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기까지 인가요...」



밤바람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거센 바람에 검은 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슬픈 눈빛의 여자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눈 밑으로 보이는 것은 만신창이로 나무에 기대어 서있는 소년과 소년이 상대하는 마물의 거구.


 

「...혹은 마지막 기회일지도,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마물 앞에 내려서면서 한순간만 시선을 멀리 던진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는 마치 오물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 힘은 없고, 간신히 손에 쥔 검은 그 날이 아래까지 전부 닳아서 사라져 있었다.


『잘 싸웠다』 그렇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이 마물은 소년 정도의 실력, 게다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여기까지 살아 남았다.

그 몸 안에서 나오는 증오와 분노의 불꽃을 양식으로 여기까지 계속 싸운 것이다.


그럼에도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고, 마침내 명운이 다하는 때가 왔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면서 이제는 뜨는 것조차 버거운 그 두 눈에 비친 것은 다가오는 마물의 거대하고 날카로운 송곳니.

더는 피하는 것도 막는 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은 그저 최후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울 소리가 들린다...)


소년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 앞의 마물이 『소멸』 한다.

그 이후 보인 것은 흰 옷과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외모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척 상냥한 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어머니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왠지 모를 편안한 느낌이 든 소년은 의식을 놓았다.





흔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어요.

함께 지낸 두 사람은 장래를 맹세합니다. 

그때 소녀는 소년에게 한가지 『부탁』 을 했어요. 

그리고 소년은 그 부탁을 『약속』  했답니다.


시간은 흘러 약속의 때가 왔습니다.

소년은 실력에 맞지 않는 마물을 퇴치하려고 생각합니다. 

그 마물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소녀의 눈색과 같은 푸른 보석을 얻기 위해서죠.


그렇지만 그 마물은 소년 혼자서는 도저히 퇴치 할 수 없었어요.

때문에 소년은 실력 있는 지인들에게 응원을 부탁합니다.

무사히 보석을 손에 넣고 거리로 돌아왔을 때, 도움을 준 지인의 여동생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동생은 소년을 축복해 주었죠.


"요즘 조금 엇갈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소녀는 기뻐해 줄 거야"


소년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찼습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죠.


 


소녀는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구애하는 남자는 많이 있었습니다만 소녀는 소년 만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렇지만 어떤 남자가 속삭였습니다.



『소년은 소녀가 아닌 다른 여자와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 증거로 소년은 소녀 몰래 외출하고 있다』



소녀는 웃어 넘겼지만,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 말은 어느 새 마음 한구석에서 검고 탁한 연기가 되어 있었죠.

그리고 소녀는 보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지인의 여동생과 사이좋게 걷는 모습을.

소녀의 마음은 질투로 가득 찼어요.


 

그리고 그 날은 소녀의 열 여섯 번째 생일이었죠.

소년의 손에는 그 날 손에 넣은 보석을 장식한 반지, 그것이 들어간 상자가 있었습니다.


『나의 열 여섯 번째 생일에 내 눈과 같은 색의 보석 반지를 가지고 결혼 신청을 해줘』


그것은 그림책을 본 소녀의 작은 동경.

그 소중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년은 소녀의 방문을 두드렸어요.



『생일 축하해. 이걸 받았으면 좋겠어』



소년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어요.

소녀가 그것을 받아주는 것과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지만...



『그런 건 필요 없어』



소녀의 말과 함께, 작은 상자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죠.

소년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소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과,

강한 마물을 퇴치하려던 결의와,

보석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과,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과,

꿈꾸고 있었던 행복한 미래.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부서져 버린 것입니다.



『미안해』



소년은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그 말만 하고는 상자를 주워 소녀의 방을 떠났습니다.

이제 소녀와는 함께 있을 수 없어.

가까운 시일내에 어딘가 먼 곳으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소년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물을 주면서 축하해 준다.


그것은 매우 기쁜 일인데, 화목하게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 순간 손과 입은 그녀의 의사를 무시한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소년의 매우 슬퍼보이는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죠.


쫓아가야 해.

소년에게 사과해야 해.


머리 속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떨리는 다리는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기가 운명의 분수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때도 소년과 소녀의 인연은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것은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었지만, 아직 연결되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소녀가 한 걸음만 더 내디뎠다면,  아주 조금만 더 손을 내밀었더라면.

나뉘어진 강은 다시 하나가 되어 흐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을텐데...

지금,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끝을 고했습니다.


 


 


 

「흔히 있는 이야기에요」



여자가 중얼거린다.



「마을로 돌아가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갓난 아기에게 말을 거는 어머니 같은 상냥한 목소리로


 

「제가 데리고 갈 테니까, 그 때까지 안심하고 푹 쉬어 주세요」


 

팔 속의 소년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그 전에...」


 

소년을 끌어안은 채 천천히 움직이는 그 발걸음의 끝에 거리의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흔한 이야기인 것이다.

지난 천년 동안 몇 번이나 보아온 광경이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의 막은 내렸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야기가 끝난 후의 이야기.

내려간 막과 새롭게 오르는 막 사이에 있는 그저 막간의 •좌흥.

무대를 내려온 배우와 관객들 사이에서 오가는 촌극.


소년이 아는 것은 없다. 

이야기의 주역인 소년은 대기실에서 휴식하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의 막이 오를 때까지...







•좌흥: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의 흥취.