막을 내린 거에요」


 

여자는 고한다


 

「그 아이의 그릇 안에서 당신이라는 물은 흘러 넘쳤어요. 그야말로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이미 소녀는 차례를 잃은 배우라고.

 


「그리고 지금 그 아이의 그릇에는 새로이 맑은 물이 부어지고 있답니다」


 

예전에 소녀가 있었던 그곳에는, 이미 다른 존재가 있다고.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근처의 집에 사는 남자 아이를 좋아했어요. 

그 아이가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 어린 자신은 함께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아이의 무사함을 빌자. 

그 아이가 언제나 웃는 얼굴인 것을 바라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름답게 성장한 소녀는 몇몇의 이성에게 구애 받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 남자 아이를 계속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옥오지애. 그에 걸맞게 그 마음은 오래된 강이지만 끊어지지 않은 그 흐름은 저 아이의 그릇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딸의 사랑을 응원하는 어머니 같은, 온화한 얼굴로 말하는 여자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 아이의 그릇에 진흙을 넣는 것을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진흙...?」



이 여자, 지금 뭐라고 했어?

자신의 마음을, 소년을 향한 마음을 『진흙』이라고 평가한 건가.



「까불지 마!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나도 십년 동안 그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그것을, 그 마음을, 너 따위에게 바보 취급 받고 싶지 않아! 그 여자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거야! 」

『재잘거리지 마라 계집애야』


 

미소가 사라진다.

어조와 분위기가 바뀐다.

그 풍부한 검은 머리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주위의 공기가 무겁고 답답함마저 느껴진다.


 

동방의 전승에서 말하길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신도 악마도 된다』


 

또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악마가 된다』



과연 어느 쪽일까, 혹은 양쪽일까.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그것은 시조가 『시즈키』 를 자칭하고 천여 년.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즈키의 마음.

시즈키가 시조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시즈키의 아이들이 건강하길』


그 하나만을 위해 시즈키는 존재한다.


그것은 인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어져서는 안 된다.

비록 괴로워도,

비록 슬퍼도,

시즈키의 아이들이 생각해서 행동하고 그 끝에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어서는 의미가 없다.


때문에 시즈키의 선대는 단지 지켜본다.

그 앞에 보이는 것이 고통이라도.

길의 끝에 슬픔만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기만 한다.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

곳간을 짓지 않아도 좋다.

이름을 버리는 것 또한 자유.

그저 온화하게 웃고 있어 주면 그것으로 좋다.


눈이 닿지 않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슬픈 최후를 맞이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선대는 또 한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태어나 준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거듭 전한다.


고로 바란다. 그 인생에 행복이 있기를.

고로 기도한다. 그 가는 길에 빛이 있기를.


 

「분수를 알아라 계집애여. 천년에 걸친 시즈키의 기도와 염원, 반복되는 고뇌와 번민, 그 깊은 곳이 시즈키의 *팔엽원. 그 극치가 바로 시즈키의 천좌야. 그것을 맡기 때문에 사람의 이치조차 버린 이 나에게 『마음』을 말하는 건가」



깊게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한 분노를 담아 여자가 묻는다.



「어쩌다 들러붙은 천한 것에게 약간의 참언을 들은 것만으로 버릴 『생각』 밖에 하지 못한 네가」

「아... 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천년의 마음』 이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어째선지 이해되고 만다.


자신의 『생각』은 이 여자의 『마음』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말았다.

그래도......


왼손의 반지를 건드린다.


그 날 정신없는 상태로 당도한 소년의 방.

그 방에 있던 것은 조금의 잔향과 생활의 잔재.

예쁘게 정리된 짐이 있는 방 한구석, 방치된 작은 상자 안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이 반지의 빛만이 자신의 길을 비추어 주는 것이라고.

이 보석은 다시 두 사람의 길을 비추는 광원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타일러 왔다.


 

「나..... 나..... 는..... 속아서..… 하지만 그는 이 반지를 주었..... 고.....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속았다』? 아니야, 너는 그 아이를 『믿을 수 없었던』 거야」


 

필사적으로 짜낸 말도 정면으로 부정당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너는 그 아이와의 십년보다도 그 역겨운 참언을 『믿었던』 거야」


 

눈을 돌리고 있던 『사실』을 들이댄다.

하나, 또 하나.

 


「너는 그 반지를 그 아이에게 『받았다』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네가 거절하고 저 아이가 『 버렸던』 그것을 너는 그냥 『주운 것』일 뿐이야. 거기에 그 아이의 의사는 없어」


 

아아... 왜 자신은 이 반지가 그와 자신을 잡아 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 때 이 반지와 함께 있었던 그의 마음을 스스로 거절했던 주제에.

슬픈 얼굴의 그를 그냥 보내는 일 밖에 하지 않았으면서.


그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이 도움받고 싶어서 그의 잔재에 매달렸던 것이다.


 

「조금 전에 너는 그 아이에게 『준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 아이의 마음을 상처 입혀온 네가 이제와서 무얼 줄 수 있지?」


 

아무리 어리광을 부려도 곤란한 듯한 미소를 띄우면서 결국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 그의 상냥함이 기뻐서.

그것에 응석 부리고.

이윽고 우쭐거렸다.


조금은 슬픈 얼굴로 미소 지으면서도 곁에 있어 준 그에게 매정한 말을 계속 쏟아냈다.


 

「최후에는, 그 아이의 목숨마저 빼앗은 네가 도대체 무엇을 주겠다고 말하는 건가」



그 때, 확실히 도우러 달려 갔을 텐데



「다른 여자에게 연모하는 녀석과 함께 죽을 생각인가?」



그 남자의 말을 들었을 때, 몸이 마음대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를 버리고.


 

「그게 아니라면 뭐냐? 다른 남자를 삼킨 추잡한 가랑이라도 과시할 생각이었나?」

「에....?」


 


그것은 끝까지 닫혀있던 기억의 문.

결코 열어서는 안 되었던 것.

열어 버리면 망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

 


「기억나지 않는 건지 잊은 건지. 상당히 유감... 아니, 편리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그 날 그 후, 여자가 소년을 데리고 나타나기까지의 기억이 애매하다.

그 사이에 자신은 뭘 했지? 무얼... 한 거야?


 

「싫어... 싫어어...」


 

귀를 막고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소녀에게 여자의 목소리가 잔혹하게 울린다.


 

「그 아이가 산 채로 마물에게 먹히려던 그 때 너는 그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지?」

「싫어어어어어어어어!!!!!!」


 

소녀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몸을 허락할 정도로 사랑하는 거지? 빨리 거리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남자와 둘이서 오래 사는 게 좋아」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꼭 껴안고 웅크렸다.

솟구치는 불쾌감에 위액을 쏟아낸다.


하지만,


 

「아냐! 아니야! 달라! 다르다구! 」


 

더 잔인한 사실을,


 

「그렇네, 달라」


 

여자가 말한다.


 


 


 


『둘이 아니라, 『셋』 이었구나』

「무..... 어..... 를.....」



무엇을 들었는지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



「눈치채지 못했나. 거기에」



소녀의 몸을 가리킨다.


 

「너희의 『사랑의 결정』 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


 

소녀는 망가져 있었다.

소리가 되지 않는 절규를 질렀다.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머리를 흩뜨리며.

뭔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뻗어.


이윽고 의식을 잃었다.


여자가 떠난다.

쓰러진 소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어머?」


 

산길 저편, 나무들에 막혀 아직 보이지 않는 마을을 바라보며 여자가 기쁜 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 얼굴에는, 미소가 돌아오고 있었다.



「저 애들의 이야기가 막을 열겠네요」


 

산길을 나아간다.

방울 소리와 함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향해.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한때 소년이 살던 거리의 꾀죄죄한 뒷골목의 골목길에서 양팔이 없는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온몸을 난도질 당한 그 시체는 특히 『그 부분』 이 다져지고 없었으며, 그것을 본 남성 모두를 떨게 만들었다고 한다.


때를 같이 해 과거 소년이 남겨진 숲에서 한 소녀가 발견된다.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배에 스스로 칼을 꽂고 숨이 끊어져 있는 소녀의 손가락에는, 푸른 보석의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모른다.


이것은 소년의 이야기의 막간에 있었던 아주 작은 좌흥.

스스로 무대를 내려갔으면서 다시 무대에 오르려던 무례한 배우와 그것을 막은 한 명의 관객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촌극.

소년은 다시 여행을 떠난다.

검은 머리 소녀의 손을 잡고.

소년과 소녀의 두 명의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관객은 그것을 그저 상냥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옥오지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의 집 지붕에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뜻으로, 깊은 사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팔엽원: 불교 용어. 만다라의 중앙에 있는 원으로 이 여덟 연꽃 잎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8엽(葉)의 육단심(肉團心)을 상징, 그것이 곧 네 부처와 네 보살이며, 이렇게 하여 범부의 몸이 그대로 부처의 몸임을 여실하게 표시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